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 제32장. 장풍득수/ 14.토지신(土地神)의 사당(祠堂)

작성일
2022-05-1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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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제32장. 장풍득수(藏風得水) 


14. 토지신(土地神)의 사당(祠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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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도 밥을 먹으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산의 형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해졌고, 그에 대한 지광의 말이 매우 타당하다고 봐서 그대로 정리하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산에서 흐르는 기운은 산의 형태와는 큰 연관성이 없다고 보면 되는 것이었고, 다만 형세를 참고할 정도는 된다고 이해하면 적당할 것으로 정리했다.

부부의 정성으로 차린 밥을 맛도 모르고 먹을 정도로 생각에 젖었던 우창이 차를 마시면서 일상의 잡담으로 연구에 지친 뇌도 휴식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이것도 음양의 이치 중의 하나인 까닭이다. 공부만 계속하게 되면 지치게 되는데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일상적인 담소를 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공부에 미쳐 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차도 마셨으니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보는 것은 어떤가?”

지광이 산책하러 가자는 말에 우창도 따라나섰다. 오전에도 산책하다가 말고 돌아왔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 사이에 거산과 염재도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나름대로 오늘 배운 공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면서 둘만 밖으로 나왔다.

“형님, 예전에 미처 몰랐던 산천(山川)의 공부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형상을 보지 말고 속을 보라는 의미도 깨달았으니 반풍수는 된 것인가요? 하하하~!”

“아무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이해가 되었다고 봐야지. 겉으로 봐서는 비슷비슷해 보여도 실상을 보면 또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라네. 하하~!”

“우제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다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이참에 형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깊은 공부를 해야 하겠습니다. 형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모두 실행해 볼 요량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지광을 바라봤다. 지광도 우창이 품고 있는 열정에 비해서 기감(氣感)이 도무지 형편없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던 것이기도 했다.

“아우님은 가장 큰 문제가 뭔지 모르고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형님께서 꼭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분별심(分別心)~!”

“예? 제게는 분별심이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우제의 생각에는 분별심은 거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그러니까 말이네. 스스로 그것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란 말이네.”

“정말입니까?”

우창은 참으로 많이 놀랐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편견을 갖고 분별심을 일으킨다는 말에는 충격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지광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곰곰 생각해 봤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지광이 말했다.

“자, 저쪽 토지신(土地神)의 사당(祠堂)으로 가서 이야기할까?”

“예, 그러지요.”

우창은 지광이 말한 토지공(土地公)의 사당으로 가서 지광이 하는 대로 따라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지광은 그냥 앉는 것이 아니었다. 향합(香盒)을 찾아서는 향을 꺼내어서 촛불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우창은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지광은 그렇게 향불을 붙여서 두 손을 모아쥐고는 하늘로 들었다가 허리를 굽히면서 세 번을 절하고는 향로에 꽂았다. 우창은 여전히 앉아서 지켜봤다. 그러자 잠시 후 지광이 우창의 옆에 앉아서 말했다.

“지금 내가 한 것을 봤지?”

“물론입니다. 형님. 토지신께 예의를 갖추신 것입니까?”

“그렇다네. 왜 그랬을까?”

“형님은 신앙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비록 허상(虛像)에 불과한 신상(神像)일지라도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그냥 앉지 못하고 예의를 차리신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네. 아우의 눈에 토지신은 보이지 않지?”

“예? 아니, 토지신이 계시기는 한 것입니까?”

우창이 화들짝 놀라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지광이 말했다.

“내가 그냥 앉으려고 하다가 다시 일어나서 예를 갖추는 것이 이상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저마다 예를 갖추는 것은 자기의 마음이라고 여겨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지요. 그런데 토지공이 계신다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지광이 우창을 보고는 다시 사당의 토지공을 보면서 잠시 침묵하는 바람에 우창도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마음속이 찝찝했다. 그렇지만 지금 뭐라고 할 말도 없어서 잠시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이보게 아우.”

“예, 형님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저 토지공의 신상이 만든 나무가 아니라 실제로 토지신이었다면 어떻게 했겠나?”

“아, 그렇다면 당연히 일어나서 향을 피우고 예를 갖췄겠지요.”

“그렇다면 내가 한 행동은 헛된 짓으로 보였더란 말인가?”

