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2) 성산일출봉

작성일
2021-04-03 06:44
조회
519

제주반달(2) [1일째 3월 8일 /1화]


성산일출봉으로 시작하는 제주살이.


08 (1)

서귀포의 첫 새벽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광치기해변에서 일출봉을 보는 것.
일출봉은 올라가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일출봉은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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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47km인데, 소요시간은 1시간 17분이라니.... 육지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네비가 알려주는 시간은 대체로 잘 맞아떨어졌다. 아무리 달리려고 해도 환경이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은 대략 그 시간에 도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08 (4)

연지님은 모범적으로 운전을 한다. 그래서 아무리 차가 없어도 정지신호에는 멈춰야만 했다. 사진쟁이의 바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진을 보정하면서 반드시 날짜와 시간을 넣는 이유는 풍경사진 여행가에게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낭월이다. 그 자리에 찾게 된 날은 어느 계절이며 시간대는 또 언제인지를 알게 된다면 누군가 여행을 계획할 마음이 생겨서 낭월의 여행기를 참고하여 자신의 여행에 대해서 일정을 잡을 적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는 정보를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이다. 낭월의 생각이 이러므로 타인도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약간이나마 보정을 한 사진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할 적에는 포토윅스에서 촬영정보롤 최대한으로 넣는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 대신에 낭월의 이름은 넣지 않는다. 그것도 멋이 있어 보여서 해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멋이 없고 귀찮기도 해서이다. 대신에 이렇게 정확한 촬영의 정보가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냥 보여주는 사진도 좋지만, 뭔가 필요한 정보를 함께 전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도 있다. 사진이 특별히 뛰어나다면 사진만 보여줘도 되겠지만 변변치 못한 취미생활로 시작한 사진은 언제 봐도 장 그 모양이다. 그러니 정보라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그나마 수고롭게 사진을 검색한 인연에 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있다.

'그날, 그 시간에 본 그곳의 풍경은 이렇더라'

그러니까 혹 그곳으로 사진여행을 갈 요량이라면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이야기이다. 풍경이란, 계절 따라 다르고, 요일 따라 다르고, 더구나 시간 따라서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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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광치기에서 일출사진을 찍는다기에 일출봉을 더 크게 담고 싶어서 광치기중간으로 목적지를 삼았다. 일출봉은 올라갈 마음도 없었지만, 휴식제가 적용되어서 출입 금지 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은 정보를 봐서 알았다. 용눈이오름과 함께 문이 닫혔다고 했으니...

08 (5)

잘 가고 있다. 조수석에 앉아서 깜깜한 밖을 본다고 해봐야 보이는 것은 바뀌는 신호등뿐이다. 이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멍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다. 오늘은 일출이 몇 시 인지를 알아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어플을 부지런히 찾아보는 것도 사진여행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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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박명이 5시 58분이다. 이보다 늦으면 마음이 바빠진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기를 희망하지만 도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늦어도 시민박명인 6시 27분이 되기 전에 모든 준비가 마쳐지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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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것도 없는데 이런 사진을 뭐 하러 찍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낭월은 이 또한 정보라고 생각한다. 필요 없으면 그냥 휘리릭 넘기면 그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낭월 자신이기도 하고. ㅎㅎ

08 (7)

어쨌든 늦기 전에 도착했다. 늦기전이라기 보다는 시간을 맞춰서 도착했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광치기에서 광치기중간은 거리가 좀 있을 줄로 알았는데 이내 성상일출봉주차장이 나와서 순간 당황했다. 지나쳤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차를 돌려서 겨우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입구를 찾았다. 낮이라면 일출봉을 보면서 대략 위치를 파악했으련만 깜깜한 중에 안내등도 켜지지 않았으니 그냥 지나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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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상상했는데 그것이 이뤄진 순간이다. 그래서 또 마음은 세상을 다 가진양하다. 그야말로 부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날씨도 포근하다. 논산에 살다가 남쪽으로 와서 느끼는 위도의 변화일 수도 있겠군. 준비한 대로 카메라를 설정했다.

한 대는 타임랩스로 설정하고, 또 한 대는 장노출을 찍으려고 설정했다. 사진기행에 올라갈 사진은 장노출로 찍은 사진이 될 것이다. 타임랩스는 나중에 필요하면 만들어서 적당하게 쓰면 된다. 이야기를 하는 데는 타임랩스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찍어 놓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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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5일의 새벽 그믐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그렇다면 달도 찍어 줘야지. 예전에 절의 인연으로 만났던 스님께서 낭월에게 당호를 지어주셨다. 효산(曉山)이었다. 새벽에 어둠을 헤치고 밝아오는 산처럼 멋지게 세상을 밝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라고 하셨다. 물론 고맙지. 그 풍경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그 호를 보면서 혼자만의 씁쓰레한 마음이 생길밖에.

