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2.기풍(棋風)의 십성(十星)

작성일
2022-10-15 04:21
조회
836

[406]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2. 기풍(棋風)의 십성(十星)


========================

우창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마홍도 조용히 기다려줬다. 생각할 적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게 바둑을 대하는 심리구조에 대해서 정리한 다음에 우창이 비로소 말을 꺼냈다.

“스승님, 생각해 보니까, 실리(實利)를 위주로 바둑을 두는 사람은 여간해서는 함정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이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 이기는 법을 물었나? 참으로 대단하군. 허허허~!”

우창의 물음이 의외라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린 마홍이 답했다.

“나는 그대의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 뭔가. 왜냐면 기본적으로 실리를 중시하는 사람의 성향을 묻는 말을 듣고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번에는 역(逆)으로 그러한 성향의 사람을 이기는 방법을 물으니 내가 당황을 할 밖에 허허허~!”

“아, 그러셨습니까? 우창이 좀 엉뚱하지요? 원래 궁금한 것은 이렇게 해결하는 못된 버릇이 있는 탓입니다. 하하하~!”

“아닐세~! 그래야 핵심을 얻게 될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말하니 나도 짜릿하군. 허허허~!”

우창의 질문이 맘에 들었는지 마홍은 이렇게 웃고 천천히 설명했다. 우창도 귀를 바짝 기울였다. 비록 한가롭게 앉아서 오랜 세월을 바둑이나 두고 있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그 특징적인 것을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활용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한 것을 기풍(碁風)이라고 한다네. 오랜 세월을 연마하더라도 사람의 심성에 따라서 생각하는 방법은 서로 같을 수가 없는 일이지. 그리고 그러한 기풍은 스스로 선호(選好)하는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바뀌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네. 그러니까 상대방의 장단점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승부사(勝負士)가 알고 있어야 할 기본인데도 나는 왜 생각지 못했는지 모르겠군.”

마홍은 기가 막혔는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우창도 마홍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반가웠다.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바둑의 세계에 눈을 뜨다가 보니 그것이 참으로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승님께서 이리도 과찬을 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자가 생각하기에 실리위주의 정재(正財)를 이기려면 미끼를 던지는 작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재의 치명적(致命的)인 단점(斷點)이라면 아무래도 소탐대실(小貪大失)이기 때문입니다.”

“옳지~! 이제 바둑에 입문한 그대가 오랜 세월을 바둑과 시간을 보낸 나보다 더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네. 그러니까 바둑은 집을 상대방보다 하나라도 더 남기는 것이 이기는 결과라는 것을 말해주니까 즉시로 정재의 본질이 떠올랐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정재는 치밀하고 결과에 대한 집착력이 남다르기에 이익이 남는다면 몸을 돌보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에 상업(商業)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재가 농사를 짓는다면 아마도 자기 명에 죽지 못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하하하~!”

“오호~! 그렇겠군. 씨앗을 뿌려서 키우면서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결과라고 하더라도 몇 푼의 가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것에 대한 애착이 멀어질 것이 당연하겠지. 그래서 수판(數板)을 옆구리에 차고서 들어오고 나가는 재물을 신속하게 계산하는 상업(商業)에 관심을 둘 테니 과연 그대의 궁리는 여느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군. 감탄했어. 허허허~!”

마홍의 말에 우창도 기뻤다. 뭔가 서로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가르침을 받는다는 생각을 벗어나 깨달음을 나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홍의 설명을 들으면서 정재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바둑을 두게 되면 항상 꼼꼼하게 계산하면서 둘 것이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정재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편재의 성향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물었다.

“스승님께 또 여쭙겠습니다. 만약에 바둑을 두는데, 항상 과감(果敢)하게 공격하는 것으로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작은 이익은 도모하지 않아서 정재를 만난다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자신의 계획대로 상대가 말려들기만 한다면 크게 성공을 이루고 찌릿한 쾌감을 맛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혹 바둑을 두는 사람 중에는 이러한 성향의 기풍(碁風)도 있을까요?”

“암, 있다 뿐이겠나? 바로 내가 그렇다네. 허허허~!”

“아,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조금 더 자세한 말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성향의 바둑을 기가(碁家)에서는 세력위주(勢力爲主)라고 말하지.”

“세력~! 맞습니다. 세력이라고 하는 말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취하는 기풍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그렇지, 그래서 기우(碁友)들은 늘 헤프다고 하지. 그런데 일단 걸리면 대마(大馬)도 퍽퍽 나자빠지는 쾌감을 버릴 수가 없어서 항상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네. 허허허~!”

“대마라면....?”