“예? 그것.... 은.... 무슨 뜻인지요?”

“아우님은 분별심이 병이라고 내가 말을 했던가?”

“예, 그러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었습니까?”

“그렇다네. 곰곰 생각해 보게.”

이렇게 말한 지광은 입을 다물고 멀리 들판을 응시했다. 들판에는 곡식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여름날 오후의 뙤약볕은 사람에게는 힘들게 하는 열기를 주지만, 들판의 식물들은 이보다 더 맛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지광의 시선을 따라서 바라봤으나 그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뭔가 큰 것을 놓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초조했다.

“형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형님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도 답답했다. 지광이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였다. 잘 모를 적에는 끙끙대면서 생각하기보다는 묻는 것이 더 빠르다. 우창의 물음에 비로소 지광이 한마디로 말했다.

“물심동일(物心同一)~!”

물심동일이라니? 사물과 마음이 하나로 같다는 뜻이지 않은가? 그야 당연한 말이다. 그 정도는 우창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광의 말에는 뭔가 우창이 미처 깨닫지 못한 무엇이 있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토지신을 모신 사당에서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기로 했다. 우창과 지광이 다른 점은 명백하다. 우창은 사당을 햇볕 피하는 그늘로만 생각했는데 지광은 토지신에게 예를 차렸다는 것이다. 우창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비로소 지광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되었다.

“형님, 혹시 우제가 토지신을 참배하지 않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옳지~! 이제야 가늠이 되었는가?”

“아니, 그런 문제로 말씀하시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토지신께 예를 갖췄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지.”

“여기에 토지신이 계십니까?”

“보고도 모르겠는가?”

“토지신의 신상은 보입니다만 그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봉안한 것이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토지를 지키는 신령이 이 자리에 계시는 한 것입니까?”

우창의 말에 지광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마을 앞의 들판에 짙푸른 곡식들을 가리켰다. 지광의 손을 따라서 우창도 그 풍경을 봤다. 그렇지만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저 들판의 곡식은 토지신이 가꾸고 있다는 뜻입니까?”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아우가 이지적(理智的)인 것에 밝은 것은 인정하네. 그런데 그것에 갇혀서 자연적(自然的)인 것에는 마음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라네. 세상이 어찌 이치(理致)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예? 이치를 벗어나서 무엇이 있습니까?”

“이치가 무엇인가? 사람이 만들었나? 아니면 자연이 만든 것인가?”

“그야 지혜로운 고인의 가르침을 이어받아서 계승하고 발전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철학의 이치는 이렇게 해서 면면(綿綿)히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가? 확실한가?”

“맞습니다.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이 큰가? 아니면 자연이 큰가?”

“그야 사람은 작고 자연은 위대(偉大)합니다.”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형님께서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고 그러시는지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이든 배우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다시 묻겠네. 여기 이 토지공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야 의지할 곳이 필요한 마을 사람들이 소원하는 일이 잘 이뤄달라는 의미로 만든 기도처이지 않습니까?”

“기도처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야 기도해야지요. 다만 소원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만 소원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냥 비바람을 피하고 한낮의 강렬한 태양의 열기로부터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도 뭔가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형님.”

“이제 알겠네.”

“무엇을 말입니까?”

“아우님이 왜 지기(地氣)에 감응이 되지 않는 것인지를 말이네. 하하하~!”

비로소 심각하던 지광이 웃음을 터트리자 우창은 도리어 의아했다.

“우제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 보니까 아우님은 지기를 믿지 않고 있었잖은가? 믿지 않는데 그것이 존재할 턱이 없다네.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우제는 지기의 존재도 화기(火氣)의 존재도 모두 믿습니다. 그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나도 당연히 그렇겠거니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네. 물론 그렇게 된 연유는 이해가 되네. 지적(知的)인 부분은 믿고 그러다 보니 물적(物的)인 것에는 믿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네.”

“예? 그것이 정말입니까?”

“물론~!”

“형님의 말씀으로는 토지신에게 예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인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알기 쉽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인위적(人爲的)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난 경우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믿음에 분별심(分別心)이 개입하게 되면 절름발이가 된다네. 아우님의 의식계는 이미 하늘에 닿아있을 정도인데 아쉽게도 물질세계와는 단절이 되어가고 있다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이상학(形而上學)의 세계에 빠져서 물질계(物質界)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차별(差別)을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지.”

