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른 학문의 적중율?

작성일
2007-09-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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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자신이 자평명리의 방법을 이용해서 운명에 대한 풀이를 해봤는데, 실제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적중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경우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운명을 해석하려고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기문둔갑에서 따지는 명리법이라던지, 자미두수에 의한 명리법 등도 여기에 동원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운명예측의 방법은 있으므로 나름대로 인연에 따라서 다른 방법을 응용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 중에 어느 학문을 배워서 또 해석을 해보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여기에서 낭월이가 주의를 드리고 싶은 것은, 만약에 이렇게 전전(轉轉)을 하게 된다면 장담을 하건데, 아마도 하나의 학문도 제대로 접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도전을 허락하고 있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자평명리학에서 답을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다른 학문을 공부했더니 모든 의심이 풀린다고 한다면, 이것은 시간적인 낭비가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자평명리는 집어치우고 그 학문을 배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어느 학문을 하던지, 다시 자평명리를 응용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자평명리를 떠나서 이보다 더욱 발전된 운명예측법이 있다고 생각을 하기에는 상당히 망설여진다. 물론 내가 연구하는 학문에 대한 우월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학문을 한다고 해서 또 의문이 남지 않느냐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기문둔갑을 10여년 연구하신 벗님을 만나서 의견을 나눠본 적이 있다. 그 분의 말씀인즉 자평명리를 하고 나서 기문을 했더라면 훨씬 공부가 쉬웠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낭월이가 물었다.


“아니, 기문이 자평의 위에 있다면 자평을 왜 공부하시나요?”

“그런데 자평은 자평이고, 기문은 기문이더군요.”

“무슨 의미인지요?”

“자평에 없는 것이 기문에 있고, 기문에 없는 것이 자평에 있으니, 어느 것을 한가지만 가지고 사용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렇다면 그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기문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적중이 좋다고 생각을 해보고, 자평은 윤곽을 잡는데 탁월하다고 생각됩니다.”

“음... 그럼 둘을 합치면 안과 밖이 완전해 지겠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자평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옳은 이야기일 것이다. 어느 학문이던지 완벽할 수는 없다고 본다. 특히 그 학문이 복잡다단한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학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벗님도 능력이 허락한다면 자평을 완전히 습득하신 후에는 다시 기문이나 여타의 다른 학문으로 접근을 해보시기 바란다. 적중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낭월이는 자평명리에 대한 안내만 할 참이다. 다른 학문에 대한 연구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한 시간을 오히려 자신의 本性을 추구하는 명상으로 보내는 것이 더욱 유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낭월이의 현재 생각으로는 다른 학문을 다시 배울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자평명리학의 이론이면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연구하는 자료로써는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으로 본다. 사실 학문은 어디까지나 학문이다. 그래서 어느정도 학문을 통해서 감을 잡은 다음에는 수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얼마 되지도 않은 인생의 시간들이 모두 흘러가버릴 것이다. 그 이전에 기운이 조금이나도 남아 있을 적에, 보다 깊이있는 공부를 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물론 자평명리도 충분히 깊이가 있는 공부에 속한다. 사실 자평명리는 오행의 이치로 보나, 중화의 사상으로 보나, 대단히 탁월한 이론서이다. 그리고 활용서이기도 하다. 일부 수정을 해야 할 부분만 손을 본다면 이보다 손쉽게 길흉화복을 예측하기 편리한 학문은 없다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평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은 약간의 점술을 활용하면 될것으로 보고 있다. 즉 육효학(六爻學) 등을 활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아마도 인간의 개인적인 운명에 대해서라면 별도로 다른 것을 응용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평을 배우는 것은 손익계산서를 볼 적에 확실히 수익이 크다고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자평명리를 올바르게 이해한 다음에 다시 다른 학문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자칫 잘못하면 본전이거나, 시간낭비를 하게 된다는 적자계산서가 나오게 될런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낭월이는 구태여 다시 새로운 학문을 습득하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할 마음이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히려 그 시간에 마음을 닦는 것이 훨씬 깊은 안목을 기르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흑자경영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벗님께서도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신다면 학문을 찾아서 방랑을 할 것이 아니라, 자평명리를 정리한 다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닦을 연구를 하시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낭월이의 조언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참고 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