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이 막히면 덕유산

작성일
2022-02-20 17:22
조회
527

노고단이 막히면 덕유산


(2021년 12월 11일에 있었던 해묵은 이야기)


de20220220-12

몇 달 전 부터 연지님 자매들이 계획을 세웠다. 지리산을 가보고 싶단다. 여기의 지리산은 당연히 천왕봉을 의미한다. 다들 엄두도 못 내다가 나이가 더 들면 언제 가보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천왕봉을 가기로 한 일정이 12월 11일이었고, 그 일정표대로 계획을 세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de20220220-01

낭월은 커피를 준비했다. 가면서 마실 꺼리로 커피가 꽤 괜찮기 때문이다. 넉넉하게 내려서 여럿이 한잔을 마셔도 되게 끔 준비했다. 코로나 정황인지라 2차까지 맞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도 조심하는 것으로 하고서 일정을 잡았다.

de20220220-02

오랜만의 나들이에 흥겨운 모양이다. 열심히 단장을 한다. 그래봐야 로션이나 바르는 것이 전부지만서도. 여하튼 준비를 했다.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de20220220-04

그런데, 일정은 그대로인데 목적지에 변경이 되었다. 전날에서야 백신주사를 맞은 후유증으로 두어 명이 아무래도 천왕봉은 어렵다는 의견을 접수해서 그렇다면 누구라도 갈 수가 있는 지리산 코스로 노고단을 급하게 결정했던 셈이다. 그래도 지리산은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노고단도 지리산의 한 코스임을 확인한 절충안이었다. 낭월은 여러 차례 가봤으나 아직 처음인 일행도 있어서 겸사겸사 수용을 했다. 그렇게 하고서 계획대로 06시에 감로사에서 출발을 했다.

de20220220-08

안산쪽에서 내려오던 일행과 여산휴게소에서 만났다.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뜨끈한 국물도 나눠 마시면서 오늘의 나들이에 무사하기를 빌었다. 노고단으로 가려면 화엄사IC로 나가서 올라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 코스이다. 그렇게 방향을 잡았다.

de20220220-11

완주 순천 고속도로로 들어가면서 차들의 속도가 뚝 떨어졌다. 극심한 새벽 안개로 인해서였다.

de20220220-13

벌써 재작년인가 보구나.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겨울을 나고 있다는 말에 나섰다가 폭설에 난감했던 그 길이다. 그날 사매2터널에서 대형 사고가 났던 그 시간의 언저리에 지나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악천후를 만나면 그와 연관된 불길한 기억이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de20220220-15

다행히 구례화엄사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여전히 안개는 극심하다. 여기에서 노고단은 금방이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서 폰의 네비에 찍힌 경로를 따라서 직진했다.

de20220220-16

네비가 직진하라는데 나는 지리산으로 가려면 우회전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네비가 아무래도 안개 속이라 미쳤나보다 했다. 그래서 다시 네비를 보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부득이 지도에서 노고단만 찾았다. 길찾기로 하면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통에 슬며시 열이 오르기도 했다.

"일마가 와이카노~~~!!!"

Screenshot_20211215-190834_KakaoMap

자꾸만 뭐가 떠서 취소를 눌렀다. 지금 목적지 외에는 다른 정보는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그 의미를 알았다.

「도착지 근처에 유고정보가 있어서 길안내를 할 수 없습니다.」 

이게 뭐 해먹는 소리지.....? 이런 정보는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사고라도 생겼나..... 성삼재까지 가야 하는데 이게 뭔 소리야.... 일행들은 낭월만 믿고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데 후퇴를 모르는 낭월은 그대로 정보를 무시하고 앞으로만 직진을 외쳤다.

de20220220-17

겨우 천은사까지 도착을 했다. 08시 27분이니까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 뭔가 불길한 조짐이 보였다. 그러면서 순간 퍼뜩 떠오르는 그 불길한 메시지였다. 아마도 앞에 무슨 사고가 생긴 모양이라고 여겼다.

de20220220-18

길이 막혔다. 차랑통행제한이란다. 적설과 노면결빙으로 차량통행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성삼재를 오르는 길이 이렇게 막힌다는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갑자기 눈이라도 내렸나보다 했다. 그래서 또 바쁘게 마리를 굴렸다.

