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제29장. 물질오행관/ 4.오광의 체험담(體驗談)

작성일
2021-06-1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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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제29장. 물질오행관(物質五行觀) 


4. 오광의 체험담(體驗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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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매가 마련한 잉어탕을 맛있게 먹고는 네 사람이 수박을 가운데 놓고 앉았다. 모두가 하루종일 진리를 탐구했던지라 저녁에는 공부보다는 한담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창이 빨갛게 잘 익은 수박을 한쪽 들면서 춘매에게 말했다.

“식구가 많이 늘어서 음식을 챙겨 먹이려면 힘들겠네. 조용하게 둘이서만 지내다가 갑자기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식솔들도 늘어나는 것이 참 신기하기는 한데 번거로워서 어떡하지?”

“스승님도 참 별 걱정을 다 하시네요. 얼마나 신명나고 좋아요. 이야기를 들어도 즐겁고 대화를 나눠도 행복해요. 이러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꿈이었잖아요.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지금처럼만 오래도록 즐거웠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호호호~!”

그러자 자원도 말했다.

“싸부의 인연으로 오행원에 머물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 행여 내가 식구들에게 부담이라도 될까 봐서 내심 근심도 되었는데, 다행히 동생이 어찌나 잘 챙겨주는지 오래전부터 이렇게 살아왔던 것 같잖아.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라도 이렇게 전하고 싶어. 고마워~!”

“언니도 참, 그렇게 말씀하셔도 알고, 안 하셔도 알아요. 제가 나이는 얼마 되지 않았어도 외로운 한 몸으로 부대끼면서 살아온 세상인걸요. 언니의 총명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닮을 수가 있을지를 항상 생각했는데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에요. 지금은 비록 둔한 동생이지만 잘 거둬주세요. 언니같이 멋진 분을 만난 것도 천지신명의 보우하심이라고 믿어요. 시작은 사주풀이를 배우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인생을 배우는 것이 되었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호호호~!”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광이 춘매를 보면서 할 말이 있는 듯이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눈치로 말하면 춘매가 아니던가. 얼른 오광을 보고 말했다.

“오늘 저녁엔 오광 동생의 살아온 이야기나 들어볼까? 혹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도 좋아.”

춘매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 오광이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실은, 제가 마음이 좀 급한가 봅니다. 진작부터 누나가 제 사주를 좀 풀이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이것이 너무 조급함인가 싶어서 망설였습니다. 혹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광이 사주풀이를 듣고 싶다는 말을 들은 춘매가 말했다.

“에구, 누나가 눈치가 없었구나. 미리 알아서 풀이를 해 줬어야 되는데 이러고 태평이었네. 풀이하는 것이야 무엇이 어럽겠어? 풀고 부족한 것은 언니나 스승님이 채워주실 테니까.”

“누나의 배려하심에 감동했습니다.”

오광을 한 번 바라본 춘매가 미리 적어뒀던 오광의 사주를 찾아서 앞에 펼쳐놓았다.

306 오광사주

춘매는 오광이 특별히 자신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더 신중히 사주를 들여다봤다. 우창과 자원은 미소를 머금고 춘매가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모두 자기를 바라보자 조금은 긴장이 된 춘매가 말했다.

“동생의 사주는 좀 특이해.”

“그렇습니까? 어떻게 특이한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목신(木神)이 너무 많아. 그래서 나무에 관심갖고서 물어봤던 것은 아니야?”

“그런 것도 있기는 했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혹 제가 강신(降神)을 하게 되는 운명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과 통하는 길을 넷이나 갖고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법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배우지 않아서 모르겠어. 그런데 정말 머리가 엄청 좋겠다. 식신(食神)이 넷이나 있으니 이런 팔자면 한 번 본 것은 바로 기억하는 거잖아?”

“누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과연 그런가 생각을 해 봅니다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끊임없는 호기심은 있습니다. 희신염구(喜新厭舊)의 운명인가 싶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은 좋아하고 오래된 것은 싫증을 내는 것으로 인해서 진득하게 끝을 보지 못하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맞아, 그럴 수도 있겠네.”

“예? 그것이 팔자에 있습니까?”

