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17. 체용(體用)과 정신(精神)

작성일
2017-05-10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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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17. 체용(體用)과 정신(精神)

“그것은 인겁(印劫)이 식재관(食財官)보다 부족하여 약자(弱者)가 된 경우를 말하는 것이잖아요. 이러한 때에는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발휘할 힘이 부족한 것으로 보겠어요.”

“옳지~! 맞은 말이야.”

고월이 추임새를 넣어 주자 자원은 더욱 흥이 나서 말을 이었다.

“사주의 구조에서 인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봤을 적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려서 움직여야 한다고 봐요. 이것은 마치 배와 같다고 하겠어요.”

“배와 같다니 무슨 뜻이지?”

“물에 떠있는 배는 자신의 힘으로 출항(出港)이 가능하지만, 땅에 올려진 배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물로 들어갈 수가 있어요.”

“오호, 그래서?”

“가령 조수(潮水)의 차이로 썰물이 되어서 물이 빠지게 되면 물에 있었던 배도 땅에 놓이게 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렇겠지.”

“그러면 기다려야 해요. 다시 밀물이 되어서 배가 있는 곳까지 물이 와서 배가 떠오르게 되면 비로소 움직일 수가 있는 것과 같을 것으로 생각이 되거든요.”

“이것은 손(損)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게 관찰되는 뜻인걸.”

“달라도 많이 다르죠. 스스로는 움직일 수가 없다는 조건(條件)이 붙어 있으니까요.”

“그 도움의 손길을 운에서 들어오는 인성(印星)이나 비겁(比劫)이라고 보자는 이야기인 건가?”

“물론이에요. 그렇게 해서 물이 들어와서 배를 띄워주면 강자와 마찬가지로 고기를 잡으러 갈 수가 있는 거죠.”

“그것을 익(益)과 연결하면 어떻게 대입이 되나?”

“배에게는 물이 도와주는 것이 익(益)이고, 약자에겐 인겁이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강자는 항상 물 위에 배가 떠있는 것이라면, 약자는 밀물이 되어야 배를 띄울 수가 있다는 말이지?”

“맞아요~!”

“그렇다면 약자는 불리한 점이 많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겠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봐요.”

“어떤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말을 하는 거지?”

“약자도 도움이 필요하듯이, 강자도 기회가 필요한 것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오호~! 크게 본다면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란 말이군. 단지 손익에 대한 관계만 잘 이해하면 된다는 이야기인가?”

“맞아요. ‘요재(要在)’가 뭘 의미하겠어요? ‘중요한 것은 손익의 균형에 있다’는 말이잖아요?”

“과연, 자원의 공부는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고 또 깊어지는군.”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데, 공부가 진보를 하지 않고 가만히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제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봐요. 호호~!”

“그렇다면, 강자가 좋고, 약자가 나쁘다는 생각은 올바르지 못한 선입견(先入見)에 불과하다는 것이지?”

“물론이에요.”

“뭘 근거로 그렇게 확신(確信)하지?”

“그야 당연히 ‘득기중(得其中)이 있으니까요.”

“아하, 그걸 어떻게 해석했기에 그렇게 확신을 하는 건가?”

“사실 ‘득기중’의 뜻을 생각해 보면, ‘손(損)이나 익(益)이나 그것은 하나의 상황(狀況)에 불과하다’는 뜻이라고 봐야 하겠죠.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서 어떤 기준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냐는 관점이 중요하니까요.”

그 말에 우창이 감탄을 하면서 답변을 재촉했다.

“오호~! 자원에게서 그러한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걸. 어서 계속해봐.”

“진싸부의 격려에 더욱 힘이 나네요. 호호~!”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해 줘야지. 하하~!”

“원래 ‘중(中)’은 적중(的中)의 의미잖아요. 중도(中道)의 치우치지 않았다는 의미도 포함이 되지만, 과중(過重)한 것은 덜어내고, 부족(不足)한 것은 채워서 딱 중간에 저울의 바늘이 머물도록 하는 것이라고 봐요.”

“적중은 명중(命中)도 해당이 되겠군.”

고월의 말에 자원이 손뼉을 쳤다.

“와~! 짝짝짝~!”

“아니, 왜 그렇게 반가워하시나?”

“명중의 명(命)을 생각해 보니 참 오묘함이 느껴져서요.”

