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제27장. 춘하추동/ 8.술통에서 술이 익듯

작성일
2021-02-1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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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제27장. 춘하추동(春夏秋冬) 


8. 술통에서 술이 익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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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申月)의 신(申)에 대한 의미까지도 잘 이해하게 된 춘매와 염재는 우창에게 잠시 쉬라는 말을 했으나 우창도 두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자 흥이 나서인지 힘이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괜찮으니 그대들이 힘들지 않으면 계속해도 되겠네. 염재가 유월(酉月)의 백로(白露)에 대한 삼후를 말해 보려나?”

“예, 스승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제자는 궁금증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서 잠시도 쉴 수가 없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네. 하하하~!”

“먼저 백로(白露)의 삼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초후는 홍안래(鴻雁來)이니, 겨울 철새인 고니와 기러기가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중후는 현조귀(玄鳥歸)라고 하여, 제비는 다시 강남으로 돌아갑니다. 말후는 군조양수(群鳥養羞)이니 새떼들이 들판에서 익어가는 곡식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은 모두 새벽부터 저녁까지 논밭에 달려드는 새떼를 쫓는 것이 주된 일과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백로의 절기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주로 철새에 대한 내용입니다. 다만 실제로 기러기가 날아오기에는 조금 이른 계절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

“오호~! 그렇구나. 염재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자연 나도 들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가 꽤 많은걸.”

그러자 춘매도 말했다.

“오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렇게 느껴져, 마치 고향에서 살아가면서 만났던 계절을 생생하게 보는 것만 같단 말이야. 호호호~!”

춘매도 이렇게 말하자 염재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다행입니다. 제자가 뭔가 할 것이 있어 보여서 말입니다. 이제 유월(酉月)에 대한 말씀을 스승님께 청합니다.”

“그러세. 우선 유월의 글자부터 의미를 찾아볼까?”

춘매가 바로 받았다.

“당연하지. 유월의 유(酉)에는 또 무슨 뜻이 들어있는지 궁금해.”

그러자 우창이 붓으로 그림을 하나 그렸다.

285 유

그림을 본 춘매가 말했다.

“아니? 이게 뭐야? 유(酉)자라는 뜻이야?”

“맞아, 이게 고대인들이 썼던 갑골문(甲骨文)에 나온 유(酉)야.”

“흡사 항아리에 뚜껑을 덮어 놓은 것도 같고....”

“잘 봤어. 여러 가지의 모양이 있는데 우선 기억나는 것이 이것이로군. 중요한 것은 그릇에 뭔가를 담아놓고 뚜껑으로 덮어놓은 것을 의미하는 글자라는 것이야. 그리고 술을 익히는 항아리라는 것으로 이해를 했지.”

“술 항아리?”

“그렇지, 유(酉)가 진화해서 주(酒)가 되고, 술은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뚜껑을 덮어서 보관한 것은 ‘오래될 추(酋)’가 되고, 술은 같이 마시는 것이 좋아서 ‘짝지을 배(配)’가 되고, 술을 항아리에서 국자로 떠내면 ‘술을 따를 작(酌)’이 되고, 오랜 시간을 묵어서 맛이 진국이 되면 ‘진한술 순(醇)’이 되었다가, 술이 맛있게 넘어가면 ‘술을 마시며 즐길 감(酣)’도 되는데, 술을 너무 마셔서 정신을 잃어서 귀신 꼴이 될 지경이면 ‘추할 추(醜)’가 되었다가, 날이 밝아서야 정신이 들면 ‘술깰 성(醒)’도 되는 것이라네.”

우창의 술타령에 춘매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우와~! 아니, 오빠는 공부하다가 말고 술만 연구했던 거야? 웬 술이 그렇게 많아? 호호호~!”

“더 있지만 내가 기억력이 약한 관계로 생각나는 것만 말해 줬는데도 이 정도니까 유(酉)는 술을 의미한다는 것은 확실하겠지?”

“물론이야. 당연히 확실하네. 그런데 왜 술 주(酒)가 어떻게 유월이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잖아?”

