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제22장. 연승점술관/ 11.시작이 갑자(甲子)인 이유

작성일
2020-07-0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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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

[0242]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11. 시작이 갑자(甲子)인 이유(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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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사람들을 죽~ 훑어본 손헌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의 공법(空法)이었다네.”

“예?”

“네?”

두 사람은 동시에 반문했다. 반야심경이 불경의 핵심적인 뜻을 담고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릇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맞추는데도 사용된다는 것은 천만의외였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 모여들었던 사람들도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혹에 찬 눈빛을 보냈다. 손헌은 주변을 한 바퀴 훑어보고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어허허허허~!”

“손헌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반야심경에서 어떻게 점괘를 찾는단 말입니까? 신기한 비법을 갖고 계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서 그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애당초에 재미로 보자고 하지 않았나? 너무들 진지하게 생각하셨으니 오히려 내가 미안할 지경이로구먼. 허허허~!”

“그러시면....?”

우창이 뭔가 속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적에 춘매가 재빨리 손헌의 말을 받았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실제로 그릇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상관이 없었다는 말씀이신 거죠? 에잉~! 우리를 놀리신 거잖아요? 호호~!”

“허허허~! 너무 억울해하진 말게. 실은 우창의 역술에 대한 방법이 어떤가 싶어서 시험한 것이라네. 물론 매우 진지한 모습에서 내가 감동을 했으니 나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는 시험은 통과한 셈이라고 봐야지. 이제 그릇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뚜껑을 열어 볼까? 나도 그것이 궁금하단 말이네. 허허허~!”

이유야 어찌 되었거나 사람들의 눈은 점원의 손을 따라서 움직였다. 마침내 뚜껑이 열리고, 사람들의 눈도 일제히 그릇 안을 향해서 쏟아졌다.

‘순간~!’

그릇 안에서는 애완용으로 키우는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목을 내밀고 갑갑해서 혼났다는 듯이 사람들을 둘러 본다.

그것을 본 우창은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갑(甲)에는 구갑(龜甲)이라고 해서 거북의 등껍질을 의미하는 뜻이 들어있었는데 그렇다면 내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 어려울 동물이 나왔지 않은가?’

거북을 보는 순간 든 생각으로 인하여 내심 가슴이 쿵 했다. 점괘를 보면서 갑각류까지는 떠올렸으나 거북이가 들어있을 것이라고는 추측을 하지 못했는데 막상 결과를 보고 나니까 오히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주괘의 능력에 대해서 아직도 더 깊은 연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손헌이 한바탕 웃은 다음에 말을 꺼냈다.

“춘매의 답이야 아직은 공부를 더 해야 하니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우창의 답은 매우 근사했으니 놀랍다고 해야 하겠네. 오주괘의 신묘함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하겠네. 도대체 그 비법은 어느 고인에게서 물려받았는가?”

그러자 춘매가 자기 일처럼 우쭐대면서 말했다.

“그봐요. 오빠의 점괘는 참으로 신기하다니까요~!”

춘매의 말에 우창이 계면쩍게 웃고서 말을 꺼내려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요리들이 줄줄이 탁자에 놓여졌다. 그러자 손헌이 말했다.

“자, 이야기는 차차로 들어보기로 하고 우선 식기 전에 드세. 여기 술도 한 병 가져오시게.”

우창에게 술을 따라주고 춘매에게도 따라줬다. 우창은 얼떨떨했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노인에게 놀림을 당한 것인지, 시험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즐겁게 놀았을 따름인지에 대해서는 구분이 되지 않았어도 여하튼 학식이 풍부한 어른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말씀은 기쁘게 들렸다.

