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합작한 작품들

작성일
2019-08-18 06:5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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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합작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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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시원해진 틈을 타서 산책길에 나섰다. 항상 동행하는 친구는 카메라. 오늘은 24mm렌즈를 데리고 가야 겠다. 90mm매크로 렌즈로 미세하게 들여다 보는 것보다는 넓은 풍경이나 담아보려는 생각에서였다. 발걸음이 멈추는 곳은 봄에 가꿔놓은 밭이다. 아무래도 공을 들인 만큼의 애착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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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통은 참으로 왕성한 세력으로 주변을 장악하고 있다. 크기는 따먹어도 될 것 같지만 아직도 결실은 멀었다.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주머니만 키우고 있다. 주머니가 크면 내용물도 큰 것이 담기리라고 보는 것은, 자연은 결코 낭비를 하지 않는 까닭이다. 커다란 주머니에 작은 열매가 들었다면 그것은 자연의 의도를 충분히 따라주지 못한 또 다른 요인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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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조롱박이 달렸다. 비가 와서 못와보고, 너무 뜨거워서 못와본 사이에도 여름이랑 합작을 한 조롱박은 이렇게도 많은 결실을 키워가고 있음이 신기해서 모기가 달려드는 것도 잊고 그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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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들이 모두 결실이 될지는 아직도 모른다. 많은 시간이 남았고, 그 시간의 사이에서 어떤 공간적인 환경이 개입할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이대로만 간다면 가을에는 큰 솥에 박을 삶을 수가 있는 날도 올 것이라는 기대감은 가져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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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만 달린 것도 아니다. 이렇게 옆에서도 줄줄이 매달려서 나름대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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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면 손길이 간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지 않으면 손길도 가지 않는다. 세상의 삼라만상이 이 테두리 안에 있음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과연~!

'과연(果然)'을 떠올리면 문득 태산 만댕이의 강희 황제가 썼다는 과연이 떠오른다. 여행은 그래서 항상 풍요로운 경험창고를 키우게 된다. 또 여행을 가야 하는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고,
마음에서 멀어지면 손길도 멈춘다.

조롱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식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고 했는데, 날씨 땜에 돌보지 못했어도 잘만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농부의 책임감에서 나온 말임을 알겠다. '식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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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도 예쁘다. 여름은 이렇게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구나. 인간이야 더워서 선풍기 앞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아도 식물은 그 열기를 받아서 이렇게도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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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손길을 보낸다. 행여라도 여주의 몸에 어떤 상처라도 남길까 봐서 조심조심 끄트머리만 살짝 만져본다. 그리고 사진으로 크기를 참고하기 위해서 기준점이 되는 목적은 덤이다. 따다 먹어도 되겠는데, 연지님은 붉게 익기를 기다리잔다. 갈아서 먹으면 익은 것이 맛있단다 그러니까 연지님은 쓴 맛은 별로 안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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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진작부터 달려있었던 여주가 생각나서 얼른 그 자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아뿔싸~!'이다. 폭염이 지나가면서 여주도 허물어버리고 지나갔구나. 그래서 다시 본래의 온 곳, 뿌리로 돌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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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흔적에는 또 다른 생명체들이 자리를 잡고 번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결코 자연은 무엇하나 버리는 것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구나. 하얀 곰팡이들이 잘 익은 여주의 감로수를 빨아들이고 있는 모습조차도 아름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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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여주도 자신의 몫을 다 하고, 땅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아직 피부의 조직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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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려도 좀 둘러 봤어야 하는데.... 땡볕이 내리쏟아져도 잠시 둘러봤어야 하는데... 그 달콤쌉싸름한 여주의 맛을 보지 못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낸 것은 약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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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는 무슨 뜻이 있어서 피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인간은 피부가 매끈하기를 열망하건만 넌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냐? 그것이 궁금하다.

낭월 : 연지야! 밭에 가봤더니 여주가 다 물러서 떨어졌더라.
연지 : 그래? 그럼 씨앗을 얻을 수가 있겠네.

역시 연지님은 농부, 낭월은 건달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마디로군. 낭월은 그 맛을 생각하는데 연지님은 그 씨앗을 내년 봄에 심을 생각을 하니 과연 누가 도에 가까운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연지님은 내일을 살고 낭월은 오늘을 산다'고 애둘러 얼버무린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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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내 모종해서 물줘서 키운 들깨도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서 눈길을 돌려 본 곳에는 또 다른 사연이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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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돼지의 흔적이다. 여기에선 먹을 것을 찾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목욕을 한 모양이구나. 돼지의 목욕은 몸에 붙은 기생충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했지 싶다. 물기가 포함된 곳은 여기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 장면을 찍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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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마리의 흔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밤에 텐트를 치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장면을 찍을 마음은 없다. 꼭 돼지를 봐야 하나 뭐. 흔적만 봐도 그 그림을 상상할 수가 있으니까 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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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농부가 품종을 선택할 때는 여지가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들깨이다. 들깨는 돼지도 노루도 고라니도 토끼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그 독특한 향은 오직 인간만 좋아하는 까닭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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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카메라를 품에 넣고 뛰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비가 내리는 장면을 놓치면 아깝다. 그래서 후다닥 들어가서 우산을 받쳐들고 다시 뛰어 나온다. 비는 이내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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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