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제33장. 감응(感應)/ 1.영기(靈氣)의 체험(體驗)

작성일
2022-05-20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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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제33장. 감응(感應) 


1. 영기(靈氣)의 체험(體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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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본 지광이 다시 웃었다.

“왜?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가? 하하하하~!”

“그게 아니라.....”

“작은 나에게서 빠져나오면 거대한 자연과 합류(合流)가 된다네. 말하자면 아우님의 작은 개울이 거대한 장강(長江)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마침내는 백천(百千)의 수원지(水源池)와 동시에 소통이 되기도 하지. 이러한 것도 처음에는 신기하지만, 점차로 일상(日常)이 되고 나면 비로소 자연합일(自然合一)이 된다네.”

“그렇습니까?”

“물론이지~!”

“우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봐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되지 무슨 걱정을 하는가. 하하하~!”

“아, 그렇게 되나요? 기록하지 않으면 될 일을 갖고서 기록하지 못할까 봐서 걱정하는 것도 망상이겠습니다. 하하~!”

“이제 그만하고 좀 풀어놔도 된다네.”

“예? 무엇을 말입니까?”

“아우님의 이성(理性)이 감정(感情)을 완전하게 제압하고 있었으니 말이네. 내려놓으면 만고에 편할 것을 왜 끌어안고 있느냔 말이네.”

우창은 조금 전의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가? 그렇지만 그것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을 나도 어쩔 수가 없다네. 하하하~!”

“그야 형님께서 토지신께 기도하면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미 시간이 지나버렸다네. 아까 그 순간에만 가능했기 때문이지. 그보다도 앞으로 이러한 경험할 기회가 오면 또 체험하게 될 것이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네. 하하하~!”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토지공은 여기 계시고, 형님도 그대로 계시는데 왜 안 된다는 것인지 우제는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아낙네가 벼를 찧었으면 무엇을 해야 하나?”

“그야 바람에 껍질을 날려 보내서 쌀을 얻어야지요.”

“방아는 다 찧었는데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람이 볼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그것 보게. 하하하~!”

“무엇을 보란 말씀이십니까?”

“시골의 촌부(村婦)도 자연과 교감을 할 줄 아는데 아우님은 지금 생떼를 쓰고 있으니 말이네. 하하하~!”

우창은 지광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었는데, 그제야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러니까 형님의 말씀은 이미 바람이 지나갔다는 것이네요? 바람이 오고 가는 것은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그것을 꼭 말로 해야 아는가? 바람을 알면 언제 바람이 불고 멈추는지는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일 텐데 말이네.”

“아, 맞습니다. 우제는 아직 바람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하~!”

“앞으로는 문득 한 마음이 동하면 그 연유를 따지지 말고 그냥 동하는 대로 따르면 된다네. 절을 하고 싶으면 절을 하고, 앉아있고 싶으면 앉아있으면 된다네. 그리고 몸이 떨리면 그 떨림에 맡기게. 그것이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라네. 진동은 자연의 기운이니까 말이네.”

“우제는 여태까지 통제되지 않는 떨림은 귀신의 장난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랬을 것이네. 그래서 이제부터는 자연의 바람에 자유로울 걸세. 하하하~!”

“정말 오늘 새롭게 개안(開眼)이 된 것 같습니다. 형님의 정성 어린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우창의 말에 지광이 미소를 지으며 우창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우님, 많이 놀았으니까 그만 들어가 볼까?”

“예, 그게 좋겠습니다. 갑자기 나른해집니다. 좀 쉬어야 하겠습니다.”

우창은 객잔으로 돌아와서는 지광과 염재가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도 침상으로 돌아가서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를 자고 났을까? 거산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더니 저녁밥이 마련되었다고 알려 준다.

“스승님 많이 고단하셨던가 봅니다. 저녁을 드시겠습니까?”

“아, 많이 잤구나. 그래야지. 고맙네.”

겨우 잠이 깬 우창이 대청(大廳)으로 나가자 다들 둘러앉아서 우창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창을 본 염재가 말했다.

