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제29장. 물질오행관/ 2.얼굴의 나무 한 그루

작성일
2021-05-30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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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제29장. 물질오행관(物質五行觀) 


2. 얼굴의 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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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은 내심 큰 동요(動搖)가 일었다. 그렇게도 거대담론(巨大談論)을 찾아다니면서 발견하지 못한 이치를 비로소 찾을 수가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고, 어쩌면 또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현란하게 속이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믿어봐도 나쁠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창을 받아들였다. 우창도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지만 아무나 쉽게 믿는 것도 철학자에게는 금기해야 할 점이기도 했기에 짐짓 스스로 깨닫게 되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스승님의 간절한 가르침에 감동했습니다. 참뜻은 이해가 되지 않으나 그 마음만큼은 전달이 되었습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스승님께서 보여주신 손가락의 가르침에 대한 뜻이 궁금합니다.”

“나무가 땅에 서 있는 이치를 말해준 것인데 아직도 모르고 있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코는 나무라네. 얼굴에서 나무처럼 서있는 것이 무엇인가?”

“예? 아니, 어떻게 코에서 나무를 읽을 수가 있겠습니까?”

“읽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지 않은가?”

“예, 스승님. 느낌으로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콧대는 나무줄기이고, 눈썹은 나뭇가지이며, 눈은 나무의 열매이고, 머리카락은 무성한 나뭇잎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오광이 그렇게도 찾아다녔던 것이 아니었던가?”

“아니, 제 얼굴에 있는 이치를 두고서 천하를 방황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너무나 황당해서 그렇습니다.”

“원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속눈썹이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라네. 그래서 그것을 알려 줄 스승이 필요한 것이지. 하하하~!”

“그렇다면 그 모두가 헛된 일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네.”

“아무래도 세월만 헛되이 보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당연하지. 비록 그렇기는 하나 세상은 오늘 이 순간의 이전과 이후로 나눠서 보일 것이네. 어제 본 것이 오늘 본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오광이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를 실감할 것이네. 하하하~!”

“코가 나무였다니요.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습니까?”

“원래가 다 그런 것이라네. 그래서 부처도 말씀하셨지 않은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말이네.”

“그럼 입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그 의미를 다 모르겠습니다.”

“아니, 나무가 무엇을 의지하고 서 있는가?”

“그야 땅이지 않습니까?”

“아직도 모르겠는가?”

“하시는 말씀으로 봐서는 입은 땅이라는 뜻인듯 싶습니다. 다만 왜 입이 땅이 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코는 무엇으로 생존할 수가 있을까?”

“그야 음식물을 먹고서 생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입으로 음식물을 먹으니까 입은 땅이라는 뜻입니까?”

“당연하지.”

“나무는 물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럼 입으로 물도 먹어야지. 하하하~!”

“어? 그렇군요. 정말 오행의 이치가 이렇게나 오묘한 것이었습니까? 미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씀을 오늘 스승님을 통해서 깨우칩니다.”

“나무는 물만 먹고 사나?”

“그럼 또 무엇을 먹습니까?”

“공기를 먹어야지. 공기를 먹지 않으면 물만으로는 썩어버리고 만다네.”

“아,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나무도 숨을 쉰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어찌 살아있는 나무뿐일까? 죽은 나무도 숨을 쉰다네.”

“아, 이제야 제자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겠습니다. 나무에 무슨 진리가 있고, 이치가 있어서 오행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에서야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당연히 나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누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오광은 오늘 이전과 이후로 생각하는 방법과 바라보는 안목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을.”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것이 진리의 공부였습니다. 여태 찾아다니기만 했지 이러한 것을 느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냔 말이네.”

“세상은 험난하고 어둡고 칙칙하고 온갖 협잡꾼들이 설쳐대는 곳이라고만 여겨졌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모두가 아름다운 자연의 풍악이었나 싶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궁전이 밤이 되어서 깜깜하다가 아침이 되자 솟아오르는 햇살을 받으면서 찬란한 본래의 광채로 영롱해지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오광(五廣)을 오광(五光)으로 바꾸겠나?”

