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인도(人道)

작성일
2007-09-1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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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滴天髓原文】




戴天履地唯人貴 順則吉兮凶則悖

要與人間開聾聵 順悖之機須理會

대천이지유인귀 순즉길혜흉즉패

요여인간개농외 순패지기수리회




【滴天髓徵義原文】




八字貴乎天干地支, 順而不悖. 如天干氣弱. 地支生之. 地支神衰. 天干輔之. 皆爲有情而順者, 吉. 如天干衰弱. 地支抑之. 地支氣弱. 天干剋之. 皆爲無情而悖者則凶也. 人之八字. 最要四柱流通. 五行生化. 大忌四柱缺陷. 五行偏枯. 子平之法. 全在察其衰旺. 究其順悖. 審其進退. 論其喜忌. 是謂理會. 至於奇格, 異局, 神殺, 納音, 諸名目. 乃好事者之妄造. 不合五行正理. 未可盡信. 若據此以論休咎. 必致以正爲謬. 以是爲非. 訛以傳訛. 遂使吉凶之理. 昏昧難明矣.

팔자귀호천간지지, 순이불패. 여천간기약. 지지생지. 지지신쇠. 천간보지. 개위유정이순자, 길. 여천간쇠약. 지지억지. 지지기약. 천간극지. 개위무정이패자즉흉야. 인지팔자. 최요사주유통. 오행생화. 대기사주결함. 오행편고. 자평지법. 전재찰기쇠왕. 구기순패. 심기진퇴. 논기희기. 시위리회. 지어기격, 이국, 신살, 납음, 제명목. 내호사자지망조. 불합오행정리. 미가진신. 약거차이론휴구. 필치이정위류. 이시위비. 와이전와. 수사길흉지리. 혼매난명의.




‘하늘을 이고 있으며 땅을 밟고 있는 것 중에서 사람이 가장 귀하나, 순리에 따르면 길하고 순리를 따르지 못하고 일그러지게 되면 흉하게 되더라.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귀가 어둡고 눈이 먼 것을 열어야 비로소 순역(올바름과 일그러짐)의 참된 기미를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팔자가 귀하려면 天干地支가 순리를 따르고 일그러지지 않아야 한다. 천간의 기운이 허약하면 지지에서 도와주면 되고, 지지의 기운이 허약하면 천간에서 도와주면 된다. 이렇게 되면 오행의 기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반대로 천간의 기운이 허약한데 지지에서는 도리어 극제를 하려고 하고, 지지의 기운이 쇠약한데 천간에서는 극을 한다면 이러한 것은 무정한 것이라고 하니 흉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八字는 가장 중요한 것이 유통(流通)이다. 五行이 生하고 化하여 서로 막힘이 없어야 하는데,  결함이 발생하고 오행이 치우치거나 메마른 것을 가장 꺼리는 것이다.




子平의 원리는 다른 것이 없다네.

그 시들거나 왕성함의 기운을 살피고,

순조롭고 일그러짐을 연구하며,

나아가고 물러감을 파악하고,

그 用神과 忌神을 살피는 것이니,

이를 일러서 ‘이치를 안다.’고 한다네.




기이한 이론들과 온갖 얄궂은 격에 집착하고,

색다른 국이나 각종 신살들....

나아가서는 근거 없는 납음오행까지...

온갖 허망한 이름들의 부류들은,

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만든 말장난일 뿐,




五行의 올바른 이치에는 부합되지 않으니,

모두다 믿을 수도 없는 이야기들인데,

이것을 근거로 인생의 길흉을 논하니,

올바른 이치를 틀렸다고 부정하게 되고,

틀린 헛소리는 올바르다고 주장을 하며....

이것이 또 전해지고 전해지며 뒤범벅이 되는구나,

그러니 길흉의 이치가 어찌 맞을꼬

혼미하기만 하여 밝히기가 어려울 밖에.”