“진 사부께서 고단하셨던가 봅니다. 저녁을 드시고 또 푹 쉬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귀찮게 해드렸나 싶습니다. 하하~!”

“아니네. 실은 형님께서 좀 힘들게 하셨다네. 하하하~!”

그러자 염재와 거산이 동시에 지광을 바라봤다.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스승님들이 말을 하지 않으니 감히 물어볼 수가 없어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본 지광이 말을 꺼냈다.

“예전에 깨달음을 간절히 구하는 수행자가 있었다네. 깊은 산의 동굴을 찾아가서는 음식도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신을 만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네.”

지광의 이야기에 염재가 말했다.

“아, 정 사부께서 이야기를 해 주시니 기대가 됩니다. 수행자의 이야기라면 당연히 귀감(龜鑑)이 될 말씀이겠습니다.”

염재의 말에 지광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10년 동안이나 했는데 신으로부터 어떤 소식도 접하지 못했다네. 그러자 수행자는 실망해서 기도하던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마침내 동굴을 떠나가 버렸다네.”

“참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십년 세월이면 짧지 않은 시간인데 말입니다.”

염재가 안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잠시 지광이 말을 쉬고 물이라도 마실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했던 까닭이었다. 지광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며칠 후에 떠돌이 걸인이 우연히 그 동굴에 들렸다네. 잠을 잘 곳을 찾다가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지. 걸인이 동굴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더라네. 날씨가 추워서 오한(惡寒)이 드는 것처럼 한참을 떨리더니 순간에 밝은 빛을 보게 되었다네.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었지.”

“아니, 그것이 가능합니까? 도대체 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걸인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놀랐으나 마침내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고는 동굴에 감사했다네.”

이번에는 우창이 깜짝 놀랐다. 낮에 자신이 겪었던 일의 이야기를 지광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걸인은 수행하던 사람이었습니까?”

“전혀~! 그냥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던 걸인이었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생전 처음으로 겪게 된 현상이었네.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느냔 말이지.”

“그랬겠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유는 10년이나 기도를 한 수행자에게 있었다네. 그 수행자는 자신과 신의 경계에 두꺼운 벽을 쌓아놓고는 신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네. 물론 그 벽은 그동안 애써서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이었지. 지식의 벽은 자연과 이어주는 통로를 차단한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네.”

“그러니까 걸인은 아무런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벽도 없었다는 말입니까? 비록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절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분별심이라네. 인과법(因果法)은 반드시 한 가지 방법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네. 그러니 가장 큰 죄라면 바로 분별심이라고 하겠지? 하하하~!”

지광의 말에 모두 웃었으나 우창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이 있었다.

“형님, 잘 알겠습니다. 준비하면 이미 틀린 것이었군요. 무엇인가의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벽을 쌓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음양의 분별심으로 쌓아놓은 벽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우창의 말에 지광만 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뜻을 우창은 알았다. 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형님과 함께하면서 참으로 많이 배웁니다. 특히 초월적(超越的)인 현상을 공부하면 우제도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참으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우창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본 염재와 거산은 의아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우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자 우창은 토지신의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야기해줬다. 그들에게도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고, 일어나야 할 일이기도 한 까닭이었다. 우창의 이야기에 두 사람도 감동했다. 영계(靈界)와 자연(自然)의 이치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염재도 알다시피 오행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에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고, 오행을 잘 이해하면 나머지도 대부분 미뤄서 해결하고 답을 구할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막상 지기(地氣)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문외한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내심 충격이 컸었다네. 그런데 이렇게 형님의 도움으로 약간이나마 체험하고 보니 그 세상에 대해서 여간 호기심이 동하는 것이 아니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도 호기심이 동한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께서 권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다 체험하겠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공부인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대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자 지광이 문득 들려줄 말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아우님과 염재의 대화를 듣다가 보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네. 비록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이야기를 지어진 것은 아니니까 들어봐도 좋을 것이네.”

“여부가 있습니까? 비록 거짓으로 지어서 말씀하신다고 해도 그 이치는 믿을 것입니다. 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궁금합니다.”