“식신(食神)은 한 우물을 파는 성분이거든. 그런데 그것에 넷이니까 우물을 넷이나 파야 한다는 뜻이잖아. 네 개라고 한다는 것은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러니까 제대로 한 우물을 파지 않으면 결국은 열두 가지의 재주를 갖고 있는데 끼니가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야. 호호호~!”

“그래서 오행원에서 끝장을 내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부디 이번에 만나는 인연에서 방황을 끝낼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올해는 동생의 운이 좋구나. 스승을 만날 운이었으니까.”

“그건 왜 그렇습니까? 올해는 신미년(辛未年)이 아닙니까?”

“맞아. 신미(辛未)의 신(辛)은 정인(正印)이고, 길을 안내해 주는 스승님이 되니까 비로소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해야겠네.”

“그렇습니까? 어쩐지 오행원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이 사주에서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정말이네? 내가 말을 하고서도 내가 놀라고 있어. 신기하다. 호호호~!”

“작년에는 운이 어떠했습니까?”

“작년은 경오(庚午)잖아? 경금(庚金)이면 겉으로는 스승인데... 속으로는.... 뭐지?”

춘매의 말에 오광이 흠칫 놀랐다.

“아니, 작년에는 뭔가 다른 것이 보이십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자를 만났던가 재물의 손실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동생을 봐하니 그랬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말이야. 작년엔 운이 맞지 않았던가 보다. 모든 것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니까. 호호호~!”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오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춘매가 오광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반응을 놓칠 리가 없었다.

“아,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구나. 여자 문제야?”

“누나의 말이 맞습니다. 저 혼자만 겪은 일인데 그것이 작년의 운에서 나오다니 놀랍습니다.”

“어서 그 이야기를 해 줘봐.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거야?”

“그냥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기이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듯 싶습니다. 그리고 민망하기조차 합니다만 공부를 하시는 선생님들이시니까 연구에 도움이 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 말을 들으시고 나서 이러한 것이 이치로는 어떤 설명이 가능할지 꼭 귀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러자 춘매가 궁금하다는 듯이 재촉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정말 궁금하네.”

춘매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작년의 이야기를 해 보라고 재촉했다. 자원과 우창도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오광이 말을 하기만 기다렸다. 오광은 목이 타는지 물을 두 잔 연거푸 마시고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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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은 글공부를 덮고 집을 떠난 지도 3년여가 흘러갔다. 처음에 집을 나설 적에는 어딘가에서 자신에게 진리를 알려 줄 스승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의 과거급제에 대한 소식이 들리는 것만 같아서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갈 마음은 아직 없었다. 자신이 얻을 진리는 문자(文字) 밖에 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처도 없이 걷던 발길은 무한(武漢)까지 흘러갔다. 집을 떠나 대략 2천여 리를 걸었다. 그 도중에도 항상 미래를 예언한다는 도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탐문(探問)했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러한 달인(達人)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여전히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굽이치는 장강(長江)을 보면서도 물은 바다로 가는 길을 만나서 저리도 즐거운데 자신은 언제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줄 스승을 만나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동호(東湖)가 펼쳐진 것을 보니 생전 처음으로 이렇게 큰 호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놀잇배가 떠다니고, 유람객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풍광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천하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자 아름다운 경치를 봐도 마음은 우울하기만 했다. 당장 오늘 저녁에 머물 곳을 찾아야만 한다는 조바심이 마음속에 묻혀있는 것이 오광을 바쁘게 몰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여인이 있었다. 처음에는 설마 자신에게 일이 있어서 곁으로 오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집을 떠난 지는 3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발길을 멈출 곳을 찾지 못한 마음에 하염없는 물결을 바라보니 그 마음을 누가 알아 줄까나~!”

오광은 흠칫 놀랐다. 듣고 보니까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여인을 바라보니까 중년의 고운 자태를 지니고있는 모습이 흡사 관음보살인 듯 자애로워 보였다.

“아주머니, 방금 하신 말씀은 제게 하신 것입니까?”

“아무렴~!”

