순천만 가는 길

작성일
2020-02-22 07:17
조회
784

순천만(順天灣) 가는 길


(여행일: 2020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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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내리는 눈은 당연하겠거니 한다. 입춘도 한참 지났음에도 눈다운 눈이 서운찮을 만큼 쏟아진 계룡산의 풍경을 보면서 길떠날 채비를 했다. 오늘은 흑두루미를 만난다는 목적으로 남행하기로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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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밤에 내린 눈으로 계룡산 자락이 예뻐졌다. '봄날의 눈이 녹듯 한다'니까, 햇살이 드러나면 이내 녹아버리겠거니..... 철원나들이를 했을 적에는 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남녘에 눈소식이 있으니 어쩌면 눈이 내린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만나게 될 가능성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으니 출발하는 마음도 살짝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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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독수리들이 먼길을 잘 다녀오라고 전송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처음엔 까마귀인가 했는데 날갯짓이 달라서 다시 보니 독수리로 보인다. 매는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덩치가 매보다 커보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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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먹이가 눈에 띄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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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는 길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09시 38분에 출발을 했다. 단정학과 재두루미를 봤으니 흑두루미만 보면 두루미의 3종세트를 다 보게 되는 것도 살짝 기대가 된다. 철새가 언제 북쪽의 고향으로 돌아갈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갑자기 혹한의 예보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지 : 눈이 온다는데 그냥 가실려우?
낭월 : 눈이 오길 많이 기다렸는데 얼마나 고맙노! 당연히 가야지.
연지 : 한파가 온다는데 괜찮을까?
낭월 : 준비했다. 카메라 방한장비도 챙겼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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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가 내리듯이 눈발이 오락가락하는 사이를 달려서 우선 가까운 여산휴게소에 멈췄다. 아침을 해결할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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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배추들이 눈을 소복하게 뒤집어 쓰고 있는 것도 그림이 되네. 여행길의 나그네에겐 그 모두가 아름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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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선 우동이다. 잔치국수가 있으면 그것이 선택되었을텐데 우선 눈에 띄는대로 우동으로 결정했다. 10시 20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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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요기가 되겠다. 든든하게 먹고는 다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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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속도로를 타면서 눈발이 흩날리지만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안내판에서는 계속해서 눈길 미끄럼 주의가 계속 나그네에게 경계 정보를 보여준다. 오늘 대설주의보가 있다는 것을 새벽에 봐뒀으니 당연히 예보에 따라서 나오는 안내이겠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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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194km이고, 시간은 2시간 18분이다. 길이 참으로 좋긴 하다. 순천까지 계속해서 고속도로가 이어져 있다는 것이 여행길에는 느긋함을 주기조차 한다. 아무래도 고속도로는 상황이 믿음직한 까닭이다. 비록 눈이 쏟아진다고 해도 가장 안전할 것이라는 신뢰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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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진에는 시간정보가 없다. 귀가하여 확인하게 되었지만 날짜는 하루가 늦춰져있고, 시간은 오전을 오후로 표시되어 있어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까닭이다. 뭔가 조작하면서 변경이 되었던 모양이다. 여행에서 시간정보는 나름 중요한데 어쩔 수가 없다. 오류보다는 없는 것이 낫지 싶어서 포토웍스에서 크기를 변환하면서 시간정보를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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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여정(旅程)도 중요한 과정이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더욱 중요하다. 수시로 도로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또 폰으로 영상도 찍어본다. 다행히 운전은 연지님의 몫인지라 조수석에서의 여정을 기록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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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괜찮겠어?
낭월 : 괜찮아!
연지 : 분위기가 심상찮은데.....
낭월 : 길이 미끄러우면 바로 차를 돌리자고.
연지 : 이렇게 퍼부으면 도로에도 눈이 쌓이겠잖아?
낭월 : 설마 도로에 쌓이겠냐고. 몇 도야?
연지 : 영하2도네.
낭월 : 이렇게 한 시간 정도 퍼부으면 쌓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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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조심혀, 진입로에 트럭이 들어온다.
연지 : 봤어. 큰 차는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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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에서는 여전히 속도를 줄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익산에서 흩날리던 눈발이 완주를 지나면서는 쏟아지고 있으니 경고판의 무게가 느껴진다.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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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上關)을 앞두고 길에 바퀴자국만 눈이 녹는다. 하늘은 캄캄해진다. 분위기가.... 도로운(道路運)은 나빠지고 있음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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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눈은 쌓여도 아직 미끄러울 정도는 아니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순천까지는 별일이 없이 도착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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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터널이 반갑기도 하네.
낭월 : 눈이 안 쌓여서?
연지 : 적어도 터널 구간에서는 미끄럼 신경을 안 써도 되니까.
낭월 : 그렇지.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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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터널을 하나 통과하고 나면 상황은 더 나빠지는 것이 보인다. 이제는 바퀴자국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 입으로는 '아직은 괜찮아~!'라고 하면서, 맘으로는 '이대로 괜찮을랑강....'싶은 모순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순간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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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트럭 뒤를 따라가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겠지?
낭월 : 좀 심하긴 하네.... 다음에서 빠질까?
연지 : 계속 이렇게 퍼부으면 그래야 할 것 같네....
낭월 : 조금만 더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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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차는 후륜구동이다. 보통의 상황에서는 추진력이 좋지만, 눈길에서는 미끄럼에 매우 약한 취약점을 갖고 있다. 그것도 잘 알고 있다. 길에서 하얀 색이 거의 90%로 덮혀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살짝 긴장하게 된다.

낭월 : 앞의 트럭이 너무 못간다. 하도 퍼부으니 큰 트럭도 살살 기고 있군.
연지 : 차선을 바꿔야 할까 보네.
낭월 : 그래 조심해서....

