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제28장. 오행원/ 3. 춘매의 계획(計劃)

작성일
2021-03-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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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제28장. 오행원(五行院)


3. 춘매의 계획(計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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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점심을 먹고서 춘매는 먹을 것을 사 온다고 나가고 두 사람이 찻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이런 때에 사용하라고 마련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라버니가 떠난 노산은 한동안 텅 비어버린 것 같았어요.”

“그랬구나. 원래 사람이 떠난 자리는 남는다잖아. 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고 분주해서 몰랐지만, 자원은 그랬겠네. 미안하네. 하하~!”

“미안하긴, 이제 그 기묘한 점괘를 알려주면 되잖아. 호호호~!”

“어제 대강의 핵심은 설명해 줬는데?”

“그야 임싸부를 위한 설명이었잖아요. 자원은 그것을 모두 알아들을 수준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어린 아기 다루듯이 세세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아무 곳에서도 활용할 수가 없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을 때 마침 춘매가 돌아왔다. 그래서 셋이서 마주 앉게 되자 우창이 말을 꺼냈다.

“춘매는 아직 기초가 정밀하진 않지만, 그래도 대강은 알아들을 수준이 되기 때문에 자원과 같이 오주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문제는 없을 거야. 그리고 춘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자원이 도와줄 테니까 더욱 빨리 깨닫게 될 거야.”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싸부의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감히 언니랑 같이 공부할 수가 없어요. 그냥 시중을 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그리고 나중에 모르는 것이 있어서 여쭤보면 그때 답을 주셔도 감사하죠.”

춘매가 사양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이 예의를 차리느라고 괜히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말했다.

“그러면 춘매가 공부해서 알아들을 만큼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뭘. 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춘매는 자신의 공부로 인해서 자원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말석(末席)이나마 끼워주시면 열심히 따라가도록 노력할게요. 언니, 잘 부탁해요.”

춘매의 진심 어린 말에 자원도 감동이 일었다. 그래서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함께 열심히 공부해 보자는 마음이 전해졌다. 춘매에게 이보다 더 따뜻한 격려가 없었다. 우창도 항상 격려를 해 줬지만 같은 여인으로 느끼는 마음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언니를 얻은 것만 같아서 마음도 부풀어 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춘매가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왔다. 춘매가 먼저 발견하고서 반겨 맞았다.

“아, 안산 선생님 오셨어요~!”

“예, 늦었습니다. 급한 일을 좀 정리하고 오느라고 이제야 왔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미리 약속했던 은자 30냥을 담은 주머니를 춘매에게 전달했다. 춘매는 은자도 은자지만 공부하러 왔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소중하게 받아서 한쪽으로 내려놨다. 바로 우창에게 전달할 필요는 없었고, 그렇게 하면 우창이 또 멋쩍어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스승님께 문안 여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우창에게 절을 했다. 우창도 이번에는 가만히 앉아서 절을 받았다. 비로소 안산이 자리에 앉았을 때 눈썰미가 좋은 자원이 안산을 알아봤다. 아는 체를 해야 할지 그냥 넘어가야 할지를 잠시 생각했지만 곧 알게 될 수도 있으므로 바로 인사를 했다.

“선생님을 여기에서 뵙네요.”

안산은 처음에 상담하러 온 손님인가보다 하고 있다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자 비로소 살펴본 다음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예. 어디에서.....?”

“많은 손님을 접대하시느라고 기억을 못 하실 거에요. 저는 노산에서 상병화 선생과 동행했었거든요.”

“이거 죄송합니다. 미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안산이 난처해하자 자원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그러자 우창이 간단히 자원을 소개했다.

“예전에 우창이 노산에 머물면서 동문수학을 한 인연입니다. 앞으로 함께 공부하게 되었으니 서로 통성명이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하하~!”

“아, 그러셨습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에 우창이 공부의 방향을 잡았다. 우선 자원에게 말했다.

