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제21장. 천하유람/ 10.제비 둥지로 간 파리

작성일
2020-05-05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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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6

[0230] 제21장. 천하유람(天下遊覽)


 

10. 제비 둥지로 간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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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매가 점괘의 해석하는 방법을 듣고 감동에 젖어있는 것을 본 우창은 뭔가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서 흐뭇했다. 이번엔 춘매의 점괘를 놓고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줘도 되지 싶었다.

“내 점괘를 봐 줬으니 누이의 점괘도 볼까? 어디 무슨 괘가 나오나 뽑아봐.”

“그럴까? 어디 뭐가 오나 보자....”

춘매가 그렇게 찾아서 적어놓은 점괘는 연괘(燕卦)였다. 춘매가 점괘를 보면서 말했다.

“어 제비잖아? 제비라.... 이건 또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되지? 앞으로 겨울이 오게 될 테고 그럼 제비는 강남으로 떠나겠지? 그러니까 먼길을 떠나게 된다고 해석해야 하나?”

“오호~! 바로 깨달았군. ‘북풍이 불어오니 둥지를 떠날 채비를 한다.’고 해석하면 제대로가 되겠네. 그것 봐 얼마나 재미있는 점괘냔 말이지. 단시점도 꽤 재미있거든. 하하~!”

“아니, 근데 난 곡부를 떠날 생각이 없는데? 그럼 헛된 점괘잖아?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그것도 가능하지. 원래는 떠나야 하지만 둥지를 떠나고 싶지 않은 제비는 동굴에서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되지. 그러니까 글자로 된 밥을 먹으면서 이치를 깨달아서 따뜻한 봄이 되기를 기다리며 보내면 되겠네.”

“어? 그건 또 무슨 뜻이지?”

“이제부터 공부를 하게 될 거라는 뜻인데?”

“뭐라고? 공부는 선생이 있어야 하지 혼자서는 안 돼. 나도 하려고 무진 애를 써봤는데 맘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공부야. 오빠도 해 봐서 알잖아?”

“그야 내가 없을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잖아?”

그러자 갑자기 춘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해봐. 오빠는 내일이나 모레에 곡부를 떠날 것이잖아? 그런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긴 하지? 파리도 겨울에는 돌아다니다가 얼음판에서 미끄러지기가 십상이니 웬만하면 따뜻한 방에서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겨울을 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지금 막 들었는데 밥을 줄 사람이 거절한다면 뭐 달리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뭐야~!! 진심인 거지? 정말 올겨울 내 옆에서 공부를 시켜주고 봄에 떠날 거야? 그렇게만 해 준다면 밥은 내가 매일매일 고봉밥으로 퍼주고말고. 그렇지만 나를 놀리는 거겠지? 진심이라고 믿어지진 않네. 어쩌면 오빠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고.”

춘매가 혼자서 마구마구 떠드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흥분을 한 것으로 보여서 가만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문득, 자유로움이란 이런 것이지 싶었다. 언제라도 내 마음대로 오고 갈 수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또 기왕지사 머물게 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빛이 되면서 머문다면 그것도 또한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유서(由緖)가 깊은 곡부에서 임상경험을 쌓아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득 춘매의 점괘를 보면서 든 생각에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우창도 뭔가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서 흐뭇했다.

“고봉밥은 필요 없고, 굶기지만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뭘.”

“얼레? 정말인가 보네? 믿어도 되는 건가 봐~!”

“갑자기 곡부가 발목을 잡아당기네. 어디에서 오라는 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느긋하게 겨울 한 철을 머물다 가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와서 차마 그냥 떠나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렵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걱정도 팔자네 정말. 그럼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집으로 가.”

춘매가 서두르자 우창도 따라서 일어났다.

“마음은 요물과도 같아서 오늘 바위처럼 굳었다가도 순식간에 봄날에 눈이 녹듯 변하는 것이니 뭘 서두르나. 더구나 이 맛있는 요리를 파리가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걸.”

“3년을 내내 원망했는데 오늘 비로소 단시점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네. 이렇게 될수도 있는 것이구나 싶어서 말이야. 그 도사영감을 욕하고 탓했던 것도 말끔히 잊어버렸어. 이제부터는 제대로 공부할 수가 있다는 것이 고맙기만 하니 오늘 이렇게 즐거운 소식을 듣게 될 줄을 어제는 꿈에라도 생각해 봤을까?”

