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이기(理氣)

작성일
2007-09-1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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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滴天髓原文】




理乘氣行其有常 進兮退兮宜抑揚

이승기행기유상 진혜퇴혜의억양




【滴天髓徵義原文】




進退之機. 不可不知. 非長生爲旺. 死絶爲衰. 必當審明理氣之進退. 庶得衰旺之眞機. 凡五行旺相休囚. 隨四季而定. 乃天然之程序. 將來者進. 是謂相. 進而當令. 是謂旺. 功成者退, 是謂休. 退而無氣, 是謂囚. 須辨其旺相休囚, 以知其進退之機. 日主喜神宜旺相. 不宜休囚. 凶殺忌神宜休囚. 不宜旺相. 然相勝於旺. 旺卽極盛之物. 其退反速. 相則方長之氣. 其進無涯也. 休甚於囚. 囚則旣極之勢. 必將漸生. 休則方退之氣. 未能據復也. 此理氣進退之正論. 爰擧兩造爲例.

진퇴지기. 불가부지. 비장생위왕. 사절위쇠. 필당심명리기지진퇴. 서득쇠왕지진기. 범오행왕상휴수. 수사계이정. 내천연지정서. 장래자진. 시위상. 진이당령. 시위왕. 공성자퇴, 시위휴. 퇴이무기, 시위수. 수변기왕상휴수, 이지기진퇴지기. 일주희신의왕상. 불의휴수. 흉살기신의휴수. 불의왕상. 연상승어왕. 왕즉극성지물. 기퇴반속. 상즉방장지기. 기진무애야. 휴심어수. 수즉기극지세. 필장점생. 휴즉방퇴지기. 미능거복야. 차리기진퇴지정론. 원거양조위례.




‘이치를 타고서 기운이 흐르니 어찌 항상 함이 있겠는가? 나아가고 물러남에 의해서 도와주기도 하고 눌러주기도 하는 것을...’




“진퇴의 기틀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장생이나 녹왕을 旺이라고 하고, 사절을 衰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잘 알아야 할 것은 이기의 진퇴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깊이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만 되면 비로소 衰旺의 참된 기미를 얻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대저, 오행의 旺相休囚는 사계절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니 이것은 자연적으로 질서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앞으로 올 성분은 相이라고 하고, 그 성분이 도달했으면 당령(當令)이라고도 하니 이때에는 旺이라고 하게 된다. 또 공을 이루고는 물러가는 것이니 休가 되고, 물러가서는 氣가 없으니 이것을 일러서 囚라고 하게 된다. 그러니 모름지기 그 旺相休囚만 제대로 가려낸다면 진퇴의 기틀을 바로 안다고 할 것이다.

日主의 희용신은 旺相에 해당해야 좋고, 休囚가 되면 나쁜 것은 두말을 할 것도 없다. 또 반대로 기구신이라면 오히려 休囚가 되어야 좋고, 왕상이 되면 나쁜 것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본다면 旺보다는 相이 더 좋다고 하겠으니 왕은 이미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므로 머지 않아서 쇠하게 될 시간이 그만큼 빨리 다가온다고 하겠는데, 相은 이제 바야흐로 팽창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또 같은 의미로 休가 囚보다 더 약하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니, 囚는 극에 달해서 이제 머지 않으면 다시 생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休는 이제 마악 왕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바로 돌아서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가 바로 진퇴에 대한 바른 설명이라고 하겠다.”







【강의】




책에는 理承氣兮로 되어 있는데, 이 혜(兮)는 행(行)으로 바꾸는 거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行은 滴天髓闡微에 나와있는 글자이다.

진혜퇴혜의억양은 ‘나아가기도하고 물러나기도 하니 때에 따라서 누르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한다.’는 정도면 되겠다.