“가르침이 계신듯한데 자세한 말씀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지푸라기를 잡는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나 여인은 대답 대신에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앞서서 사뿐사뿐 걸었다. 오광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자 동호의 입구에 즐비한 상가들 사이로 들어가더니 어느 집 앞에서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는 오광을 돌아다 봤다.

오광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들어와.”

여인이 짧게 말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여인이 혼자 살고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문 옆에 편액을 보니 「침향관(沈香館)」이라는 세 글자가 보였다.

“앉아.”

오광은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무슨 가르침이 있으려나 싶은 기대감에 마음이 은근히 설레었다. 앉아서 기다리자 시원하고 향기로운 차를 가져와서는 옆에 놓고 앉았다. 오광도 살짝 긴장했다.

“어때? 도를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지?”

이렇게 한마디 툭 던지면 듣는 오광은 가슴이 저린다. 아쉬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집을 떠나서 강호를 유람하면서 이렇게 따뜻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이 정도로 자신의 신세를 맞추는 사람은 수없이 만났지만 대부분 위압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맞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를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서두른다고 되나. 때가 되어야지. 육갑은 알아?”

“육갑이라면? 갑자을축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말만 들었지 잘 모릅니다.”

“그것 봐, 우선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서 스승을 기다려야지, 그렇게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닌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인 줄 알았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렇게 묻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들어와요~!”

중년의 한 여인이 찾아왔는데, 오광을 보고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에 뭔가 은밀한 말을 하고 싶었나보다 싶어서 자리를 비켜주려고 일어났다. 그러자 주인이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하면서 말했다.

“제자야, 이 여인의 생일을 적어~!”

오광은 적이 당황했다. 난데없이 따라오라고 해서 왔더니 이제는 미리 이야기한 것이 없는데 제자라는 말로 글을 쓰라고 시키는데, 그것에 대해서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앉아서 여인이 말해주는 대로 생일을 적어서 여인의 앞에 놓았다. 그러자 흘낏 적은 것을 보고는 줄줄이 말했다.

“왜? 마음대로 안 돼?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야. 어린 녀석이 괴롭히고 있구나. 그러니까 애초에 왜 건드렸냔 말이야.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이 어디 있다고. 쯧쯧~!”

이렇게 앞에 쓰인 글을 읽듯이 줄줄이 말하는 소리에 찾아온 여인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고, 주인은 부적을 세 장 써서 건네주면서 말했다.

“남편이 낌새를 눈치채고 있어. 서둘러야 해. 우물쭈물하다가는 가정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되고, 그대는 하루아침에 처량한 신세가 될 테니까.”

여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자 열 냥을 내어놓는다. 은자 한 냥이면 백미를 두 섬 살 수가 있는 거금이다. 오광은 흥미롭게 전개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그리고 여인에게 부적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귀담아서 들었다.

“수컷 고양이가 잠을 잘 적에 수염 세 개를 뽑아서 부적이랑 같이 싸서 그 젊은 사내의 속옷을 얻어서는 안에 넣은 다음에 아줌마의 속옷 안에 입고 있어. 남편에게 들키지 말고 끝내라고 선인장(仙人掌) 부적도 하나 넣었어. 가봐. 선인장은 신선의 손으로 비밀을 가려주는 거야. 내가 잘 안 해 주는데 특별하게 걱정이 되어서 해 주는 거야.”

이렇게 말하자 여인이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은 더 한 다음에 돌아갔다. 오광은 전개되는 장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흥미롭게 지켜봤다. 새로운 경험이려니 싶은 생각을 하면서.

“어때? 재미있지?”

비로소 오광을 보면서 여인이 말했다.

“재미라기보다는 신기합니다. 무슨 술법을 쓰신 것인지요?”

“그런 것이 있어. 아마 3일 내로 결정이 날 거야.”

“어떤 학문을 연마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대 눈에는 이것이 학문으로 보여? 학문을 백 년 한다고 해서 이런 것이 보일 리는 없잖아? 천지신명이 내려주신 통령문(通靈文)이니까 학문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네. 기도하면 훤하게 보이거든.”

“기도하면 보인다니? 그렇다면 글공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 어려운 공부를 왜 해? 그게 싫어서 집을 나온 것이잖아?”

