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14. 용신(用神)과 적성(適性)

작성일
2017-05-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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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14. 용신(用神)과 적성(適性)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말했다.

“고월의 말을 생각해 보면, 운명학은 운명의 범주(範疇)에서 논하는 것이 옳겠고, 삶의 전체를 다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의미로 생각이 되는데 맞게 이해를 한 것인가?”

“내가 전해주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점이라네. 우창이 정확하게 핵심을 짚었네.”

“이렇게 심오한 이치를 고월이 혼자 깨달은 것인가?”

“아니네. 운산 스승님의 말씀에서 기본적인 골격을 얻었다고 봐야지.”

“역시 스승의 공덕은 태산이로군.”

“왜 아니겠나.”

“얼마나 많은 강호의 술사들은 모든 사람은 운명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고 살고 있는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데 이렇게 폭넓은 사유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은 고월의 연륜으로는 도저히 어렵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네.”

“나도 처음에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스승님을 의심했었지.”

“아니 왜요?”

궁금증을 못 참고 자원이 끼어들었다.

“그야, 스승님의 학문이 부족하거나 천성이 우둔해서 능히 간지로 운명을 완전하게 해석해야 함에도 그것이 안 되니까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였지.”

“과연 그럴 만도 했겠어요. 그것을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렸단 말씀인 거죠?”

“1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그 의미를 알겠더란 말이네. 그래서 스승님께서 그 말을 하게 된 것도 나를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네. 조급한 사람 같으면 스승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찾아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원래 내가 좀 둔하지 않은가. 하하~!”

“그 말은 인정할 수가 없네. 하하~!”

“저도 인정할 수 없어요. 호호호~!”

“이러한 이유로 해서 모든 학문과 모든 환경과 모든 노력이 어우러져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중에서 미리 알 수가 있는 것은 바로 명학이라는 이야기이니 열심히 공부하고 궁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군.”

“왜 아니겠나. 그래서 경도 스승님이 말하는 체용법의 용에 대해서 이해하면서 사주는 사주로 쓰고, 삶은 또 삶으로 대입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것이네.”

“과연, 놀라운 체용법이야. ‘부지억지(扶之抑之)’의 네 글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해야 할 화두(話頭)라고 해야 하겠지 싶네.”

“제대로 핵심(核心)을 짚었군.”

이야기가 엇길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던지 자원이 이야기의 방향을 돌리려고 한 마디 던졌다.

“다시 명학의 세계로 돌아가요. 두 싸부님들~!”

“아, 강자의 이야기를 하다 말고 엇길로 나갔던가?”

“맞아요. 임싸부도 가끔 샛길로 잘 나가신단 말에요. 물론 그 바람에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 생기는 것은 덤이죠. 그래서 아무래도 좋아요. 호호~!”

“강자의 사주에서 식재관(食財官)을 쓰는 우선순위를 생각해 봤네.”

고월이 한마디 하자, 우창이 반겼다.

“오호~! 그렇게 기준을 제시해 줘야 사주를 놓고 적용할 적에도, 나름 눈이 돌아갈 길을 찾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만리장천(萬里長天)을 방황하고 말겠지.”

“그래서, 우창 같은 학자에게 참고하라고 만들어 둔 방편(方便)이니 너무 맹신(盲信)하지는 말고 그냥 참고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네.”

“염려는 나중에 하고 어서 가르쳐 주시게.”

“이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희망사항(希望事項)을 반영(反映)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주에서 강자라고 판단이 된 사주에서는 최우선으로 식신(食神)이나 상관(傷官)을 찾게 되네.”

“그건 왜인지 이유가 있겠지?”

“스스로 길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 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욕망이라고 본 까닭이네.”

“그렇다면 식상(食傷)은 방법론(方法論)에서 우위(優位)를 점한단 말인가?”

“맞아, 식상은 자신의 길을 가려는 성향이 강한 까닭이지. 더구나 그것이 용신이라면 아마도 남의 아래에서 복종하는 삶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보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식상이 용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간 주변에 포진(布陣)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성향에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왜 아니겠나. 당연히 복종하는 마음보다는 스스로 능력을 발휘하려는 마음이 강하겠지.”