“잘 되었네. 자원의 내공이 탄탄하니까 안산 선생을 일정 수준까지 안내해 주면 좋겠네. 세상에 공짜가 없다더니만, 이렇게도 인연의 고리가 이어지는군. 어떻게 생각하는가?”

“싸부께서 자원에게 해야 할 일을 주시니 이보다 감사할 수가 없어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도와드려서 자원과 같은 수준이 되시도록 할게요. 다만 배우기만 했지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 이것이 걱정이네요.”

그동안 공부만 했지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는 자원에게는 약간 흥분이 되기도 했다. 우창이 자원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자원에게도 좋은 경험의 시간이 될 것이네. 학문을 완성하는 것은 먼저 배우고[學], 다 배운 다음에는 모르던 것을 묻고[問], 그렇게 해서 의혹(疑惑)이 모두 해소된 다음에는 가르쳐서[敎],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도록, 마무리하게 되는[成] 것이라네. 지금 자원은 그 세 번째의 과정을 거치게 된 셈이네. 하하~!”

우창이 그렇게 말하면서 흥이 겨웠는지 갑자기 붓을 들어서는 글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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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쓴 글을 본 자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 싸부의 글씨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네요. 글자도 좀 익히세요. 학문만 궁리하느라고 글은 전혀 신경 안 쓰시죠? 호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이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 가겠어? 하하~!”

“글은 학자의 외모(外貌)란 말이 있잖아요. 이제는 글에 대해서도 좀 신경을 쓰시는 것이 어때요?”

“외모가 아무리 좋아 보인 들 내면을 가꾸는 것만 하겠느냔 말이지. 그래서 글자를 잘 쓰는데 쓸 시간조차도 오행의 연구에 써야 하니 실은 남는 시간이 없다네. 하하하~!”

그러자 자원이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학자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시기만을 바랄게요. 호호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산이 할 말이 있는 듯이 우창을 바라보자 춘매가 재빨리 거들었다.

“아, 안산 선생이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춘매가 응원을 해 주자 비로소 안산이 말했다.

“저, 변변치 못합니다만, 제자가 약간의 서체를 익혔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기꺼이 글씨를 쓰겠습니다. 그리고 또 드릴 말씀은.....”

“오, 안산, 말씀하시지요.”

“외람(猥濫)된 말씀입니다만...”

“아, 무슨 말씀이라도 기탄없이 하시면 됩니다. 남을 모함하는 이야기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실은 이 네 글자를 보면서 깊은 감동이 되었습니다. 학자의 길로 가는 가장 올바른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의 소견으로는 이 글자를 우창문(友暢門)의 교훈(敎訓)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와~! 소림문처럼 우창문이라고요? 재미있는데요? 호호호호~!”

춘매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꺼냈다.

“처음에 오빠, 아니 스승님께서 곡부에 오셨을 적에는 저도 형편이 여의치 못해서 이렇게 움막과도 같은 곳에 거처를 만들어 드렸잖아요. 이제 열정적인 방문자들과 제자들의 인연으로 상당한 금액이 모였어요. 물론 제가 하나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았더니 웬만한 공부방을 마련할 수가 있을 정도는 모였어요. 더구나 이렇게 어여쁜 언니까지도 합세했으니 언제까지 이 골방같이 답답한 곳에서 머무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안산 선생의 협조를 받게 되자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지 뭐에요.”

그러니까 춘매의 계획은 비용이 마련되면 우창의 상담실을 마련해 주려는 생각으로 안산에게 은자 30냥을 말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춘매의 마음에 우창이 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를 했다.

“누이가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네. 그리고 춘매는 여전히 제자이면서도 누이동생이네. 그래서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여태까지 해 온대로 춘매는 오빠라고 호칭했으면 좋겠네. 그것이 오히려 더 즐거운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네.”

