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제30장. 정신(精神)/ 14.감정적인 통제(統制)

작성일
2021-10-1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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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제30장. 정신(精神) 


14. 감정적인 통제(統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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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만난 지 불과 하루가 지났을 따름인데도 토론하는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채운과 오광도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에 을(乙)의 치밀성이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를 더욱 명료하게 깨닫게 되었다. 다시 채운이 물었다.

“동생의 자세한 가르침 덕분에 을(乙)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었어. 그러니까 을로 태어난 사람은 항상 계산적(計算的)이라는 말이잖아? 그래서 타산적(打算的)인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관점(觀點)이네.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속속들이 파악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탄했어.”

“이제 시작인데 그러십니까?”

“뭐라고? 하긴 그렇지. 그러니까 더 놀랍다는 거잖아. 동생은 어디까지 공부한 거야?”

“이제 겨우 오행의 음양에 대해서 약간 이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아직 시작이라고 하기도 멋쩍은 수준이겠습니다.”

“오늘 동생을 보면서 깨달았어.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해를 하느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나도 오늘 중으로 제 수준을 뛰어넘으실 겁니다.”

“정말? 말이라도 고마워. 열심히 궁리해 볼게. 호호호~!”

채운이 오광의 공부에 대해서 감탄하자 그 말을 듣는 오광도 기분이 나쁠 까닭이 없었다. 계속해서 채운에게 물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갑(甲)은 동물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그러니까 말이야. 목(木)이 동물이라고 하니까 사유(思惟)의 길이 없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으니 어쩜 좋아.”

오광이 갑자기 목(木)이 동물이라는 말을 들은 채운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듯이 오광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광이 천천히 아는 만큼만 설명했다.

“누나의 생각에 동물은 식물에 의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 그야 식물은 초목이라고 한다면 동물은 풀이나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라니까 당연히 동물은 식물을 의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는 거야?”

“맞습니다. 동물은 식물을 의지하고 식물은 동물을 의지합니다.”

“맞아, 그것은 을(乙)에 대해 들었으니까 이해가 되네. 이렇게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모습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네. 호호호~!”

“공부하다 보면 온통 신기한 것들에 휩싸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한 열 가지의 오행(五行)의 음양(陰陽)에 대한 이치가 어디에서도 그대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오묘(奧妙)합니다.”

“맞아. 이제야 뭔가 오행의 이치가 왜 그렇게도 심오하다고 하는 것인지를 잠시지만 느낄 수가 있을 것만 같네. 갑의 심리에 대해서도 조금 더 설명해 줘봐. 어떻게 이해하면 되지? 을이 치밀하다는 것과 대비해서 말이야.”

“그러죠. 우선 갑이 생각하는 방향부터 말씀해 보세요.”

“아, 그건 쉽지. 갑은 양이니까 그 방향은 밖에서 안쪽으로 향할 것이니까 말이야. 움직이는 물질은 모두 안쪽을 향한다고 보면 될까?”

“그렇습니다. 그것을 구심력(求心力)이라고 합니다. 을(乙)은 원심력(遠心力)이 발동하고, 갑은 구심력이 발동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안에 있는 을은 마음이 밖으로 향하려는 반면에 밖에 있는 갑은 마음이 안으로 향하려는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매우 감정적(感情的)이라는 의미를 추가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을은 ‘넌 누구인가?’에 관심을 둔다면, 갑은 ‘난 누구인가?’에 마음을 둔다는 말이야?”

“설마하니 갑(甲)이 난 누구인가를 생각하겠습니까? 그것은 임(壬)이나 가능한 영역이지 싶습니다. 궁리하는 영역이니까요.”

“아, 그렇구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할 갑(甲)이 아니네. 그럼 뭘 생각할까?”

채운은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오광이 다시 설명을 이었다.

“갑은 ‘내가 최고(最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지 싶습니다. 그것도 10세 이전의 어린애는 갑을 닮았고, 20세 이전의 소년들은 을을 닮았으니까요. 실제로는 4~5세 무렵이라고 하는 것이 더 이해에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왜냐면 아이들도 개인적인 차이는 있으니까요. 다만 4~5세의 소아(小兒)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맞아, 그런 아이에게서 계산적이고 치밀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 뭐든 자기 마음대로 될 것이라고 여길 테니까 말이야. 멋진데~! 호호호~!”

“보통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제발 좀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죠. 그렇지만 실제로 아이가 가만히 누워있으면 걱정이 태산이 됩니다. 활기를 잃은 아이는 이미 이상(異常)이 생긴 것이고 그것은 병(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활발한 것을 고맙게 여기는 부모는 이미 경험이 많은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갑(甲)의 진면목(眞面目)입니다.”