“예. 기가 막히게 잘 알고 계십니다. 저도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을 손바닥처럼 훤하게 볼 수가 있을까요?”

“그게 인연이잖아. 이렇게 기도처에 왔으면서 그걸 묻다니 아직도 정신이 안 돌아온 건가?”

“예? 아, 제가 좀 우둔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해가 저물었다. 여인이 주방으로 가서 잠시 음식을 차리는가 싶었는데 상을 차려놓고는 오광을 불렀다.

“많이 먹어.”

오광은 인삼을 넣은 오리탕에 고량주를 곁들여서 모처럼 포식을 했다. 다만 술은 아직 마시지 못해서 한 잔만 먹고는 대신에 고기로 배를 채웠다. 젊은 혈기에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떠돌아다니다가 제대로 된 요리를 접하게 되자 잔칫상을 받은 듯이 마음이 즐거웠다.

“선생님 덕분에 포식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불러야 할지요?”

“남들은 침향선녀(沈香仙女)라고 불러.”

“예? 아, 침향선녀 님이셨군요. 알겠습니다.”

“그냥 선녀님이라고 부르면 돼. 내 몸에는 선녀님이 강림해 계시니까.”

“아, 그렇습니까? 놀랍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까?”

오광은 참으로 세상 물정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았다. 더구나 영적(靈的)인 세계에 대한 것은 전혀 공부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백지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선녀가 목욕하라고 시켰다. 오광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몸을 개운하게 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따뜻한 물통에 몸을 담그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동안 겪었던 피로가 모두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초가을의 상쾌한 바람이 문틈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몸을 씻고 나자 여인이 내어 준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그 후로 전개된 일은 남들이 알까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혼자서 평생을 가슴에 담고 가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고이 간직했다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오광의 첫정을 이렇게 체험하게 되었다.

그날 밤은 환희(歡喜)의 세계가 있다면 이런 것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만큼 음양의 조화에 빠져들었다. 여인과 함께 밤을 보내는 것도 처음이었고, 하룻밤에 다섯 번의 절정(絶頂)을 맛보는 황홀한 세상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서 먼동이 트면서 닭울음 소리가 들릴 무렵에서야 선녀는 잠을 자라고 했다. 오광은 물에 젖은 솜처럼 나른한 채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고 보니 어느 사이에 시간은 미시(未時) 무렵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자 선녀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고단했지?”

이렇게 말하는데 오광은 차마 선녀를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동정(童貞)을 받았으니 큰 선물을 줘야겠네.”

선녀가 이렇게 말을 해도 오광은 부끄러움이 앞서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잠자코 여인이 말하는 소리만 듣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쩌다가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으니 아직도 몽롱한 정신이 돌아 오지 않았다.

여인이 탕약을 마시라고 했다. 오광은 시키는 대로 약을 마셨다. 보통은 탕약이 쓴데 무슨 약인지 향기가 진동하여 먹기에도 무척 좋았다.

“무슨 약입니까?”

다 마신 그릇을 내려놓으면서 겨우 물었다. 그러자 선녀가 말했다.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를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봐. 이것도 인생의 여로(旅路)에서 경험하게 되는 수행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여인은 오광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도 앞으로 이와 같은 밤은 보내기는 어려울 거야. 왜냐면 몸은 내 것이지만 내 몸과 같이 있는 침향선녀가 시키는 대로 음양의 합일을 했으니까. 침향선녀는 정에 굶주려서 한을 품고 세상을 하직했기 때문에 음기(陰氣)가 치성(熾盛)할 적에는 점괘가 맞지 않는 부작용이 있어. 그럴 때는 남자의 정기(精氣)를 흡입해야 하는데 그것은 음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가 없는 일이야. 그래서 매월 하룻밤은 이렇게 관계해야 하는데, 가장 운이 좋은 날은 동정남을 만나는 거야. 그야말로 쌓아놓은 순양(純陽)의 정기(精氣)를 모두 빨아들여서 음기를 풀어버리게 되는데 봐하니 그대는 첫 경험이었지?”

“예. 그렇습니다.”