춘매가 우창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자원의 등장으로 인해서 뭔가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그것이 영 어색해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공식으로 말을 해 줬으니까 이제부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자 자원이 말했다.

“정말이야~! 동생이 떠돌이 싸부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조석으로 챙겨서 먹였으니 싸부보다 오빠라야 옳다고 봐. 나도 적극 찬성이에요~!”

“언니, 고마워요. 호호호~!”

자원은 자신으로 인해서 춘매에게 불편함을 주게 될까 봐서 내심 염려가 되었는데 오늘 우창이 정리를 해 주는 바람에 마음 편히 머무를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는데 춘매가 그것을 원했다는 것을 알고 나자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사매(師妹) 잘 부탁해~! 호호호~!”

자원의 경쾌하게 웃음소리에 모두의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러자 부끄러워진 춘매가 먹을 갈았다. 그리고 큰 종이를 깔고는 안산에세 말했다.

“자, 멋진 휘호(揮毫)를 부탁해요~!”

안산은 바로 들이미는 춘매에게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자신이 한 말이기도 하고, 또 이러한 것을 할 수가 있다는 것에 보람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사양하지 않고 붓을 들어서 정성스럽게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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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이 글씨를 다 쓰고 붓을 놓자, 춘매가 손뼉을 쳤다.

“와우~! 멋져요. 이제 표구(表具)해서 공부방에 걸어 놔요.”

춘매가 좋아하자 우창도 흡족했다. 안산도 글씨가 맘에 들었는지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춘매가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려서 돌돌 말아서는 들고 나서면서 말했다.

“얼른 가서 새로운 공부터를 알아보고 와서 말씀해 드릴게요. 이야기들 나누고 계세요.”

사실, 춘매는 진즉부터 봐 둔 집이 있었다. 언젠가 형편이 좋아지면 우창에게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여태까지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이제야 겨우 은자 300냥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지체할 수가 없었다. 춘매가 마음에 담아 뒀던 곳은 예전에 안마소를 하던 곳이었다. 주인이 돈을 벌자 집을 팔고서 다른 곳으로 떠나고 비워진 채로 있었는데 면적이 넓다 보니까 그것을 구입하려면 만만치 않아서 마음만 있었던 곳이다. 이제 비로소 춘매가 모아놓은 것과 우창이 벌어놓은 것을 합치니까 대략 해결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되자 한달음에 주인을 만나러 갔다. 주인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었다.

“아저씨, 계세요?”

“뉘슈~”

“춘매에요. 잘 계셨어요~!”

“오랜만이네? 무슨 일로 날 찾아왔어?”

“오늘은 긴히 의견을 드릴 것이 있어서 왔어요.”

“나한테? 무슨 이야기지?”

의아해하는 집주인에게 춘매는 은자 300냥을 내어놓았다. 그것을 보고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게 뭐야?”

“비어있는 안마소를 제게 파시라고요. 진작부터 마음은 있었는데 형편이 되지 않아서 기다렸어요. 이제야 겨우 이야기를 꺼내도 되지 싶어서 뵈러 왔어요. 집은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 더 둘러 볼 필요도 없고요.”

“아니, 비어있는 건물을 사겠다면 나야 좋지만, 안마소를 크게 하려는 건가?”

“아뇨~! 우리 스승님 연구실을 마련해 드리려고요.”

“아, 연승점술관의 도사 말이구나. 맞아. 그런 곳으로 만들어도 좋을 공간이긴 하지.”

“어서 춘매에게 넘겨주세요. 전에 넌지시 알아보니까 은자 400냥은 받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건물도 누추해지고 했으니까 깎아 주셔야 해요. 호호호~!”

춘매가 평소에도 활발한 대인 관계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매우 우호적이었다. 집주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길에서 살짝 들어가 있어서 다른 점포로 활용하기도 어중간하고, 그래서 고민만 하고 있던 차에 춘매가 거금을 들고 와서 넘겨 달라고 하자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춘매가 사겠다는데 나도 욕심만 채울 수는 없지. 그래 넘겨줄 테니 잘 가꿔보게나.”