“아, 바둑알의 무리가 대략 20여 점이 되면 그러한 것을 대마라고 한다네. 그것이 죽게 되면 치명타(致命打)가 되어서 그 판은 돌이킬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대마라고 한다네. 말도 큰 말이 죽으면 얼마나 타격이 크겠느냐는 말이네. 가령 장군의 말이 죽는다고 생각해 보면 알 일이겠군.”

“알겠습니다. 부하들의 말이 죽는 것은 다른 말로 교체를 할 수가 있겠지만 장군의 말은 기량이 출중하기에 만약에 장군을 태우고 전장을 누비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서 죽는다면 참으로 큰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가령 관운장의 적토마가 죽는 것은 쉽게 돌이킬 수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네. 그래서 대마를 잡으면 적장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얼마나 통쾌하겠느냔 말이네. 허허허~!”

이렇게 말하는 마홍의 표정에 기쁨이 번졌다. 아마도 언젠가 대마를 잡고 이긴 대국을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이치에는 양면이 있지 않겠습니까? 대마를 쫓아서 성공한다면 쾌감이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크겠습니다만, 누구나 그러한 방법을 취하지 않는 것에는 또 그만큼의 단점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이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예리한 질문이로군. 실로 그러한 문제가 있기에 여간 강심장(强心臟)이 아니고서는 결행하기 어려운 일이라네. 그래서 항상 기회를 보면서 꾹꾹 참는 것이라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어떤 것이라고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마불사(大馬不死)~!”

우창은 마홍의 말에 얼떨떨해졌다. 대마는 죽지 않는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사방에서 공격받더라도 여간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대마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데도 어떻게 스승님은 대마를 죽일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모험을 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결행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나? 열심히 공격했는데 대마가 두 눈을 만들고 살아버리면 그야말로 닭 쫓던 개가 되어버리는 셈이니까 말이네. 허허허~!”

“아, 그러니까 쫓아다니는 것은 즐겁지만, 그 닭이 담장으로 날아가 버리면 헛일을 한 셈이라는 뜻입니까?”

“그냥 헛일이 아니라 헛수고를 한 것에 대해서 바삐 수습(收拾)해야 하는데 그게 또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네. 여기저기에는 구멍이 수도 없이 많이 생기는 까닭이라네.”

“과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바둑이나 인생이나 모두 같은 것이라는 말이 이해됩니다. 사업을 경영해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사업이 번창할 것으로만 생각하고 남의 돈을 마구 끌어다가 거대하게 확장해 놓고서 일단 막히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되어서 결국은 패망(敗亡)하게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옳지~! 바로 그것이라네. 다행히 바둑은 바둑으로 끝나니까 그만이지만 그러한 마음으로 세상을 경영한다면 참으로 낭패가 아니겠나? 허허허~!”

“문득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등장하는 장비(張飛)가 떠오릅니다.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들어서 공격하여 성공도 하지만 또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적의 계략에 말려들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잘 생각했네. 그래서 정재(正財)에 해당하는 제갈량(諸葛亮)의 지시를 받아서 행동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니 편재가 있더라도 정재가 거들어 준다면 또한 능력이 더욱 고강해질 것으로 봐도 되겠지.”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바둑놀이는 정재와 편재의 놀음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수비하는 정재와 공격하는 편재가 서로 마주 일전불사(一戰不辭)를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입니다.”

“기본적인 의미로 본다면 그렇게 봐도 되겠지만, 꼭 그것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네.”

“또 다른 기풍도 있습니까?”

“물론이지. 남이 가본 길만 따라가는 사람도 있고,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네.”

우창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말이라서 생각해 봐도 뜻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아니, 그것은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본다면 고인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면서 자신의 길로만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겠는데 바둑의 성향에서도 그러한 것이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물어보지. 정형(定型)으로 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복습하는 것을 따르는 사람은 십성으로 어떤 형태가 되겠는가?”

“그러한 형태가 있다면 정관(正官)이라고 하겠습니다. 정관은 보수적(保守的)이고 온건(穩健)하며 타협적(妥協的)이라고 할 수가 있으니 무리(無理)한 것은 피하고 합리적(合理的)인 방향으로 따르기 때문입니다.”

“아, 맞아~! 바로 그것이네. 이러한 사람을 정석위주(定石爲主)라고 한다네. 그 사람은 고인이 남긴 기보(棋譜)를 보면서 익히고 배워서 그대로 바둑판에 재현하는 것을 좋아한다네, 그리고 여간해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력을 소유하기도 한다네. 그야말로 안전(安全)한 길을 간다고 할 수가 있지.”