“그게 인생이지. 나도 조금 전까지는 내가 곡부에서 올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잖아. 이렇게 물이 흘러가듯이 흐름에 따라서 살아가면 되는 거야. 다만 그 선택이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만 한다면 말이지.”

“어서 많이 드셔, 나도 술 한 잔 마시고 싶네. 줘봐.”

흥분을 가라앉히기라도 하려는 듯이 춘매는 술을 한 잔 청했다. 어차피 우창도 많은 술은 좋아하지 않는지라 춘매가 거들어도 넉넉했다. 커다란 잔에 가득 따라줬다. 붉은 고량주의 빛깔이 매우 고왔다. 최고급의 고량주는 증류를 하기때문에 맑고 투명하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저렴하게 즐기는 술은 증류하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붉은빛이었고, 보기에도 그것이 오히려 푸짐했다.

“술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몇 모금 마신 춘매가 너스레를 떨었다. 기분이 좋다는 뜻인 걸로 이해하면 되었다. 맛이란 믿을 것이 못 된다. 하긴,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모두 믿을 것은 없다고 해야 하겠군. 원래 술이야 쓴맛이겠지. 다만 기분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것이 술이기도 하다. 기분이 좋을 적에 마시는 술은 덜 해롭다고도 한다. 다만 우창도 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영역이기는 했다.

“나도 술은 별로 즐기지 않아서 잘 모르겠군. 가끔 마시더라도 한두 잔으로 만족하니까.”

“공부하는 서생(書生)은 그러셔야지. 맨날 술에 찌들어 있으면 공부가 될 턱이 없으니까. 호호호~!”

“이제 가도 되겠지? 오늘은 내가 낸다. 수고한 춘매에게 감사의 보답이기도 하고.”

“당연하지, 오늘은 오빠가 나를 샀으니깐. 호호~!”

그렇게 해서 요란한 저녁을 먹고는 다시 나섰다. 춘매는 술이 올라서 얼큰한 모양이었다. 수다를 떠느라고 거리는 이미 어둠에서 불빛이 영롱하게 반짝였고, 우창이 묵는 동승빈관까지 시원하게 바람을 쐬면서 걸었다.

“오빠, 오늘은 빈관에서 쉬시고 내일 모시러 올게. 그럼 편히 쉬어.”

“그래 오늘 참 애 많이 썼다. 잘 쉬고 내일 보자.”

이렇게 춘매는 돌아가고 우창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도 인연인가 싶었다. 물론 인연이라고 해도 나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오늘 오가면서 보고 생각했던 것을 비망록(備忘錄)에 간단히 적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논한 사주와 오주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다고 봐서 간단하게나마 적어놓을 요량이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춘매는 우창이 빈관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도 공부하고 싶었던 산명술(算命術)을 제대로 전수해줄 스승을 만난 것으로 인해서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동안의 긴 삶에서 가장 신나고 짜릿했던 날로 꼽아도 될 정도였다. 이것은 분명히 토지신의 사당에 매일 가서 기도했던 덕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온몸으로 세파(世波)와 부대끼면서 살면서도 곡부를 떠나지 않았는데 이제 어디든 가도 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삶의 방향이 이제야 문이 열린 듯도 했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동안 만났던 여러 스승들로부터 상처도 많이 받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스스로 자기의 최면에 걸려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을 놓고는 공부가 많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다만 세상의 물정이야 이미 겪을 만큼 겪은 춘매다. 꼬박 하루를 함께 하면서 겪어본 것으로는 이렇게 근사한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설령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여인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수없이 많았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여인에게 주어진 여건은 그렇지가 못했다. 한 남자의 내조자가 되어서 모든 결정은 남자에게 맡기고 순종해야 하는 삶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부모님의 삶을 통해서 그렇게 살아봐야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사무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춘매는 곡부의 남쪽으로 20여리 떨어진 작은마을 무가촌(武家村)에서 태어났다. 무씨(武氏)들이 많이 살았는데 처음에 자리를 잡은 사람은 무연수(武延秀)였다. 그들은 문사(文士)보다는 무사(武士)의 후예들이어서인지 항상 마을의 분위기도 거칠어서 툭하면 살인과 소란이 일어나곤 했다. 거친 분위기를 보면서 성장을 해서인지 풍수지리가 그랬었는지 춘매는 조용하게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따를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비록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삶은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주변에서는 가장 큰 번화가인 곡부로 나와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나 실컷 하려고 생각했다.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공자의 삶을 흠모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내심으로는 자신도 곡부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적지 않았다. 다만 몸으로 삶을 유지하면서 취객들의 추태도 참아내면서 공부할 마음으로 버틴 것은 여인의 몸으로 벼슬길을 나간다는 것은 애초에 꿈도 꿀 수가 없었기 때문에 술객(術客)이 되어서 자유롭게 천하를 유람하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삶이 목표가 되었던 것인데, 그렇게 공부를 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실제로 가르쳐 줄 것도 없으면서 자신이 여인이라는 것을 보고서는 교육을 핑계로 자신들의 색욕만 채우려는 속내가 보여서 상처를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나마도 포기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던 요즘이었다.