이렇게 해서 매매(賣買)의 증서(證書)를 쓰고 두 사람은 수결(手決:싸인)을 했다. 이제 춘매에게도 자신의 건물이 생겼고, 좁은 우창의 공부방을 넓은 곳으로 옮길 생각에 마음은 벌써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우창이 오래도록 곡부에서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심 더 컸던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고마워요. 아저씨, 복 받으실 거에요. 호호~!”

춘매는 한달음에 연승점술관으로 돌아왔다. 춘매가 숨이 턱에 닿아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모두 궁금한 마음에 춘매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오빠와 여러 선생님이 마음 편하게 공부하고 쉴 수가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어요. 어서 가봐요. 호호호~!”

춘매가 서두르는 바람에 세 사람도 얼떨떨한 채로 뒤를 따라서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안마소 앞에서 춘매가 걸음을 멈췄다. 우창이 의아해서 말했다.

“어? 안마소를 얻은 거야?”

“얻은 것이 아니라 샀어.”

“무슨 돈으로? 아, 그동안 모았다더니만 이러한 곳을 마련하려고 그랬던 거였어?”

“물론이야. 오빠가 넓은 곳에서 편안하게 상담도 하고 제자들도 가르치게 하고 싶었거든. 예전부터 조금씩 모았지만 아무리 해도 이 집을 살 수가 있는 비용이 마련되지 않아서 속만 태우고 있었는데, 염재와 안산 선생이 협조를 해 주신 바람에 비로소 그 꿈을 이루게 되었지 뭐야.”

춘매가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설명하자, 일행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동했다. 과연 공간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무엇보다도 큰길에서 벗어나 있어서 소란스럽지 않겠고, 주변에는 주점이 없어서 취객들이 소란을 피울 일도 없어 보였다. 더구나 옆에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는 마차를 매어 놓을 터도 있어서 금상첨화였다. 우창은 염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마차를 타고 오거나 말을 타고 오면 둘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제 그러한 것부터 해결이 되어서 맘에 들었다.

“누이가 수고가 많았구나. 번듯한 집에서 제자도 가르치고 누이도 이제 안마를 그만하고 오히려 안마를 받으면서 살도록 해야겠다. 우리 식구들을 거둬 먹이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사람의 일이 되고도 남을 테니까 말이야. 하하~!”

우창이 매우 흡족해하자 춘매도 덩달아 즐거웠다. 안마소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우창이 그렇게 말하자 비로소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바퀴 둘러 본 자원이 말했다.

“싸부, 이제 제대로 이름을 하나 붙여야 하겠어요. 연승점술관도 좋지만, 이름을 새로 지어서 배움터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 좋은 생각이군. 뭐라고 하지?”

우창이 깊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자 자원이 얼른 말했다.

“그야 이미 정해졌어요. 평소에 싸부가 하시던 말이에요.”

“내가 한 말이 한두 가지라야지. 뭔데?”

“이름은 당연히 「오행명상관(五行命相館)」이죠. 그런데 이것도 적합하지는 않겠어요. 싸부는 인상(人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요. 뭐가 좋을까... 동생은 어떻게 생각해?”

자원이 춘매에게 공을 넘겼다. 춘매에게는 어쩌면 이름에 대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애써서 마련한 곳에 이름을 붙일 기회를 주고 싶었기도 했다. 자원이 자기에게 의견을 묻자 춘매도 기뻤다. 그래서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니, 고마워요. 실은 좁은 소견에 해본 생각은 천하제일점술관이었죠. 물론 오빠가 동의하지 않을 줄은 알아요. 그래도 그런 이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잖아요. 내가 알기에 이보다 더 멋진 학문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으니까요. 호호~!”