‘이치를 타고 기가 흐른다.’ 라는 말은 너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짚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간결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보면 백온님의 음양오행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여기에서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에서도 대단한 성리학자들이 있었다. 율곡 선생이나 퇴계 선생 등이 그렇다. 一元論과 二元論의 대립으로 많은 토론이 전개되었던 것은 조선시대에 얻어진 가장 큰 철학적인 발전이라고도 하는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는 벗님도 많겠지만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理氣의 구조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는 문제가 당시로써는 참 골 아픈 문제였던 모양이다. 어찌 생각을 해보면 ‘닭과 계란의 논쟁’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토론 같기도 하다. 일원이라는 말은 서로 이기는 서로 하나라는 주장이고, 이원이라는 것은 둘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일원론은 ‘理=氣’라는 생각인데 반해서 이원론은 ‘理and氣’가 되는 것이다. 율곡 선생님이 일원론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면 퇴계 선생님이 이원론을 좋아했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어느 것이 올바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적천수에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다. 적천수의 의미에서는 즉 이치에서 기가 나온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것을 확대 해석하게 되면 기에서도 이치가 나온다고 하는 것도 추가시켰으면 좋겠다. 무슨 말씀이냐면,




理에서 氣가 나오고

氣에서도 언제나 理가 존재한다.

이 둘은 어느 것이 선후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不可不離로 나눌 수도 합칠 수도 없는 상태이다.

이것이 理氣이다.




이렇게 군소리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백온님의 간결한 말씀의 산뜻한 맛에는 비할 수가 없다. 理承氣行.... 너무 멋진 말이다. 불교식으로 한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도 있겠다.




“理氣不二”




理와 氣는 둘이 아니다. 즉 이가 작용을 하면 기가 되고, 기가 고요하면 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선후를 구분하기도 어렵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아무래도 하근기의 낭월이로써는 보다 形而下學的으로 설명을 해야 뭔가 이해를 도왔다는 기분이 든다. 참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부연 설명을 해본다.




가령 나무가 있다고 하자. 그 나무를 통해서 목을 이해하는 것이 보통 공부를 하는 방법이다. 그 이유는 나무에서 목을 느끼는 것이 흙이나 돌에서 목을 느끼는 것에 비해서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 의미를 잘못 이해를 하고서 나무를 목이라고만 알고 있는 경우에는 참으로 답답하다. 목이 응고를 하면 質이 되어서 군불도 때고 소풍을 가서 불놀이도 하는 나무가 된다. 그러다가 이것이 다시 분해가 되어서 허공 속을 떠돌게 되면 목의 기가 되어서 생동감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불을 피워 놓으면 그 자리에는 생동감이 활기차게 약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목이 기화되어서 그렇다고 보고 싶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는 언제나 움직이지 않는 木의 理가 있다. 理는 나무로 있을 적에나 기운으로 있을 적에나 씨앗으로 있을 적에나 언제든지 그대로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각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 한 그루에도 이 천연의 법즉인 木의理가 작용을 해서 그렇게 자라나고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이로 미뤄 보건대, 이는 모든 기 속에 그대로 포함이 되어 있고, 기도 또한 이 속에 그대로 포함이 되어 있어서 마치 인간과 영혼을 둘로 나눌 수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엉켜 있는 상태를 말한다. 理氣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고 줄인다.




‘이치가 기를 타고 흐르니 어찌 항상 할 수가 있겠느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에서 누르고 도와줌이 있나니!’




理氣에 대한 설명은 한다고 했는데, 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렇게 두 마디의 말로 요약이 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모든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理氣의 법즉에 의해서 항상 변화를 하고 있는 자연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래서 進退를 생각하고 또 抑揚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이 변화에 통하는 것(通變)이 아닐까 싶다. 흔히 통변이라는 말을 말장난 정도로 생각을 하고 계신 벗님도 계시는 것 같다. 그러나 실은 이렇게 의미심장한 의미가 들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변화에 통해야 남에게 설명을 함에 이치에도 부합이 되면서 납득이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올바른 통변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된다.




★ 누르고 도와줌은 그대로 抑扶法이다.