“그런데 약자가 되어서 그것이 용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가 주도하면서 벌여놓은 일들로 인해서 고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을 해야 하겠지.”

“아하, 그래서 용신이 아닌 십성은 권할 수가 없는 능력이 되는 것인가?”

“물론이네.”

“오호~!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맘대로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일을 벌이기 전에 먼저 물어보라는 말이 나온 것이기도 하네. 일을 저지른 다음에 물어보는 것이야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옳거니~! 이제 적성(適性)과 용신(用神)의 사이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확연(確然)히 알겠군.”

이야기가 깊어지자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자원이 불평을 터뜨렸다.

“진싸부~! 같이 깨달아야죠. 혼자만 아시면 어떻게요?”

“아, 자원은 이해를 못 하셨나?”

“무슨 말씀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다시 쉽게 설명해 주세요.”

자원의 말을 듣고 고월이 조금 더 풀어서 답을 했다.

“그것도 무리가 아니지.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명학의 고수들이 논하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 수준인데 자원에 이해한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해야 하겠네.”

“어머~! 그런 것이죠? 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인가 싶어서 상처를 받을 뻔했는데, 그래도 위로가 되네요. 호호~!”

“머리가 나쁘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용신에 대해서 이해를 한다는 것은 웬만한 학자의 5년 내공(內功)과 맞먹는다는 것을 내가 보증하지. 하하~!”

“그렇게 나요?”

“물론이지. 명서(命書) 30여 권은 읽고 난 다음에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인데 이렇게 겨우 간지를 이해한 수준에서 용신에 대해 접근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히 총명하지 않으면 불가한 것으로 봐야 하네.”

“알았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

그러자, 우창이 자신의 생각도 정리할 겸, 자원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해 줬다.

“자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적성과 용신의 관계인 거지?”

“맞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쏭달쏭해요.”

“내가 이해하기로는, 적성은 바탕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어. 어떤 사람은 검술은 잘 수련하지만, 글을 공부하는 것은 어렵고, 또 어떤 사람은 글을 보는 것은 쉬운데 검술은 진보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그 둘을 다 잘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죠?”

“자원을 두고 하는 말이로군. 하하~!”

“아니에요~! 그냥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호호~!”

“또 어떤 사람은 계산을 잘못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학문을 연구하는 데는 힘들어하지만, 돈이나 숫자를 계산할 적에는 칼같이 정확하게 찾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이것은 적성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맞아, 이것은 용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지. 그야말로 그 사람의 특성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용신을 모르는 상태에서 조언한다면 이러한 특성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살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가 있겠어요?”

“물론이지. 잘할 수가 있다는 것을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명학의 존재감(存在感)이 있다고 봐도 되겠군.”

“알았어요. 그러니까 잘할 수가 있는 것은 사주에서 찾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네요. 그쵸?”

“이것은 심리분석(心理分析)을 할 수가 있는 명학의 공덕(功德)이지.”

“기왕이면 잘할 수가 있는 것을 찾아주고, 못하는 것은 노력으로 개선(改善)을 하면 되겠네요.”

“아,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고 봐.”

“그게 뭐죠?”

“못하는 것을 개선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하고 싶군.”

“예? 원래 못 하는 것은 노력해서 발전시켜야 되잖아요?”

“그야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지.”

“명학자는 그런 조언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자원의 생각으로는, 가령 말을 참으로 못하는 사람이 노력을 무지무지하게 된다면 말을 잘할 수가 있다고 하겠나?”

“왜 안 되겠어요? 노력하면 된다고 봐요.”

“물론 가능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또 하나의 희망고문(希望拷問)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단 말이야.”

“정말요? 그러한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너무 사주의 판단대로 사람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이것이야말로 운명학의 영역에서 할 수가 있는 최선(最善)의 판단이라고 봐야 할 것으로 생각해.”