“정말이네, 그러니까 갑의 마음은 유아(乳兒)와 같은 상태라고 보면 되겠네. 그다음 단계는 비로소 계산하기 시작한다는 거니까 식물처럼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부모나 형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도 되는 거지?”

“맞습니다. 안에 있던 자아(自我)가 밖으로 나가서 시야(視野)가 넓어지는 단계를 인식(認識)하는 것이지요.”

“그렇구나. 갑은 거목(巨木)이고, 을은 초목(草木)이라고 한 것에서는 전혀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 이렇게도 명쾌하게 드러나니 참으로 놀랍기만 하네. 이렇게 재미있는 오행의 공부가 있었단 말이지. 호호호~!”

채운은 참으로 유쾌한 마음으로 심신이 쾌락(快樂)했다. 참된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절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오호~! 갑이 감정적이라면 을은 이성적(理性的)이란 말이구나. 그러니까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수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생각하려면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따져야 하는데 갑은 감정적이기 때문에 기분에 따라서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감정의 기복(起伏)에 따라서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라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이 중책을 맡게 된다면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오호~! 그렇다면 갑(甲)과 을(乙)이 같이 일을 하면 어때? 을은 밖의 상황을 자꾸만 살피려고 할 테니까 상황판단이 빠를 것이고, 갑은 안의 감정대로 처리할 것이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있으니 우물쭈물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기회를 헛되이 낭비할 가능성을 막아줄 수가 있지 않을까?”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생각이지 싶습니다.”

“아니 왜?”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갑은 안을 보고 을은 밖을 보니 서로 만날 곳이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타협을 하면 되잖아?”

“물론이죠. 타협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고, 그게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은 감정이 개입되는 까닭입니다.”

“아, 듣고 보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구나. 그렇다면 서로 합의를 할 방법은 없는 거야?”

“그야 왜 없겠습니까? 그 사람의 심성(心性)이 중화(中和)를 얻었다면 당연히 가장 적절한 선에서 타협(妥協)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편견(偏見)과 독선(獨善)에 사로잡혀 있다면 아마도 영원히 서로 바라보는 곳이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맞아~! 그게 사람이고, 사람은 참으로 변하기 어렵다고 하잖아. 사주를 잘 타고 나야 한다는 거야?”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 이런~! 호호호호~!”

이야기에 빠져서 자기가 궁금한 것을 묻다가 보니 오광의 공부가 어디까지 되었는지를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러자 우창이 나서서 채운의 궁금증을 풀어줄 때가 되었다고 여겼서 오광을 거들었다.

“사주가 균형(均衡)을 이루고 있으면 성품도 편벽(偏僻)되지 않고 이해(理解)가 풍부한 심성을 이루지만, 오행이 고르지 못하다면 아무래도 생각하는 형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겠지? 어디 여러 사람을 위해서 채운의 사주를 논해 볼까? 싫다면 하지 않아도 되네.”

그러자 채운이 무척이나 반가워하면서 얼른 자신의 사주를 적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앞에다 걸었다.

332 채운명식

채운의 사주를 보자 모두 열심히 저마다의 방법으로 궁리하느라고 생각에 잠겼는데 채운은 우창이 어떻게 풀이를 해 줄 것인지에 대해서 벌써 마음이 설레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스승님, 어떻게 해석해 주실는지 마음이 콩콩 뛰어요. 있는 그대로의 설명을 듣고 싶어요. 그동안 여러 곳을 다니면서 제 사주의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 모두는 다 잊어버리고 스승님의 판단에 따라서 정리를 할거에요. 호호호~!”

우창이 대중을 둘러보자 다들 자신이 판단한 것이 우창의 설명과 어느 정도 같고 다른지에 대해서 궁금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채운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풀이가 되도록 하면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아, 마침 일간(日干)이 갑(甲)이네? 이런 우연이 있나. 하하하~!”

“그래서 오광이 갑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저를 들여다보고 말하는 것 같아서 놀라움의 연속이잖아요. 제자가 바로 천방지축(天方地軸)이거든요. 호호호~!”

“그러니까 갑(甲)이라서 그렇다는 이해를 했단 말이구나. 하하하~!”

“맞아요. 항상 앞장을 서다가 손해도 잘 입는 것이 천성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지 뭐에요. 이렇게 스승님께 찾아오는 과정에서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실행했는데, 여태까지 한 일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잘한 것으로 봐야 할까 싶어요. 호호호~!”

“아무렴. 열 개 중에 한두 개는 잘하기도 하니까. 하하하~!”