“왜? 무슨 생각이 들었다는 건가?”

“명(命)은 숙명(宿命)이고, 운명(運命)이잖아요. 그리고 명학(命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것이 적중(的中)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해 보니까 과연 사람의 운명은 사주팔자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겠어요.”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하겠는걸.”

“당연하죠. ‘숙명(宿命)에 적중(的中)한다.’는 것과, ‘왕명(王命)에 적중(的中)한다.’는 것은 의미심장(意味深長)하네요.”

“원래 명중은 과녁(貫革)의 한중간에 맞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과녁은 명(命)이 되고, 그곳에 날아가서 꽂히는 화살은 중(中)이 되어서 명중이라는 의미로군.”

“고인들의 생각이 그 두 글자에 담겨있다는 생각을 해 보니까 소름 돋아요.”

“그건 또 왜지?”

“명중이라는 말은, ‘화살의 운명은 과녁의 한 가운데에 가서 꽂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중앙에 맞았으니 과연 운명에 딱 들어맞는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도 겹치면서 오묘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군.”

“또 명(命)은 명령(命令)일 수도 있겠어요. 왕명(王命)과 같은 것이죠. 그것에 적중했다는 것이니까요.”

“오호~! 명령(命令)과, 왕명(王命)과, 운명(運命)은 서로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어 보이는걸.”

“생각하면 할수록 「정신(精神)」주기 내용이 자꾸만 확대되는 것 같아요.”

“이제 자원도 글자를 뜯어먹는 능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소식이라고 보면 되겠네.”

“특히, ‘손지익지득기중(損之益之得其中)’의 일곱 글자가 갖고 있는 뜻은 참으로 깊고도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연히 보이는 것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가 되지.”

“인간(人間) 세상(世上)의 모습도 그와 같지 않을까요?”

“무슨 모습?”

“무엇이든 지나치게 많아도 안 되고, 너무 부족해도 안 된다는 의미는 그대로 삶의 교훈(敎訓)으로 봐도 되겠어요.”

“그렇지만 인간이라면, 벼슬은 높을수록 좋고, 재물도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공통된 희망사항이 아닐까?”

“그렇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신(精神)편의 내용을 읽으면서 음미하니 그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배우게 되네요.”

“그렇다면 뭘 깨달았는지 설명해 보시게.”

“벼슬이 높으면 바람을 조심해야 하고, 재물이 많으면 도적을 경계해야 하는 것처럼 뭐든 적당한 것이 가장 좋다고 봐요.”

“자원의 말대로 그렇게만 산다면 도인이라고 하겠는걸.”

“아마도 경도 스승님님의 말씀이 그것인 것 같아요. 중용(中庸)을 생각하면서 ‘손익의 중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득기중’의 의미를 생각해 보니까 충분히 그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걸요.”

“그렇다면 ‘인간(人間)의 정신(精神)’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는 곳에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는데 임싸부의 생각은 어떠세요?”

“자원의 생각에 전적(全的)으로 동의(同意)하네. 멋지군.”

“앞의 체용(體用)과, 이 대목의 정신(精神)은 서로 음양으로 딱 맞아떨어져요. 자연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도 떠오르네요.”

“도(道)는 체용(體用)에 있고, 인(人)은 정신(精神)에 있다는 것은 체용이 정신이고 정신이 체용이라는 불가불리(不可不離)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도의 정신은 체용이고, 인의 체용은 정신이란 말도 가능할까?”

“그렇겠는걸요. 여기에서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의 핵심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아요.”

“어허~! 그런 것을 다 깨달았나?”

“자평학은 균형(均衡)과 조화(調和)에 있잖아요?”

“옳지~! 맞아.”

“조화(調和)는 부억(扶抑)을 조절(調節)하는 것이고, 손익(損益)은 균형(均衡)을 조절하여 중화(中和)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어요.”

“이 단순(單純)하고 명료(明瞭)해 보이는 두 구절에서 오행의 핵심에 해당하는 이치를 찾아내고야 말겠군.”

“누가 그랬어요.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짠 물인 줄을 아느냐?’고요.”

“그야 한 방울만 맛을 보면 알지.”

“맞아요. 체용편과 정신편의 단 두 구절에서 참으로 오행의 이치에 대한 것을 생각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대단한 통찰력(統察力)이라네.”