두 사람도 손헌이 따라주는 술과 함께 맛있는 요리를 배불리 먹었다. 모처럼의 기름진 요리여서인지 배가 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다. 손헌의 모습을 보니까 저렇게 나이가 들었음에도 건강한 모습은 매사에 낙천적(樂天的)으로 사는 마음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반시진(半時辰:60분)이 지나고, 요리접시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자 후식으로 향기로운 녹차가 나왔다. 우창은 배가 어느 정도 차오르자 이 노인의 내력에 대해서 궁금한 마음이 부쩍 일었다. 분명히 범상치 않은 눈빛은 알겠는데, 반야심경으로 둘러 붙이는 임기응변도 예사롭지 않았거니와, 초면인데도 아무런 거침이 없는 언행이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차가 향기롭습니다.”

“노산차로군. 녹차는 노산의 차가 일품이지. 오늘 맛있는 요리를 시켰다고 주방장이 큰 인심을 쓰는군. 허허허~!”

“정말 노산차는 참 좋습니다. 노산에 머물면서 즐겨 마시던 맛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하하~!”

“만약에 말이네.”

손헌이 우창과 춘매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느껴져서 찻잔을 내려놓고 눈을 모았다.

“우창이 정확하게 내용물을 맞혔더라면 나는 더 이상 관심갖지 않았을 것이네. 그런 도사들은 장강의 모래알처럼 많으니까 말이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논리와 결과의 차이라고 본다는 말이네.”

“우창은 결과가 보잘 것이 없이 되었습니다만....”

“오늘 점의 괘상을 적어보시게.”

우창은 생각으로만 궁리했던 오주괘를 적었다.

242-3


“제가 얻은 점괘는 이렇습니다.”

그러면서 깊은 관심으로 들여다보는 손헌에게 기본적인 구조와 이치를 설명했다. 학문에 호기심이 많은 노인이었다. 매우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서 오히려 우창이 감동을 할 지경이었다.

“아니, 오늘 일진이 갑자(甲子)였나?”

“예. 그렇습니다.”

“자네는 육갑의 첫 간지가 무슨 연유(緣由)로 갑자가 되었는지는 알고 있는가?”

“그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하락(河洛)은 알지?”

“하도(河圖)의 용마(龍馬)와 낙서(洛書)의 신구(神龜)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하도는 동굴의 벽화(壁畫)를 의미하고, 낙서는 구갑(龜甲)의 껍질에 써있는 문자를 말하는 것인 줄도 아는가?”

“예? 처음 듣습니다. 우창이 알기에는 황하에서 용마가 뛰쳐나왔는데 그 용마의 등에 그림이 있어서 그것을 그려놓은 것이 하도라고 한다고 알았고, 낙수에서 거북이 나왔는데 거북의 등에 부호가 있어서 그것을 옮겨 놓은 것이 낙서라고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듣는 말씀에 흥미가 동합니다. 좁은 소견에 개안(開眼)을 하는 우창입니다. 어서 말씀해 주시면 소중한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소중하긴 뭘. 그냥 지나가는 말로 흘려들어도 된다네. 허허허~!”

손헌의 말에 춘매가 거들었다.

“와우~! 예전에는 가끔 한마디씩 하셨어도 그냥 글을 많이 읽으신 노인의 수다인가보다 했는데 이제 비로소 그런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와요. 재미있어요. 호호호~!”

“오, 춘매도 이제 공부꾼이 다 되었구나. 축하하네. 허허허~!”

“정말 공부는 때가 있고, 귀는 아는 만큼만 들리는 것이 맞나 봐요. 오늘 할아버지를 만나서 귀가 호강을 하네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호호~!”

“그래 춘매가 말귀를 알아듣는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군. 그럼 잘 들어보게나. 아득한 옛날의 인류가 처음에는 동굴 벽화에 말과 양을 그렸었지. 그것을 나중에 말을 잘 만드는 사람이 교묘하게 꾸며서 ‘용마(龍馬)가 강에서 뭘 갖고 왔다’고 했을 따름이라네.”

손헌의 말에 우창이 내심 무척이나 놀랐다. 이러한 관법은 듣느니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것이었습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보니까 오히려 합리적이고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도(河圖)의 하(河)는 뭘 의미하는지 아는가?”