“아, 그건 일리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것에 비중을 두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지광이 이렇게 말하는 우창을 한번 보고는 애벌레가 사당의 기둥을 기어가고 있는 것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벌레는 이치를 모른다고 생각하나?”

지광의 말에 우창이 얼른 답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벌레도 조석(朝夕)을 알고 위험을 피할 줄도 알며 자손을 번식할 줄도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우님은 사원(寺院)에 가 봤는가?”

“물론이지요.”

“사원에 가면 부처님과 보살님을 보는가?”

“봅니다.”

“보면 어떻게 하는가?”

“그야 부처님께 예를 하지요. 삼배를 드립니다.”

“부처와 토지공이 둘인가?”

“예? 무슨.....”

“만약에 아우님이 절에 가서도 불상이나 보살상에 예를 갖추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하겠네. 그렇지만 부처에게는 절을 하면서 토지신에게는 절을 하지도 않고 무시한다면 이것은 아우님의 위선(僞善)이라고 해야 할 것이네. 동의하겠는가?”

“음....”

우창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지광이 말인즉 이치에는 부합이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상과 토지공이 같다는 말에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다. 어찌 같을 수가 있을까?

“아직도 모르겠는가?”

우창이 생각에 잠겨있자 지광이 다시 한 마디 던졌다. 그 말에 우창은 화들짝 놀랐다. 비로소 지광의 말이 무슨 뜻인지 가늠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우창이 가장 싫어하는 분별심(分別心)이었다. 분별심 위에 앉아서 분별심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아하~! 형님의 말씀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우제가 분별심을 갖고서 진리를 바라보고자 했으니 반쪽짜리밖에 보지 못했던 것이 맞지요?”

그제야 지광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겨우 그 이치까지도 깨달았구나. 그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네. 지식(知識)으로 기초를 삼으면 상식(常識)조차도 무너지기 마련이네. 하하하~!”

“형님의 깊은 가르침이 아니었더라면 꿈에서조차도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야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그것을 알겠습니다. 그동안 지식에 치우쳐서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만 바라보려고 했던가 봅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식에서 제외되는 것은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우창이 벌떡 일어나서 토지공의 신상 앞으로 다가가서 향을 태우면서 불전(佛前)에서 한 것과 같은 모습으로 3배를 올리고 말했다.

“토지신께 사죄드립니다. 진하경(陳河鏡)이 어리석어서 신상(神像)조차도 분별심으로 대했습니다. 형식적으로만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하지 못했음을 사죄드립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일어나서는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지광이 비로소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모든 사물이 그곳에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네. 이렇게 토지공이 계시는 사당이 있다면 여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할 것이고 당연히 그렇다네. 그런데 토지공은 낮은 신분으로 생각하고, 불보살은 높은 신분으로 여겨서 인사하지 않거나 아예 존재 자체를 믿지도 않는다면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겠느냔 말이네. 하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형님의 말씀이 틀림없습니다. 여태까지 토지공이나 신목(神木)에 절하고 소원을 비는 것을 보면 의식(意識)이 낮은 사람들이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어서 그렇게 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진심으로 그 대상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누구나 그렇다네. 자신의 오감(五感)이나 의식에서 인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믿고자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말이네.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형님, 토지공은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답했다.

“신상을 보고서도 못 보니 아우님이야말로 당달봉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도대체 눈을 감고 무엇을 보고자 한단 말인가? 하하하~!”

“아니, 그게 아니라 과연 신상에는 신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어찌 아직도 분별심을 내려놓지 못했단 말인가?”

“그냥 사람이 허공에 기도하기가 허전하여 상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토지신의 등상이 아닙니까?”

“옳지, 이제 아우님의 내면에 깊이 들어있던 본질이 드러나는군. 그것을 받아들이면 하급(下級)한 정신의 수준이라는 벽은 여전히 건재하군. 하하하~!”

“아, 그런 것입니까?”

“당연하지 않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물어볼까? 바위에는 기운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당연합니다. 이미 동굴에서 체험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사물에 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을까?”