“그야말로 바둑판의 군자(君子)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맞아, 이겨도 좋고 져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니까 그것도 다음에는 잘 두면 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매우 안정되어 있으나 최고(最高)의 자리를 찾기에는 항상 한 수가 부족하다고 하겠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바둑의 사범(師範)이 되면 좋을 것이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그런데 바둑도 무예를 연마하는 것처럼 사범이 있습니까? 물론 스승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렇다네. 단순히 오락으로 즐기는 차원을 넘어가면 어전(御前)에서 바둑을 둘 정도의 실력이 되어서 바둑만 두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길도 택한다네. 그렇게 되면 그의 바둑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들기 마련이 아니겠나?”

“맞습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가르친다면 제자들이 그의 바둑을 배우는데도 혼란스럽지 않겠습니다.”

“자신은 어전대국에서 바둑을 두기 어려워도 그가 가르친 제자가 오히려 대국을 나가서 승전보(勝戰報)를 가져오기도 하니까 훈장(訓長)의 운명과 투사(鬪士)의 운명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렇겠습니다. 원래 글을 가르치는 훈장님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서 만년수재(萬年秀才)라도 그 아래에서 학문을 닦은 제자는 등과(登科)하여 재상(宰相)이 되는 것과 완전히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바둑이야기는 인생담(人生談)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바둑의 세계에 푹 빠져서 마홍과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여념이 없을 때 유람을 떠났던 일행이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동행하지 않은 우창을 위해서 음식점에서 맛있는 먹거리를 사 와서 점심을 먹자고 할 참이었는데 노인과 바둑판을 사이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본 염재가 다가와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수담(手談)을 나누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요기할 것을 가져왔는데 어르신과 같이 드시면서 말씀을 나누시면 어떻겠습니까?”

먹을 것을 보자 우창도 시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홍이 더 반가워했다. 그래서 잠시 나누던 이야기를 멈추고 음식을 먹으면서 유람을 한 일행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장하던 차에 배부르게 먹은 다음에 정리하고는 모두 쉴 겸으로 우창의 옆으로 앉아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눈치를 봐하니 우창이 공부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이러한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나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지광에게 약간의 설명을 했다.

“지금 마홍 스승님께 기리(碁理)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있습니다. 들어볼수록 그 오묘한 이치가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가 없네요. 형님께서는 바둑을 좀 아시는지요?”

우창이 옆에 앉아있는 지광에게 물었다. 그러자 지광은 약간은 아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깨너머로 구경할 정도는 된다네. 어서 말씀 나누시게 귀한 가르침을 놓치면 내가 도리어 억울할 것이네. 하하하~!”

지광도 우창과 마홍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자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스승님께 다시 여쭙겠습니다. 정관의 기풍은 침착하게 한 걸음씩 진행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편재와는 사뭇 다른 형태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것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싶습니다.”

“당연히 정관의 기풍이라면 장고(長考)를 하게 되는 것으로도 유명하겠군. 그러니 편재가 정관과 바둑을 둔다면 아마도 제풀에 지켜서 포기를 선언하게 될지도 모르겠군. 허허허~!”

“아하~!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천적의 관계도 성립하겠습니까?”

“당연하지. 장고하는 사람은 속기(速棋)로 빨리 두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네. 그러니까 속기를 좋아하는 편재는 정관을 기피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그렇겠습니다. 자기의 흐름대로 판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좀처럼 걸려들지 않는 정관은 상대하기가 거북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는 정재 옆에는 두드려 보고서도 건너지 않는 정관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정관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기풍은 어떤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그야 그대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극(生剋)의 관계로 본다면 정관을 잡는 것은 상관(傷官)입니다. 그렇다면 상관의 기풍은 어떻게 나타난다고 봐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상관은 변칙(變則)을 좋아합니다. 토론(討論)을 할 적에도 변론(辯論)을 즐기는 것을 보면 아마도 바둑을 두더라도 그러한 천성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마홍이 바로 동조하면서 말했다.

“바로 그것이라네. 그것이 상관의 영향이었군.”

“혹시 그러한 기객(碁客)을 만나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만나다 뿐이겠나, 항상 함께 즐기는 친구 중에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을.”

“아,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상관의 기풍은 어떻게 나타난다고 보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언제나 정관형의 친구는 상관형의 친구와는 대국을 기피하는 현상이 있어서 왜 그런지를 잘 몰랐는데 오늘 상관의 기풍을 이해하고 보니까 과연 왜 그랬는지를 알고도 남음이 있군. 허허허~!”