“선녀님께서 동정남(童貞男)의 정기(精氣)를 빨아들였기 때문에 그대가 느꼈던 환락(歡樂)은 다른 무엇과도 비할 수가 없었겠지. 물론 여태 여인에 대한 경험조차 없었기 때문에 아직은 비교를 할 수가 없겠지만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아도 돼.”

오광은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서 눈만 껌벅였다. 그러자 여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 몸 안에 계신 선녀께서 정기적으로 동정남과 동침을 하라고 하시는데 어제는 동호에 나가면 인연을 만날 수가 있다고 가르침을 주셔서 갔다가 그대를 만났던 거야. 이렇게 해서 하룻밤의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대가 순수한 동정남이어서 이 약효는 아마도 석 달은 갈 거야.”

“예? 약효라니요? 무슨 뜻인지....”

“이야기했잖아. 선녀님의 영험이 그만큼 오래 간다는 뜻이야. 더구나 그대의 심성이 순수해서 보통의 동침(同寢)이 인삼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면 간밤에는 100년 산삼(山蔘)을 먹은 것과 같다고 해야지. 동삼(童蔘)이라고 들어봤어? 어린아이처럼 생긴 오래 묵은 산삼 말이야.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여인은 어제 받았던 은자 열냥을 그대로 오광의 앞에 내놨다. 그러면서 말했다.

“본의 아니게 그대의 동정을 이렇게 바치게 해서 미안하네. 그렇지만 그대의 운명에 여난(女難)의 조짐이 있는데 그것이 이렇게 해서 해소되었으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아. 이것은 여비에 보태쓰고 앞으로 매우 훌륭한 스승을 만나도록 선녀님이 안내를 해 주신다니까 축하해.”

오광은 내친김에 궁금하게 생각되었던 것을 물었다.

“선녀님께 큰 도움이 되셨다니 그것만으로도 보람입니다. 절대로 억울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남녀의 교합이 이렇게도 황홀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공부로 생각하면 됩니다. 오히려 좋은 체험을 하게 되었으니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오광이 이렇게 말하자, 여인이 오광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 마음이 바로 스승의 길로 안내하는 원동력(原動力)이 될 거야. 실로 나도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음기가 동하면 어쩔 수가 없으니 이것도 내 팔자가 기구해서 그렇겠거니 하고 살아. 가끔은 잘못 걸려서 떼를 쓰고 아예 눌러앉으려는 건달도 있거든. 이해를 해 줘서 고마워.”

“아, 그러한 고충이 있으셨습니까? 저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온통 신기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스승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니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그대의 집은 어디지?”

여인은 한참 동생뻘이 되는 오광에게 그대라는 호칭으로 하는 것도 왠지 듣기가 나쁘지 않았다.

“개봉입니다.”

“멀리서도 왔네. 기운(氣運)의 방향을 돌리려고 남쪽으로 왔구나. 이제 더 내려가지 않아도 되겠다. 공자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라고 하시는데 돌아가신 공자님이 어디에 계시지? 말이 안 되는 공수가 나와서 나도 어리둥절하네.”

“그렇습니까? 제 마음에 짚히는 바가 있습니다. 어제 호수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가늠이 됩니다.”

“삼사일 쉬면서 몸을 챙기고 어제 그 여인이 어떤 답을 가져오는지 확인하고 가도 좋아. 다만 오늘은 잠을 자지 못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무서워하지는 않아도 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운명이 그러하시다니 그것도 쉽지 않으신 삶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오늘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여인의 결과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영통(靈通)으로 말씀하신 것이니 제가 배울 것은 없을 것으로 봐서 머무르지 않아도 되지 싶습니다.”

“그럼 마음대로 해. 억지로 붙잡지는 않을 테니까.”

오광은 그렇게 해서 곡부를 목적지로 잡고서 여행길을 나섰다.

◆◆◆◆◆◆◆◆


 

오광이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을 애써 숨기고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함께 앉은 사람들은 오광이 겪은 이야기를 신기하게 들으면서 참으로 세상은 넓고 그 넓은 세상의 구석구석에는 기이한 이야기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우창도 이러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 뭐라고 해석을 해야 할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자원을 바라봤다. 자원은 세상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