벗님도 생각해 보시라. 낭월(朗月)에게 효산(曉山)이라니. 쩝쩝~~!
왜냐고 물으시는 벗님을 위해서 살짝 귀띔을 해 드린다면.
밝은 달은 새벽이 되면 빛을 잃는다. 새벽의 산에 있는 달은 곧 사라지고 말 테니.
그래서 그 호는 감로사의 종에만 써넣는 것으로 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따로 놓으면 멋진 호도 궁합이 맞지 않으면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궁합은 이렇게 남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스님은 모르셨지 싶다.  아니, 미리 아호가 낭월이라고 알려 드릴 것을 그랬나....?ㅎㅎ

08 (3)

항해박명이 시작되었다. 수평선에 약간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해 놓고서는 제자들과 노닥거리는 카페에 소식을 전할 사진은 폰으로 찍는다. 꼭두새벽에 깜깜한 바닷가에서 뭘 하느냐고 연지님이 묻지만 낭월은 미소만 지을 따름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이 시시각각으로 지나가면서 풍경이 변화하는데 이러한 장면을 낭월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는 것까지는 모를 게다. ㅋㅋㅋ

08 (9)

하늘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실제보다 조금 더 밝게 보일 것이다. 왜냐면 30분의 1초로 설정하고 찍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마냥 깜깜한 풍경만 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잖으냔 말이다. 그런데 30초로 찍으면 새벽의 어슴푸레한 풍경이 그럴싸하게 보인다는 매력을 알고 나서는 새벽잠과 사진은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것으로 공식화했다. 이 시간에 이렇게 해변을 서성이면서 풍경과 조우할 수가 있음에 무한감동과 감사를 겸한다. 몸에게 감사하고 자연에게 감동하고 연지님께 감복한다.

08 (11)

렌즈는 소니12-24GM이다. 이 렌즈를 장만하기 위해서 쌓여있던 렌즈들과 카메라도 처분했다. 특히 작정하고 장만했던. 소니24mm 1.4GM을 처분할 적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12-24의 24mm주변이 그만 못하지 않다는 말만 믿고서 모두 처분했다. 그렇게 해서 장만한 렌즈인데 결과물로 보답해 준다. 렌즈만 믿고서 조리개를 2.8로 활짝 열었다. 이 상쾌함이라니. 사진꾼들만 알 수가 있는 쾌감일 게다. ㅎㅎㅎ

08 (15)

그럭저럭 시민박명의 시간인데..... 하늘의 그림이 일출을 보긴 어렵게 생겼다. 하늘이 보여주는 만큼만 보면 된다. 구름을 원망하면 운신(雲神)이 서운해하시니까. 비록 사진에는 일출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타임랩스에스는 드라마틱한 구름의 흐름이 담길 테니까 전혀 안타깝지 않다. 보여주는 대로만 함께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까닭이다.

옆에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하늘을 보던 중년의 남성이 궁시렁거리면서 삼각대를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니까' 그는 구름이 만들어 주는 멋진 풍경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야말로 바다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과 그 빛에 물드는 바다의 모습을 상상하고 왔을 게다. 그렇게 상상에 갇히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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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샷이다. 날이 밝으니 파도가 같이 놀아달란다. 그래서 또 같이 놀았다. 바다, 구름, 산, 섬, 갈매기까지 모두 다 있다. 카메라도 있고, 순간의 기쁨이 잔잔하게 배어 나온다.

08 (20)

2.5초로 찍으면 부풀어 오르는 바다를 만나게 된다. 동정(動靜)음양이다. 일출봉은 음이고, 바닷물은 양이다. 우뚝하게 그 자리에 있으니 파도가 일렁이는 것과 잘도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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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2분 전이지만, 오늘의 일출은 잊어버리면 된다. 이러한 풍경도 성산일출봉이니까. 물결과 모래알이 노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사람도 호흡을 하듯이 자연도 호흡을 한다. 밀려오는 파도는 날숨이고, 빨려가는 파도는 들숨이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싱겁다. 그래서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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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새벽빛으로 물이 들었다. 드라마틱한 구름이 흘러가고 그 사이로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이 비상한다. 멋진 아침이다. 여기에 마침 유채꽃 한 무더기가 양념으로 출연하니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이 시기가 아니면 담을 수가 없는 일출봉의 풍경이지 않느냔 말이다. 기껏해야 1년 중에서 며칠 정도만 피어있을 유채꽃과 함께 일출봉을 담았으니 이것도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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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조금 밝게 보정했다. 아직은 빛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앞으로 튀어나올듯하다. 사진놀이의 즐거움은 디지털암실에서 다시 한번 되살아난다. 사진을 찍을 적에 느낌도 좋지만 내가 보고 싶었던 꿈을 라이트룸에서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마음에는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 카메라는 할 수가 없지만 라이트룸은 그것이 가능하도록 해 준다. 그래서 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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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일출봉의 대비가 또 재미있다. 마치 일출봉의 실루엣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이 사진은 카페에 올리려고 폰으로 찍었다. 그래도 카메라로 한 장쯤 찍어놨어도 좋을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 봐야 소용이 없다. 그 자리에서 게으름을 부린 탓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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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과 잠시 놀았다. 열심히 일을 하고 늘그막에 휴양을 나온 모습이다. 풀이나 뜯으면서 바닷바람과 함께 아침을 맞는 말을 보면서, 노후를 여유롭게 보내는 낭월의 나중 모습과도 겹친다. 실로 가끔은 안면도 어디쯤에 작은 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도처에 펜션이며 모텔이 가득하기 때문에 집은 없어도 되겠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맘에 드는 곳으로 가서 편안하게 머물 수가 있는 공간으로 넘쳐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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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람처럼 나타난 그림도 사진놀이의 재미이다. 누군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등장하여 텅 빈 화면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손가락이 바빠진다. 셔터속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사람과 말의 그림을 담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달리는 말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가 돈을 내고 모델로 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노력을 할 따름이다. 그렇게 해서 320분의 1초로 겨우 담은 사진이다. 동작이 굼뜬 탓이다. 셔터가 더 빨랐어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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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선물처럼 제주도와 어울리는 말을 탄 사람이 담긴 사진을 얻었다. 그래서 또 즐거울 따름이다. 그럭저럭 오늘 아침의 놀이는 끝나가는 시간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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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놓인 꽃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뭐지? 궁금하면 가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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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성산읍희생자위령비