우창을 비롯하여 염재와 거산도 지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불과 1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이네. 풍수와 관련해서 집터를 봐주러 우연히 갔던 평산마을이라는 곳이었는데 그 집의 부인께서 이웃에 있는 절에 음식을 만들러 다니다가 보게 된 이야기였다네. 양산(梁山)이라는 곳에 극락암(極樂庵)이라고 하는 암자가 있고, 그 암자에는 경봉(鏡峰)이라고 하는 선사(禪師)가 수행하고 있었다는군.”

지광의 말이 시작되자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는 것을 살펴본 지광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여인이 하루는 이른 새벽에 잠이 깨서 밖에 나왔더니 극락암으로 오르는 길에 스님들이 왁자지껄하게 소란스러운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는데 극락암이 있는 자리에는 불이라도 났는지 훤한 것이 화재로 인해서 암자가 불타고 있는 듯이 보였다네. 그러자 동네의 남녀노소도 물통이며 괭이 등을 들고 일제히 극락암으로 올라갔더라지.”

이번에는 우창이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다.

“그랬을 것입니다. 절 아래의 마을에서는 절을 수호신으로 섬기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래된 절이라고 하면 당연했겠습니다. 그나저나 고사(古寺)는 목조건물이라서 한 번 불이 붙으면 겉잡을 수없이 타오를 텐데 이미 늦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을 사람들도 그랬고, 그 여인도 그런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산으로 올라갔더라네. 실로 항상 일을 봐주러 다니던 절이기 때문에 절의 식구들도 모두 한집안 가족처럼 서로 알고 친밀하게 지냈더라지 뭔가. 그러니 불은 끄지 못하더라도 사람이라도 구할 수가 있으면 뭔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더군.”

“맞습니다. 인정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마음만 바빴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절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하자 이미 암자를 총괄하는 큰 절에서 스님들이 먼저 도착해서는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더라는 거야.”

“어허~ 이미 늦었던가 봅니다.”

우창도 문득 시커멓게 타버린 참혹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그러자 지광은 우창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불타야 할 절은 멀쩡하고 수백 개의 불을 밝힌 듯이 절의 주변이 훤하더라는 거야. 그런 장면은 생전 처음으로 본 장면이라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스님에게 물어봤더라네.”

“우창도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듯 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마을 사람들이 스님을 잡고 물어보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지금 경봉 선사께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서 그런 것이니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절을 염려하여 올라와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을 하더라는 거야. 삼매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 뭔가 좋은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만 하면서 안심하고 돌아갔더라네.”

“그런 일도 있습니까? 화광삼매는 무엇입니까?”

우창이 이렇게 감탄하면서 말하자 지광이 말했다.

“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 당시에는 몰랐지. 나중에야 알았는데 면벽(面壁)하고 참선(參禪)하다가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도달하는 순간에 수행의 인연에 따라서 방광(放光)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산문(山門)이 개설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더군.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생전에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장면을 보게 되어서 너무나 행복했다더군. 그 후로 그 선사는 도인으로 소문이 났고, 온 나라에서 한 번 뵙기를 소원하고 찾아오는 방문자들로 인해서 장사진(長蛇陣)을 이뤘다더군.”

“아니, 그러니까 형님의 말씀으로는 산에서 저절로 빛이 나는 것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서 당시에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네. 그런데 일을 봐주고 궁금한 마음에 암자를 올라가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겠더군. 절이 자리 잡은 터가 완전히 생기에 휩싸여있는 절묘한 명당(明堂)이었거든. 그러한 장면을 보고서야 풍수 공부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신념이 생겨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었다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였다네. 하하하~!”

이야기를 마친 지광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신기하여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인데 그 현장을 목격(目擊)한 사람에게서 직접 들었을 것을 생각하니까 지광이 흥분한 듯이 말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될만 했다.