“아, 유월(酉月)의 뜻은 술이 익었다는 의미로 쓰였을 거야.”

“왜? 하필 술이 익지? 들판에는 곡식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지지(地支)를 만든 고인도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나?”

“맞아, 주최자(主催者)의 농간(弄奸)이라고 봐야지.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옛날에는 술도 신성한 음식이어서 신령님께 정성을 들일 적에는 반드시 올리는 것이잖아.”

“곡식이 익어야 그 곡식으로 술을 담을 수가 있거든. 무엇보다도 유월에는 중추절(仲秋節)이 있잖아? 중추절에 뭘 해야겠어?”

“땅의 신과 곡식의 신, 그리고 풍년이 들도록 애를 써주신 조상님께 기도하는 거잖아?”

“그러자니 당연히 술이 있어야지?”

“아, 이유가 있기는 했네. 호호호~!”

“절기의 뜻을 생각해 보면, 백로(白露)라니까 이슬이 맑아진다는 의미이고, 기온도 많이 차가워졌다는 의미로군.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네.”

“그렇구나. 백로가 되면 오곡(五穀)과 백과(百果)가 무르익어서 먹을거리가 지천이니 저마다 마음도 풍요롭겠네.”

“당연하지. 그래서 풍년(豊年)을 노래하고 태평가(太平歌)를 부르면서 잔치를 하게 되는 것이야.”

“듣고 보니 참 좋은 계절이구나. 그러면 유(酉)의 지장간이 신(辛)이 되는 것도 설명해 줘야 공부를 한 것 같잖아?”

“아, 지장간이 생각났구나. 신(辛)은 결실이라고 봐야지. 유월에서 결실이 왔으니 서로 앞뒤가 잘 맞는다고 보면 되겠군. 이것을 확대해서 풀이하면, 거둬들이는 것이 되고, 저장하는 모습이 되고, 지나치게 되면 탐욕(貪慾)이 되고, 흑심(黑心)이 되기도 하지.”

그러자 염재가 물었다.

“스승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신(辛)도 금(金)이니 금의 색은 백색(白色)인데 어찌해서 흑심(黑心)이라고 하시는지 여쭙습니다. 검은색은 북방(北方)의 수(水)라는 기억이 떠올라서입니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묻겠네. 왜 금은 백색인가?”

“그야, 오방색에서 서방(西方)의 금은 백색이라고 외웠습니다. 그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대신 답했다.

“오빠, 금은 누런색인 것을 몰라?”

“옳지~!”

우창의 춘매의 말이 옳다고 하자 춘매가 다시 물었다.

“왜 황색(黃色)의 금을 백색이라고 하지?”

“금이 노란색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온 거지?”

“그야 황금(黃金)이니까 그렇지.”

“누이의 말대로라면 황금만 금이고 그 나머지는 오행에서 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네?”

“그렇네? 그건 아니잖아?”

춘매가 잠시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금의 본질은 본성인 도를 깊이 저장하는 뜻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자 염재가 말했다.

“스승님, 금이 본성(本性)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요? 설마 누구나 금을 좋아하고 탐한다는 뜻은 아니지요?”

염재의 이야기를 듣고는 조용히 먹을 찍어서 글자를 썼다.

285 금자

그리고 가운데의 도(十)는 붉은 주사(朱砂)로 표시했다. 그것을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쓴 다음에 염재에게 물었다.

“염재, 도(十)가 어디에 있나?”

“도는 안에 보관되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뚜껑도 덮고 지붕까지 덮었습니다. 금(金)에서 도가 들어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야 글자를 어떻게 뜯어보는지 또 배웁니다.”

“그러니까, 잘 익은 술을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거나, 소중한 벗이 찾아왔을 적에 잔치하기 위해서 깊숙하게 저장하는 것과 닮지 않았나?”

“정말 닮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금이 왜 백색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창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 염재에게 말했다.

“그야 내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이제 말을 할 것이네. 하하~!”

