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 제32장. 장풍득수/ 8.지기(地氣)의 정사(正邪)

작성일
2022-04-15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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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제32장. 장풍득수(藏風得水) 


8. 지기(地氣)의 정사(正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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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염재가 정색하고서 우창에게 물었다.

“진 사부께서 정 사부께 그렇게 물으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바람에 대해서 제자에게 설명해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오늘은 갑자기 바람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듯이 정 사부께 물으시는 것이 참으로 의외였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예전에 공부했던 목(木)에서의 바람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말했다.

“염재가 생각하기에도 그런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네. 여하튼 이러한 질문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유쾌하냔 말이네. 형님이 아니라면 이런 질문을 했을 까닭이 있겠느냔 말이지. 하하하~!”

“정말입니다. 제자도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거산의 모친은 빈 잔에 뜨거운 차를 따랐다.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자신의 소중한 아들도 그러한 이야기를 배우고 있는 것이 대견할 따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다시 지광에게 물었다.

“형님, 다시 여쭙습니다. 바람은 무엇입니까?”

우창이 정색하고서 묻자 지광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바람은 보살(菩薩)이기도 하고 악귀(惡鬼)가 되기도 한다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이겠나? 그것이 바람이라는 말이네.”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태까지 우제가 알고 있었던 바람은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바람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여태 한 이야기로 봐서는 바람은 좋은 작용은 없고 오히려 나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어떤가?”

“맞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와 거산도 동의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지광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득수(得水)의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것을 막은 것이라네.”

“아, 그랬군요. 왜 바람이 보살이기도 하고 악귀이기도 합니까?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것은 바람의 악귀에 대한 부분이었다는 말씀이지요?”

“맞아, 바로 이해했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는 보살이 되기도 한다는 말씀인데 그것은 무엇인지요? 참으로 궁금합니다.”

“아우님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하하하~!”

“오늘 안목을 한 단계 확장할 것이 분명합니다. 기대됩니다.”

우창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지기(地氣)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야 신기하고 오묘한 기운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네. 그것은 바로 지기의 양기(陽氣)를 느낀 것이라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었나 싶어서였다. 그 표정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지광이 말을 이었다.

“음양은 간지(干支)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네. 하하하~!”

“형님, 갑자기 무엇인가가 머리를 한 대 때리고 지나갔습니다. 그 생각을 왜 못했나 싶습니다. 정말 아직도 멀었습니다. 하하~!”

“이제 이야기는 절반이나 풀린 셈이로군. 어디 말해 볼 텐가?”

비로소 우창의 막혔던 물꼬가 터진 것으로 생각된 지광이 오히려 우창에게 되물었다.

“형님, 바람은 정기(正氣)를 흩기도 하지만 사기(邪氣)를 흩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정기가 흩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사기도 뭉쳐있으면 나쁜 일이 발생할 것인데 그것도 흩어줘서 허공에서의 중화(中和)를 이룬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맞는 생각입니까?”

“물론이지. 계속하시게.”

“바람의 공덕과 폐해(弊害)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순풍(順風)은 식물을 잘 자라게 하지만, 역풍(逆風)은 초목을 쓰러트리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그렇다네.”

지광은 긴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간단하게 말하고 우창이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기다렸다. 우창이 다시 말했다.

“형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땅에서는 지기와 함께 사기도 흐른다는 뜻인가 싶습니다. 지기와 상대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실로 지기(地氣)라는 말에는 지기의 음양을 포함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네. 이것은 지기의 정사(正邪)로 이해하면 되겠군.”

“예, 이해됩니다. 지기에도 정기와 사기가 공존하는 것이었군요. 이제야 형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를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사기는 어떤 곳에 존재하는 것인지를 알면 되겠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우창이 비로소 지광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지광이 또 짤막하게 말했다.

“정기(正氣)의 바로 옆에 사기(邪氣)가 흐른다네.”