성삼재까지는 9km였고, 걸어가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아무도 걸어서 갈 마음은 없어 보였다. 성삼재까지 걷고 다시 노고단까지 간다는 것에 대해서 낭월도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도 했다.

"반대쪽으로 가자~!!"

20220220_161649

천은사에서 안 되면 정령치로 해서 가면 되지 뭘. 원래 낭월은 항상 무사태평이다. 어떻게든 모처럼 큰 맘을 먹고 길을 나섰는데 성삼재에 차를 대고 노고단을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따름이다. 가던 길을 돌려서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일행은 길에 관한 한은 낭월을 부처나 예수보다 더 믿는 경향이 있다. ㅋㅋㅋ

de20220220-19

안개는 여전히 길을 내리 누르고 있었고, 그 길을 뚫고 계속해서 정령치를 향해서 다가갔다. 여전히 희희낙락이다. 멋진 설경이 있었으면 좋겠고, 사진을 찍을 생각으로 흐뭇한 순간들을 누리면서.....

Screenshot_20211215-190953_KakaoMap

정령치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을 다시 검색했을 때도 같은 메시지를 만났다. 그제야 확연하게 감이 왔다. 이렇게 느려터진 감각으로 용케도 밥을 벌어 먹고 살았구나. 이건 지가 잘나서가 아님이 확실하다. 부처님 덕분이겠거니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고. 쯧쯧~!

20220220_162537

긴급회의를 하기 전에 다음 코스를 찾아야 했다. 그제서야 정령치에서 천은사까지 차량통행은 겨우내내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이렇게 멀쩡히 다니는 도로를 겨우 내내 그러니까 12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 장장 4개월이나 차량통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고 해야 할랑강..... 쯧쯧

동서 : 아니, 내가 껴서 못 가는 건가 싶기도 하구 말이여.
낭월 : 그건 또 무슨 말이고?
동서 : 아니, 생전 첨으로 비행기 타고 중국갔다가 상해 공항에서 되돌아 왔잖유~
낭월 : 참, 그랬네. 그래서 강원도 구경했구나. 
동서 : 오늘두 평생 처음 지리산을 좀 가보겠다는데 말이유.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고 웃었다. 당시에 코로나가 중국의 우한에서 번지면서 도로가 차단되었다는 것을 상하이 푸동 공항에 도착해서야 알았고, 그래서 공항에서 중국요리를 사 먹고는 걸음을 되돌려야만 했던 슬픈 추억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때 여행 경비의 일부는 아직도 다 받지 못했지 아마. ㅎㅎ

de20220220-20

일행은 가이드의 심사는 안중에도 없다. 어디든 데려다만 주면 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가장 덜 고생할 코스를 제안했다. 덕유산이다. 곤돌라가 연신 오르내리는 곳이라면 모두 무사히 다녀올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일행들은 마냥 즐거워서 희희낙락이다. 어쩌면 다행이려나..... ㅎㅎㅎ

de20220220-21

장수에서 빵을 샀다. 가면서 먹으면 된단다. 그럭저럭 시간도 11시가 다가오니 그것도 좋지 싶어서 길가의 빵집에서 먹을 것을 샀다.

de20220220-22

"가자! 덕유산으로~~!!"

낭월 : 퍼떡 예약해라. 오늘 좀 복잡하지 싶다.
화인 : 뭘 예약해요?
낭월 : 곤돌라 말이지 뭘. 줄이 좀 길겠나.
화인 : 아, 맞아요. 잊고 있었어요. 바로 예약할게요.

de20220220-23

장수에서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다.

de20220220-25

"왼쪽~~!!"

