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9

작성일
2020-02-21 08:51
조회
653

응답하라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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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추억은 있기 마련이고,
그 중에는 자랑을 하고 싶은 것도 있을 게다.
어쩌면 감추고 싶었던 것이 있을테지....
문득 폴더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이 타임머신이 되기도 한다.

진상역원은 한자로 眞相易院이다.
진상(眞相)은 중노릇 잘 하라고 경봉노사님께서 주신 법명이다.
그 진상에다가 역원(易院)을 붙이게 되어서 죄송했다.
그럼에도 뜻이 좋아서 그냥 쓴다고 우겼다.

「참모습을 찾아가는 역학원」

'철학원'이라고 쓰는 것이 상투적이라서 싫었다.
그래서 역학원이라고 했지만 그것도 옳진 않다.

대한불교 법수암(法水庵)은 희망사항이다.
'법'은 소리오행으로 水가 되고, '수'는 金이 된다.
이름에 금수를 넣으면 행여 도움이 있으려나..... 싶은 염원이다.
기왕이면 물이 토에게는 재물이니 그 글자를 택했다.
앞으로 안정이 되면 암자를 하나 지으려고 꿈을 꿨다.
그 꿈이 언제 이뤄질 것인지는 기약이 없었다.
1989는 기사년(己巳年)이다. 최악에 가까운 해이다.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냥 경험이나 쌓으면 다행이려니 했다.
그 법수암이 세월이 흘러서 감로사(甘露寺)가 되었다.
감로사를 지을 적에는 법수암은 잊었는데 문득 보니 뭔가 필연성? ㅎㅎ

고물상에서 얻어 온 철판에 페인트로 쓴 간판이다.
간판을 하나 만들려고 한다니까 측은해 보였던지 그냥 줬다.
철판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함석조각이었던 셈이다.
테두리에 각목을 붙이니 그런대로 바람에 견딜만 해 보였다.

사주, 궁합, 각종택일, 참 상투적이다.
업종선택과 시기, 할 말도 어지간히 없었던 모양이다.
정, 경, 예능, 인문... 적성과 성공도, 참 큰 그물도 쳤다.
이성문제, 성격, 지위, 재력, 아직도 잘 모르는 영역을... ㅋㅋ
연구생지도(개인,그룹) 그래 가르치는 건 그런대로 뭐...

「법수포교원」

앞으로 암자를 만들면 법수암이 될 것이므로
지금은 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주객이 전도되었다.
절이 먼저 있고, 그 절의 포교원이 있는게 원칙이니...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왠지 안심부적 하나 지닌 듯 하여...
절밥을 먹은 사람이 상담을 해 준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히란야」

정삼각을 겹쳐놓은 부호를 그렇게 부른다.
명상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운데는 '옴'자를 넣었다. 기도하면 뜻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기도야 할 만큼 했으니 그래도 되지 싶었다.

「ESP」

석정보웅 선생의 단체에서 사용하는 부호이다.
최후의초염력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돈을 좀 썼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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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관심을 가졌었고, 회원도 되었다.
녹음테잎도 구입해서 늘상 틀어놨다. 운이 좋아진단다. 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종교단체였던가 싶기도 하다.
없는 돈에 거금 20만원을 들여서 구입한 테이프였다.
또한 삶의 한 자락에 묻어있는 지난 시절의 풍경이라고 해야지...

「운명철학연구원」

'연구'소리는 참 많이도 썼다.
연구만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보였을 수도 있겠다.
먹고 살 연구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ㅋㅋㅋ

이렇게 많은 그물을 쳤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꾸역꾸역 오겠지?
참으로 절박한 시절에 10개월에 100만원을 주고 얻은
낭월명리학당의 역사상 최초의 상담실이다.
간판집에 가서 물어보긴 했다. 엄청난 비용에 그냥 돌아섰고,
남의 가게를 보고서 비슷한 재료를 찾아서 대구를 뒤졌다.
선팅지를 사다가 이렇게 만들어 붙이고는 기념사진 한 장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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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그러니까 1989년도에 머물렀던 집이다. 월세 3만원이었던가.... 가물가물....
그로부터 10년 후에 갓바위를 다녀오는 길에 사진 한 장 남기려고 들렸다.
그러니까 10년 전에 살았던 곳의 풍경이 궁금했었던 모양이다.
다시 찾은 그 날은 2010년 12월이다. 감회가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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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은 논이다. 아직도 논이군...

"그 시절이 생각나나?"

낭월이 물었다. 미소만 짓는 연지님....
추억을 회상하는 마음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참 힘들었던 시절이었을테니....

쌀이 떨어졌지..... 싶으면 반야월에 살던 도반이 다녀갔다.
쌀자루를 던져주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친구.
마치 활빈당처럼... 그렇게 해서 연명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가장의 나이 33세에 살았던 풍경치고는 참 어설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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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당시 엄마 뱃속에 있었을 금휘가 기억할리 없지....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싶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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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축하해요~!"

화인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 준다.
그 시절에 어떻게 살았을지에 대한 상상이 되나 보다.

이렇게 다시 2020년의 벽두에서 잠시 뒤를 돌아다 본다.
그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산다. 그것이 삶이다.

행여, 사주를 배워서 먹고 살려고 하는, 또 그래야만 하는...
어쩌면 낭월의 제자님들도 포함해서 학자님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실은, 어제 저녁에 상담실 운영이 힘들어서 알바를 한다는..
그래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제자가 있어서
문득 그 시절의 풍경을 떠올려 본 것이기도 하다.

'그냥, 살다가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고....

초심을 잃지 않고 오늘만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그러다가 보면, 또 오가면서 깨달을 것도 많을테니
그 과정에서 삶은 점차로 무르익어 갈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