【강의】




이렇게 시처럼 풀이를 해봤다. 사람이 다른 삼라만상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오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나 내심으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왜냐면 사람도 오행의 기운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이 더욱 많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과연 그렇지 않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을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있는 것 중에서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말은 눈이 어두운 초보자는 속일 수가 있어도 지혜로운 수행자는 속이지 못하게 될 것이 너무도 뻔해서 요즘은 그러한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자제를 하고 있다.




따른(順)즉 길하다는 말은 아마도 오행의 이치를 따르고 있는 사주를 타고난 사람은 길하게 되고, 즉 원하는 바가 모두 잘 이뤄진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오행의 이치에 일그러지게 되어있는 사주를 타고난 사람은 하는 것마다 흉하게 작용을 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의 눈멀고 귀어두운 것이 문제라고 하는 말씀이 있어서 앞의 말을 결정하는 것으로 봐야 하겠다. 과연 이 말씀이 백온님 다운 말씀이다. 인간이 스스로 눈이 멀고 귀가 먹어서 대자연이 본래의 이치를 보여줘도 스스로 보지를 못한다. 그리고는 감히 무엄하게도 ‘천지자연의 기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 돈이나 한 짐 싸들고 오면 너만 살짝 일러주마’ 라는 식의 비법장사꾼이 되어서 혹세무민을 하고 있으니 자신도 속고 남도 속이는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 되어 가는 선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눈멀고 귀어두운 사람에게 올바른 길을 일러주는 방법으로써 바로 이 음양오행의 이치를 권장하는 의미가 상당히 강하다고 보겠다. 비록 몇 마디 되지 않는 통신송이지만 그 속에는 이렇게도 의미심장한 뜻이 들어있다. 본래의 뜻은 이 정도로 이해를 하도록 하고, 이제 철초님께서 생각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하자.

철초님도 참 대단하신 분이다. 벌써 천지간에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말에 대해서는 본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셔서인지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주제를 모르는 낭월이나 이렇게 사소한 것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세상 만물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귀한 팔자는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고 서로 보호하여 길하게 되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 실은 중요한 것이며 벗님께서도 이 의미에 대해서 동조를 해주시리라고 믿는다. 낭월이도 이 말이 자평의 원리에 대한 핵심을 짚은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속이 시원한 느낌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간단한 말에서 의미를 깨달아 버린다면 여타의 다른 의미에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이다. 그야말로 오도송(悟道頌)3)과도 같은 느낌이다.




낭월이가 약간 각색을 해서 노래처럼 풀이를 해봤는데 본래의 뜻을 상하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된다. 낭월이의 책을 보신 벗님은 신살 등에 대해서 확실하게 부정하고 있는 글을 떠올리실 것이다. 그리고 어떤 벗님은 낭월이가 어떻게 감당을 하려고 겁도 없이 기이한 格局과 神殺 등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있느냐고 염려를 해주시는 벗님의 따스한 마음도 접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확신을 갖을 수가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철초님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낭월인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을 갖을 수가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을 해보면 이 적천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행의 언저리도 만져보지 못한 채로 그렇게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때로는 혹 철초님의 강경한 어조로 인해서 어쩌면 상당히 고려를 해야 할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들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숱한 임상자료를 보면서도 항상 이렇게 진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지만, 결론은 철초님이 옳았다는 것으로 내리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아예 격국이나 신살 등에 대해서는 고려를 하지도 않게 되고, 이 생각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자신의 주장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자평의 이치에 대한 핵심을 이미 500여 년 전에 적천수로써 명확하게 공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로 아직까지도 이러한 자평학의 미신들이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의문이 또 없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궁리를 해본 결과 다음 몇 가지로 요약을 할 수가 있었다.




★奇格, 異局, 神殺, 納音 등이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




1. 초창기의 논리가 다듬어지지 않았다.




