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70) 어승생악

작성일
2021-06-2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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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제주반달(70) [19일(추가3일)째 : 5월 27일(목)/ 1화]


어승생악(御乘生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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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종일 비가 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비가 그쳤구나. 새벽에 잠을 깨고 보니 그냥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에는 좀이 쑤셔서 슬슬 장비를 챙겨서 짊어지고 나섰다.

연지 : 어데 갈라고?
낭월 : 과오름이 코앞이더라. 가보고 오꾸마.
연지 : 날도 개운찮은데 조심해요.
낭월 : 그래 문제가 생기면 전화 하마 되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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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히 보이는 과오름을 어제 지나가는 길에 봐 뒀었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뭐든 미리 해보지 않으면 착오가 생기기 마련이다. 직접 가는 길이 없었더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괜히 밭구석으로 비가 내려서 질척거리는 길을 헤매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서 걸었다. 그리고 어느 고인의 산소 앞에서 자리를 펴고는 혼자놀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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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가방과 삼각대 둘을 짊어지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을 나섰던 것은 노을이 서서히 물드는 한라산을 저 멀리 전경으로 삼고 주변의 오름을 사이에 두고 새벽의 안개가 서서히 피어오르는 풍경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상대로 안 되더라도 상쾌한 새벽의 공기는 만끽할 수가 있을 테니까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인 게고. 그러나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고, 해도 비치지 않았다.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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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을 그렇게 놀다가 힘들어서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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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히 내려다 보이는 숙소와 연지님이 차를 끌고 주차장을 나서는 것을 내려다 보면서 짐을 챙겼다. 오늘 새벽 놀이는 여기까지로 하고 아침을 먹어야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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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면서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또 한 장 담았다. 인부들이 벌써부터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유리창틀을 쌓아놓는 것으로 봐서 전면은 모두 유리로 벽을 꾸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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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와 새벽 안개에 젖은 병솔나무 꽃들에 맺힌 이슬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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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기는 영롱한데 사진으로 담으면 또 그 맛이 안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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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오늘은 숙제를 해야 합니다.
낭월 : 무슨 숙제가 있단 말이고?
화인 : 꼭 가서 밥 한 번 먹어줘야 한다는 식당이....
낭월 : 식당이야 지나다가 시간이 되면 먹지 뭘.
화인 : 꼭 가줘야 한다고 찬조금도 받았어요.
낭월 : 찬조금? 얼마나?
화인 : 30만원요. 그러니까 안 가면 곤란하단 말이에요.
낭월 : 그건 왜 받았어~! 거리적거리구로.
화인 : 그냥 통장으로 쏜 것을 워째요. 돌려주면 서운타고...
낭월 : 뭐, 까이꺼 어데고?
화인 : 남원이래요.
낭월 : 아니, 동쪽으로는 안 가려고 애월에 잡았더니.
화인 : 맘대도 안 되는게 인생이라매요.
낭월 : 어떤 정신 나간놈이 그카더노?
화인 : (낭월을 가리키며) 요 놈이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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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는 길에 어승생악이나 둘러보자고 방향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길을 나서고 보니까 새별오름이 언뜻 스쳐간다. 그렇다면 새별오름의 풍경이나 담고 가자고 차를 돌렸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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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로 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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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혹시나 하고서 삼각대를 세웠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1.안개가 가득한 새별오름에 이름만 보인다.
2.갑자기 일진광풍이 휘몰아 치면서 안개가 요동한다.
3.잠시 후에 새별오름이 안개 속에 서서히 자태를 드러낸다.
4.그렇게 모습을 나타낸 초록의 새별오름이 웅장하다.
5.그 중간에 선녀의 천의같은 백운이 한가닥 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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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끝났다. 이제 결과만 여기에 맞춰주면 된다. 이렇게 안개 속에 잠긴 새별오름이 그 자태를 드러낼 적에 아마도 하늘음악이 장중하게 들릴게다.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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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선녀 대신 연지님이 등장하신다. 매우 불길한 예감이 감돈다. 이런 상황에서 차에 앉아있다가 내린다면 보나마나....

연지 : 더 있을라고?
낭월 : 그래 한 시간만 기다려 보꾸마.
연지 : 틀렸어. 어서 챙겨요~!
낭월 : 그게 아니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은 삼각대를 접고 있는 낭월. 하얀 승용차가 옆에서 멈추고 두 여인이 내리더니 낭월에게 묻는다.

여인 : 저, 새별오름이 어디에요?
낭월 : 여기가 새별오름입니다.
여인 : (두리번거리면서) 여기가요?
낭월 : 아니, 저 앞이 새별오름이지요.
여인 : 그런데 오름이 없네요.
낭월 : 있기는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가시면 나옵니다.