“예?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비유를 하자면 마치 비단과 같다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비단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그야 명주사(明紬絲)로 자아서 만들지 않습니까?”

“맞아.”

지광의 말에 우창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새삼스럽게 그런 것을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다시 그 의미를 생각하느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침묵을 깬 것은 거산(居山)이었다.

“스승님께 감히 여쭙습니다. 제자가 이해하기로는 지기란 마치 한 폭의 비단과 같다는 의미인지요? 그러니까 정기는 씨줄이 되고, 사기는 날줄이 되어서 서로 촘촘하게 얽혀져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옳지~!”

거산의 말에 지광이 말했다. 그러자 주인 부부는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의 아들이 뭔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는 것으로 보여서 기뻐했다. 지광이 동의하자 거산이 다시 말했다.

“이야~ 정말 감탄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기밀을 본 듯합니다. 놀랍습니다.”

“그렇다네. 학문에도 현학(顯學)이 있고 밀학(密學)이 있듯이 자연의 풍경도 그와 같다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거산을 바라봤다. 그러자 거산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심성도 비단결과 같아서 정심(正心)과 사심(邪心)이 교차하겠습니다. 정심을 운용할 적에는 보살심(菩薩心)이 되었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사악한 마음을 품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것은 또 왜 그렇습니까?”

“그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본심이 올바른 사람도 잠시 사악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사기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그 말씀의 뜻으로는 지기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물론이네. 잠시 사기를 받았을 적에는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본심으로 돌아가겠지만 계속해서 사기를 받게 되면 정심(正心)도 변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그래서 사람이 달라졌다고도 하지. 하하하~!”

지광은 유쾌하게 웃었다. 아직 어리다면 어린 거산의 심성(心性)이 올바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 즐거움이기도 했다. 물론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명석한 판단을 하는 것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놀랍습니다. 환경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은 했습니다만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거친 마직(麻織)을 말씀하지 않고 비단을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이렇게도 정사가 촘촘하게 교차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지광에게 합장했다. 새삼스럽게 그러는 것은 깨달음의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창도 거산이 삼베와 비단 이야기를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지광에게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형님의 말씀대로 이해하기에는 낮에 갔던 동굴의 옆에는 그만큼의 사악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는 말이 아닙니까?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까?”

“당연하지~!”

“그렇다면 동굴이라도 사기로 가득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까?”

“물론이네.”

“정말 뜻밖입니다.”

“그래서 나도 놀랐지. 거산에게 천복(天福)이 있지 않고야 죽음이 멀지 않은 시점에서 산으로 들어간 것도 놀라운데 바로 그 동굴을 찾아들었다는 것은 하늘이 돕지 않고야 가능했겠느냔 말이네. 알고 보면 자연에는 항상 놀라움의 연속이라네.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사기가 모여있는 동굴이었다면 거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실성(失性)하거나 고통으로 사경(死境)에 빠져들었겠지.”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동굴에는 바람이 불던가?”

“동굴은 사방이 막혀있으니 바람이 불 수가 없지요.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바람이 없으니 사기도 흩어지지 않고 모여있기 때문에요?”

“이제 이해가 되었구나. 하하~!”

“비로소 형님께서 거산을 두말없이 거둔 이유를 알겠습니다. 선신(善神)이 지켜주는 아이라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네. 물론 나는 지기만 볼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기(人氣)도 볼 수가 있다네. 그래서 심성에서 풍기는 기색(氣色)을 보고 바로 알게 되지만 그래도 간혹 위장(僞裝)하는 경우가 있기에 조심을 할 따름이지. 하하~!”

“예? 인기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찰색(察色)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오, 찰색은 들어보셨구나. 맞아.”

“그야 면상(面相)을 보려면 이목구비(耳目口鼻)도 살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형찰색(觀形察色)이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스스로 느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형님의 말씀으로 봐서는 실제로 종이에 물감을 바른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는 말씀입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정말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우제가 얼굴의 형상을 보고 있을 적에 형님은 그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빛을 보셨다는 말씀이잖습니까?”