“아니에요~! 그래도 반타작(半打作)은 되거든요~! 호호호~!”

채운의 말에 우창과 제자들이 모두 한바탕 웃었다. 분위기가 다시 차분해지자 우창이 제자들 중에서 아직 공부가 부족한 사람도 이해할 수가 있도록 쉬운 말로 설명을 했다.

“인월(寅月)의 갑진(甲辰)에 묘시(卯時)를 얻었으니 갑의 힘이 넘치는군. 목생화(木生火)의 흐름을 탔으니 갑(甲)에게 정(丁)은 꽃과 같은지라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우러러보기를 좋아하니 복이 많은 사주라고 해야 하겠네.”

“아니, 그렇게 좋은 말씀만 하시면 어떡해요?”

“그럼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인사형(寅巳刑)이 있어서 어려서 형액(刑厄)을 당하거나 칼이나 흉기에 맞아서 흉터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난데 그런 말씀도 해 주셔야지요.”

“그것은 무효(無效)~!”

“아니, 삼형(三刑)이 무효라는 말씀이세요?”

채운은 우창의 말을 듣고서도 믿기지 않는지 그러지 않아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서 반문했다. 우창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미소를 지으면서 답을 했다.

“목생화(木生火)는 유효하고, 인사형(寅巳刑)은 무효라는 말이네. 하하하~!”

“왜요?”

“오행의 이치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그렇지 뭘 왜는 왜야? 하하하~!”

우창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채운의 얼굴에도 근심이 사라지고 대신에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또 있어요. 인묘진(寅卯辰)이 동방(東方)의 목국(木局)을 이루는 바람에 시간(時干)의 정화(丁火)는 목다화식(木多火熄)이라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스승님께서는 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두 말의 차이가 너무나 크게 벌어져서 위로하시는 말씀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감출 수가 없어요. 진실을 말씀해 주세요. 이미 들을 만큼 다 들었거든요.”

“아마도 그렇게 들었을 수도 있겠네. 어디 시험삼아 물어볼까?”

“예, 뭐든지 말씀하시면 있는 그대로 답변 드릴게요.”

“나무가 많으면 불이 잘 탈까? 아니면 꺼질까?”

“그야 나무가 많으면 불이 잘 타오르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겠네. ‘목다화식(木多火熄)’은 무슨 뜻이지?”

“나무가[木] 너무 많으면[多] 불이[火] 꺼진다[熄]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인묘진으로 목이 너무 많으니까 불은 꺼지게 된다고 하는 거잖아요?”

“아니, 내 말은 이치에 맞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거지. 어떻게 생각하지?”

“이치에 맞도록 생각해 보면 밥을 지으려고 아궁이에 불을 지필적에 나무를 너무 많이 넣으면 불이 꺼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전에 불을 때면서 아궁이가 터지게 밀어 넣었더니 참말로 불이 꺼졌어요. 그래서 그 이치는 타당하다고 생각했죠.”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것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이 되는 건지를 생각해 봐야지.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이 인위적(人爲的)인 현상인지 자연적(自然的)인 현상인지를 구분해야 하는 것도 철학자가 살펴야 할 이치니까 말이야.”

“예? 자연의 이치라면.... 자연에서는 나무가 많으면 불이 잘 타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겠네요. 마당에서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놀 적에는 아무리 나무를 많이 넣어도 잘만 탔어요.”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볼까? 아궁이에 나무를 밀어 넣어서 불이 꺼지는 것과 마당에서 장작을 많이 쌓아놔도 불이 꺼지지 않고 더욱 왕성하게 타오르는 것에서 어느 것이 더 자연의 이치에 부합이 될까?”

“맞아요. 스승님 말씀대로 마당에서 장작에 불을 붙여서 활활 타는 것이 더 자연의 이치에 가깝네요. 목생화(木生火)니까요.”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을 목생화라고 하나?”

“아니, 그것도 틀렸나요? 이젠 제자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자신감(自信感)이 없어져요. 어쩜 좋아요. 호호호~!”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조차도 자꾸 생각해봐야지. 그래서 조고각하(照顧脚下)라고 하잖는가. 서양의 어느 철학자(哲學者:소크라테스)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진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사람들을 깨달음에 이르도록 했다더군.”

“지금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영락없이 그 학자라고 해도 되겠어요. 숨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치시네요. 호호호~!”

“그래야 망념(妄念)이 끼어들지를 못하거든. 어서 답을 해 보라니까~!”

우창이 정색을 하고 다그치자 채운도 잠시 생각하다가 답을 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봤는데 목생화는 맞다고 생각되는데요? 나무가 불을 일으켜서 태우니까요.”