이제 나이 28세가 되고 나서야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것은 있다고 생각했다. 우창이 설명해 준 단시점에 대한 해석을 듣고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것도 당연했다. 거금을 들여서 배운 점괘라서 나름대로 틈만 나면 적용을 시켜보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리 대입을 해봐도 신통한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단해 보였던 점괘가 점점 초라하게 느껴져서 이제는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했는데 세상에~!

점괘는 역시 현실과 함께 엮어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예전의 점괘를 전수해 줬다는 자칭 항도사(項道士)인 그는 운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배울 적에는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오늘 해석을 접하고 나서는 개안(開眼)이 되었다. 비로소 점괘는 어떻게 해석하는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수가 있었다. 이런 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가 있다면 평생이라도 봉양(奉養)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점괘에서 연괘(燕卦)가 나오자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그냥 제비괘라고 했을 적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우창의 해석에서 강남으로 가거나 동굴로 들어가거나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해석에서는 놀라서 뛰어오를 뻔했다. 지금 어디로 무턱대고 갈 수도 있지만 아직은 스스로 독립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어디로 간들 안마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고, 또 하류 인생들의 희롱을 참아야만 하는데 제비가 동굴에서 겨울을 날 수도 있다는 해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제비의 동굴이 자신의 집이고, 우창이 그 동굴로 찾아들겠다는 말을 했을 적에는 믿기지도 않았다. 또 허풍을 떠는 사내의 책임지지 않는 희망고문일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얼굴을 살폈는데 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게 말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렇다면 두 점괘를 어떻게 엮어 볼 수는 없을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자신도 돈을 들여서 나름대로 공부를 했는데 남의 해석에 침만 흘리고 감탄만 하고있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승괘(蠅卦)와 연괘(燕卦)라.... 파리가 겨울이 되면 날아다니지 못해서 얼어 죽는다고 했지. 그래서 돌아다니지 못하니까 제비집을 찾아 드는구나. 그렇다면 제비가 파리를 먹어버리잖아? 그럼 파리는 죽는데? 우창은 그 생각을 했던 걸까? 제비가 파리를 먹는다는 것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지, 지렁이라면 또 몰라도. 그런데 먹는 것은 파리가 아니라 파리의 능력이라고 보면 어떻게 되지? 파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먹어버리는 것으로 본다면?’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쳤다.

‘오우~! 이거였네. 배를 채우기 위한 파리가 아니라 머리를 채우기 위한 파리였어. 그리고 제비는 파리를 먹지 않아. 그러니까 파리는 겨우내 내가 먹여 살리면 되는 거야. 그리고 파리의 지식을 배우는 거지. 그럼 봄이 되면 다시 파리는 떠나가겠지? 아니지. 그다음 문제는 또다시 점괘를 뽑아야지. 누가 알아 평생을 함께할 남편이 될는지. 그래 지금은 스산한 삭풍(朔風)을 피하기위해서 내게 잠시 의탁하는 것이니까 나도 공짜로 공부하는 건 아니야. 마음 같아서는 애써 모았던 돈을 주고서라도 공부하고 싶지만, 얼마 전에 모친이 오셔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모두 드리고 났더니 이런 때는 또 아쉽네. 그런데 봐하니 그런 것에 연연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어. 일단 내일 집으로 모셔와야 하는 것이 급선무네. 어쩌면 지금쯤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고 야반도주라도 하면 어쩌지? 그렇게 되면..... 그것도 이년의 팔자지 뭐 어쩌겠어. 제발 도망가지 말았기만을 바랄밖에. 부처님, 마조님, 보살님들께 비나이다. 이 인연이 저의 삶에 큰 빛이 되게 굽어살펴 주소서~!’