“형님께서 겪으셨을 장면을 상상해 보니 우제라도 그러한 말을 들었으면 감탄하고도 남을 일이겠습니다. 풍수의 이치를 잘 모르는 데도 신기막측(神奇莫測)한데 직접 그 자리에 찾아가서 기운을 느꼈을 형님의 마음은 헤아릴 수도 없겠습니다. 그런데 경봉 선사라는 분은 만나 보셨습니까?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생존에 계셨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야 당연히 찾아뵙고 삼배(三拜)를 올리고 인사하는 인연을 맺었지.”

“아하~! 그러셨다면 그 당시의 상황을 여쭤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이미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천진동자(天眞童子)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감히 옛날의 이야기를 확인할 마음이 사라지더군. 대신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여쭈었지.”

“그러셨습니까? 선사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전생에 공부만 하느라고 복이 부족하니 공양주를 1년만 하고 가라고 하시더군. 그 덕분에 극락암에 눌러앉아서 수행자들에게 밥을 지어 올리는 일을 했었다네. 그리고 터가 너무 좋아서 그냥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는데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한 해를 머물러도 된다고 말씀해주시는 바람에 매일 새벽 인시(寅時)가 되면 조사당(祖師堂)에서 지기(地氣)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서 황홀한 순간을 즐길 수가 있었다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아우님의 말마따나 화맥(火脈)에서 솟구치는 생기(生氣)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희열(喜悅)에 잠겼다고 해야 하겠지만 말이네. 하하하~!”

“지기의 소용돌이라니 그것은 또 어떤 것입니까?”

우창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까 아우님이 겪은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되겠네. 매일 그렇게 맑은 기운으로 몸과 마음은 단련하면서 1년을 보내고 나자 몸은 상쾌하고 축지법도 터득하게 되더군. 극락암에서 백운암까지는 보통 사람도 두어 시진(時辰)은 걸어야 하는 험한 산길이었는데 불과 일각(一刻)이면 둘러보고 돌아올 수가 있을 만큼 기감(氣感)이 샘솟았다네. 그 무렵부터 지기에서 솟아오르는 화맥(火脈)을 볼 수가 있었다네. 그야말로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네. 하하~!”

“부럽습니다. 그렇지만 우제에게는 형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생전 처음으로 느껴본 기의 소용돌이에서 희열을 느꼈는데 앞으로 날이 갈수록 그렇게 할 기회가 더 많지 않겠습니까?”

“그야 물론이네. 그 강도도 점점 강렬해질 것이네. 어제는 동굴에서 누운 상태에서 몸이 떠올랐지만 앞으로 열심히 수련하면 꼿꼿하게 합장하고 선 채로 떠오를 날도 있을 것이네.”

“정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심신(心身)이 무척이나 상쾌하겠습니다.”

“당연하지.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하는 것만이 지름길이라네.”

“그렇다면 형님께서는 불문에 출가(出家)하셨던 것입니까?”

“아니지. 출가할 마음은 없었으니까. 하하하~!”

“그건 왜입니까?”

“아, 그야 저마다 생각할 나름이네만 어딘가에 소속이 되면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내게는 큰 걸림이 될 것으로 여겼지. 그리고 홀로 일평생을 살아갈 마음도 없었거니와 자유롭게 천하를 누비는데 먹고 자는 것에서부터 얼마나 불편하겠느냔 말이지.”

지광의 말에 모두 웃었다. 우창이 말했다.

“그러셨습니까? 하하하~!”

“당연하지. 하하하~!”

“그런데 원래 절간에서 속인(俗人)은 기거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머무를 수가 있었습니까? 잠시 기도라도 하기 위해서 머무르는 것은 모르겠습니다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선사가 도승(道僧)이시지. 한눈에 알아보시고는 머물기를 허락하셨으니까 말이네. 만약에 자질구레한 것에 얽매이는 보통의 스님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네.”

“아하~! 그러셨네요. 역시 범인(凡人)의 생각이 미칠 수가 없는 영역이 있기는 한가 봅니다.”

“깊고도 넓은 선사의 정신세계야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오죽하면 천지자연이 서기방광(瑞氣放光)을 했겠느냔 말이지. 선사가 늘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오도(悟道)하면 천지(天地)가 먼저 알아본다더군. 그리고 몸소 그것을 보여 주셨으니 더 말을 해서 뭘 하겠나? 하하하~!”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내가 아무리 자연의 기운과 소통을 하려고 여전히 수행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체험은 해 본 적이 없다네. 그래서 얼마나 수행하면 그렇게 되는지 아직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네. 하하하~!”