무주로 가야 하니까.

de20220220-26

덕유산 휴게소에서 급한 일들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de20220220-29

호랑이 등에 올라앉은 두꺼비의 두런거림이 들렸다.

"에고! 이 화상아 미리미리 좀 알아보고 댕길 일이지 그래."

"뭘? 난 다 잊었는데?"

그렇게 겨우 내내 길을 막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지 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었다.

de20220220-30

아무리 내탓이 아니라고 해도 그 정도는 조사를 했어야 한다는 자책을 하다가 보니 어느 사이 덕유산이다. 그래 이제 뒤는 돌아보지 말기로.

'그캐봐야 마카 씰떼 엄따 아이가!!'

de20220220-32

가봐야 가는 것이다. 지리산으로 가던 발길이 덕유산으로 향하는 것도 길손에게는 항상 있는 일이다. 다들 좋단다. 어디든 데려다 주기만 하면 만족하는 일행들이다. ㅎㅎ

de20220220-34

입구의 색다른 산속의 번화한 풍경이 의외였던가보다. 그렇다면 그것도 구경꺼리기는 하다. 아무렴. 뭐든 재미있으면 되지. 암~!!

de20220220-35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편하면 남도 편한 법이고, 그래서 덕유산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그래도 차를 알아서 대라고 해 놓고는 화인과 매표소로 내달렸다. 어물어물하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깝기 때문이다.

de20220220-37

미리 예약을 한 사람과 예약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눈다. 차에서 후다닥 불과 한 시간 전에 예약을 한 것도 예약이라서 약간의 우선권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더 기~인 줄에 서야만 했을 텐데 말이다. 마스크를 다시 눌러 쓰고 대기열에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de20220220-42

다들 신났구나. 눈놀이에 푹 빠진 모습들이지만 스키를 타봤으면 싶은 생각은 1도 없다. 곤돌라만 타면 될 일이다. 모두 화장실 다녀오라고 하고 잠시 기다렸다.

de20220220-44

인증샷도 하나 남기고. 기다리는 김에 사진이라도 찍어야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이렇게 붙잡기도 하는 것이니까.

 

de20220220-52

동서들도 찍어주고. 봐하니 오른쪽 코스는 경사가 더 심한 것으로 봐서 고급자들 용인가 싶었다.

de20220220-53

차에 아이젠도 챙겼는데 덕유산에는 필요가 없지 싶어서 그냥 뒀는데 그것도 챙겼어야 했다. 지난 다음에 생각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de20220220-55

시간은 12시 03분. 이제 곤돌라 타는 줄만 서면 된다.

de20220220-54

줄은 줄기 마련이다. 더 길어지는 않으니까. 다만 인내심이 필요할 뿐이다.

de20220220-63

차례가 오면 탄다.

de20220220-64

무서운 사람이나 안 무서운 사람이나 도착하는 곳은 같다. ㅎㅎㅎ

de20220220-65

리프트도 부지런히 스키어들을 실어 나른다.

de20220220-70

남들이 노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de20220220-79

낭월 : 향적봉 갔다 올래?
화인 : 아뇨, 이러다가 자빠지면 큰일나요.
낭월 : 그래 잘 생각했다. 나도 안 갈란다.
화인 : 그럼 여기에서 놀아요. 갈 사람은 다녀오라고 하고요.

de20220220-84

생각을 못했는데 눈이 잔뜩 쌓여 있구나. 한라산의 웃세오름을 가느라고 샀던 아이젠도 안 가져왔으니 위험한 데는 가지 않는 것이 호신술이라고 배웠겠다.... 그래서 그냥 놀기로 했다. 그 사이에 일행은 향적봉을 다녀 온다고 출발했다.

de20220220-81

안개가 도로에서는 웬수더니 여기에서는 멋진 연출을 해 주는 구나. 옛날 신선도를 보는 듯한 풍경을 만났으니 오늘도 수지가 맞은 날인 걸로 해도 되겠다.