“그건 황하(黃河)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실은 황하의 바위에 새겨진 암벽화(巖壁畵)였을 것이네.”

“아, 그렇습니까?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우창의 관심이 커지자 손헌도 즐거운 듯이 말을 이었다. 몇 잔의 술로 인해서 기분이 더욱 흥겨워진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옛사람들이 봤던 것은 바위에 새겨진 말이었고, 말의 그림이 명료하지 않아서 용마(龍馬)라고 이름했을 것이네.”

“와~! 매우 논리적이십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감탄했습니다.”

“감탄은 무슨. 허허허~!”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벽화에 하도의 깊은 이치가 들어 있었다는 말인가요?”

“있긴 뭐가 있었겠나? 그냥 표본으로 끌어다 붙인 것일 뿐이라네. 허공에서 그림이 보였다고 하기보다는 용마의 등에 그림이 있었다고 해야 더 신비롭지 않았겠느냔 말이네. 허허허~!”

“놀랍습니다. 사실은 하도의 그림이나 낙서의 그림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어쩌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 본 적은 있었습니다.”

 

242-2
[하도(河圖)를 나타내는 그림과 음양의 표시]


242-1
[낙서(洛書)를 나타내는 그림과 구궁도(九宮圖)]


“그럴 줄 알았네. 자네가 실제로 그릇 속의 거북을 맞췄다면 이미 기교가 달인이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 그런데 사양하지 않고 힘써 맞춰보려고 궁리하는 모습에서 옛날에 내가 공부하던 모습이 느껴져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네. 허허~!”

“아 그러셨군요.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도(河圖)나 낙서(洛書)나 이름은 다르지만 실상(實相)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네. 굳이 구분한다면 자연의 이치를 체용(體用)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지. 자네가 느낀 그대로네 아마도 어느 고인의 뛰어난 지혜에서 얻은 것을 나타낸 것인데, 혼자서 다 했다고 하면 남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서 나눠서 따로 얻은 것이라고 했을 것이네.”

“그럼 제 생각도 황당한 것은 아니었네요. 하하~!”

우창의 말에 손헌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다시 갑자(甲子)로 돌아가 보세. 왜 육갑의 처음이 갑자로 시작이 되었을까?”

“그에 대해서는 정말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갑을병정(甲乙丙丁)과 자축인묘(子丑寅卯)가 서로 짝을 짓는 과정에서 자연히 갑(甲)과 자(子)가 만났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봤습니다만 구체적으로 갑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여태 공부를 한다고 했어도 그러한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헛공부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하하하~!”

“물론 그것이 맞긴 하지. 그렇지만 총명한 자네라면 충분히 그 이유를 생각해 낼 수가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네. 그리고 지금 생각을 해봐도 괜찮고.”

우창은 손헌이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라는 말에 그냥 답을 해줄 리가 만무(萬無)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답을 찾아보라는 의미를 생각하고는 곰곰이 궁리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우창이 잠시 생각해 보니까, 갑자(甲子)의 갑은 거북이었습니다. 그리고 자(子)는 물이었고요. 그래서 낙수(落水)에서 거북이가 나온 것을 나타낸 것이 갑자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오호~! 그럴싸한걸. 왜 하필이면 거북이였을지도 생각해 보시게.”

“아마도 문자는 점괘를 얻기 위해서 불에 태운 거북의 등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그리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하지 않았을까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로군. 그래서?”

손헌도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우창의 말이 이어지자 바짝 관심을 보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자기가 생각한 것을 천천히 설명했다.

“하늘에 고하고 점괘를 얻었을 적에 거북의 등에 나타난 것이 무늬이고, 그 무늬를 그려놓은 것이 문(文)이니까 문자의 시작이 된 것은 무늬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옳지~!”

“또 무늬가 글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리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만들어졌고, 이것은 매일의 일진(日辰)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로 인해서 만들어졌던 것이 연월일시를 순환하는 육갑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 그럴싸 하군. 계속 하시게. 허허허~!”