“없습니다. 기는 어디나 있습니다.”

“옳지, 만약에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향을 올리고 소원을 빌어오기를 수백 년을 쉬지 않고 이어져 왔다면 그 대상인 신상에는 영기(靈氣)가 생기지 않았을까?”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나? 아니면 그렇겠나?”

“우제가 말씀을 잘못 드렸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습니다.”

“이제부터 아우님은 머리로 판단하지 말고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을 훈련해야 하겠네.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서 천지의 기와 소통이 될 것이니까 말이지. 물론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되진 않을 테니까. 하하~!”

“아닙니다. 깨닫기가 어려운 것이지 깨달은 다음에는 머뭇거릴 일이 없습니다. 지금 바로 분별심에서 벗어났습니다. 갑자기 풍경이 달라져 보입니다.”

“오호~! 역시 아우님은 보통의 그릇이 아니로군. 축하하네~!”

“그동안 육안(肉眼)의 경계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분별심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축하하네. 토지공과도 교감(交感)이 되지 않는데 불보살과는 어찌 교감을 할 수가 있었겠으며, 불보살과도 교감이 되지 않는데 어찌 거대한 산하(山河)와 소통이 될 수가 있었겠느냔 말이네. 그런데 이제 큰 장애물 하나를 돌파한 것이니까 급속도로 변화가 일어날 것이네. 어쩌면 이미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겠는걸. 어떤가? 토지공과 교감을 해볼 텐가?”

“예? 그것이 가능합니까?”

“가능하고 말고는 아우님의 마음에 달렸을 따름이라네. 하하하~!”

“그렇다면 해보고 싶습니다. 우제도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세. 이쪽으로~”

지광은 우창을 토지신 앞에 세웠다.

“자, 내가 하는 대로 마음속으로 따라서 하면 된다네. ‘진하경이 거룩하신 토지신을 뵙습니다. 비록 눈이 있으나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성심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토지신께서 감응해 주시옵소서~!’라고 기원을 하면 되네.”

지광이 말하는 대로 우창도 소리를 내면서 반복했다. 지광이 그렇게 일곱 번을 말했고, 우창도 자연스럽게 그 말을 따라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서서 단순히 그렇게 했을 뿐인데, 다리의 감각이 이상해진 것이었다. 마치 오래 앉아있을 적에 쥐가 나는듯한 느낌과 비슷했다. 가만히 그대로 그 현상에 집중했다. 그러자 그 진동은 떨림으로 점점 커졌다. 그리고 몸을 거쳐서 합장하고 있는 손도 파르르~ 떨려왔다. 우창의 모습을 본 지광이 기도하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합장만 하고 있었다. 우창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지광이 있으니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는 믿음으로 그대로 내맡겼다. 그러자 지광이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대로 맡기면 되네. 토지신이 감응하고 있으니까 몸을 빌려준다는 느낌으로 가만히 느끼기만 하면 되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광이 말하는 대로 따랐다. 그렇게 떨리던 손은 서서히 몸에서 떨어지더니 합장을 한 채로 머리 위로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는 크게 원을 그리더니 다시 합장의 자세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반복되었다.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궁금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진동의 현상은 서서히 아까와는 반대로 아래로 내려가더니 발에서 사라졌다.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그러지 지광이 웃으면서 말했다.

“토지신께서 아우님을 받아들이셨네. 하하하~!”

우창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의아하기도 하고 창피스럽기조차 했다.

“형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토지신으로부터 환영을 받은 것이라네.”

“그런 것입니까? 이런 일은 여태까지 겪어 본 적이 없어서 약간은 당황스럽습니다. 토지신이 빙의(憑依)되었던 것입니까?”

“말하자면 그렇게 이해를 해도 되겠지. 다만 빙의가 아니라 포옹(抱擁)이라고 해야겠군. 어떤가? 뭔가 모르겠지만 마음이 푸근하게 느껴지지 않나?”

“그렇습니다. 막혔던 속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하다가 무당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원, 별걱정을 다 했군. 하하하~!”

“예전에 어딘가에서 무녀(巫女)가 강신(降神)하는 것을 봤던 기억이 잠시 스쳐 지나갔거든요.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다르긴 뭐가 다르겠나 같은 것이라네.”

우창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지광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