어느 선배님은 명리학을 연구하는데 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당연한 의미이다. 그러니까 전부가 될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과연 억부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낭월이가 짧은 소견으로 판단하기에는 억부에서 명리의 오묘함을 모두 터득하지 못한다면 다른 이야기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정도로 억부의 이치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확실한 것을 좋아하시는 벗님들에게는 85%가 억부의 논리로 부합이 된다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실은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해서 억부의 이론이 개입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즉 그 말은 억부가 기본이라는 이야기이다. 변화에 통하기 위해서는 기본을 알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하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기본을 우리는 정석(定石)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정석은 원래 바둑을 두는 곳에서 발생한 용어라고 생각이 되는데, 요즘은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하므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확실하게 고정되어 있는 돌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 정석이 바로 자평명리에서는 억부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석의 원리를 잘 헤아리지 않고서 변화에만 관심이 가는 것은 마치 사상누각(砂上樓閣)과도 같아서 결실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적천수의 서두인 통신송에서 주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억양(抑揚)이다. 눌러야 할 경우에는 눌러주고 도와줘야 할 경우에는 도와줘야 한다는 간단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중요한 핵심을 잘도 짚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디 벗님은 억부를 소흘히 생각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다.




철초님은 진퇴(進退)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으셨든 것 같다. 이기론 보다는 진퇴론이 더 매력적이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기론은 모른채 하시고 진퇴에 대해서 언급을 하신 모양이다. 이 말의 의미도 역시 심장하다. 왜냐면 장생이나 녹왕이나 사절이라는 말은 그 출처가 바로 십이운성(十二運星)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낭월이가 십이운성이 의미가 없다고 하는 이유를 납득하실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명확하게 ‘있다’ ‘없다’를 구분하는 것은 아마도 뜨뜨미지근지근~ 해 가지고는 도무지 맘이 편하지 않은 철초님의 천성일 거라고 생각을 해본다. 철초님의 사주는 丙午일주이다. 그렇다면 병오의 확고하고도 직선적인 성품이 애매모호한 분야에서는 정면으로 부정을 하고도 남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겠다.

오행의 이치를 잘 살피지 않으면 쇠왕의 기틀을 알았다고 하기가 어렵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행의 이치는 결국 다른 것이 아니다. 계절에 따라서 나타나는 旺相休囚死에 대한 의미를 바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새 파악이 된다.

여기에 다른 것이 끼여들어서 괜히 연구하는 학자들만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어서는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적천수를 바탕 삼아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에 대해서 맘놓고 거론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이렇게 理氣의 진기를 바로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너무 간결하다. 왕상휴수사에 대한 이치만 바로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벗님은 이미 이러한 이치를 파악하고 계신 셈이기도 하다. 『왕초보사주학』을 보셨다면 왕상휴수사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틀을 바로 알지 못하고서 괜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으로 시간낭비에 혼란의 연속일 뿐이라고 하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있다. 그리고 십이운성으로 왕쇠를 이해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여기에서 분명히 봤다. 그럼에도 그러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 참으로 답답한 생각이 적지 않게 든다. 물론 스스로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것을 강제로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오행의 참된 기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마도 당시의 철초님의 마음도 이렇지 않으셨을까 싶다.

진퇴의 기틀을 보는 방법은 현재의 자연적인 상황에 너무 집착을 하지 말고 그 내부에 흐르고 있는 핵심적인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정도만 파악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즉 간단히 말하면 ‘보름달보다 초생달이 더욱 좋은 암시가 있다’는 이야기와 통한다고 하겠다. 백제가 망할 무렵에 그러한 꿈을 꿨다고 하는 말이 있다. 백제는 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생달이었다는 이야기를 모두 알고 계실 것이다. 이 정도로 줄이고 사주를 보자. 진퇴의 기틀에 대한 설명용으로 인용한 사주가 두 개 등장을 한다.




