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제21장. 천하유람/ 8.곡부(曲阜)의 공자묘(孔子廟)

작성일
2020-04-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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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8] 제21장. 천하유람(天下遊覽)


 

8. 곡부(曲阜)의 공자묘(孔子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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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의 드넓은 평야도 지나고 크고 작은 마을도 지나면서 수시로 바뀌는 풍경을 즐기다가 날이 저물면 역참(驛站)에서 말도 쉬게 하고 관사(官司)에서 편안하게 대접을 받으면서 쉬면서 가다가 보니 저 멀리 웅장한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태산(泰山)이다. 문득 옛날 태산에서 공부하던 벗들의 잊고 있었던 얼굴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다들 잘 있을까?’

가장 먼저 낙안이 떠오르고, 이어서 백발도 생각이 났다. 문득 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어딘가에서 또 불쑥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더욱 반갑겠거니 했다. 아마도 그 시절의 행복했던 추억은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열정적인 벗들과 스승님들을 만났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간지의 이치에 조금이라도 깨달음이 있었음을 생각하니 문득 어제는 없다고 하던 도락 스승님의 가르침도 다 맞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미소를 지었다.

어느 사이에 곡부의 공자 사당인 공묘(孔廟) 앞에 도착했다. 해는 서산으로 막 넘어가려고 하는 시간이었다. 마차는 돌려보내고 느긋하게 주변의 풍광을 둘러봤다. 말 몇 마디로 인해서 이렇게 호강을 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인연들로 인해서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들을 겪게 될 것인지도 기대가 되었지만 우선 오늘 저녁에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이것은 나그네의 숙명(宿命)이다.

넓은 길을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하룻밤의 인연이 될 곳을 물색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이름이 보였다.

「동승빈관(東昇賓館)」

이름이 맘에 들었다. 동방에서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뜻일 것으로 짐작해 봤다.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이름이어서 더 호감이 갔다. 더구나 공자의 사당이 있는 공묘(孔廟)에서도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규모도 큰 것으로 봐서 이용자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해 봤다. 마침 입구에서는 손님을 불러들이는 아이가 행인들을 보면서 물색을 하다가 우창을 보고서는 반갑게 달려왔다.

“손님, 깨끗하고 따뜻한 방이 있어요. 편히 쉬어가세요.”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여러 가지인데, 이 아이는 그냥 담담하게 말한다. 치근거리는 것도 부담스러운 우창에게 이 아이가 하는 태도는 맘에 들었다. 그래서 말없이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 위층으로 올라가세요. 이쪽으로요.”

주머니가 두둑하니 마음도 호기(豪氣)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우창도 혈기왕성한 젊은 사내이니 당연하기도 했다. 있다가도 없는 돈이니 있을 적에 괜찮은 객잔에서 호사를 좀 부려봐도 좋을 것 같았다.

“선비님께서는 24호 방에 머무시면 되겠어요.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아이가 열어주는 방으로 들어가니 넓은 내부에 식탁이며 장식품들이 기품있게 배치되어 있어서 맘에 들었다. 원래 그러한 것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긴 여정에서는 어떤 곳에서 편히 쉬느냐에 따라서 다음날의 하루를 살아야 할 몸의 상태가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심할 수만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손님은 어디에서 오시는 길이세요?”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응, 제남에서 오는 길이지.”

“먼 길에 힘드시겠네요. 목욕부터 하시고요. 안마를 원하시면 말씀하세요. 피로를 풀어드릴 누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응? 어, 아, 그래...”

“아하하~! 재미있는 손님이시네요. 그럼 누나에게 반시진 후에 오라고 할 테니까 그사이에 푹 쉬세요.”