잠시 서로 바라보던 중년의 두 여인은 다시 차를 타고 돌렸다. 안개 속의 새별오름을 오를 엄두는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잘 생각하셨지 뭘. 가봐야 아무 것도 안 보일테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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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재촉했다. 비록 여기는 안개 속이지만 가다가 보면 안개도 벗어질 것이고, 오히려 위에 올라가면 아래가 안개바다로 변한다면 그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미소 미소 또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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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안개속이다. 계속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내달린다. 그래도 좋기만 하다. 운해(雲海)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어승생악의 운해라니. 오호~! 설렘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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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목(御里牧)이 나타난다. 어리목에서 갈라지는 것으로 지도에 나와있으니 그대로 갈라져서 들어가면 되겠구나. 중문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방향을 꺾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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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악 입구가 다 와가는 모양이구나. 뉴스에서 보면 어리목에 입산이 폭설로 통제되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목적을 갖고서 찾으니까 어리목은 어승생악으로 오르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겠군. 뭐든 시절인연이 되어야 보이는 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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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안개가 자욱하구나. 이것은 운해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조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지.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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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어리목에도 발자국을 남기는구나. 주차장에 차를 대기를 기다려서 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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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안 나오면 시원해서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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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위치를 좀 파악하고.... 어승생악탐방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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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몇 시간이나 걸어야 되는 거야? 멀면 안 갈래.
낭월 : 왜?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을 혀.
연지 : 날씨도 비가 오게 생겼잖아.
낭월 : 걱정말어 30분이 걸리는 거리니까.
연지 :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거지?
낭월 : 난들 아나 여기 그렇게 써 있으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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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챙겨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 희미하게 석비가 보인다. 그렇다면 그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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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이란다. 좋지~! 그런데 분위기가 영 낯설다. 이곳으로 어승생악을 가는 것이 맞나 싶어서 다시 걸음을 멈추고 두러번 두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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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한 남자가 앞에서 내려오기에 다가가서 물었다.

낭월 : 실례합니다. 어승생악으로 가는 길입니까?
행인 : 웃세오름으로 가는 등산로입니다.
낭월 : 그렇다면 어승생악의 길은 이 길이 아니군요.
행인 :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낭월 : 아, 예. 고맙습니다.
행인 : 즐거운 산행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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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 : 참말로 30분만 걸어가면 됩니까?
낭월 : 그렇다네. 다행이지?
호연 : 한 시간까지는 괜찮습니다. 
낭월 : 나도 의외구먼. 그 정도는 예상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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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안개비가 내리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얼마 안 된다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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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었구나. 그대로 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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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으로 봐서는 길은 꽤 힘들어 보이기도 하네. 그래도 한걸음씩 옮기다 보면 정상이겠거니. 그리고 정상에 오르면 다랑쉬 오름처럼 멋진 분화구를 만날 수가 있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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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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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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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오를 뿐이었다.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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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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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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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에 행복해 하는 녀석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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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도 잘 만들어 놨다. 그대로 오르기만 하면 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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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 : 날도 궂은데 말라꼬 가시능교?
낭월 : 너는 또 줄타고 어덜로 가노?
달팽 : 외줄타기 안 하능교.
낭월 : 재미있나?
달팽 : 날이 꿉꿉하니 기가 막힙니데이~
낭월 : 참 다행이네. 잘 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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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움직이는 녀석을 한참이나 지켜봤다. 그래봐야 십여 초였겠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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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의 냉해가 조릿대에 흔적을 남기고 간 모양이다.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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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 길이 아니어서 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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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가파른 길도 없지는 않다. 그게 산이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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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숲을 벗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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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설장비라도 담아두는 곳인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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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진지였구나. 이 높은 곳까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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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악 정상이란다. 바람이 꽤 분다. 바람이 불면 안개가 걷힐 수도 있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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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 09시 38분에 관리소를 지나서 10시 15분에 정상이니까... 40분이 채 안 걸렸구나. 천천히 와서 그런 모양이다. 옆에서는 한 무리의 관광객을 상대로 중년의 어르신이 어승생악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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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은 일리무중(一里霧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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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이고,
큰두레왓이고,
장구목이고,
윗세오름이고,
만세동산까지도 모두가 안개 속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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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사부님, 워쪄요? 뵈는게 없네요.
낭월 : 뭐가 문제고 또 오마 되지.
화인 : 그럼 맑은 날에 또 와요.
낭월 : 그러자꾸나. 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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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은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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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는 제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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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날이 맑으면 다시 와서 둘러보면 되겠다. 오늘은 운해를 보는 날이 아닌 모양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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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는 그만두고, 백록담도 그만두고, 바로 옆의 어승생악 분화구도 안 보이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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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해발표시 어플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해발 1,169m라는데 어플에서는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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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은 1,164m로 나오는 걸. 그렇다면 약 5m의 오차가 생기네. 그래서 표시마다 해발표시가 다르게 나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네. 백두산의 높이도 북한과 중국과 한국이 다 다른 것을 보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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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30분만 더 기다려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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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추워서 명당자리를 찾아서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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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같으면사 그래도 되지 뭘.

연지 : 가방 지고 간다. 나온나.
낭월 : 쪼~매만 더 있어보면 안 될까?
연지 : 고마 가자.
낭월 : 으...응.... 그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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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라는 말이 안 나온 것은 이미 낭월도 오늘은 틀렸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말없이 일어났다. 다음을 위해서 오늘은 크게 양보하는 거다. 양보하는 자가 이기는 자임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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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 사진셔터 봉사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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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은 원래 빠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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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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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가기 어울하니 관리소나 들어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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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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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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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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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겨울이 벽에 사진으로 붙어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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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사슴이 뛰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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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이야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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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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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지도를 한 폭 담았구나. 그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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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들을 잘 모아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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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도 모르긴 하지만, 또 다음에 관심이 생기면 살펴 볼 씨앗은 심어놔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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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걸 몰랐네. 지금 현재의 어승생악 정상에 대한 실시간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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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안개 속이로구나. 내려오길 잘 했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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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 : 사부님, 다음에는 올라가기 전에 여기에서 미리 보고 가요.
낭월 : 그래야 하겠다. 진작에 몰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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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소를 나오니까 앞산에 안개가 바람따라 요동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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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오늘은 여기까지 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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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어승생악을 잘 둘러 봤구나. 두어 시간의 산행이었으니 그만하면 잘 놀았다고 해도 되지 싶다. 맑은 날에 다시 찾아올 여운을 남기고서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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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주차장이 한산하구나.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