“아, 말씀을 듣겠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있다면 색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선한 마음이라고 한다면 백색으로 표현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렇지, 금을 본성이라고 한다면 백색으로 표시해도 무방하다고 본다네.”

“원래 그렇게 해서 백색이 된 것이었습니까?”

“아니라네.”

“그렇다면....?”

“아마도 어느 스승에게 제자가 물었을 것이네. ‘금은 무슨 색이냐?’고 묻자. 처음에 스승은 ‘투명(透明)하니라.’라고 답을 했겠지. 그런데 제자가 ‘그런 색이 어디 있느냐?’고 하자, ‘그럼 투명에 가까운 백색이라고 하던가’라는 말을 하자 그 말을 듣고는 제자가 금은 백색이라고 써 놓은 것이 후대에 전해진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봤지. 하하하~!”

우창의 말에 염재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듯이 말했다.

“투명색이라니요?”

“말하자면 무색(無色)이라는 뜻이지. 심성(心性)에 무슨 색이 있겠느냔 말이야. 그러니까 투명한 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려고 보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겠느냔 말이네. 그로 인해서 금에 해당하는 것은 백색으로 표시하게 되었던 것이 시초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만 해 봤다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스승님께서는 신금(辛金)을 흑색이라고 하셨습니까?”

“아, 오해(誤解)할 수도 있으니 바로 잡아야 하겠군. 그러니까 금에도 양금(陽金)이 있고, 음금(陰金)이 있지 않은가. 양금인 경(庚)은 투명하고, 음금인 신(辛)은 검다는 것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 좋겠군. 오행으로는 같은 금이지만, 이것이 음양으로 나뉘어서 천간(天干)이 된다면 이번에는 상반된 모습을 나타내는 까닭이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유금(酉金)의 본질인 신금(辛金)이 검은 것이라는 뜻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잘했네.”

“그런데 왜 투명의 정반대인 검은 것이 되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야 탐욕이 되는 까닭이라네.”

“탐욕은 검은 색입니까?”

“선한 사람의 속이 맑다면, 악한 사람의 속은 검지 않을까?”

“아, 그러니까 유월에는 모든 것을 거둬들여서 창고에 넣고서 문을 닫으니까 그것을 탐욕으로도 볼 수가 있다는 말씀이네요? 잘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네. 잘 익은 술은 항아리에 담아서 보관하듯이, 잘 익은 곡식도 가마니나 섬에 담에서 곳간에 보관하니 어찌 유(酉)가 반드시 술을 담는 항아리라고만 하겠느냔 말이네. 모든 것을 다 담아두는 그릇으로 봐야 할 테니 탐욕도 그 안에 담긴다는 것이네.”

“그렇다면 경(庚)도 또한 탐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까?”

염재가 다시 물었다.

“경(庚)은 구하고 소유하려는 마음이 없다네. 그야말로 무심도인(無心道人)과 같은 마음이지 그러니 어찌 탐욕이라고 하겠는가? 굳이 탐욕이라고 한다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그것을 탐욕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지 않은가?”

그러자 춘매가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거들었다.

“맞네~! 자기를 위해서 행사를 하면 탐욕이고, 남을 위해서 행사하면 보시가 되는 거잖아. 그렇지?”

“맞아~!”

염재가 다시 질문을 이었다.

“스승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니까, 중생도 보살도 모두 금(金)에서 비롯된다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제자가 잘 이해를 한 것입니까?”

“옳지, 그래서 누구나 금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 그것이 황금이어서가 아니라는 것도 지나는 길에 알아 두게나.”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그야 오빠가 모르는 말이야. 누구나 황금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인데 뭘~!”

“아, 누이가 오해했구나. 수행자는 마음을 황금으로 여기고, 중생은 황금을 마음으로 여긴다는 말을 내가 안 했구나. 하하하~!”

“뭐야? 그런 기가 막힌 말을 하다니. 그러니까 마음의 물질은 황금이 되고, 황금의 본질은 마음이라는 건가?”