“그런 셈인가? 하하하~!”

“그렇다면 우제에게는 어떤 색이 보이십니까?”

우창은 궁금한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지광이 그렇다고 말을 하자마자 바로 자신에게서는 어떤 빛의 색이 보이는지 궁금해서 바로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천기누설(天機漏洩)이라네. 하하하~!”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것을 말씀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까?”

“내가 그것을 아우님께 보여 줄 수가 있으면 상관없지만, 나는 알고 아우님은 모르고 있으니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올바르게 전달이 될 수가 없는 까닭일 따름이지 무엇을 숨기고 말고 하는 것은 아니라네.”

“아하~!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다만 비슷하게 말을 할 수는 있겠지. 그렇게라도 설명을 듣고 싶겠지?”

“물론입니다. 행여 말씀해 주지 않으시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하하~!”

“분홍(粉紅)의 빛에 맑은 물을 섞은 듯한 빛이라네.”

지광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봤으나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형님의 말씀을 들어도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모르는 것은 쥐어줘도 모른다는 말을 모른단 말인가? 하하~!”

“아, 그래서 천기누설이라고 하셨지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네. 아우님도 알고 나도 알면 무슨 천기누설이겠는가? 나만 알고 아우님이 모르니 천기누설이랄 밖에. 그러니 나도 보기만 하고 말은 할 수가 없다네. 하하하~!”

“정말 이야기가 무한정으로 확장됩니다. 간단하게 장풍(藏風)에 대해서만 이해하고자 했는데 찰색(察色)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을 못 했으니 말입니다.”

“원래 그런 것이잖은가? 하하하~!”

“맞습니다. 그러니까 형님은 지학(地學)을 연구하다가 지형(地形)에서 지기(地氣)까지 알게 되셨고 그것을 알고 보니까 정기와 사기는 물론이고, 사물에 깃든 기운조차도 볼 수가 있게 되셨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제는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가 싶은 생각조차 듭니다. 아마도 헛된 공부를 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무슨 말이겠습니까? 오행(五行)의 이치가 전부인 줄로만 알고 천착(穿鑿)했으니 말이지요. 세상의 이치는 이렇게 광활(廣闊)한데 겨우 오행만으로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만 철석(鐵石)같이 믿고 있었던 것을 보면 ‘정저청와(井底靑蛙)라고, 얕은 지식이 흡사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창은 진심으로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돌과 나뭇조각을 갖고 즐겁게 놀면서 세상의 돌아가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조차 들자 자괴감(自愧感)조차 들었다. 그러한 심경(心境)을 잘 이해한다는 듯이 지광이 말했다.

“그 보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우님을 만나서 그러한 마음을 느꼈을지 이제야 깨닫지 않았는가 말이네. 그야말로 역지사지(易地思之)로군. 하하하~!”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이긴, 아우님이 말하는 오행의 통찰력에 대한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공부가 얼마나 쓸데없는 쓰레기더미였는지를 깨닫고서 좌절감을 맛본 사람의 심리도 좀 헤아리게 되었다는 뜻이지. 하하하~!”

“에이~ 설마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많은 사람이 아우님의 학문을 배우고자 모여들었겠느냔 말이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비록 아우님의 얼굴에서 담홍빛의 우아한 색은 보지 못하지만 뭔가 모를 깨달음과 끌림이 있지 않고서야 자신의 삶에 대한 정신을 순식간에 의지하였을 까닭이 없다네. 그러니까 느낌으로나마 그 빛을 본 셈이라고 해도 되겠군. 하하~!”

“정말로 그랬을까요?”

“그것을 보통 첫인상이라고들 말하지. 딱히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지혜로워 보이고, 믿음이 가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나 할까?”

“듣고 보니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형님께서는 왜 우제와 인연이 되셨습니까? 이미 모르는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우창은 문득 그것이 궁금해서 지광에게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니,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명학(命學)을 배우고 싶다고 말이네.”