“이미 마음속에서는 오행의 빛으로 눈이 부셔서 뜰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름이야 아무러면 또 어떻겠습니까. 그냥 오광(五廣)이 좋습니다. 하하하~!”

비로소 웃음을 찾은 오광을 바라보면서 우창도 흐뭇했다. 그러자 춘매도 기뻐하면서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오광이 웃으니 저도 좋아요. 그런데 코가 나무라는 이야기는 왜 제게는 해 주지 않으셨어요? 이것은 제자차별인가 싶어서 조금 서운해지려고 해요.”

“그래? 춘매가 서운해하면 안 되는데 어쩐다? 하하하~!”

“정말이에요. 듣고 보니까 그렇게 멋진 말씀을 왜 숨기셨을까 싶잖아요. 그러잖아도 상술(相術)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목구비를 장광설(長廣舌)로 설명하셨으면서 말이에요.”

“그랬나? 춘매가 나무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나?”

“예? 물어봐야 답하는 건가요?”

“학문(學問)이란 무엇이라고 했더라?”

“배우면서 묻고, 물으면 답한다고 하셨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나무를 물었더라면 코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셨을 거란 말씀인가요?”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하하~!”

춘매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나무에 대해서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자원이 말을 이었다.

“난 처음에 싸부가 손가락을 세우고 눕히기에 도(十)를 말씀하시는 줄만 알았지 뭐야. 그런데 결국은 생각지도 못한 나무의 이야기였더니 어떻게 그런 답이 나올 줄을 상상이나 했겠어. 저마다 자기가 아는 만큼만 이해한다더니만 딱 그 짝이지 뭐야. 호호호~!”

그러자 춘매가 다시 말했다.

“언니도 전혀 모르셨단 말이에요? 도대체 스승님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동생,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 우리에겐 신기막측(神奇莫測)한 후배인 오광이 있잖아. 앞으로 계속해서 싸부와의 대화를 들어보면 코가 문제가 아닐 거야. 호호호~!”

“그래도 전혀 짐작조차도 못했다는 것이 속상해서 그러죠 뭐. 호호호~!”

“동생의 말을 들으니까 옛날이야기가 생각나는데 해 줄테니까 들어봐. 예전에 농촌에 부자로 살던 사람이 딸을 혼인시키려고 하니까 사윗감들이 줄을 섰더라지. 그는 사윗감을 보면 은밀한 방으로 데리고 가서 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거야.”

“어떻게요?”

“자기 딸과 혼인을 하겠다고 찾아온 사내에게 손가락을 셋 펴서 보여줬던 거지. 숱한 사내들이 찾아왔다가는 괴이한 부자의 행동을 보고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쫓겨나곤 했더라네. 그러다가 또 한 사내가 찾아왔고, 여전히 부자는 그 행동을 했어. 그러자 그 사내는 손가락을 다섯 개 펴서 답을 했다잖아. 그러자 두말을 할 필요도 없이 그 사내를 사위로 삼았다네.”

“그게 무슨 뜻인데요?”

“부자 영감이 세 손가락을 편 뜻은, ‘자네는 삼강(三綱)은 알고 있나?’라는 뜻이었다더군.”

“그럼 사내의 답으로 내민 다섯 손가락은요?”

“사내다 다섯 손가락을 보여줬던 것은, ‘세 그릇이 뭡니까요. 다섯 그릇도 먹을 수가 있습니다요.’라는 뜻이었다나? 호호호~!”

“저런~! 세상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좀 전에 싸부의 손가락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다가 해답을 듣고 보니까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혼자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잖아. 호호호~!”

역시 자원은 사려가 깊었다. 이미 오광의 심기(心器)를 헤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창의 지혜주머니는 누가 자극하고 들이받느냐에 따라서 다른 답이 나온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춘매가 나무에 대해서 물었다면 또 다른 나무타령을 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지금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모두 꿰뚫고 있었다. 순간, 오광의 힘찬 음성이 울렸다.