채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오광에게 물었다.

“오광이 말해봐.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이 목생화가 맞나?”

“아닙니다. 스승님. 그것은 목생화가 아니라 화극목(火剋木)입니다.”

“어째서?”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목생화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도 원하는 바이고 그래서 꽃을 피운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그렇지만 산불이 나서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은 불이 나무를 극하는 이치로 관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나무가 불을 생조(生助) 한다고 하면 나무가 불타서 사라지는 이치는 부합이 되지 않는 까닭입니다.”

오광이 이렇게 답을 하자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채운이 놀라서 말했다.

“아니, 화극목이라니요? 그런 이치도 있었나요?”

이해하지 못하는 채운을 위해서 오광이 다시 부연하여 설명해 줬다. 그제야 채운도 그 이치를 깨닫고서 손뼉을 쳤다.

‘짝짝짝~!’

“와우~! 오행 생극의 이치란 이런 것이었네요. 정말 살얼음판을 걷듯이 공부해야 하는데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잘 알았어요. 그나저나 목다화식은 또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는 걸까요?”

아까부터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는 채운을 보면서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실은 책의 글자에 오류(誤謬)가 있었는데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와이전와(訛以傳訛)하게 되었던 것이라네.”

“원래 책이 잘못되었다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뭘, 책은 신(神)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착각으로 잘못 적을 수도 있고, 혹은 잘못 이해를 한 나머지 그렇게 적을 수도 있지. 다만 후학이 그러한 것도 밝혀서 학문으로 밝혀야 하겠지. 말도 되지 않는 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도 후학을 위해서 스승에 대한 보답이 아니겠나?”

“그러니까 어느 글자가 어떻게 되어야 올바른 것이라는 말씀이세요?”

채운의 궁금증이 더욱 깊어졌다.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딱 잘라서 말했다.

“목다화치(木多火熾)~!”

“예? 목다화식(木多火熄)이 아니라 목다화치(木多火熾)였어요? 목다화치라면 목이 많으면 불이 치열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것은 자연의 관법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명쾌하기조차 한걸요.”

“아마도 어쩌면 눈이 어두운 학자가 글자를 베끼면서 치(熾)를 식(熄)으로 베껴놓고는 돌아가시게 되었고, 나중에 그것을 본 제자가 그대로 따라서 외우고 전했을 것으로 짐작만 해 볼 나름이네. 직접 보지 못했으니 단언(斷言)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말이지. 하하하~!”

우창의 말에 제자들이 모두 감동을 했다. 특히 채운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입을 다물 줄을 모르고 잠시 멍~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정말 놀라워요. 앞뒤가 척척 맞는 말씀에 뭐라고 토를 달 방법도 없어요. 완전히 멋진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마음이에요. 호호호~!”

채운이 비로소 이해하며 무척이나 기뻐하는 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시간(時干)의 정(丁)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서 다시 보니까, 왕성한 목의 기운을 받아서 멋진 불꽃놀이가 되었다고 하려고 보니까 그것은 목생화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했어요. 그래서 꽃이 피었다는 것이 맞네요. 역시 결론은 이미 스승님께서 내린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감탄이에요. 호호호~!”

“그러니까 어딘가에서 들었다는 채운의 사주풀이는 실로 정확하게 오행의 이치를 기준으로 해서 풀이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 그러니까 다시 공부해서 오행의 이치에 부합하는 관법으로 풀이를 해야 한단 말이지. 어떻게 다시 설명해 볼 텐가?”

“스승님, 그렇게 하고는 싶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안 되겠어요. 대신에 춘매 언니의 설명을 듣고 싶어요.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보려면 숨이 넘어가지 싶어요. 갑목이짆아요. 호호호~!”

옆에서 가만히 미소를 짓고 이야기를 듣던 춘매에게로 화살이 돌아가자 춘매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내가 뭘 안다고 내게 물어봐~! 나도 아직 공부가 부족해.”

“언니가 보이는 만큼만 풀이해 주시면 돼요. 스승님은 풀이하실 마음이 없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그냥 덮고 가기에는 제가 궁금하단 말에요. 어서요~!”

채운은 붙임성이 좋았다. 춘매도 두 살이 아래인 채운이 언니라고 말하면서 부탁을 하자 거절하는 것도 아니지 싶어서 보이는 대로 설명을 해 주기로 했다.

“그러면 보이는 만큼만 설명할 테니까 엉터리라고 비웃지는 않을 거지?”

“물론이에요. 고마워요. 언니~! 호호호~!”

이렇게 되자 모든 사람은 춘매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춘매가 그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해서 채운의 사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생각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