“와~! 동생이 제대로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싸부가 불편할 천하제일(天下第一)은 앞의 두 글자만 취하고, 평소에 늘 말하던 오행(五行)을 넣으면 오행천하(五行天下)가 되네. 동생은 어떻게 생각해?”

“오행천하? 세상에~! 네 글자 안에 모두가 다 들어있잖아요? 너무 멋져요. 역시 사람은 머리를 모으면 없던 지혜도 나오는 것이 맞아요. 전 항상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멋진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본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좋은 말이야. 오행천하도 좋고 천하제일점술관도 좋아. 그렇다면 조금만 양보를 해서 「오행원(五行院)」으로 하면 어떨까 싶네. 오행을 공부하는 곳으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도 없지 싶은데 말이지.”

우창의 말에 모두 박수를 쳐서 동의했다. 이렇게 졸지에 공부할 학당이 마련되고 보니 모두가 크게 만족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 우창이 일행에게 말했다.

“자, 여기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서 뭘 좀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누이가 안내해.”

우창은 예전에 갔던 식당이 떠올랐다. 조용하고 정갈해서 맘에 들었던 곳이기도 했다. 춘매도 우창의 뜻을 알고는 그곳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우창이 춘매를 보면서 말했다.

“염재가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어쩌지?”

“나도 그 생각을 했었어. 얼른 나가서 연락할 방법을 취할 테니까 오빠는 아무 걱정도 말고 즐겁게 이야기들 나누고 있어요.”

오늘은 춘매가 무척이나 바빴다. 춘매는 몸이 불편하거나 바쁜 사람들을 위해서 말을 빌려주는 곳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말을 탈 줄 몰랐기 때문에 말을 빌려주는 가게의 주인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 마부는 그에 대한 비용만 받으면 되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했다.

식탁으로 돌아와서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염재가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들어왔다. 급하게 부른다는 말에 혹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싶어서 한달음에 말을 몰아서 도착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우창이 말했다.

“자, 여기 곡부현의 통판(通判)인 도대림(陶大臨)을 소개합니다. 염재(念齋)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자, 염재 이리 와서 인사하시게.”

얼떨떨한 염재가 우창의 소개를 받고는 얼른 와서 인사를 했다.

“처음 뵙습니다. 이제 겨우 공부를 시작하고 있는 염재입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일행은 손뼉을 치면서 환영했다. 염재가 처음 보는 자원과 안산에게는 개별로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우창이 서로를 이해할 수가 있을 만큼의 소개를 했고, 요리가 하나씩 차려지면서 점점 대화는 무르익었다. 어지간히 먹었다고 생각이 된 우창이 염재에게 말했다.

“누이가 애를 써서 공부할 방을 하나 새로 마련해서 이사하게 되었다네. 이러한 소식을 염재에게도 전하고 싶어서 관헌의 일에 분주할 줄은 알면서도 잠시 불렀다네. 장소는 춘매가 알려 줄 것이네. 바쁠테니 춘매와 가서 장소를 확인하시게.”

이렇게 해서 국무에 바쁜 염재는 돌려보냈다. 춘매가 집을 보여주고 내친김에 내부를 꾸미도록 지물포(紙物鋪)에 들려서 서둘러서 도배도 깨끗하게 해 달라고 부탁해놓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면 이사를 해도 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제 현판(懸板)이 필요하네요. 안산 선생께서 또 한 번 수고해 주셔야 하겠어요.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죠.”

춘매가 말하는 것을 따라서 일행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춘매는 마음이 바빴다. 얼른 새로운 공간에서 우창이 시원하게 지낼 수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최대한으로 서둘러서 준비하는데도 챙길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책상도 새로 마련하고, 기다리는 손님을 위한 방도 하나 마련했다. 그렇지만 비록 몸은 바빴어도 마음은 신나서 힘든 줄도 몰랐다. 그렇게 준비를 한 덕분에 드디어 새로 만든 공부방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