“그렇게 봐도 되지 뭘. 하하하~!”

우창이 크게 웃으면서 춘매의 의견에 동의하자, 염재도 자신의 궁금증이 거의 풀린 듯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춘매가 다시 말했다.

“오빠, 문득 생각이 났는데, 음(陰)의 마음이 탐욕이고 양(陽)의 마음이 보시라고 한다면, 그 중간은 뭐지?”

“도인(道人)~!”

“왜? 도인은 투명한 백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어?”

“그야 경우에 따른 말이지. 중간이라고 한다면 아무 쪽으로도 끌리지 않으니까. 가령 관세음보살과 같은 분은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서 지선(至善)이라고한다면 도인은 그러한 생각조차도 없을테니까 말이야.”

“도인은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사명감(使命感)도 없는 거야?”

“응.”

“정말? 그런 거였어? 도인은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인 줄로 알았는데, 오빠가 하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아.”

“그야 누이가 도인에 대한 환상(幻想)이 있었나 보네. 하하~!”

“그런가? 그래도 명색(名色)이 도(十)인데 말이야.”

“만약에 도인이 ‘나는 선(善)하다’고 하면 어디에 치우친걸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선(善)에 치우친 건가?”

“아니면, ‘나는 악(惡)하다’고 하면 또 악에 치우쳤겠지? 적어도 도인이 악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지?”

“그야 당연하지. 난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뭘 잘못 생각한 거야?”

“아마도 그런 모양이네. 하하하~!”

“뭐라고? 그런 모양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도인은 보살에 가까울까? 아니면 자연에 가까울까?”

“그야 자연에 가깝겠지.”

“자연은 선악(善惡)이 있나?”

“있잖아? 제때 비가 내려주면 선한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하고, 가뭄이나 장마가 극심하면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하잖아?”

“그러게. 그것이 자연의 마음일까? 아니면 인간의 마음일까?”

“음.... 듣고 보니까 자연의 마음은 아닌 것도 같네...”

“맞아, 자연은 선악도 없고, 음양도 없어. 그러니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연으로 돌아간 도인이 어찌 보살이나 중생에 관심이 있겠느냔 말이지.”

“아하, 이제 이해가 되었어. 그러니까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은 보살이지만, 자유롭게 소요자재(逍遙自在)하는 사람은 도인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오빠는 도인이 아니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오빠는 나랑 염재를 위해서 이렇게도 베풀고 있으니까 말이야. 도인 같으면 고단하니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호호호~!”

“아, 누이가 잘못 생각했구나, 착각하지 말아.”

“내가? 내가 뭘 착각했다고?”

“나는 지금 누이에게 얻어먹은 밥값을 하고 있을 따름이야. 도인은 남에게 신세도 지지 않아야 하거든. 하하하하~!”

“오빠~! 정말 너무 해~!”

우창의 말에 서운하다는 듯이 춘매가 말하자 우창이 다시 말했다.

“맞는 말만 한 건데 서운해? 서운하면 누이도 과일이나 깎아 오던가. 그러면 또 마음이 편해지잖아? 하하하~!”

우창의 말에 춘매도 얼른 건너가서 과일을 깎아왔다. 그래서 다시 잠시 쉬면서 과일과 함께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공부가 이어졌다.

“듣고 보니까 유월(酉月)에서도 배울 것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을 몰랐네. 공부는 참으로 무궁무진한 것 같아. 오빠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유금하나만 갖고서도 종일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잖아.”

“그래서 조금씩 반복해서 공부를 익혀가는 거야. 어제 생각한 유금이 다르고 내일 깨달을 유금이 다르겠지? 그래야 지루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거니까 매우 잘하고 있는 거야.”

“그럼 백로 다음에 있는 추분(秋分)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봐야지? 염재가 먼저 말을 해 줄 테니까 귀담아들을게.”

염재는 춘매가 이야기를 하라고 하자 추분의 삼후에 대해서 설명했다.