“다시 스승님께 여쭙겠습니다. 나무의 이치에 대해서 더 듣고 싶습니다.”

“그런가? 나무를 신으로 생각하는 자는 이땅에서 어떤 존재들일까?”

“그야 인간을 제외하고서야 누가 나무를 신으로 생각하겠습니까? 아니 나무뿐만 아니라 어느 것도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나무를 닮았나?”

“인간은 동물이고, 돌아다니고 나무는 식물이고 고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닮을 수가 있겠습니까?”

“식물이 고정되어 있다는 말은 믿을만 한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까?”

“오광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나무도 동물로만 보일뿐더러 동물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조차 보이니 누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예? 스승님의 말씀은 점점 이해하기 어렵기만 합니다. 연유(緣由)를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광이 밤에 잠을 잘 적에는 돌아다니면서 자는가?”

“아닙니다. 침상에 누워서 잡니다.”

“초목도 잠시 침상에서 잠을 자는 것과 같이 한 해를 머물러 있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네.”

“예? 무슨 뜻인지요?”

“동물과 식물은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뜻이라네. 인간의 하룻밤이 식물의 한해와 같다고 보면 되겠군. 그러니까 인간이 100년을 살다가 죽을 때 식물은 1천 년을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군.”

“예? 인간이 하룻밤을 자고 다시 움직이는 것처럼 식물은 한해를 그 자리에 있다가 다음 해에는 또 다른 곳으로 간다는 의미입니까?”

“맞아.”

“거목은 1천 년을 그 자리에 서 있는데요?”

“그것도 또한 7일을 누워있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

“그렇지만 나무가 움직인다는 것은 전설에서나 있을 법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하지. 모든 동물은 식물들이 짜놓은 일정표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도무지 무슨 말씀이신지?”

“그래서 나무는 신이라고 하는 것이라네. 인간조차도 나무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오광도 놀라게 될지 모르겠군.”

“과연 스승님의 말씀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되는 것입니까?”

“벌이 꽃을 찾나? 꽃이 벌을 부르나?”

“그건 꽃이 피니까 벌이 꿀과 화분(花粉)을 구하려고 찾아드는 것입니다.”

“왜 꽃이 꿀과 화분을 만들어 뒀을까?”

“벌과 나비가 수분(受粉)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알겠는가?”

“예? 뭘 말씀입니까?”

“벌이 나무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인가? 나무가 벌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가 말이네.”

“그야 당연히 벌이 활동을 할 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꽃이 벌을 따라서 조절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벌과 나비가 나무의 결실을 도와주고, 새들이 나무의 이동을 도와주니 모두가 나무를 의지해서 존재하는 부속물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겠군.”

“당연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나무가 꿀을 주지 않으면 벌이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합니다.”

“곡식이 결실맺지 않으면 인간은 생존이 가능할까?”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곡식이 없으면 육식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 동물들도 식물이 있어야 존재할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자, 그렇다면 생각해 보세. 식물이 없으면 동물이 고통스럽겠는가? 아니면 동물이 없으면 식물이 고통스럽겠는가?”

“그건 서로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식물은 동물이 없으면 스스로 변화를 해서 매개체(媒介體)를 불러 모으나 동물은 식물이 없으면 멸종(滅種)되고 만다네. 그래서 가뭄이 길어지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라네.”

“아, 그렇게도 생각이 됩니다.”

“결국은 더 필요로 하는 존재가 덜 필요로 하는 존재에게 매이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네.”

“아하~!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다. 식물은 어디에서나 자라지만 동물은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어떤 일가족이 살기가 어려워서 산속으로 옮겨갔다고 해보세. 그들은 무엇을 갖고 갔을 것 같나?”

“이불과 도구들을 챙겼겠습니다.”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광은 아직도 공부가 멀었다고 말하는 것이라네. 하하하~!”

