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제32장. 장풍득수/ 12.바람의 이치(理致)

작성일
2022-05-05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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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제32장. 장풍득수(藏風得水) 


12. 바람의 이치(理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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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질문한 것을 듣고서 지광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보자 우창이 내심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물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답을 하던 지광이 이렇게 긴 시간을 생각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지광이 말했다.

“오늘 아우님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땅의 이치를 오행으로 분류하는 신선함과 조리(條理)가 정연(整然)한 논리에 감탄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으니 말이네. 하하하~!”

지광이 진심으로 놀라움을 표하면서 우창의 통찰력에 감탄했다고 말을 하자 우창도 자신이 궁리한 내용이 의미가 있다는 뜻으로 들리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다행입니다. 우제는 혹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드렸나 싶어서 내심으로 마음을 졸였습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한 이치는 간단합니다. 토(土)의 바탕에서 목화(木火)와 금수(金水)가 무리를 짓는 것이 기본적인 현상이라서 지리학(地理學)에서도 그러한 공식을 만들 방법이 있을지 생각해 봤던 것인데 형님의 연구에 일거리를 만들어 드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몫은 다 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부터 형님께서 이러한 논리를 어떻게 정리해서 타당성이 있고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듣고자 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도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실로 오행의 이치를 깨닫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진리의 구조에 저절로 올라탈 수가 있는지를 오늘에서야 깨달았네. 그 말은 결국 오행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歸結)이 된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이치군.”

“그렇습니다. 우제도 항상 오행을 기반(基盤)에 놓고서 궁리하게 되면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답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하, 그랬군. 생각해 보니까 그래서 곡부의 학당 이름도 오행원(五行院)이었군. 이제 그 의미가 이해되네. 하하하~!”

“아, 맞습니다. 오행의 이치는 명학(命學)의 핵심이기 때문인데 우연히 지학(地學)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형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지광이 정리한 생각을 말했다.

“아우님이 말한 대로 오행의 토(土)가 땅을 의미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네. 이것이야말로 삼척동자도 동의할 내용이니 긴말하지 않아도 되겠네. 풍수지리(風水地理)에다가 화금(火金)을 포함한다면, 결국은 풍화암수지리(風火巖水地理)가 된다는 말이니 결국은 지리오행(地理五行)인 셈이잖은가? 그래서 이렇게 대입하는 것이 혹 오류는 없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느라고 잠시 궁리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 것으로 판단했다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지리에서도 오행의 이치는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오행의 영역에 지학(地學)도 동행하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형님께서 신기하게 생각하신 명학도 당연히 오행이므로 서로 통하는 접점(接點)은 쉽게 찾을 수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창이 이렇게 반가워하자 지광도 신명이 나서 말을 이었다.

“자, 일단 주체인 토(土)는 명학에서의 무엇과 같은지부터 생각해 보세. 명학에서도 기준은 토가 되나?”

“아닙니다. 명학에서는 금(金)을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그것은 좀 다른 것으로 보여서 다음 기회에 살펴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염재와 거산을 위해서 지학의 핵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 그렇겠군. 그렇다면 내가 설명하겠네. 이름이 지학(地學)이듯이 당연히 땅에 대한 이치를 궁리하는 것이라고 하면 되겠지?”

“당연합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땅에는 수화(水火)의 기운이 거미줄과 흡사한 모습으로 얽혀있다고 이해하면 되겠지?”

“맞습니다. 그 수화는 보통의 육안(肉眼)으로 볼 수가 있는 유형(有形)의 수화가 있고,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형(無形)의 수화(水火)가 있다는 것도 이해하겠습니다.”

“아니,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오히려 내가 설명하기보다 아우님의 설명을 들어보는 것이 더 유익할 수가 있을 듯싶으니 어디 말을 해 보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도사님 앞에서 요령을 흔들어 보는 어리석음을 범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가르침을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무렴~! 여부가 있겠나. 하하하~!”

우창은 이렇게 다짐하고서야 생각이 나는 대로 설명했다. 이렇게 다짐을 해 놓지 않으면 혹시라도 잘못 말하는 것을 괜히 체면을 세워줄 요량으로 지광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地)의 음양(陰陽)은 토양(土壤)과 지기(地氣)입니다. 아마도 토양이 먼저이고 지기가 다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지기가 있어서 토양이 생겼다고 이해하기보다는 토양이 있어서 지기가 흐른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여서입니다. 어떻습니까?”

“동의하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기질(氣質)론을 적용시켜서 살펴보겠습니다. 기(氣)는 기와 통하고 질(質)은 질과 통한다는 이치입니다. 일종의 유유상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 이해되네. 그렇다면 어떻게 적용을 시키겠는가?”