갑자기 차가 좌우로 미끄럼을 탄다. 순식간에 중앙분리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러다가 부딪치지 싶다. 그렇게 아찔한 중에 두어 번 좌우로 미끄러지면서 흔들리다가 무사히 제 자리를 잡았다. 이런 때에 쓰라고 있는 말이 '아찔~!'일까? ㅋㅋㅋ

낭월 : 브레이크는 밟지 않지?
연지 : 물론이지. 큰일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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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터널을 보니 반갑네. 
낭월 : 왜 아녀. 잠시나마 안전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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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두를 굴렸다. '이렇게 계속 퍼붓는다면 아무래도 차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또 이러다가 다시 눈발이 줄어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은 내려놓지 않고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만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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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터널을 통과했다. 앞서 달리던 차들의 속도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감속하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감속하게 되어 있다. 상황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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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기온은 영하2.5도. 속도는 50km를 오르내린다. 그래도 제법 속도가 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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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다음 출구에서 나가자. 안 되겠다.
연지 : 아무래도 그래야 겠네...
낭월 : 트럭들을 벗어나서 차선을 바꾸자.
연지 : 지금은 차선 바꾸는 것도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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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햇살이 나타난다. 터널 하나 지나면 또 달라지는 풍경에 출구를 찾던 마음이 요동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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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이 정도라면 폭설구간은 벗어난 모양이잖아?
연지 : 그렇네. 그냥 가도 될라네벼.
낭월 : 그럼 조금 더 가보자. 또 여차하면 나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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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일어난다. 다리 위에서는 흔들릴 지경이다. 운전자는 핸들을 움켜쥐지만 조수석에서는 앞에 등장하는 산등성이의 눈보라에 눈길을 빼앗긴다. 눈길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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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은 뭉게구름이 두둥실이고, 산에서는 흔하지 않은 바람과 눈의 합작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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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터널 하나를 지났다. 그리고 풍경은 삽시간에 급변한다. 폭설이 한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듯 한다. 바로 이 구간에서 그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의 시간에서 대략 30분 이후에 벌어진 일일 것으로 가늠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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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던 모양이다. 저녁을 먹으면서야 그 소식을 접했다. 상행선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매2터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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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를 내는 대형사고였다. 그 시간 무렵에 그 장소를 통과했기 때문에 상상이 아닌 생생함으로 느껴졌다. 터널 안이 운전하기 편하다는 말은 취소해야 했다. 영하의 기온에서 빙판이 되어버린 터널은 그야말로 위험한 공간일 따름이다. 그리고 트럭의 뒤가 안전하다는 것도 바로 취소해야 했다. 트럭이 멈추고 뒤에서 들이 받으니 그 사이에 낀 승용차는 어떻게 해 볼 방법도 없이 참상을 당해야 했던 영상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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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선은 이미 눈 속에 묻혀버렸다. 터널 내부에서는 차들의 후미등이 보였다. 정체가 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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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매4터널이다. 터널 내부 안내판에서는 사고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이제 빠져나갈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조심조심 또 조심 그것밖에는 선택지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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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반대쪽 상행선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항상 다행이다. 여기에서 지금 이 순간에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흑두루미 보러 가다가 스스로 두루미가 되어서 하늘로 날아갈 뻔 했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래도 아찔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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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트럭의 바퀴자국을 의지하게 된다. 트럭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출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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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늘이 개었다. 설마.... 또 쏟아질랑강.... 그래도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북남원으로 빠지자고 했더니 도로가 조금만 더 가보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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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간이휴게소가 나타난다.

연지 : 워셔액부터 사야 겠네.
낭월 : 그래 긴장된 몸도 좀 쉬는게 좋겠다.
연지 : 어깨랑 목이 뻣뻣하네.
낭월 : 긴장도 많이 했구나.
연지 : 그래도 여기까지 잘 온 것이 고맙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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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 모습에서 좀 미안하긴 하다. ㅋㅋㅋ

11시 50분이다. 여산에서 10시 30분 쯤에 출발하면서부터 1시간 남짓의 시간이 흘렀구나. 그 사이에 지옥과 지옥을 넘나들면서 곡예를 했다. 느낌상으로 다섯 시간은 흘렀지 싶은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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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사람들이 모두 워셔액만 찾아서 싼 것은 다 나갔다네.
낭월 : 싼 것은 얼만데?
연지 : 5천원.
낭월 : 그래서 샀나?
연지 : 8천원 짜리는 있어. 장 사용하던 겨.
낭월 :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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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랬냔다. 길바닥이 뽀송뽀송하다. 이런 것이 길이고, 이런 것이 인생이려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금방 죽을 듯이 힘들어도 그 과정을 잘 넘기고 나면 다시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또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여행길은 삶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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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지리산 자락의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산은 바라보는 것이니깐. 바라 볼 적에 가장 아름답다고 우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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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거의 다 왔다. 순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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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화사한 순천이다. 역시 길은 출발해야 도달한다.

연지 : 배 고프다. 밥 먹고 가자.
낭월 : 아점 먹은지가 두 시간도 안 되었는데?
연지 : 긴장했다가 풀려서 그런지 쉬고 싶기도 하고.
낭월 : 하긴, 그래 어디든 들어가서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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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흑두루미 소리가 들려온다. 얼른 달려가고 싶은데 일단 연지님이 좀 쉬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꾸욱~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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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 뭘 드시겠어요?
연지 : 꼬막비빔밥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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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마운 길동무이다. 이제 든든하게 챙겨 먹고는 흑두루미를 만나러 가자. 이젠 폭설이 쏟아져도 좋고, 아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고..... 눈발 속에서 흑두루미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 살짝 흥분이 되기도 한다. 삶이란 이런 것이겠거니.....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