우창이 당황했던 것은 갑자기 자원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가끔은 여행길에 말동무도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문득문득 들어서였다. 그때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을 받아주던 자원이 생각났는데 아이가 갑자기 안마 이야기를 하는 말에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자신을 생각하면서 픽~ 웃었다. 기왕이면 자원이 같은 여인이었으면 말동무도 하고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정 둘이서 따끈한 물을 나무통에 가득 채워주고는 나갔다. 우창은 문을 잠그고는 물속에 몸을 담갔다. 피로한 여행자에겐 목욕으로 몸에게 봉사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이러한 형편이 안 되어서 생각도 못 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되었다. 문득 나그네의 형편을 잘 헤아려 준 제남의 소지민이 고마웠다. 어린 사람의 말이라고 내치지 않고 귀담아 들어준 것도 고마웠다. 그러니 자연 오행공부를 한 것이 고맙고, 그로 인해서 도락 스승님을 만난 것도 고마웠다. 아무리 지난 일은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뜨거운 물로 피로를 풀고는 빈관에 마련된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편안하게 누웠으니 나른함이 밀려왔다. 어렴풋이 들으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똑똑똑’

그제야 안마를 하러 온다던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얼른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니 젊은 낭자가 옷을 단정하게 입고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한다.

“소녀 춘매예요. 들어가도 되겠죠?”

“아, 예 들어오시오.”

우창이 떠올린 여인과는 다른 외모여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요염한 낭자가 다가와서 콧소리를 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했었기 때문이다. 수수해 보이는 외모에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예전에 들은 바로는 이런 곳에서 여행객을 상대로 춘색을 팔면서 살아가는 여인도 많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싶어서 안도했다.

“그럼 수고를 부탁합시다.”

“우선 발바닥 안마부터 할게요. 이리 침상 끝에 앉아서 여기에 발을 담그세요.”

우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사(豪奢)를 한다고 생각되었다. 낭자의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세든지 엄지발가락을 누를 적에는 비명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러자 낭자가 우창을 바라보면서 생긋 웃었다.

“손님은 생각이 너무 많으시네요. 생각을 비우시면 엄지발가락이 행복해 한답니다. 호호호~!”

“아니 그건 어떻게 안단 말이오?”

“손님이 글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우주를 찾으시듯이 춘매는 발바닥에서 몸속을 본답니다. 호호~!”

우창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많으면 엄지발가락이 고통스럽다니? 이건 또 무슨 이치란 말인가? 일단 말을 듣고 보니 다시 궁리가 초고속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건 무슨 이치로 그렇게 되는것이오?”

“이치요? 소녀는 그러한 것은 모르죠. 그냥 알 뿐이죠.”

입으로는 답을 하면서도 발바닥의 구석구석을 예민하게 후벼파듯이 누비고 다닌다. 어떤 곳은 시원하고 또 어떤 곳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그러한 곳은 더욱 힘을 주어서 눌러준다. 참 용케도 아픈 곳을 찾아내는 것이 신기했다. 발은 춘매에게 맡기고 습관적으로 생각을 훑었다.

‘그러니까 생각은 머리에서 하는 것이라면 엄지발가락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이것은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지면 끝이 되는데, 끝은 끝과 통한다는 이치를 적용시켜도 될까? 이러한 이치가 작용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다 되었어요. 이제 침상에 누우세요.”

춘매의 말소리에 생각에 골똘하던 우창이 정신을 차렸다. 시키는대로 누웠지만 생각은 다시 이어졌다.

‘그런데 몸을 들여다 보는 거울이라고 했잖은가? 그렇다면 비단 머리만이 아니라 온 몸의 오장육부(五臟六腑)도 모두 알 수가 있다는 말이잖은가? 그렇다면 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군. 이것은 확인을 해 보면 되겠지.’

“발바닥에서 특별히 안 좋은 곳은 어디입니까?”

“다 좋아요. 생각만 좀 줄이세요. 지금도 생각하고 계신거죠? 쉴 때는 다 맡겨놓고 쉬는 것이 좋아요. 자나깨나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심신에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아시잖아요?”