時 日 月 年

壬 甲 庚 丁

申 辰 戌 亥

壬癸甲乙丙丁戊己

寅卯辰巳午未申酉




甲木休囚已極. 庚金祿旺剋之. 一點丁火. 難以相敵. 加之兩財生殺. 似乎殺重身輕. 不知九月甲木進氣. 壬水貼身相生. 不傷丁火. 丁火雖弱. 通根身庫. 戌乃燥土. 火之本根. 辰乃濕土. 木之餘氣. 天干一生一制. 地支又遇長生. 四柱生化有情. 五行不爭不妒. 至丁運科甲聯登. 用火敵殺明矣. 雖久任京官. 而宦資豊厚. 皆因一路南方運也

갑목휴수이극. 경금녹왕극지. 일점정화. 난이상적. 가지양재생살. 사호살중신경. 부지구월갑목진기. 임수첩신상생. 불상정화. 정화수약. 통근신고. 술내조토. 화지본근. 진내습토. 목지여기. 천간일생일제. 지지우우장생. 사주생화유정. 오행부쟁불투. 지정운과갑연등. 용화적살명의. 수구임경관. 이환자풍후. 개인일로남방운야




“甲木은 허약함이 극에 달했는데, 庚金은 녹왕(比劫)을 깔고서 공격을 하니, 약한 丁火는 경금을 제어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두 개의 財星이 살을 생하기조차 하니 殺重身輕의 구조라고 하겠다. 즉 살은 강하고 일주는 약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모르겠는가? 戌月은 甲木이 進氣에 해당하고 壬水가 바짝 붙어서 생조를 해주고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서 오히려 丁火를 극하지 않으니 정화가 비록 약하기는 하지만 신고(身庫)인 戌土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술토도 또한 조토로써 화의 뿌리를 잡아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辰土는 습토이니 목의 여기도 해당하니 역시 뿌리가 된다. 이런 상황이므로 천간에서는 하나는 생조를 해주고 또 하나는 극제를 해주는데, 지지에서는 또 亥水를 만나서 生이 되어서 사주의 흐름이 생화하고 유정해서 다툼도 질투도 없는 것이다.

丁火운이 되자 과거급제하고 벼슬이 계속 올라가니 정화를 용신으로 삼아서 관살을 제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비록 오랫동안 경관(벼슬이름)에 임명되었으나 (그래도) 벼슬길이 넉넉했던 것은 모두 운이 남방을 달렸던 때문이다.”







【강의】




이제 실제로 사주를 예로 들면서 설명이 진행된다. 참고로 언젠가 일없이 적천수징의에 나오는 사주가 모두 몇 개인가를 세어봤더니 512개의 명조였다. 그 중에서 한 개만 중복되어있고, 모두 다른 사주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한번 보는 것만으로 이미 500여 개의 사주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셈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 중에서는 가끔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사주도 있을 것이다. 낭월이가 생각을 해봐도 왜 그렇게 설명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주들이 몇조 보인다. 그러나 일단 원문대로 설명을 하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토를 달아서 낭월이의 사견을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이 사주도 바로 그 이해가 어려운 사주에 속하는 것이다.

이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戌月이 甲木의 進氣’라고 하는 것은 다소 강제적인 의미가 포함되는 느낌이다. 亥月이 되어야 올바른 진기가 되는데, 아직은 좀 이른 감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또 모를 일이기는 하다. 낭월이는 아직 안목이 부족해서 술월에서 갑목이 생조를 받고 있는 것까지는 보이지 않는데, 철초님 정도의 안목이라면 술월에서 생조를 받고 있는 것이 보일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낭월이의 생각으로는 다소 강경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시다 보니까 그렇게 나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 사주는 정화를 용신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남방의 운에서 그렇게 잘 되었다고 한다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다소 약하기는 해 보이지만, 술월의 갑목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의 물이 있는 이상 추가로는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금을 쓸 수가 있느냐는 생각도 해보겠는데, 사주에 금이 너무 강해서 마음이 상관으로 흘렀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래서 傷官制殺格이 된 셈이다. 또한 용신인 정화가 月支에 통근을 하고서 잘 버텼다고 하겠다. 큰 무리가 없어 보이는 설명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신약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주의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더러 있다는 점도 말씀드려야 하겠다. 이러한 사주를 대하고 가져야 할 생각은 ‘그렇게도 볼 수가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너무 하나의 사주에 집착을 하다 보면 책을 보기 싫어질 가능성도 있겠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주가 가끔 등장을 한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고려를 해봐야 할 것은 조후에 대한 용신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중국은 땅이 넓다. 그러니까 그 넓은 땅의 추운 지역이라고 한다면 벌써 눈이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장춘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온 차이가 심하다고 하니까 혹 술월에 갑목이 수분은 이 정도면 되었다고 보고 조후로 정화가 채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하겠다. 그러한 것을 철초님이 넘겨짚으셔서는 진기라고 하시지만 실상은 조후용신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다소 합리적인 이해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성미가 급하신 분의 주장이므로 이 정도만 이해를 해도 되리라고 본다.