“공부가 먼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들이 무엇을 갖고 갔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종자(種子).”

“예? 종자 말입니까?”

“물론이네. 볍씨, 밀과 보리, 콩과 수수를 챙기지 않는다면 산속에 가서도 먹고 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네.”

“그야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 다시 물어보세. 벼나 보리가 그 가족을 따라서 이동했나?”

“그렇습니다.”

“어찌 식물은 발이 없다고 말을 한단 말인가?”

“아하~! 생각이 짧았습니다. 식물도 돌아다니는 것으로 생각을 바꿔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네. 인간이 하늘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인간도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서 꼿꼿하게 서 있을 수가 있기 때문이라네. 세상에서 하늘로 머리를 두고 있는 것은 나무와 인간뿐이라네.”

“그렇긴 합니다만, ‘나무에 신이 깃든다’는 의미는 아직도 난해(難解)합니다.”

“다시 물어볼까? 인간의 몸에 깃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신(精神)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맞아, 인간에게 정신이 있다면 하늘을 향해서 서 있는 나무에게도 정신이 있을 법하지 않은가?”

“이치는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장자(莊子)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었습니까?”

“물론이네. 하늘을 향해 있으면 신이 밟고 다닌다네. 그래서 인간과 나무는 모두 신의 통로가 되는 것이지. 초목은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하늘로 머리를 두고 있다네.”

“그렇지만 칡넝쿨과 등넝쿨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칡과 등에는 신이 깃들지 않는다네. 대신 잡신(雜神)이 들끓지.”

“잡신이라니요?”

“갈등(葛藤)말이네. 갈등에 머물러 있는 것은 두서(頭緖)도 없고, 의지도 없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의 신들이 엉켜있는 것이라네. 하하하~!”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정말 생각할 점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혼란스럽습니다. 그렇지만 한 줄에 꿰어지는 그 무엇이 느껴집니다. 말씀을 듣다가 보니 나무에 신이 있다는 의미가 사실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생각해 보게. 만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초목(草木)이라면 초목이야말로 위대한 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광이 찾는 신이 이런 것이 아니었던가? 인격적으로 상벌(賞罰)에 관여하는 신이 가짜인 줄은 알면서 어찌 자연을 지배하는 위대한 목신(木神)을 함부로 대한단 말인가?”

“그렇긴 합니다만 초목이 신이라는 것이 왠지....”

“인간도 초목과 같다는 말도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군.”

“아니, 인간이 초목과 같다니요? 그것을 믿으라는 말씀이십니까?”

“끊임없이 자라는 것은 초목과 인간이 같다네.”

“초목은 자란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더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에 인간이 계속해서 자란다면 그것은 비정상인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가? 오광이 본 것은 키를 말하는가 보군. 자라는 것이 어찌 키뿐이겠는가.”

“또 무엇이 있습니까?”

“손톱, 발톱 그리고 머리카락도 있지 않은가?”

“아, 예... 그것은 죽을 때까지 자라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오행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다른 오행은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보게나.”

“화(火)는 불입니다. 불은 연료에 따라서 생멸(生滅)할 뿐이고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불은 신이 안 되겠군.”

“토(土)는 흙입니다. 토양은 비가 오면 쌓이고 바람이 불면 흩어지지만 자라지는 않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것도 아니로군.”

“금(金)은 쇠입니다. 쇠는 불을 만나면 형체는 바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무처럼 자라지는 않네요.”

“물은 어떤가?”

“마지막으로 수(水)는 물이 됩니다. 물은 샘 솟아나고 흘러 다니는데 물구멍에서 솟아나는 것을 보면 자라는 것이라고 할만 하지않습니까?”

“그런가? 항아리에 받아놓은 물도 자라던가?”

“그건 죽은 물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물도 흘러 다니고 모여들 뿐, 나무처럼 번식하는 것은 아니라네.”