“제자의 추론이 타당하다면, 아마도 상관의 기풍을 소유하신 분은 일정한 정형(定型)이 없는 것이 특징이지 싶습니다. 바둑의 승패보다는 과정을 즐길 것이므로 생각이 나면 그것이 원칙에서 벗어날수록 더욱 재미있게 시도해 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정형화를 중시하는 사람과 바둑을 줄 적에는 예상되는 수를 추론할 수가 있을 만큼 판단력도 신속하기에 그것을 확인하면서 즐기는 성향이 될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승부를 즐기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신기막측(神奇莫測)한 기이한 수법을 찾아내면서 상대방을 곤경에 몰아넣는 것을 더 즐길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호~! 과연 딱 맞는 말이네. 그야말로 못 이겨도 좋으니까 이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거침없이 시도하는데 이것은 치밀하게 결과까지 내다보고 시도하는 형태와는 또 다른 것으로 봐야 하겠네.”

“아니, 그 말씀은 새로운 수법을 시도하는데도 두 가지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깊이 숙고(熟考)하는 것은 식신(食神)의 작용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식신이 딱 제격이로군. 식신의 성향은 어떻게 나타난다고 설명하면 되겠나?”

우창에게 식신의 특성에 대한 설명해 달라고 하는 마홍의 말에 우창이 다시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식신의 성향은 무슨 일이든 스스로 개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고법을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고법을 준수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이 되면 왜 그런지를 판단하고 다시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지를 실험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식신끼리 바둑을 두게 된다면 아마도 일정한 수순(手順)까지는 같은 형태로 진행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시점부터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 테니까요. 이렇게 진행되는 한판의 바둑도 흥미진진(興味津津)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군. 우창과 기담(碁談)을 나누는 것이 호적수를 만나서 바둑을 두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으니 바둑에 대해서 이렇게 노는 방법도 있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네. 참 신기하군. 허허허~!”

“아닙니다. 스승님의 깊은 통찰력의 도움을 받아서 약간 정리했을 따름입니다. 문득 말씀을 듣다가 보니까 십성과 기풍의 관계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를 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는지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한 우창이 십성의 관계를 기풍으로 삼아서 그 사람의 특징이 될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적어서 마홍에게 보여줬다.

偏官 인내(忍耐), 수비만전(守備萬全)
正官 정석(定石), 장고원칙(長考原則)
偏財 공격(攻擊), 전투속결(戰鬪速決)
正財 실리(實利), 치밀계산(緻密計算)
食神 신수(新手), 모험도전(冒險挑戰)
傷官 변화(變化), 임기응변(臨機應變)
偏印 타개(打開), 기발묘수(奇拔妙手)
正印 타협(妥協), 조화순리(調和順理)
比肩 세력(勢力), 완강견고(頑剛堅固)
劫財 경쟁(競爭), 이전투구(泥田鬪狗)

우창이 적어놓고 설명하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던 마홍이 잠시 생각하더니 기뻐하면서 말했다.

“아니, 이제 막 입문한 그대가 어떻게 이런 생각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마치 강호에서 바둑의 고수들을 직접 상대해 보고 난 다음에 그들의 팔자를 찾아서 일일이 대입한 것과 같군. 앞으로 내가 바둑을 두는 상대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의 생일을 물어서 어떤 성향의 바둑을 둘 것인지를 예측할 수가 있을 테니 아마도 승률(勝率)이 이전의 기력(碁力)에 비해서 두 점은 향상되겠군. 허허허~!”

마홍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본 우창도 보람이 있었다. 비록 바둑을 잘 두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십성의 심리를 적용시켜서 그 사람의 기풍을 짐작해 보는 것이야말로 간지(干支)의 공부로도 얼마든지 판단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을 염재나 지광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이해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광이 말했다.

“아우님의 십성에 대한 심리적인 분석은 과연 전무후무(前無後無)하여 독보적(獨步的)인 영역이라고 해도 되겠네. 더구나 이렇게 바둑의 고수이신 어른을 모시고 직접 귀한 가르침을 듣게 되니 안목이 두 배는 넓어짐을 알겠네. 역시 아우님은 어떤 분야를 만나더라도 절묘하게 연결을 시켜서 우리를 깨닫는 길로 안내하는 마력(魔力)이 있단 말이지. 하하하~!”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헛된 궁리는 아닌듯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스승님께서 인정해 주셨으니 앞으로 가끔은 바둑을 두는 장면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의 성향을 바둑판에서 읽을 수가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마홍은 옆에 있던 보따리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곳에는 숫자와 함께 검은 동그라미와 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일견해서 흡사 바둑판을 그려놓은 듯한 그림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