혼자서 온갖 생각을 하느라고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집을 지었다 헐기도 하고, 웃었다가 불안하기도 하면서 생각에 생각을 더하느라고 잠이 올 겨를도 없었다.

‘참, 오빠가 머물 곳도 알아봐야겠네? 길 건너의 어머니처럼 나를 챙겨주던 무당할머니 집이 비어있었지. 지난달에 건강이 나빠서 손님을 더 받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작별하셨는데 자리는 적당한 사람이 나오면 저렴한 비용으로 넘겨줄 테니 누가 물어보면 소개하라고 했으니까 그 자리를 잡으라고 하면 되겠네. 일이 되느라고 참 다행이다.’

이렇게 우창이 머물 공간까지 계획에 포함이 되자 비로소 개운하게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깊이 잠들었다.

 

새들이 창문 밖에서 요란스럽게 지저귀는 소리에 우창도 잠이 깼다. 날이 벌써 밝아온다. 어제는 고단했던 모양이다. 술도 한 잔 마시고 자서 숙면(熟眠)을 했던 모양이다. 비록 번화한 대로변이긴 해도 아침은 분주하지 않았다. 관광지의 특징인가 싶기도 했다. 진시(辰時)가 되어서야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는 씻고서 춘매를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서 사시초(巳時初)가 되어서야 허둥지둥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뭘 하느라고 늦었던 모양이다. 우창은 이미 준비가 다 되었는지라 바로 행낭(行囊)을 챙겨서 나섰다.

“누이가 바빴군. 가자.”

“아, 오빠 내가 너무 늦었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대강 치우고 오느라고 호호~!”

나이 차이는 10세였지만 젊어 보이는 우창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춘매로 인해서 겉으로 봐서는 너댓 살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아 보여서 춘매가 그렇게 말을 해도 남들에게는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바쁠 일도 없는데 뭘. 다시 보니 반갑네.”

우창은 나름대로 손님을 맞으려고 얼마나 바빴을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앞에서 활보로 걸어가는 춘매의 뒤를 따랐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춘매의 집이 있었다. 대로에서 좁은 길로 들어가서 세 집을 지난 곳에 있었다.

「양생안마(養生按摩)」

“상호가 양생안마네?”

“전에 안마하면서 알던 언니와 같이 있었는데 언니가 다른 곳으로 가시면서 남겨주셔서 그대로 사용하는 거야. 호호~!”

“그렇구나, 아담한 것이 좋아보이네.”

“어서 들어와. 제비 동굴이야. 호호~!”

밖에서 보기보다 안은 넓었다. 손님을 받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안으로는 숙소와 조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갖춰져 있어서 여인이 생활하기에는 아쉬움이 없어 보였다. 다만 우창이 같이 머물기에는 별도의 방이 없어 보였다.

“우선 짐은 여기에 내려놓고. 거처의 방법은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해. 마침 내가 봐둔 곳이 있는데 맞은편에 비어있는 점포가 하나 있거든, 예전에 어느 무녀가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일을 할 수가 없자 지금은 비어있는데 약간의 돈으로 얻을 수가 있을 거 같아.”

역시 여인은 주도면밀(周到綿密)했다. 이미 계획이 다 서 있었고 그대로 착착 진행이 되고있는 모양이다. 우선 편히 쉬고 있으라고 해 놓고는 춘매는 집을 알아본다고 나갔고 우창은 느긋하게 방과 밖의 모습을 훑어봤다. 여기에서 매일을 손님들과 부대끼면서 공부에 대한 열망을 접어놓고 열심히 살았을 모습을 떠올려 봤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 희색이 만면한 춘매가 달려왔는지 숨이 찬 모습으로 활짝 웃으며 들어왔다.

“잘 되었나 보네?”

“겨울만 지낼 거라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고맙게도 그냥 묵어도 된대. 그러면서 열쇠를 내어 주셨어. 좀 쉬었으면 가볼까?”

“그래 가보자.”

맞은편이라고는 하지만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열 걸음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냥 문 열어놓고 대화를 해도 될 거리여서 한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간판은 없었다. 홍보할 필요도 없는 무속인이어서 알음알음으로 찾아왔었기 때문인가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의 구조는 춘매의 공간과 비슷했다. 앞에는 손님을 맞이할 공간이 있고, 뒤쪽에는 침상과 주방이 있는 구조였다. 아마도 한 사람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지은 것으로 보였다. 의외로 내부는 깨끗해서 바로 사용해도 될 정도였다. 하긴 한 달만 비워뒀던 집이니까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긴 하다.