“그렇긴 합니다만, 명학은 알아서 무엇하시게요? 이미 환하게 다 보시는 것을 비유하자면 대낮의 풍경과 같을 진데, 그에 비하면 오히려 어슴푸레한 간지학(干支學)을 배워서 어디에 쓴단 말입니까?”

“어허~! 그건 아우님이 모르는 말이네. 간지학은 그만의 이치를 담고 있을 따름이고, 간지에서 풍겨 나오는 것은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 밝은 스승을 만나서 배우는 길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에 아우님을 명학의 스승으로 선택하였다네. 이것이야말로 논리(論理)와 직관(直觀)의 관계라고 할 수가 있지. 직관은 내가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논리적인 면에서는 아우님을 따를 수가 없으니 말이네. 하하하~!”

우창은 지광의 말을 들으면서도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어쩌면 우창을 위로 하느라고 괜히 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뭔가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염재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정 사부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제자는 이해할 수 있지 싶습니다. 진 사부의 날카로운 혜안에 염제도 순간에 설득당했잖습니까?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봄눈이 녹듯이 풀리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논리적인 통찰력이 참으로 뛰어난 분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것을 배우고자 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 사부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제자가 왜 그렇게 순식간에 마음을 결정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의미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자신의 과거에 느꼈던 소감을 말하자 우창도 그 의미를 이해할 것도 같아서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랬었나? 난 그냥 오행의 이치가 좋아서 생각의 흐름을 따라서 궁리했을 따름이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열심히 설명했을 뿐인데 말이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거들었다.

“바로 그렇다네. 염재가 느꼈던 것은 아우님의 이론이지만, 염재는 자신도 모르게 아우님의 찰색도 느꼈을 것이네. 하하하~!”

그러자 염재도 문득 느낀 점이 생각나서 말했다.

“맞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밝은 느낌의 빛을 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것이 그냥 느낌이었을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정 사부의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비록 선명하게 빛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느끼는 것일까요?”

염재가 지광에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묻자 지광이 말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가 있다네.”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가령 돌도 되지 않은 아이가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을 적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생각해 보면 안다네.”

“보통 낯선 사람을 보면 울지 않습니까?”

염재가 당연하지 않으냐는 듯이 물었다. 그래자 지광이 미소를 짓고는 염제에게 말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지. 생면부지의 사람을 보고는 방글방글 웃기도 한다는 것을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말이네.”

“그렇습니까?”

“왜냐면 보통 아기들이 울게 되면 주의를 기울이지만 웃으면 그냥 넘어가기 때문에 모르고 넘어갈 따름이라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아기들은 심성이 맑은 물과 같아서 사람들을 보면 이목구비는 몰라도 찰색은 보는 것 같거든. 내가 지켜봤을 적에 얼굴의 빛이 좋은 사람을 보면 아기도 반가운 표정을 짓지만, 빛이 잿빛인 사람을 보게 되면 그만 울음을 터뜨린단 말이네. 그래서 아기들은 빛을 보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네. 하하하~!”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염재는 개장수의 이야기를 들어 봤는가?”

“못 들어봤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예전에 개장수에게 들은 말이네. 자신이 동네 어귀를 들어서면 동네의 개들이 일제히 짖는다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미소를 짓는다네. 그의 몸에는 죽은 개의 칙칙한 빛으로 가득하니까 말이네. 하하하~!”

“정말입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지광은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어떤가? 아우님이 영아(嬰兒)를 봤을 적에 대부분 울지 않고 웃었을 것이라고 보는데 말이네. 오히려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추기조차 했을 것이네.”

지광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잠시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까 실제로 자신을 보고서 심하게 울어서 곤란하게 했던 아기는 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기들은 다 그렇겠거니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랬던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표정을 보면서 지광이 다시 말했다.

“그 보게. 참으로 신기하지 않으냔 말이네. 하하하~!”

지광이 재미있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