이미 자평의 명리학이 정리되기 이전에도 사주를 보는 방법은 많이 있었고, 그 방법들도 서로 보완을 하면서 발전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논리가 발전되면서 묵은 논리의 불합리한 점은 자연스럽게 도태가 되었을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것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묶어서 어정쩡하게 따라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전해지면서 잘못된 논리가 또 잘못되어서는 계승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개중에는 깨어있는 학자가 정리를 하려고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맞기도 하는 것 같은 격국 신살들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해서 과감하게 정리를 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에는 우선 子平을 통해서 道를 살피려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싶다. 그냥 대충대충 어떤 일이 언제 이뤄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얼렁뚱땅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 결론이 이치에 맞는지 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고 그를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남들도 그렇게 말하는데 혼자만 특별하게 엉뚱한 소리를 해서 이단자로 몰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2. 보급의 난제의 이유




낭월이는 부디 이러한 이유이기를 바라는 일말의 생각도 있다. 명색이 오행을 연구하는 선배님들이 그래 그 정도도 몰랐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책을 만들기도 어려웠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전해지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올바른 대접도 받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그냥 가전심수로 전달이 되면서 많은 시간을 극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과정을 밟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리 올바른 이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미쳐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하여 그냥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감명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3. 호구지책을 위한 계획적인 음모의 가능성




부디 이 이유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현실을 볼 적에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도저히 없어서 생각을 해봤다. 그 이유는 이러한 신살 들을 버리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이야기는 현재의 일선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프로 선배들 중에서도 나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볼 적에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된다고 보겠다. 그렇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큰 명제 앞에서는 달리 뭐라고 할 말이 없지만, 이렇게도 불합리한 이론들을 부여잡고서 목구멍에 풀칠을 해야 했던 선배님들의 가련한 인생에 동정표를 던져야 하겠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참된 이치를 숨기고서 거짓 이야기를 하며 살았다면 동정표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늘의 벌은 면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생각해야 하겠다. 하늘은 그렇게 너그럽지가 않다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돈을 위해서 자신의 체면을 파는 것도 망신스럽다고 봐야 하겠다. 요즘 문민정부를 맞이해서인지는 몰라도 온갖 비리로 얼룩진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속속 구속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그 정도의 욕은 해주고 있다. ‘더러운 놈’ 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밥과 바꾸지는 않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자평학자 라는 분들의 눈가림은 진리를 왜곡시킬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자평학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찌꺼기들이 걸러지지 않고서 모두 한 웅덩이에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 것인가? 진리를 왜곡시켰다면 그것도 밥벌이를 위해서 고의로 그랬다면 이것은 하늘이 진노를 할 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천기누설이라는 명분아래 비싼 값으로 거래되는 소위 말하는 ‘비법’들은 모두 이러한 갈퀴들이다. 돈벌이에 엄청 큰 도움(?)이 되는 사기술법이 비법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떼돈을 들여서 그 비법을 사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간단한 이치이다. 부디 이러한 이유로 자평명리학의 오류들이 없어지지 못한 것은 아니기를 빌어본다.

이렇게 철초님께서 통신송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확실하게 못을 박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당시에도 아마 이러한 사기꾼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스스로라도 바로 잡아 보려고 이렇게 큰 사자후를 하신 것은 아닐까? 당시에 철초님께서 느낀 감정이 요즘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명리학자의 씁쓸한 기분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낭월이도 참으로 답답한 생각이 든다. 벗님께서는 부디 엉뚱한 길을 방황하지 말고, 올바른 자평의 지름길로 접어드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러한 길로의 안내에 이 강의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을 해본다. 어떤 명리서는 이름이 ‘지름길’이라고 하는 뜻이 붙어있는 것도 있지만 내용을 보면 과연 참다운 지름길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면 철초님께서 이렇게도 걱정을 하신 내용들이 그대로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지름길이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야 아무렇거나 간에 실제로 지름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오행의 참된 이치를 하루 빨리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지름길 중에서도 진정한 지름길은 이 적천수가 으뜸이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도 있다. 이 글을 읽게 되신 벗님은 참으로 좋은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