時 日 月 年

壬 甲 庚 乙

申 戌 辰 亥

壬癸甲乙丙丁戊己

申酉戌亥子丑寅卯




此如前造大同小異. 以俗論之. 甲以乙妹妻庚. 凶爲吉兆. 貪合忘冲. 較之前造更佳. 何彼則翰苑. 此則寒金. 不知乙庚合而化金. 反助其暴. 彼則甲辰. 辰乃濕土. 能生木. 此則甲戌. 戌爲燥土. 彼則申辰拱化. 此則申戌生殺. 彼則甲木進氣而庚金退. 此則庚金進氣 而甲木退. 推此兩造. 天然之隔. 進退之機. 不可不知也.

차여전조대동소이. 이속론지. 갑이을매처경. 흉위길조. 탐합망충. 교지전조갱가. 하피즉한원. 차즉한금. 부지을경합이화금. 반조기폭. 피즉갑진. 진내습토. 능생목. 차즉갑술. 술위조토. 피즉신진공화. 차즉신술생살. 피즉갑목진기이경금퇴. 차즉경금진기 이갑목퇴. 추차양조. 천연지격. 진퇴지기. 불가부지야.




“이 사주도 앞의 사주와 대동소이해 보인다. 흔히 세간에서 말을 하기는 ‘甲木은 乙木으로써 庚金의 처로 삼으니 흉이 길로 변하는 조짐이다. 더구나 또 합을 탐해서 충을 잊는 것도 있으므로 앞의 사주보다도 더 좋아 보인다’고 할 것 같다. 근데 어떻게 저 사람은 한원의 벼슬을 했는데, 이 사람은 추운 선비에 불과했을까? 이 경우에는 을경합이 되면 오히려 금으로 화해버리게 되니 결국 도리어 그 난폭함을 도와주는 꼴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말이다. 앞의 사주는 甲辰일주여서 辰土는 습기가 있으므로 뿌리를 내릴 수가 있었는데, 이 사주는 甲戌이니 申金과 戌土가 도리어 금의 뿌리만 되고 있는 형상이다. 또 저 사람은 목이 진기이고 금은 퇴기에 해당했는데, 이 사람은 금이 진기이고 목은 퇴기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不知)이다. 이 두 사람의 사주를 볼 적에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러니 진퇴의 기틀을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의】




이번 사주는 앞의 사주와 서로 비교를 해보려고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앞에는 戌月 甲木이고 이번에는 辰月 甲木이다. 특히 ‘속론지(俗論之)’ 라는 말이 나오면 대체로 당시에 일반 명리학자들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로써도 자신의 생각으로 봐서는 동의를 할 수가 없어서 다른 학자들이 본 것을 부정하고 철초님의 생각이 더 이치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으로 봐야 하겠다. 그래서 ‘속론지’라고 하는 말이 나오게 되면 일단 뒤에 철초님의 연구결과가 나타나 있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여기에서도 보통 명리학자들이 하는 말을 보면 탐합망충에 기신은 을경합으로 묶어 놓고 있으므로 좋은 사주라고 말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음에 본론이 나오게 된다.