“간지(干支)의 조합으로 완성된 육갑(六甲)은 그림보다 부호(符號)에 해당이 되었기 때문에 육갑의 시작은 낙서(洛書)의 문서(文書)를 의미하는 뜻에서 물에서 나온 거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을 갑자(甲子)로 삼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궁리하는 것이 말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우리 후학의 상상력이니 너무 신경을 쓰지 말게나. 재미있고 그럴싸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말이네.”

손헌이 너무 실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오히려 힘을 얻은 우창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자(子)의 뜻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호, 어떤 설명을 해줄지 기대가 되는걸. 어서 말해 보시게.”

“갑자(甲子)의 자는 수(水)가 되고, 수는 지식(知識)의 창고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원래 세상의 올바른 이치를 ‘법(法)’이라고 했던 것도 살아가면서 얻어서 쌓이게 된 지식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왜 안 그렇겠는가. 당연하지.”

“그렇다면, 이것이 말이 된다면 말이지요. 지혜가 쌓여서 지식이 되었고, 그 지식에서 다시 지혜가 지식의 바다에서 거북처럼 솟구쳐오르니 그것이 거북이고, 문자이고, 갑(甲)이었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요?”

“탁견(卓見)일세~! 모처럼 이 늙은이를 감동시키는 학자를 만났군.”

“과찬이십니다. 그래도 선생님을 즐겁게 해 드렸다면 오늘 점심값이라도 약간 한 듯하여 마음이 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하~!”

“밥값뿐이겠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밥을 사야 할 정도로 내가 빚을 졌다네. 허허허~!”

“그렇다면 영광입니다. 오늘 선생님을 뵙지 않았다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갑자의 소식을 얻었으니 참으로 복이 넘치는 우창이 분명합니다. 나름대로 간지에 대해서는 약간 얻은 바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갑자의 소식도 모르고 건방을 떨었습니다. 이제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겸손하지 않아도 되네. 이미 그대는 간지에 대해서 견성(見性)을 했다고 봐도 될 수준인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으니 말이네.”

“그런데 왜 그릇에 거북이 들어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점원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손헌이 점원을 보고서 손짓을 했다. 그러자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점원이 달려왔다.

“어르신, 분부가 계시옵니까?”

점원이 다가오자 우창이 말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왜 그릇에 거북을 넣었는지 궁금해서 말이네.”

나이가 15~6세는 되어 보이는 소년이라서 우창도 말을 편하게 건넸다.

“그건 말입니다요. 갑자기 어르신께서 말씀을 하셨는지라 뭘 넣어야 할지를 몰라서 대청을 지나가는데 마침 평소에 음식이 남은 것들을 먹이면서 애완으로 키우던 이 녀석이 어항에서 목을 내밀고 소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요.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이 녀석을 담아왔습니다요. 그리고 후회를 했습니다. 마른 새우를 넣었더라면 손님께서 더욱 신통하셨을 텐데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요. 헤헤~!”

점원은 자신에게 무슨 책임이라도 물으려는가 싶었던지 미안해하면서 말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워서 일행은 폭소를 터뜨렸다.

“허허허~!”

“하하하~!”

“오호호호~!”

춘매도 시원스럽게 웃었다. 실제로 마른 새우가 들어있었더라면 우창과 공 할아버지의 대화가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늘 이렇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얻지 못했을 테니 오히려 상금이라도 두둑하게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점원의 말을 듣고 손헌이 설명했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네, 어항의 물속에 있던 거북이가 목을 내밀고 나왔으니 그것이야말로 갑자(甲子)가 아니고 무엇이며, 그 거북이가 그릇 안에 들어가 있었으니 이것은 또 갑술(甲戌)이 아니고 무엇이겠냔 말이네. 참으로 오묘(奧妙)하지 않는가?”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더니, 빗나간 점괘의 풀이로 인해서 귀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하하~!”