“깨끗하네. 좋다.”

“오빠가 맘에 들면 되었어. 그럼 침상만 깨끗하게 세탁하고 방석과 책상은 그대로 쓰면 되겠다. 오늘부터 여기에 살아. 그래야 언제라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토끼처럼 뛰어와서 묻곤 하지.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 호호~!”

그런 때의 표정은 16세의 소녀처럼 보였다. 귀엽게 웃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보니 우창도 기분이 좋았다. 자신으로 인해서 한 여인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목적을 이루게 해 주는 것도 좋지만, 유서가 깊은 곡부에서 마음대로 현장의 임상을 해 보고 싶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이뤄졌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파리가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오빠, 상호는 뭐라고 붙일 거야?”

“글쎄 생각한 것이 있으면 알려 줘봐, 여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내가 바로 지어줄게. 연승점술관으로 해.”

“연승? 그건 무슨 뜻이야?”

“제비가 파리를 불러들인 점술관이라는 뜻이야, 그래서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이 되는 거지. 어때?”

“아하, 난 또 어제 점괘에서 착안했구나. 그런데 막상 이름을 붙이고 보니까 그것도 하나의 고사(故事)가 되고 재미있겠다. 그렇게 하자.”

“오빠가 맘에 들어 할 줄 알았어. 난 평생 그 점괘를 잊지 못할 거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해 준 귀한 점신의 안내였으니까. 아마도 겨울이 지나고 나면 또 어디론가 날아갈 테니까 너무 오랜 시간을 기대하진 못해 나도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서 오빠의 지혜를 최대한 배우도록 할 거야. 부디 사양하지 말고 알려주기만 바랄 따름이야.”

흡사, 고백과도 같은 춘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창도 괜히 숙연해졌다. 이렇게 애절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런 말을 할까 싶어서 오히려 책임감이 크게 다가올 지경이었다.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기꺼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모두 나눠줘도 되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우창의 표정을 보던 춘매가 한마디 거들었다.

“아니, 오빠~!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그렇다고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진 말아~!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거야. 언제든 오고 싶을 적에 오고 가고 싶을 적에 가면 되니까 알았지? 주변 사람들에겐 집안 오빠라고 소개할게. 그래야 긴말이 없지. 편한 것이 좋으니까. 호호~!”

“그야 맘대로 하렴.”

“근데 오빠는 산명가라면서 내 사주도 물어보지 않는 거야? 사주를 봐서 공부할 그릇이 아니면 괜한 수고할 필요가 없을 텐데 그런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몰랐어? 원래 점쟁이는 점을 치지 않고, 침쟁이는 침을 뽑지 않으며, 검객은 칼을 꺼내지 않는 거야. 그리고 제비괘도 봤고, 뭐가 더 필요하지?”

“아니, 점은 점이고 사주는 사주잖아? 다른 선생은 대부분이 다짜고짜 사주부터 물어보던데 오빠는 사주를 볼 줄은 알지?”

“왜? 또 사기라도 당할까봐서 걱정되나?”

“의외라서 그러지, 그것도 좀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내 질문의 뜻은....”

“알아, 원래 하수(下手)는 모든 것을 사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거든. 그래서 사주만 묻는 거야. 다만 상수(上手)는 그런 것은 필요할 적에만 묻는 거야. 왜냐면 묻지 않아도 도처(到處)에서 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을 물어봐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아항~! 그러니까 하수는 사주밖에 볼 줄 모르고 상수는 사주 밖의 소식을 볼 줄 아니까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사주는 필요 없는 거네? 맞아?”

“옳지, 바로 그거야. 검객(劍客)은 칼을 뽑지 않지. 그러나 칼을 뽑게 되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말지.”

“아, 그 말은 들어 봤어. 겁많은 개가 제일 먼저 짖는다는 말이 그 말인 거지? 어쩐지 오빠는 다른 점쟁이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어. 아, 점쟁이라는 말은 그냥 보통 묶어서 그렇게 말하니까 다른 뜻은 없어.”

“점쟁이가 맞지. 하하하~!”

“그런가? 맞긴 맞는 거지? 호호호~!”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기분이 즐거워져서 한껏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