“생각해 보니 스승님의 말씀이 맞겠습니다.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잠시뿐이고, 볕을 받으면 증발할 뿐 자라지는 않습니다.”

“이제 알겠는가? 나무만 인간과 함께 자란다는 것을 말이네.”

“정말이네요. 새삼 놀랍습니다.”

“그래서 신화(神火)는 없어도, 신목(神木)은 있는 것이라네.”

“실제로 신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이야기도 있습니까?”

“오광도 참 의심이 많군. 당연히 학자는 그래야지. 하하하~!”

“분명히 그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 싶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그게 뭔가? 내가 기껏 이야기를 해주면, 그것도 누군가 합리화를 시키기 위해서 지어낸 것이라고 할 것이잖은가. 하하하~!”

“아닙니다. 장자의 우화(寓話)를 들으면서 이야기 속에도 진리가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지나가는 말로 허투루 듣지 않고 재삼(再三)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해 줄 이야기가 있기는 하네만.”

“귀를 열고 듣겠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고향에 있었던 이야기라고 어머님께서 말씀해 주셨네. 분명히 말을 해 줄 것은, 진실 여부는 몰라도 어머님께서 보지 않으신 것을 봤다고 할 분은 아니라는 것이네.”

“잘 알겠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의심할 수도 있고, 믿을 수도 있으니 그건 오광이 알아서 하게. 이야기는 이렇다네. 사또가 머무는 관사(官舍) 뜨락에 1천 년은 된 나무가 있었다네. 실제 나이는 아무도 모르지. 그냥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이라네. 새로 부임한 사또가 출입하면서 항상 그 나무가 걸려서 많이 불편하더라는 거야. 그래서 명을 내렸지.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분부를 듣고서도 관부에 있던 수하들 중에서 누구도 죽으면 죽었지 그 나무를 벨 수는 없다고 하는 거야. 왜냐면 옛날에도 누군가 그 나무를 베려다가 제명에 죽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거든.”

“그것이 설마 나무를 베었기 때문이란 말입니까?”

“이유야 누가 알겠는가? 다만 그 나무를 베고서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 사실이었을 따름이지. 그로 인해서 불길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베려고 하지 않자. 사또도 마음에 께름칙해서 오가면서 불편했으나 그냥 보고 있었다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에 신을 믿지 않는 사내가 떠벌이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던 거야. 은자 100냥을 주면 그 나무를 베겠노라고 말이지.”

“참으로 거금입니다. 그래도 목숨보다야 중하겠습니까?”

“마침내 그 이야기가 사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럴 불러오라고 했다더군. 그리고는 사또가 물었어. ‘그대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단 말이냐?’라고. 그러자 그 사내가 말했다더군. ‘이렇게 살아가느니 돈이나 실컷 써보고 하고 싶은 짓도 다 하고 죽는다면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저런, 참 딱한 사람입니다.”

“사또가 듣고 보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는지라 100냥을 주라고 했고 말미는 100일을 달라고 하는 말에 그러라고 했다는 거야. 백일 동안 받은 돈을 모두 다 쓰고는 자신이 죽은 다음에 묻힐 손바닥만한 땅을 사 놓고는 마침내 나무를 잘랐다네.”

“음, 필시 무슨 일이 생겼겠습니다.”

“그렇다네. 나무를 베고 난 날 밤에 잠이 들었다가. 죽었는데 죽은 모양을 보니까 온몸을 꼬면서 고통스러워했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었다더군.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목신이 노해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더군. 내가 어려서 들었던 이야기이니 아득한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네.”

“과연 목신을 부정할 이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성황당이든 당나무든 오래된 나무를 지나칠 때는 반드시 인사를 하고 지나가야 하겠습니다.”

“아니, 인사뿐인가? 기도라도 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아직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야 맘대로 하게나. 하하하~!”

우창의 말들 들으면서 자원과 춘매도 목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오래된 나무에 대해서라면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까지는 해야 하겠다는 것도 알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