“나도 세상은 참으로 신기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말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고 있으니 그만하면 인생의 만년(晩年)이 풍요롭지 않으냔 말이지. 하물며 그대와 같은 영민(靈敏)한 젊은이를 만나서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니 오늘 하루도 극락세계에 머무름과 같다네.”

“그런데, 갑자(甲子)에 이어서 을축(乙丑)이 나오는 이치는 무엇일까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그것에 대해서도 의미가 있을 듯싶은데 우둔(愚鈍)하여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으니 귀한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 말인가? 당연히 생각해 볼 수가 있겠지. 갑자는 거북이가 물에서 목을 내민 것인 줄을 알았다면 을축은 거북이 땅에 올라와서 풀숲 모래밭에 알을 낳고 묻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것은 또 젖은 땅에 글씨를 쓰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을 듯 싶네만, 허허허~!”

손헌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우창과 춘매를 바라보자, 춘매는 자동으로 우창으로 시선이 향했다. 자신은 그에 대해서 답을 할 주변머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런 뜻이었습니까? 말씀을 듣고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축토(丑土)가 왜 축축한지를 이제야 명료(明瞭)하게 깨달았습니다. 만약에 마른 땅이라면 글자든 그림이든 쓸 수가 없으니까 축축한 땅에 하늘의 뜻을 기록하라는 뜻으로 갑자(甲子) 다음에 을축을 배치했었던 것이었군요. 정말 육갑경(六甲經)은 오묘함으로 가득 담긴 영감의 원천(源泉)인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내친김에 병인(丙寅)도 풀이해 볼텐가?”

“예, 감히 그것에 대해서도 풀이해보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부분은 아낌없이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병화(丙火)는 태양입니다. 인목(寅木)은 연료가 되겠습니다. 더구나 인중갑목(寅中甲木)은 거북이도 됩니다. 거북을 햇볕에 그을려서 점괘를 찾고 있는 것이 병인(丙寅)인가 싶습니다. 어쩌면 낮에는 살아있는 거북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 하늘의 뜻을 살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밤에는?”

“밤에는 정묘(丁卯)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화(丁火)의 등불에 그을려서 하늘의 조짐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궁리하면 병인(丙寅)과 정묘(丁卯)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다만 이것이 말이 되는지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놀랍군. 그렇다면 무진(戊辰)까지도 설명해 보려나?”

손헌이 연신 감탄하면서 우창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러자 우창도 망설이지 않고 생각이 이끄는 대로 설명했다.

“선생님께서 잘한다고 하시니까 마구 까불어 보겠습니다. 무진(戊辰)은 비로소 천지(天地)의 모습이 안정을 취하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진토(辰土)는 문전옥답(門前沃畓)이 되고, 무토(戊土)는 청명(淸明)한 하늘이 되어서 평화로운 세상이 이뤄지니 이것이 갑자로부터 다섯 번째의 역사(役事)가 되고, 이것을 일러서 오행(五行)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금(金)은?”

“아, 금이 빠졌습니다. 금은 바로 다음에 기사(己巳)에서 등장을 합니다. 사중경금(巳中庚金)은 갑자(甲子)의 거북이 바위처럼 단단해져서 점괘를 품고 서고(書庫)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에 나올 적에는 경오(庚午)가 되어서 불로 녹여서 만든 문자가 나타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금석문(金石文)이 되겠습니다.”

“오호~! 참으로 훌륭허이~!”

“이렇게 생각을 해 봤습니다만, 선생님이 들으시기에 약간이나마 말이 된다는 뜻입니까?”

“그래서 여섯 번째의 기사(己巳)에서 천지창조(天地創造)의 역사가 마무리된다고 보는 것이라네. 그리고 앞서 말한 오행(五行)도 맞는 말이네. 다만 병인(丙寅)과 정묘(丁卯)는 하나의 음양이므로 둘로 나누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냥 단순히 늘어놓은 것이 간지(干支)려니 싶었는데 오늘 선생님을 만나서 개안(開眼)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의 계해(癸亥)는 또 무슨 뜻인지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시게나. 어련하시려고. 허허허~!”