우창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지형에서는 화산(火山)과 강하(江河)를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과 지하와 지표를 타고 흐르는 물은 눈에 보여서 누구라도 체감(體感)을 할 수가 있는 수화(水火)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니까요.”

“오호~! 설명을 하는 것이 요설변재(樂說辯才)로군. 멋지네~! 하하하~!”

“그렇지도 않습니다. 생각한 대로 말씀드려 볼 따름이니까요. 하하~!”

우창이 말하자 지광도 미소를 짓고는 계속하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우창을 바라봤다. 다른 청중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수화에서 불을 뿜는 화산은 드물고 오히려 물이 흐르는 하천은 흔합니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지하(地下)에서는 불기둥이 물처럼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고인(古人)들은 암장(巖漿:마그마)이라고 했습니다. 장(漿)을 보면 ‘미음 장’인데 미음이란 죽처럼 걸쭉한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봐서 바위가 녹아서 죽처럼 걸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하를 흘러 다니다가 밖으로 분출(噴出)하면 화산(火山)이 됩니다.”

“우창은 궁리만 깊은 것이 아니라 박학다식(博學多識)하기도 하군. 참으로 대단한 능력을 타고났네. 하하하~!”

“그 정도는 일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딜, 나도 처음 듣는 말이네, 암장(巖漿)이라는 말은 듣느니 처음인데 그런 것도 알고 있는 이유는 뭔가?”

“그야 자연을 이해하면 사람에 대해서도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으로 여겨서 기회만 생기면 부지런히 주워들었던 것이 약간 쌓였을 따름이지요. 하하~!”

“실로 아우님이 대단한 것은 바로 그런 점이라네. 학문을 탐구함에 게으르지 않으니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라네.”

우창이 지광의 칭찬에 합장하고는 다시 말했다.

“과찬(過讚)이십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수화는 앞에서 형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양기(陽氣)는 생성(生成)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화기(火氣)가 되고, 음기(陰氣)는 소멸(消滅)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수기(水氣)가 된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으니 지표(地表)와 지하(地下)에는 이렇게 수화(水火)의 기운이 거미줄처럼 엉켜져 있다는 놀라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과연 상상만으로도 신기막측(神奇莫測)한 이치를 이렇게 배워서 너무나 즐겁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지. 그래서? 나는 그다음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네. 어서 설명해 보게나. 하하~!”

“예, 다음은 목금(木金)을 적용해 보는 부분입니다. 바람이 풍목(風木)이라는 것이야 이미 알고 계시는 그대로이고, 목(木)은 만물을 소생(所生)하게 하는 기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기(木氣)가 강하면 그 자리는 화기(火氣)가 모여들기 쉬운 이치가 됩니다. 이것은 목생화(木生火)의 도리로 대입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호~! 목생화(木生火)라~! 그 말이야 나도 들어봤네만 바람이 화기를 불러온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네. 놀라운 통찰력이로군!”

이때 옆에서 우창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던 염재가 물었다.

“진 사부께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해 주신 그 말씀은 장풍(藏風)의 의미와 상반(相反)되는 이치로 보이는데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아, 바람으로부터 감춘다는 의미가 장풍(藏風)이니까 말이지? 그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지. 하필이면 바람으로부터 화기를 감추고자 했을까? 혹 염재는 여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가 있겠나?”

“예? 제자가 어찌 그 어려운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 제자의 능력으로도 유추(類推)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시고 묻는 말씀이라고 한다면 부족한 생각이나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염재가 자신이 없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은 다시 말했다.

“사양할 일이 없다네. 이미 느낀 바가 있어서 한 말일 텐데 뭘. 어서 말해 보게. 어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어 봐야지. 하하~!”

“제자의 생각으로 모든 오행의 이치는 균형(均衡)을 바탕으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 텐데 만약에 바람이 너무 강하게 몰아치면 오히려 과열(過熱)되어서 불타버리게 된다는 의미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래도록 좋은 기운이 머물러있어야 할 공간은 이내 불타버린 재와 같으니 그렇게 되면 의미가 없기에 오히려 꾸준하게 타오르기 위해서 적당한 바람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바람은 경계(警戒)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이치에도 타당할까요?”

염재의 말에 먼저 감탄을 한 사람은 우창이 아니라 지광이었다.

“오호~! 역시 염재로군. 대단하네~!”

“정 사부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용기백배(勇氣百倍)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계속해서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실로 바람이 전혀 흐르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사지(死地)가 될 것입니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에는 흐름도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지요. 흐름이 없다면 폐쇄(閉鎖)가 될 것이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적당한 바람을 얻은 것을 전제(前提)로 하고서 장풍(藏風)을 말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말을 마친 염재가 우창과 지광을 향해서 공수했다. 주제넘게 말씀드렸으니 냉엄한 판단을 부탁드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자 우창이 그에 대해서 말했다.

