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동지의 소경

작성일
2021-12-23 09:2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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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동지의 소경(小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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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전날의 풍경이다. 내일 동참하는 불자들에게 담아 줄 죽그릇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에도 마주 앉아서 점심을 나눠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내년 동지에는 함께 할 수가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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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남행(南行)하는 마지막 날의 해가 저물었구나. 동지는 22일 0시 57분이란다. 내일 저녁에는 또 그만큼 북행을 시작하는 태양이 기울어 가겠고.... 여하튼 우리는 천동설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또 새삼스럽게 떠올리면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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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저녁에는 팥칼국수를 해 줄까?
낭월 : 그것 참 좋지~!

콩이든 팥이든 낭월은 대 환영이다. 하늘콩이든 땅콩이든 가리지 않으니까. 아, 배트콩만 빼고 말이다. 썰렁~!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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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무도 도우러 오지 못한단다. 예전에는 연지님 동생들이 바쁜 일정에도 잠시 짬을 내어서 나들이삼아 동참을 했는데 십여일 전에 코로나 감염자와 함께 했다는 이유로 모두 외출금지를 당한 까닭이란다. 알게 모르게 코로나의 피해는 산골까지 스며들고 있는 모양이다. 낭월도 예외일 수가 없어서 방문자들의 일정을 모두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2회에 걸친 PCR검사에 음성으로 나와서 해방은 되었지만서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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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으면 보통은 일과가 끝나지만 오늘은 예외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바쳐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열 사람이 모이면 열 배로 일이 수월하지만, 세 사람이 모여도 일은 진행되기 마련이다. 방앗간에서 빻아온 쌀가루를 보면서 오늘의 일임을 직감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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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심을 비벼놓고 자야 내일 일이 원활해지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것도 연례행사이다. 그래서 열심히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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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심을 비비는 것도 재미있다. 거칠게 뜯어 놓은 반죽을 손으로 동글동글하게 비비다가 보면 원만해지는 모습에서 태초의 지구가 지금의 지구로 변해가는 과정도 이렇게 진행이 되었겠거니 싶은 생각도 언뜻 해 보면서. 제주도에서 오름 주변에 널려있는 화산탄도 떠오른다. 그래서 지루할 겨를이 없다. 상상은 상상을 낳으면서 우주를 유영하니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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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찰삼란(一擦三卵)이다. 아직은 낭월만 갖고 있는 감로사의 타이틀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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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죽솥을 저었다. 작년에는 잘못 해서 바닥이 살짝 눌어붙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팥의 앙금이 바닥에 가라앉으면 타서 불내가 날 수가 있는데 올해는 완전한 죽을 만들기 위해서 낭월도 한 부조 했다. 유감스럽게도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항상 낭월이라는 점이다. 죽을 젓는 증거가 불충분하단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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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심이 익으면 위로 동동 떠오른다. 밖에서도 끓이고 안에서도 끓인다. 넉넉하게 담아드리기 위해서는 조금 더 바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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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젓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불이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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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준비되었고, 나눠 담을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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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죽은 만점이다. 눌어붙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 해의 마무리도 이와 같이 잘 되기만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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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손일 줄을 미리 알고 마을에 사는 불자님이 서둘러 오셔서 죽을 담는 일을 맡아주시니 또한 감사하지. 이렇게 해서 신축년의 동짓날은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감로사는 적막해진다. 아니, 찻물 끓는 소리가 방안을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