“임싸부의 말씀을 봐서는, 사주의 이치에서 부억(扶抑)을 깨달으면 상황에 따라서 손익(損益)의 방법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잖아요?”

“당연하지. 그것이 전부라고 봐도 과언(誇言)이 아니겠네.”

“정말 멋있는 말씀이시네요. 경도 스승님의 상큼하고도 깔끔한 가르침에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호호~!”

“자원이 글이 맛을 알고 있군.”

“멋진 사람을 보고 반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글을 보고서 그 사람의 품격에 빠져든다는 것은 이렇게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겠어요.”

그 말을 듣고 우창이 한마디 거들었다.

“오호~! 지금 자원이 그렇게 되었단 말이 아닌가? 축하할 일이네. 하하~!”

“또 있어요. ‘득기의(得其宜)’와 ‘득기중(得其中)’도 너무나 심오(深奧)하고 멋진 말이잖아요~!”

“체용에서는 그 옳음을 얻고, 정신에서는 그 핵심을 얻으라는 말이로군.”

“맞아요. 자칫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흘려버릴 수도 있었는데, 두 싸부님들의 가르침으로 이렇게도 깊은 이치가 그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져요. 감사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자원도 큰 부조(扶助)를 하고 있다는 것은 모르지?”

“옛? 제가요? 정말 그렇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무거운 짐이 하나 매달려 있는 것 같거든요. 호호~!”

“이렇게 쾌활(快活)하게 질문하는 가운데에서 우리가 놓쳤던 이치들이 또 드러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것도 알아 둬.”

자원은 우창의 말에 신명이 났다. 자신의 오죽잖은 생각이 도움이 된다니 그것은 더욱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그랬으면 이 은혜의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 갚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겠어요.”

“도반끼리 은혜랄 것이 뭐가 있나. 그냥 함께 가는 거야. 하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공부를 조금 얻은 것 같기는 하네요. 호호~!”

“당연하지. 한 만큼 얻게 되어 있는 것이 공부인 걸.”

“경도 스승님님은 오로지 오행(五行)의 생극(生剋)을 통해서 정도(正道)를 추구(追求)하고자 하셨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말에 고월이 답을 했다.

“아마도 그래야 올바른 명학(命學)이라는 기준이 있으셨던 것으로 보이네. 다만, 당시까지도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固定觀念)들과 싸우느라고 심신이 많이 힘드셨을 것이라는 짐작도 되네.”

“어떤 것이죠?”

“가령, 형상(形象)장이나 방국(方局)장과 같은 대목을 그대로 언급한 것에서는 이러한 연민(憐愍)도 생겨난단 말이지.”

“아하~! 그렇군요. 임싸부의 관점으로 봤을 적에는 논할 필요도 없고 논하지 않아야 할 내용이지만 당시의 추세(趨勢)를 어느 정도 수용(受容)하시느라고 그대로 언급했다는 거죠?”

“아마도 그러한 대목을 적으실 적에는 마음에서 계속 찜찜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본다네.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흐름상으로 언급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겠지.”

“정말요. 아마도 후대에 임싸부 같은 석학(碩學)이 나타나서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어루만져 줄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죠. 호호~!”

“글을 읽다가 보니까, 그 글을 쓴 마음도 어루만져지는 것 같더란 말이네. 참으로 문자로 소통이 된다는 이치는 새로운 경험이었네.”

“그렇겠어요. 그래서 직전제자(直傳弟子)는 아니라도, 서책제자(書冊弟子)도 또한 제자임이 분명하다고 하겠어요.”

“여하튼 자원의 깨달음이 체용과 정신에서 크게 한 소식 얻은 것으로 봐도 되겠으니 다음부터는 훨씬 활발한 궁리가 되겠군. 미리 축하하네. 하하~!”

“고마워요. 두 싸부님들 가르침으로 나날이 성장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고월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한 것으로 봐서 정신장을 마무리했다.

“그럼 체용과 정신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궁리하고 또 다음에 필요할 적마다 생각나면 함께 궁리를 해 보도록 하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 봐도 되겠지?”

“물론이죠. 사실 여기에서만 3박 4일을 놀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겠지만 다음의 놀이터에서는 또 어떤 놀잇감이 있을지 설레는걸요. 호호~!”

간결하지만 심오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 세 사람은 저마다 자신들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재촉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