우창이 잠시 생각을 한 다음에 설명했다.

“계해(癸亥)는 거북이 세상의 역사(役事)를 다 마치고서 다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갑자(甲子)는 거북의 머리가 위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라면, 계해(癸亥)는 이미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뒷모습으로도 보입니다. 그러니까 해중갑목(亥中甲木)은 갑자(甲子)의 갑(甲)이 일을 마치고 태고(太古)의 드넓은 바다로 돌아가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네. 자연은 물에서 시작해서 물로 끝나고, 인간은 땅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또한 변함없는 세상의 소식이라네.”

“아, 정말 감동(感動)이 밀려옵니다. 어쩌면 이러한 소식을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조차 합니다.”

“이제 앞으로 간지점(干支占)을 보더라도 또 다른 세상을 하나 볼 수가 있지 않겠나? 그리고 또 다음에는 더 깊은 이치와 더 높은 소식을 얻게 될 것이니 학문의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냔 말이네. 허허허~!”

“놀랍습니다. 그리고 천상천(天上天)의 뜻도 오늘 깨달았습니다.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진리를 탐구해야 하겠습니다.”

“어? 천상천이라니? 무슨 말인가?”

“우창이 그동안의 공부로 얻은 간지의 소식이면 어느 누가 묻더라도 답을 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으로 여겼는데, 오늘 선생님을 만나서 하도낙서의 이치까지도 한 줄에 엮을 수가 있게 되었으니 그래서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건 천중천(天中天)이라고 한다네. 물론 같은 뜻이지. 오늘 그대를 만난 즐거움으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오락(娛樂)했네, 또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헤어질까?”

“물론입니다. 언제 찾아뵙고 귀한 가르침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시기만 바랄 따름입니다.”

“암, 여부가 있겠는가. 내가 문지기에게 일러두겠네. 언제든지 마음이 동하거든 나들이하면 되네. 허허~!”

“참, 왜 반야심경의 도리라고 하셨는지는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그 의미를 청해 들어도 될까요?”

“아, 그건 말이지. 내가 공리(空理)에 대해서 궁리하느라고 불쑥 내뱉은 말이라네. 다른 뜻은 없으니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네. 다만 후에 불학(佛學)에도 관심이 생긴다면 진지하게 논의를 해 볼 점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이번엔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함을 혜량(惠諒)하시게나. 허허허~!”

“아,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공 할아버지 오늘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담에 오시면 두 배로 잘 만져 드릴게요. 호호호~!”

“오, 그래. 나도 춘매랑 함께 해서 즐거웠네. 그리고 스승을 꼭 잡고 열심히 공부하시게. 허허허~!”

두 사람은 뒤도 안 돌아보고 휘적휘적 가버리는 손헌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손헌이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에서야 서로 마주 보고 감동 어린 눈길을 주고받았다. 춘매가 먼저 말했다.

“오빠, 학문한다는 것이 이런 거야?”

“그래. 오늘 누이도 깨달은 바가 많았지?”

“말로 어떻게 다 할 수가 있겠어? 난 도대체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싶었잖아.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아등바등 열심히만 살면 될 줄 알고 악착같이 살았으니 참 소중한 삶을 의미없이 헛되게 보냈다 싶어.”

“그래, 그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정진(精進)하면 되는 거야. 지난날을 아쉬워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했더라?”

“번뇌(煩惱).”

“그러니까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변변치 못한 우창을 만나서 약간이나마 진리의 맛을 봤으니 오늘도 즐겁구나 해야지?”

“아, 맞다~! 그러면 여기가 극락세계(極樂世界)이고 천상계(天上界)네?”

“당연하지.”

“고마워~! 오빠....”

우창의 품에 덥석 기대는 춘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서 빛나는 것이 보였지만 우창은 모른 체하고는 앞을 보고 부지런히 걸었다.

“어, 오빠~! 같이가~!”

정월(正月)의 싸늘한 바람이 마음의 열기를 식혀주고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