de20220220-87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지리산? 여하튼 남한에서는 높으면 지리산이니까. ㅋㅋㅋ

de20220220-89

덕유산의 상징이기도 하고, 설천봉의 상징이기도 한 팔각정이다. 해발 1,520m에 있는 멋진 풍경이다. 언제라도 여기에 오면 본전 생각은 나지 않았는데 오늘도 실망시키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는구나. 고맙군.

de20220220-91

아이젠도 빌려준다는구나. 그걸 몰랐네. 그래도 돈 1만원을 더 쓰고 싶지는 않아서 못 본 채 했다.

de20220220-96

이 팔각정의 이름이 상제루였구나. 무슨 뜻이지? 상제루(上帝樓)겠지. 옥황상제가 산책나와서 휴식하면서 조망하는 곳인 걸로 이름을 지어 놓으면 된다. 중국 산동성의 태산 꼭대기에는 옥황정(玉皇頂)이 있는데 여기는 상제루니까 태산의 옥황상제가 바람 쐬러 나오는 걸로 대충 까이꺼~!

de20220220-97

모두 풍경에 취했다. 멋진 절경은 누가 봐도 멋진 것이 틀림없지. 암.

de20220220-98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압권이다. 이러한 풍경은 음양으로 본다면 동정법(動靜法)에 해당하겠지. 산은 정하니 음이고, 구름은 동하니 양이겠군. 그런데 저 뿌연 것은 구름일까? 아니면 안개일까? 구름과 안개의 차이가 뭘꼬? 아마도 바라보면 구름이고 함께 하면 안개겠지? 뭐 다르겠어? ㅋㅋㅋ

de20220220-104

채 녹지 않은 눈 무더기와 함께 따사로운 햇살을 만나는 시간이 좋다.

de20220220-105

그러는 사이에 향적봉에 갔던 일행들이 돌아왔다. 사진이나 첨부하자. ㅎㅎ

de20220220-106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줄이 길더란다. 어디나 마찬가지겠거니....

de20220220-112

화인은 어깨회전근을 조심하라고 했다면서 어깨끈을 열심히 띠고 있다. 그래도 영상은 찍느라고 분주하다. 이렇게 찍은 영상은 삼명TV에서 라이브방송 안내영상으로 써먹었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다. ㅎㅎ

 

헐출하니 뭘 사먹자고 해서. 지짐이와 막걸리를 주문했다. 오댕도 좋지. 이렇게 요기하면서 나들이의 즐거움을 누리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저마다 만족감 한 보따리씩 가슴에 품었나보다. 다행이다. 노고단보다 더 좋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야말로 전화위복(轉化爲福)? 다행이군. ㅎㅎ

de20220220-131

줄이 상당히 길군. 이제 다 놀았으니 가야지.

de20220220-132

질서정연하게 하행길에 오른다.

de20220220-138

저마다 놓치기 아까운 풍경들을 담느라고 여념이 없다.

de20220220-142

이제 어디로 갈꺼 냔다. 이대로 집으로 간다는 말은 도저히 못하겠구나. 그래서 또 열심히 염두를 굴린다. 데굴데굴데데굴~~~~

"어죽 먹으러 갈래? 1시간 거리인데~!"

반대가 있을 턱이 없다. 어죽과 도리뱅뱅이는 모두가 좋아하는 한 끼 식사다. 금산의 원골식당으로 내달렸다.

de20220220-143

한 시간 걸린다고 하면 대략 그만큼 걸린다. 원골식당에서 더덕막걸리에 도리뱅뱅이를 먹고 또 어죽으로 배를 채우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de20220221-01

그렇게 해서 또 하루를 모두가 만족스럽게 보낼 수가 있었다. 함께 해서 즐겁고, 모두 건강해서 감사하고, 동행하며 합심하니 또 흐뭇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