不知라고 하는 글은 ‘잘 모르고 있다.’ 또는 ‘모르겠는가?’ 정도의 의미이다. 충분히 납득이 되므로 추가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여기에서 거듭 강조를 하고 있는 이야기는 바로 ‘진퇴지기(進退之機)’이다. 이 것을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보고서 그에 대한 사주까지 언급을 하면서 이해를 잘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보통 성질이 급한 학생들은 이러한 이야기는 그냥 펄럭펄럭 넘기고 만다. 그렇게 하다가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안목으로 사주를 읽기보다는 남의 시각으로 바라다보게만 된다. 기왕에 큰마음을 일으켜서 적천수까지 공부를 하시기로 작정을 했다면 이제는 그렇게 건성으로 보지 말고 보다 구체적으로 핵심을 이해하도록 노력을 해야 하겠다. 적어도 修道를 하는 마음으로 陰陽五行과 天干地支를 궁리한다면 의외로 많은 힌트가 그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철초님께서도 이러한 것을 원하시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진월에 이미 金의 진기라고 하는 말은 참 너무 앞질러 간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철초님의 안목으로는 그렇게 보이실지 몰라도 낭월이의 안목으로는 여전히 화의 진기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안목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그냥 그런가보다 해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의 한 가지는 을경이 화금을 했다는 말이다. 이미 乙木이 亥水에 통근을 하고 있으니까 합으로 묶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을목이 경금을 따라서 화금(化金)이 되었다는 것은 또한 넌센스이다. 그렇다면 운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세분화 시켜서 대입을 해보면 철초님의 주장보다는 현실적으로 운의 작용이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낭월이는 용신이 水의 인성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관찰을 해볼 요량이다. 벗님의 시각으로 말이 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란다.




※ 작은 반발이라고 해 놓고...







이 사주에 대해서 신약용인격으로 水가 용신이라고 전제를 할 경우에 어떻게 대운의 해석이 되는지를 한번 생각 해보도록 하자.




時 日 月 年

壬 甲 庚 乙

申 戌 辰 亥

壬癸甲乙丙丁戊己

辛酉戌亥子丑寅卯




1운(己卯) - 흉하다. 己卯의 경우 기토는 사주의 임수를 극하니 용신이 억압당하고 卯木은 일간을 도울 겁재이지만 원국에서 수에 해당하는 해수를 오히려 합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2운(戊寅) - 흉하다. 기묘의 경우와 대동소이하다.

3운(丁丑) - 흉하다. 용신 임수를 정화가 합해버리니 작용이 중지되어 버린다. 글을 읽었다고 해도 이 무렵에서는 취직이 되어야 하는데, 용신이 묶여버렸으니 무슨 취직이 되겠느냐고 봐야 하겠고, 다시 丑土도 역시 재운이어서 공부를 활용하기에는 용신이 부담을 많이 받게 된다.

4운(丙子) - 다소 호전된다. 병화는 임수가 어떻게 제어를 하고 자수는 다시 신자진이 되어서 수세가 발생하므로 약간 좋은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고 보겠다.

5운(乙亥) - 부담이다. 을목이 와서 도와준다고 하지만 경금과 합이 되어서 수분만 나눠먹는 꼴이고, 해수는 술토의 극을 받아서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이 될 뿐이다. 갈등이 발생하는 운이라고 보겠다.

6운(甲戌) - 재미없다. 갑목도 인성을 나눠먹는 셈이고 다시 경금에게 터지고 있는 것도 고려해서 본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戌土가 나쁜 것이야 더 말이 필요 없다고 하겠다.




이 정도의 상황으로 환갑이 넘어간다면 뭐 별로 대단할 것도 없겠다. 그래서 낭월이가 이 사주를 본다면 인성을 용신으로 하고 목마른 갑목의 갈증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금을 용신으로 놓고서 설명을 해도 말이 된다고는 하겠지만 인성을 용신으로 해서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인성으로 용신을 삼고 보겠다.




여하튼 진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시다 보니까 스스로 그 의미에 취하셔서는 붓이 마구 휘갈겨 졌으리라고 생각이 되고, 그래서 진월에 경금이 진기라고 하는 논리를 전개하시는 것으로도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뒤쪽으로 가면서는 이렇게 다소 억지를 쓰는 듯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인데, 이 부근을 쓰실 적에는 고량주라도 한잔 드시고 딸따름~한 취기가 감돌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미 낭월이는 철초님에게 반했기 때문에 이렇게 다소 억지 성 논리를 주장하는 것조차도 멋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분들이 보기에는 같은 꼴불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다. 멋진 사나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