“염재의 말에 나도 동의하네. 그야말로 바람이 전혀 필요가 없다면 바람으로부터 숨어야 한다고 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하겠네. 만약에 그래야 한다면 장풍(藏風)이 아니라 무풍(無風)이었을 테니 말이네. 하하하~!”

그러자 지광도 말했다.

“오호~! 무풍이 맞지.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마네. 장풍(藏風)에서 미풍(微風)을 읽어내고, 여기에서 다시 무풍(無風)을 찾아내는 궁리가 절묘(絶妙)하니 말이네. 하하~!”

이렇게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유일하게 거산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벅차서 스스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나 거산조차도 또한 즐거움과 재미는 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열심히 들으면서 마음에 새겼다. 염재는 생각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말했다.

“처음에 진 사부께서 목(木)은 바람이라고 하셨을 적에 제자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냥 초목(草木)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다가 그런 말씀을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거산을 보면서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으로 아는 만큼 보이는 과정에서 항상 놀라움이 이어지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거산의 현재 심중(心中)을 이해한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러자 거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는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에는 다시 우창을 향해서 말을 이었다.

“진 사부께서 바람풍(風)에 대한 의미를 풀어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실로 모든 변화에는 목(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기(水氣)도 움직여야만 존재하게 되니 그것도 목을 동반(同伴)하고 있습니다. 화기(火氣)도 마찬가지로 목의 도움을 받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묘한 이치를 생각하다가 보니 모든 존재가 살아서 움직이는데 목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까지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바람을 나타내는 글자도 관심이 생깁니다. 스승님께서 풀이해 주시면 또 깨달을 바가 많은 까닭입니다.”

염재가 이렇게 묻자. 우창이 잠시 생각하더니 붓을 들어서 종이에 글자를 썼다. 글자를 보던 염재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374-2-1

“아니, 사부님 이것이 글자입니까? 흡사 구름을 그려놓은 것 같고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글씨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염재의 질문에 우창이 답을 했다.

“물론 내 운필(運筆)이 둔해서 원래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네. 이 글자는 비간(比干)의 묘반(墓盤)에 있는 것인데, 비간의 이름에 대해서는 들어봤겠지?”

“혹시 비간이라고 하면 용봉비간(龍逢比干)의 충신인 그 비간을 말하는 것입니까? 비간은 은대(殷代)에 주왕(紂王)의 신하였습니다. 왕에게 충고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죽임을 당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네, 바로 그 비간의 묘비석에 쓰인 풍(風)자인데, 이 글은 무왕(武王)이 내렸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그의 충성을 기리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네만 전문(全文)은 나도 알 바가 없으니 오행(五行)을 궁리하다가 금석문(金石文)에 관심이 생겨서 눈여겨서 봤었지.”

“바람을 이렇게 표현했다니 너무 아름답습니다. 고인들은 글자를 갖고 즐겼나 싶습니다. 특히 아랫부분은 누가 봐도 구름이 두둥실 흘러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바람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으로 구름을 떠올린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염재가 글자에 대해서 감탄하자 우창이 다시 한 자를 썼다. 이번엔 무슨 글자인가 싶어서 또 모두 붓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374 바람풍-2

“이 글자도 바람풍입니까? 참으로 신기합니다. 여전히 구름이 보입니다. 그런데 밖의 멀 경(冂)으로 보이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글자의 출처는 동문총요(同文總要)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네. 다만 풍(風)에 많이 근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써본 것이라네. 밖의 경(冂)은 멀리 아득하게 바라다보이는 성(城)의 모습이라고도 하는데, 그보다는 비어있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아마도 텅 빈 허공(虛空)을 의미한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군.”

“아, 그러니까 바람은 비어있음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꽉 찬 것에는 바람이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요. 흡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피리와 마찬가지로 속이 비어있고 구멍이 비어있음으로써 바람이 통하여 소리가 나는 까닭이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오호~! 염재가 제대로 해석했네. 그렇과 봐도 무리가 없겠어.”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다시 말했다.

“정말 스승님께서 문자(文字)에 관심이 많으신 덕분에 참으로 신기한 것을 접하게 됩니다. 앞의 풍(風)은 힘치고 거센 바람으로 잘못 된 왕의 허물을 바로잡으려는 기개가 보이고, 뒤의 풍은 고요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잠이라도 들 것만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운(云)으로 보이는 것은 운(雲)과도 통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래의 물결무늬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바람이 흐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바람풍이라고 말씀해 주지 않으시면 알아볼 도리가 없겠습니다.”