우창은 내심을 들킨 것 같아서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우창의 천성이라면 또한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 할 업이려니 해야 하지 싶었다.

“발바닥에서 온 몸의 상태를 알 수 있다면 손바닥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일까요? 아야~!”

말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것봐요. 머리를 만지니까 엄지발가락에서와 같은 반응이 오죠? 그래서 몸은 소우주(小宇宙)라고 하는 말이 참 맞다고 생각되기도 해요. 호호~!”

“오늘 춘매낭자를 만나서 비로소 내가 무엇에 치우쳐 있는지를 깨달았구려. 고맙소이다. 하하~!”

“손바닥에서는 알수가 있느냐고 하셨죠? 당연히 알 수가 있죠. 그것은 흡사 바닷물 한 방울이면 바닷물이 짠줄을 아는 것과 같으니까요. 만약에 발바닥만 집착하는 것도 편견이 될 수 있어요. 귀에서도 알 수 있고, 눈에서도 알수 있고, 모든 기관을 통해서 온 몸의 상황을 판단할 수가 있어야 진정한 안마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 참으로 심오한 말씀이오.”

“참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를 듣고서 심오하다고 하신 분은 손님이 처음이세요. 별게 다 심오하네요. 호호~!”

어느 사이에 우창의 마음을 읽었는지 스스럼없이 말을 받는다. 그렇게 몸을 맡기고서 생각을 비우기로 했다. 비로소 자신에게 단점은 생각이 많은 것이라는 것을 춘매가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엎드리세요.”

그렇게 또 반시진(半時辰:60분)이 흘러갔다. 전체적으로 한시진 정도의 안마를 해주는 것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문득 내일 공묘를 둘러 볼 생각이 들자 춘매에게 물었다.

“낭자는 곡부에서 오래 살았소?”

“여기에서 태어났으니 오래 살았다고 해야 하겠네요.”

“혹 내일 하루 나를 위해서 안내를 해 줄 수는 없겠나 싶어서 말이오.”

“그야 입구에 가시면 상냥한 낭자들이 줄을 서서 안내해 줄 거예요. 소녀는 소녀의 일만 할 따름이랍니다.”

“그렇긴 하오만, 이미 인연이 되었으니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낭자가 안내를 해 줬으면 싶어서 부탁하는 것이오.”

“그야 뭐, 품삯만 따져 주신다면 안 될 이유는 없죠. 호호~!”

“당연하지 않겠소. 그렇게 하리다.”

“그러시면 한가지 약속을 하셔야 되요. 아니면 안내하는 낭자들에게 물어뜯길 수도 있거든요.”

“무슨 약속이 필요하오?”

“소녀를 누이동생으로 대하시면 되는데 가능할까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리 하리다.”

“그럼 내일 사시초(巳時初:09시)에 여기로 모시러 올께요. 일찍 조반(朝飯)을 드시고 준비하시면 되겠어요.”

“고맙구려. 원래 내가 사람을 잘 못사귀는 통에 한번 사귀게 된 사람을 의지하는 면이 있나 싶소이다. 하하~!”

우창의 말에 답을 하는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총총히 떠나갔다. 평생에 처음으로 여인의 손길로 온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버리니 갑자기 나른해진 우창은 곧바로 잠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튿날

푹 자고 나서 묘시(卯時:05시)에 잠을 깬 우창은 빈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는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사방으로 펴질 즈음에 빈관을 나섰다. 그러자 예의 그 아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안녕하셨어요? 오늘도 묵으실 건가요?”

“아, 그래 덕분에 잘 쉬었구나. 오늘도 묵도록 방은 놔둬주게.”

“옙~! 잘 알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밖을 서성이면서 아직은 조용한 곡부의 아침 풍경을 둘러봤다. 대성인(大聖人) 공자의 고향이라서 찾아왔는데 오늘은 또 어떤 풍경을 보게 될 것인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더구나 춘매의 안내를 받으면서 둘러볼 생각을 하니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두배였다.

