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이뭣꼬?(獨白) - 1. 朗月이도 三十榜이다!

작성일
2007-09-1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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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낭월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되었던 이야기들은 나름대로 모두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키보드를 거두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뭔가 머리를 스치는 ‘한 생각’이 있어 잠시 손을 멈춘다.

처음에 불전에서 도를 닦아서 부처가 되어 苦海를 해메고 있는 중생을 건지겠다는 약속이 떠오르고, 또 한 생각은 스스로 이렇게 고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 한 생각은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생각도 떠오른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지금 낭월이가 하고 있는 작업이 과연 누구를 위한 작업이며 무엇을 위한 작업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과연 이 일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처음에 왕초보사주학을 쓰면서 용기백배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으며 이제 다시 여기까지 이끌어 온 만용(蠻勇)은 또 어디로 갔을까? 문득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하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의 運命을 알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를 쳤는데, 과연 사람의 운명을 알 수가 있었는가? 파고 파고 또 파봐도 그 속을 다 헤뒤집을 수가 없는 장벽만을 느끼게 된다. 이 일은 여기에서 끝장을 보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 문제는 결국 다른 곳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은 無上의 智慧를 얻어야만 해결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어줍잖은 머리로 헤아려서 알 수 있는 그러한 허술한 이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깊이 깊이 궁구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활연개오(豁然開悟)하는 그런 경지가 되어야 비로소 사람의 운명을 안다고 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긴... 애초에 이러한 생각이 들 것 같아서 서둘러서 키보드를 두드렸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한계에 부딧치면 한 발자국도 전진을 못하는 낭월이의 특성을 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간 미숙한 상태에 있을 적에 한마디라도 더 해둬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컴퓨터 앞으로 끌여 들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제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고 생각한 순간에 다가오는 이 허탈감은 또 무엇일까? 과연 스스로 한 일이 그렇게 허망한 일이어서일까? 아니면 그래도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안개 속에서 만져볼 수도 없다는 생각으로 인해서일까? 이런 생각으로 잠시 사색에 젖어본다. 아마도 지혜로운 善知識(자유인)이 낭월이의 글을 보시면 한 눈을 감고 웃으실까? 아니면 노발대발 하실까? 그도 아니면 눈물을 주루룩 흘리실런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렇게 열심히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 살아가라고 떠든 가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문득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일까? 물론 대다수의 벗님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서 그에 대해서 미리 대처를 하실 것이다. 그 중에 일부는 그냥 비웃으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길을 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더러는 낭월이의 말대로 공부를 하다가는 너무나 삶이 비참하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되자 문득 인생을 포기 해버리고 싶을 생각을 하고 계실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으실 것은 분명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실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 놓고서도 막상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앙금처럼 남는 것이다.

이러한 광경을 예전의 祖師님들이 보신다면 분명히 낭월이에게도 방망이 서른 대를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엉뚱한 짓은 그만하고 너 자신이나 찾아 나서라는 꾸짖음이 그 속에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장님이 어찌 길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리석은 이는 속일 수 있을는지 몰라도 지혜로운 사자(獅子)는 절대로 속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달려들어서 한입에 깨물어 버릴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과연 이 일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는가...


처음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그래서 이렇게 온갖 사연들을 두루두루 비빔밥으로 만들어서 두툼하게 쌓여가는 원고뭉치로 변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뿌듯한 느낌도 든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서 스스로에게 올바르게 인도할 수만 있다면 이것도 나름대로 보살행(菩薩行)이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열심히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 속에서도 분명히 眞理는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 이 순간에 와서도 변함이 없다. 다만 그 진리는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린다고 해서 발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서 이 진리를 찾아야 할까.... 음양오행에서 찾을 수 없는 진리는 분명히 아닌데, 무엇이 가려서 아직도 그 본바닥을 파헤치지 못하고서 이렇게 언저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