“문자를 보면 고인(古人)들이 오히려 직관적(直觀的)으로 사물을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더군. 그리고 아름답기조차 한 것은 덤이라고 봐야겠지. 그래서 틈이 날 때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글자들은 다시 금석문(金石文)에서 고문(古文)을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지.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바람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자도 궁금했는데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다. 풍(風)의 벌레 충(虫)의 의미나 나오려나 했는데 전혀 무관하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아마도 바람이 움직이는 것을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해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었기 때문이지요.”

“왜 아니겠나? 그랬을 수도 있지. 무지개도 홍(虹)이라고 하지 않나. 벌레가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니 참으로 재미있네. 하하~!”

“아,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신기루(蜃氣樓)의 신(蜃)은 무명조개라니까 아마도 무명조개의 껍데기에 무지개의 빛깔이 보였던가 싶기도 합니다. 하하~!”

“그러니까 벌레 충(蟲)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벌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면 되지 싶네. 그건 그렇고, 바람의 의미를 더 풀이해 보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의미를 풀이했다.

“실로 형편없는 졸견(拙見)일 따름입니다만, 일체 만물은 움직이지 않으면 바람도 없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움직이는 것은 모두 바람이라는 말이 되는 셈이네요. 새삼스럽게 바람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광이 말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의 삶이 바람이잖은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도 인생이니까 말이네. 하하하~!”

“아, 정 사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옛날에 고승이 남기신 말씀에는 ‘삶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했다는데 호흡도 결국은 바람이잖습니까?”

염재가 호흡이라는 말을 하자 지광도 감탄하면서 말했다.

“옳지~! 참으로 바람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하셨네. 그러고 보니 모든 생명력은 목이라는 말이 공감되는군. 오늘 목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되었으니 염재에게 고맙네. 장풍(藏風)만 생각하다가 득풍(得風)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관점이니 말이네. 하하~!”

“아, 득풍도 있었네요. 바람을 얻지 못하면 죽음이 됩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바람을 얻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산모(産母)가 아기를 낳아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아기에게 바람을 풀어넣어서 호흡을 시작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통풍(通風)일 테니 말입니다.”

그러자 우창도 한마디 했다.

“맞는 말이네. 『장자(莊子)』는 ‘우주(宇宙)는 풀무질을 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결국은 바람의 순환을 의미할 테니까 작은 의미로 벌레가 태어나거나, 큰 의미로 대지(大地)가 숨을 쉬거나 모두 바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으니 말이지.”

“이렇게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과연 하늘에는 바람이 있고, 땅에는 토양이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숨을 쉬는 모든 것이 다 바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니 지기의 변화조차도 바람의 도움이 없이는 발현(發顯)될 수가 없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창과 염재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 가만히 듣고 있던 지광도 한마디 했다.

“과연, 풍리(風理)가 이렇게나 소상하게 드러나고 보니 자연을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한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재미있군. 모든 것은 바람으로 인해서 변화하는 것이라고 하면 되겠고, 특히 바람에는 순풍(順風)도 있고, 역풍(逆風)도 있음을 이해하면 되겠네.”

지광의 말에 염재가 다시 물었다.

“정 사부께서 말씀하시는 순풍은 양기(陽氣)와 같고, 역풍은 음기(陰氣)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네. 심지어는 풍속(風俗)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풍속에도 또한 순역(順逆)의 바람이 있으니 바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지기수(不知其數)로군. 하하~!”

그러자 우창이 보탰다.

“형님께서 겪으신 것을 말씀해 주시고, 그것을 또 염재가 정리하고 보니까 그야말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 할 만합니다. 바람의 토론이 이렇게 열띨 수가 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이 정도로 바람에 대해서 마무리하더라도 아쉬움이 없지 싶습니다.”

“당연하지. 바람 공부로 인해서 나도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으니 고마울 따름이라네. 그렇다면 다음에는 금(金)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텐가? 실로 이러한 시도는 나도 해 본 적이 없어서 흥미가 가득하다네. 하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도 잠시 생각을 했지만 바람에 대해서는 그만하면 충분히 살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거산의 부친이 밖으로 나갔다 와서 말했다.

“오늘은 객잔의 문을 닫았습니다.”

“아니, 왜 그러셨습니까? 안 그래도 되는데 말입니다.”

우창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귀중한 말씀을 듣지 못하고 손님을 받는다면 평생을 두고 후회하게 되지 싶었습니다. 물론 거산에게 공부시키려는 마음도 없진 않습니다만, 그보다도 소인도 너무나 신기한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재미있는 공부를 하는 날로 삼겠습니다.”

주인의 배려에 우창도 공수로 감사를 표했다. 실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손님들이 밥을 먹으러 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것도 있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알아서 문을 닫아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