“아니, 왜 나와 계세요. 제가 늦었나요?”

“아, 춘매낭자. 그냥 바람쐬고 싶어서 나온 것이오. 잘 쉬셨소?”

“우선 오늘하루만은 말투를 바꾸셔야 하겠네요. 그렇게 어색한 말을 한다면 바로 들통이 나고 말거예요. 누이동생이 없으세요?”

“없소.”

“어쩐지, 그러셨구나. 그럼 이제 누이동생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세요. 어제 봤을 적에 오라버니가 그리 무례해 보이진 않아서 오늘 일정에도 없는 일일봉사를 나선 거니까요. 물론 무료봉사는 아니지만요. 호호~!”

“알았... ‘그래 알았다.’ 이럼 되겠소? 좀 어색하긴 하오만.”

“안 되겠어요. 너무 어색하잖아요. 제가 먼저 하대를 할게요.”

“그게 참 맘대로 안 돼서.”

우창이 어색하게 웃었다. 차라리 생면부지의 안내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아무나 쉽게 사귀지 못하는 버릇으로 인해서 이 정도의 수고는 달게 받아야 한다.

“그렇구나. 잘 알았다. 어서 둘러보러 가자.”

“잘하시면서. 호호~!”

“그럼 이제부터 안내원을 해봐라. 우선 공자님에 대해서부터 설명해줘.”

“그야 나보다 오빠가 더 잘 아실텐데 그것까지 설명하라시니 참 너무 하시네.”

“내가 설명하라는게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아니잖아? 이곳에서 들을 수가 있는 이야기면 모두 환영이야.”

“공자님의 이름이 뭔진 알지?”

“그야 알지, 공구(孔丘)잖아.”

“그럼 왜 구(丘)인지도 알겠네?”

“그야 짱구라서 구잖아.”

“옛? 아하하하~! 오빠도 참 재미있넹.”

폭소를 터뜨리는 춘매를 보니 우창도 긴장이 모두 풀렸다. 이렇기 때문에 아는 인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오늘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또 힘을 소모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의 팔자에 상관(傷官)도 하나 없어서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없는 상관을 어디에서 빌어 올 수도 없는 일인지라 그냥 적응하고 살기로 했는데 이런 경우에는 그 없는 상관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놀리지 말고 그 이유를 알려줘야지.”

“그것은 공자님이 태어나신 곳과 연관이 있어. 곡부에서 동남쪽으로 60여 리 떨어진 곳에 니산(尼山)이 있어. 원래 공자님이 태어날 적에는 니구산(尼丘山)이라고 불렀다네.”

“아, 그런 산도 있었어? 첨 듣네.”

“공자님의 모친께서 아들을 얻으려고 간절히 기도를 한 산인데, 그 산에는 석굴이 하나 있어.”

“석굴?”

“응, 그 석굴에서 기도를 했다고 해서 후에 부자동(夫子洞)으로 이름이 붙었는데 그 전엔 그냥 니구산 석실이었겠지?”

“아니, 곡부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다 알아?”

“당연하지. 곡부의 전설이고 존재감인데 그 정도는 기본이잖아?”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

“사실 곡부는 고대(古代) 춘추전국시대에 노(魯)나라의 수도(首都)였다던데. 역사에 대해선 글을 많이 읽은 오빠가 더 잘 알 테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공묘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방문자들로 붐비고 있었는데 단정하게 차려입은 안내하는 낭자들도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원하는 사람들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저마다 고유 번호가 있어서 그 순서대로 불려나가서 방문자들을 안내하는 구조였다.

우창은 이미 춘매와 동행을 하였으므로 여유롭게 둘러보고는 공묘로 들어섰다.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향나무며 전각들이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자태로 방문자를 맞는다. 새삼 경건(敬虔)해지는 것은 저절로 생기는 성인(聖人)에 대한 마음이기도 했다. 옆에서 안내원 낭자와 동행한 중년의 여성이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왜 공자님 이름이 공구라고 했소?”