“알겠습니다. 추분의 삼후는 이렇습니다. 초후의 뢰시수성(雷始收聲)은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중후의 칩충배호(蟄蟲坏戶)는 벌레들도 겨울을 나기 위해서 구멍을 파고 들어가서는 입구를 봉합니다. 말후의 수시학(水始涸)은 들판에 추수(秋收)를 하고 나서 고여있던 물도 마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아, 정말 가을이 깊어가는 풍경이구나.”

춘매의 말에 우창이 이어서 말을 이었다.

“춘분과 함께 추분이 되면 하늘에서는 다시 태양이 적도(赤道)를 지나서 남회귀선을 향해서 진행하게 되겠군. 이제부터는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지기 시작하는 것도 춘분과 반대가 되겠지?”

“아, 맞다. 추분은 춘분과 음양으로 나뉘는구나. 그런데 춘추는 어떻게 분(分)자가 있는 거야?”

“그야,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경계선이라는 뜻이 추분이고,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경계선이라는 뜻에서 춘분인 거지 다른 뜻은 없어.”

“간단하네? 호호호~!”

“원래 뭐든 알고 보면 간단한 거야. 하하하~!”

“그럼 염재가 별자리 이야기를 해 줘.”

염재가 다시 별자리에 대해서 말했다.

“추분에서부터 시작해서 한로(寒露)를 지나서 상강(霜降)까지의 한 달은 하늘의 천칭궁(天秤宮)을 지나게 된다고 합니다. 천칭은 저울이라는 뜻인 것으로 봐서 별자리도 그렇게 생겼거니 싶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그 말에 보충해서 설명했다.

“천평은 균형저울이라네. 단순히 무게가 얼마인지는 궁금하지 않은 사물을 달 적에 사용하지. 말하자면 두 아들에게 떡을 똑같이 나눠주려면 무게를 다는 저울보다는 균형을 다는 저울이 타당하겠지? 그런 용도의 저울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는 음양중(陰陽中)을 확인하는 저울이기도 하지.”

“그런 저울도 있어? 저울이라면 몇 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춘매가 천칭을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우창이 춘매를 위해서 간단히 천칭을 그렸다.

285 천칭

“대략 이렇게 생겼어. 양쪽에 무게가 같은 것을 올리면 균형을 이뤄서 공평하게 나누게 되지만, 오른쪽에 더 무거운 것을 올리면 중심은 오른쪽으로 기울겠지? 그리고 반대로 왼쪽이 더 무거우면 이번에는 왼쪽으로 기울게 되어서 무게를 절반으로 나누고자 할 때는 매우 편리한 저울이지. 그리도 도를 닦는 사람의 마음을 닮아서 ‘하늘 저울’이라는 뜻으로 천칭(天秤)이기도 한 거야.”

“와우~! 그림을 보니까 바로 이해가 되네. 그러니까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욕심이 되고, 왼쪽으로 치우치면 보살심이 되지만 그 중간에서 머물고 있으면 이것을 도인이라고 한단 말이지? 재미있어~!”

춘매가 천칭을 보면서 감탄했다.

“추분(秋分)의 나눈다는 의미와도 연관이 있어 보이잖아?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도 추분이 하절기와 동절기를 나누는 의미를 생각한 것은 아닐까?”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그럴싸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재도 천칭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자 감사의 마음으로 공수를 했다.

“이제 유월(酉月)의 백로(白露)와 추분(秋分)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공부가 되었다고 봐도 되겠지?”

“물론이야. 유금의 이치가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훤해진 것 같아. 이제 쉬었다가 밥을 먹고 다시 술월(戌月)에 대해서 가르쳐줘. 그럭저럭 절기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네. 호호호~!”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춘매를 보는 우창도 흐뭇했다. 다른 욕심이 많으면 이해타산(利害打算)을 논하면서 머리가 복잡할 법도 한데, 공부에 대한 욕심만 있다가 보니까 공부라고 하면 맹렬하게 달려드는 모습에서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의 길이 보였기 때문이다. 춘매가 밥을 짓는 동안에 우창은 운동 삼아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