“명학에서만 할 수가 있는 특별한 능력이란 말씀이세요?”

“당연하지. 환경에서도 불가능하고, 노력에서도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봐야 하겠으니까 말이야.”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환경에서도 적성은 영향을 받을 것 같은데요?”

고월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영향은 어디에서나 받겠지. 가령 부모가 대장장이라면 자녀도 그러한 것을 항상 보면서 자란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기술을 익힐 가능성이 많으니까.”

“아, 기술의 대물림을 말씀하시는 거죠?”

“항상 보고 듣는 것이 그것이라면 그 방면으로 어려서부터 학습효과(學習效果)가 나올 것이므로 환경의 영향이라고 해도 되겠지.”

“그 봐요. 진싸부도 인정하시잖아요?”

“문제는 그러한 자녀 중에서도 도저히 적응하지 못해서 집을 떠나는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지.”

“맞아요. 그건 일리가 있네요. 그러한 것은 환경에서도 포용(包容)이 안 된단 말씀이네요?”

비로소 자원이 정리된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우창이 말했다.

“그래서 환경보다 우선하는 것이 팔자의 적성이라는 이야기라네.”

“알았어요. 적성을 본다는 것은 명학이 갖고 있는 매우 특별한 능력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이러한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인생을 한 30년 살아보고 난 다음에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명학은 사주를 적어놓는 순간 바로 알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봐야지.”

“아까 임싸부의 이야기를 듣고서 명학에 대한 공부에서 얻을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진싸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다시 매력이 철철 넘치는 명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러한 마음은 갈대라고 해야 할까 봐요. 호호~!”

우창도 마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고월은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명학도 그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보는 폭넓은 관점이고, 나는 아는 것이 명학뿐인지라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군. 하하~!”

“알았어요. 너무 겸양(謙讓)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하튼 이러한 적성으로 세상을 살면 되는데 용신과 연결해서 봐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해 주실 건가요?”

“적성은 하나지만 작용은 둘이라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되지.”

“적성은 하나인데 작용은 둘이면, 하나에서 둘이 나왔다는 것이네요. 뭔가 있어 보이는데요?”

“맞아, 적성의 음양이라고나 할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역시 음양은 만고의 진리예요.”

“여기에서의 양(陽)은 긍정적(肯定的)인 작용이고, 음(陰)은 부정적(否定的)인 작용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거야.”

“아하~! 뭔가 알 것 같아요.”

“어디 말해 봐.”

“그 적성이 용신이면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아니면 부정적인 작용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정확하게 핵심을 짚었군.”

“그러니까, 예를 들면 거래하는 수단이 좋은 사람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용신이면 수단을 바탕으로 삼아서 좋은 결과를 얻어서 부자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이 용신을 공격하는 기신(忌神)이면 구설(口舌)과 시비(是非)에 휘말려서 고통을 당할 수가 있다는 것으로 보면 되겠죠?”

“뭐,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겠군.”

“이제 이해가 되었어요. 적성과 용신의 사이에는 그러한 비밀이 있었군요.”

“뭐, 비밀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용신을 모르면 결국은 그 작용의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은 확실(確實)하지.”

“이제 임싸부의 가르침에 대해서 정리가 되었어요.”

그러자, 고월도 흡족한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자원이 이해를 잘한 것을 보니까 체용에 대한 공부는 잘 마쳤다고 해도 되겠는걸.”

“왜, 경도 스승님이 이렇게도 체용에 대해서 심오한 의미를 담아 놓았는지를 비로소 알았어요. 핵심은 ‘부지억지(扶之抑之)’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어요.”

 

“학자들 간에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과,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지만, 경도 스승님의 이 가르침이야말로 명학의 핵심이라고 봐도 틀림없을 것이라고 믿어도 될 것이네.”

“더구나, 그러한 의미를 해박한 임싸부의 탁견(卓見)으로 풀어주시니 날개를 얻은 것 같아요.”

“잘 이해하고 열심히 공부하니 고맙달 수밖에. 하하~!”

자원도 어느 정도 용신의 이치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