우창은 당연히 안내원도 춘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 주려니 싶었다. 안내원의 답변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뭔 상관이겠어요. 옛날에 이름은 다 그래요. 언덕 하천 도랑 바위 등등처럼 말이죠. 아시겠죠?”

“아, 그렇구나. 잘 알았소이다.”

그 말을 듣다가 하마터면 그 안내원에게 ‘니구산에 대한 이야기는 못 들어 보셨소?’라고 말을 할뻔했다. 모르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알고 있는 것이 잘못 전달되는 것은 두고 보기 어려운 우창의 천성으로 인해서였다. 그러한 낌새를 재빠르게 알아 챈 춘매가 우창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자, 오빠는 우선 대성전(大成殿)을 참배해야지?”

“아, 응. 그래야지. 어디야?”

얼버무리는 것을 잘 못하는 우창이었지만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그러면서 안내를 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것도 아니라는 당연한 이치를 또 깨달았다. 공자의 업적을 모신 본전과 주변의 여러 전각들을 둘러보면서 한 사람의 뛰어난 지혜를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기념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구석구석에서 공문십철(孔門十哲)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끼워넣어주는 춘매의 넓은 상식으로 인해서 마치 그 시대에 공자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빠 배고프다. 밥 먹자.”

그러고 보니 시간이 벌써 오시가 되었는지 해가 중천이다. 그래서 춘매를 따라서 밖으로 나가서 가까운 식당으로 찾아들었다.

“공자가정식으로요~!”

“그건 또 뭐지?”

“공자님께서 생전에 늘 드셨다는 식단이라는데 안 봤으니 누가 알겠어? 그냥 이름이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한끼 해결하면 되지 뭘. 호호~!”

이내 밥상이 차려졌다. 제법 갖춘 밥상이었다. 통째로 찐 잉어도 있었다. 공자는 잉어를 좋아하셨단다. 오죽하면 아들의 이름이 잉어리(鯉)였을까 싶기도 하다.

“이건 잉어잖아?”

“맞아, 공자밥상에는 꼭 안 빠지고 들어가.”

“왜?”

“잉어찜을 무척 좋아하셨다지. 그래서 귀하게 얻은 아들도 잉어로 지었다던데 오빤 몰라?”

“알지. 혹 모르면 알려주려고 했더니 다 알고 있네. 하하~!”

“오빠~ 나 곡부 사람이야! 뭘로 보고. 호호호~!”

우창은 춘매의 매력에 점점 빠져 들었다. 생각보다 넓은 상식이며 민첩한 재치가 맘에 들었다. 이제 헤어져야 하는 것아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춘매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공림(孔林)도 가봐야지. 많이 돌아다녀야 하니까 든든하게 먹어.”

“공림은 또 뭐지? 다 본거 아니었어?”

“아직 반도 안 봤어. 공묘 안내원은 공묘만 안내하지만 춘매는 특별안내원이잖아.”

“그러고 보니 내가 춘매를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네.”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호호~!”

우창은 아침도 잘 먹었지만 다음의 일정을 위해서 배부르게 챙겨먹었다. 간이 조금 짭짤했지만 그것도 지역의 특색이려니 생각하고 다 먹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온 음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은 좀 아까웠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은 몸에 밴 먹거리에 대한 습성으로 인해서다. 항상 알뜰하게 먹을 만큼만 마련해서 먹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춘매가 그 맘을 헤아렸는지 한 마디 거든다.

“오빠, 너무 맘아파 하지 말아요. 돼지와 거위도 먹고 살아야지. 호호~!”

“아 그렇구나. 그 생각을 못했네. 하하~!”

“자, 다 드셨으면 또 가볼까요~! 공자님.”

“어? 공자님이라니 그건 또 뭔 소리야?”

“공자(孔子)님 말고 공자(公子)님,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