이렇게 말을 하는 지광의 표정에는 아련한 추억과 당시의 행복했던 기분이 되살아나는지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한 것을 보면서 우창은 상상만으로도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으로 느껴졌다. 지광이 다시 말했다.

“그 후로 많은 산천을 누비면서 명찰(名刹)을 돌아다녔으나 그 시절에 겪었던 것을 능가할 정도의 지기는 만나지 못했지. 과연 경봉 선사는 수행의 깨달음도 있었겠지만 극락암의 터와 인연이 잘 맞았던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네. 좋은 기운이 넘쳐나는 곳에서 깊은 삼매(三昧)에 들어갔을 적에 한순간 깨달음이 다가왔을 것이네.”

“정말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렙니다. 10년을 수행했다는 그 동굴에서 걸인이 도를 깨달은 것도 우연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우제가 낮에 잠시 체험했던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경이롭게 느껴졌는데 그러한 곳에서 형님이 느꼈을 것을 상상하니 과연 복을 타고나야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우님도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수행하다가 보면 언젠가 그러한 시절이 올 테니까 너무 서두르지만 않으면 된다네. 내가 지형(地形)을 살피는 공부가 좀 되다가 보니까 사람의 골격(骨格)도 볼 수가 있는데, 아우님의 두상(頭相)을 보면 반드시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동행을 했을 턱이 있겠나? 하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도 기분은 좋았으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형님, 궁금합니다. 관상을 공부하지는 않더라도 풀이를 듣고 싶습니다. 두상이 어떻길래 그렇게 말씀하시는지요?”

“두상은 육상(肉相)과 골상(骨相)으로 나눠서 살핀다네. 그리고 육상은 옷과 같다면 골상은 몸과 같다고 할 수가 있지. 그런데 옷은 갈아입을 수도 있지만 몸을 갈아입을 수는 없으니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는 바로 알 수가 있겠지?”

“듣고 보니 바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제는 어떻습니까?”

“대주천(大周天)을 할 골격을 타고났다네.”

우창은 처음 듣는 말이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예? 대주천이라니요? 무슨 뜻입니까?”

“아우님은 도골선풍(道骨仙風)이라는 말을 들어 봤나?”

“그야 들어봤지요. 멋지게 잘생긴 사람에게 하는 말이잖습니까?”

“맞아, 아우님이야말로 도골을 타고났단 말이네. 하하하~!”

“설...마...요?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하~!”

그러자 염재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진 사부께서 도골이라고 하셨는데 선풍은 아니십니까? 도골만 해당한다는 뜻인지요?”

염재의 날카로운 질문에 지광이 흠칫하고는 다시 웃고는 말했다.

“아쉬운 점이기도 하고 다행인 점이기도 하다네.”

“설명해 주십시오. 궁금합니다.”

염재도 우창과 닮은 점이 많았는데 특히 기회가 왔을 적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것은 판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지금 듣지 않으면 또 언제 듣게 될지 모르는 골상(骨相)의 공부 기회를 그냥 흘려버릴 염재가 아니었다. 그 말에 지광이 답했다.

“도골학풍(道骨學風)이지.”

“그건.... 골격은 도인의 자질을 타고났는데 신선(神仙)이 되지 않고 학자(學者)가 된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네. 골(骨)은 도골인데, 육(肉)이 선풍(仙風)이 아니라 학풍(學風)이라네. 그로 인해서 가는 곳마다 제자들이 줄을 지어서 찾아오게 된다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냔 말이지. 다만 나는 그러한 것을 싫어해서 신선이 되고 싶은데도 형상이 선풍(仙風)이지 못함을 아쉬워할 따름이라네. 하하하~!”

지광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선풍보다 학풍이라는 말이 오히려 듣기에 좋았다. 그러니까 생긴 대로 살아가는 것도 인연인가 싶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