아, 맞다. 제주도에는 '4.3사건'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만 들었었지. 이제야 이것이 눈에 들어오다니 그동안에는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거나 잘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려니 싶었다. 이제 일출봉과는 다 놀았으니 제주도의 역사와 조우를 해 봐야겠다. 누군가 놓은 꽃바구니의 꽃이 시들지 않은 것으로 봐서 어제 아니면 그제 정도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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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을 보면 앞도 보고 뒤도 봐야 한다. 앞은 얼굴이고 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들여다보니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성산리, 오조리, 시흥리, 고성리, 수산리, 온평리, 난산리, 신산리, 삼달리, 신풍리, 신천리에서도 한 분이 희생되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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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 1일에 만세운동하러 관덕정에 모였던 일로 시작되었더란다. 경찰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6세 아이를 말이 치었는데 뒤처리를 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이 도화선이었다는 군. 그런데 왜 이름이 4.3인가 싶어서 또 자료를 찾아보니까 그 문제가 참았던 사람들의 속을 끓게 만들었다가 이듬해인 1948년 4월 3일에 주민을 살해하는 일로 폭발이 되어버려서 붙은 이름이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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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어떻고, 미군정이 어떻고, 친일파가 어떻고, 서북청년단이 어떻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를 일이다. 기록한 사람에 따라서 내용은 판이하게 달라서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속절없이 생명을 바쳐야 했던 중산간의 사람들이며, 동굴에 숨었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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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억울했을 것이며, 얼마나 분했을 것이며, 얼마나 두려웠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도 오랜 시간을 숨도 크게 못 쉬고서 보낸 70여 년의 세월들까지 포함해서 겪어야 했던 것만은 좌우를 떠나서 현실적인 상황이었을 테니....

비석이 하고 싶은 말을 다시 살펴본다. 사진을 찍을 때는 읽을 수가 없어서 대략 훑어보고는 이렇게 정리하여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사진기행을 쓰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을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벗님도 너무 바쁘지 않으시다면 잠시 마우스를 놓고 함께 이 비석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도 좋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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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싶다. 터진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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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이었구나. 터진목에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었구나...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그렇게 슬픈 제주도의 사연을 뒤로 덮고 다시 또 산 사람은 살아가는 모양이다. 문득 떠오른다.

제주도가 삼다도(三多島)라고 했지.

돌이 많은 것은 화산섬이라서 그렇고
바람이 많은 것은 바다 가운데 있어서 그렇고
여인이 많은 것은..... 

몰랐다. 세상은 음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어쩐 일로 제주도에는 여인이 많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4.3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서야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남정네는 모두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동굴을 파느라고 노동하고 힘이 다하면 죽어서 바다에 던져졌을 것이고, 또 군인들과 싸우고 경찰들과 싸우느라고 모두 죽어버렸으니 그나마도 남은 사람은 여인네들 뿐이었겠다는 것도 역사를 알아야 이해가 되는 셈이다.

조물주는 음양의 균형을 맞춰서 태어나게 했건만 어쩐 일인지 여인만 남게 되었더라는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고기를 잡으러 가서 모두 돌아오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얼마나 한가로운 생각을 했었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그렇게 해서 베이비붐이 일어나게 되었고, 다시 환생하면서 죽어버린 남성을 채우기 위해서 낳으면 아들이었고 또 낳으면 손자였겠지.... 인간의 야욕에 조물주도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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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목 옆에 유채꽃이 만발이다. 제주도에 유채꽃이 많은 것도 붉은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서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문득 든다. 그나마 제주4.3사건의 특별법이 2021년 2월 26일에서야 국회에서 통과했다고 하니 잘못되기는 쉬워도 그것을 바로잡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려니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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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사진을 보정해서 올리는 오늘(4월3일)이 그날을 기념하는 날인 것도 참 묘하다면 묘한 일이로군. 역사는 과거사이다.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 그러나 알고 나면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 보일 수도 있다. 무심한 물결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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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곳에도 슬픈 사연은 있기 마련이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일출봉은 그 모두를 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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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동백꽃이 4.3의 혼을 기념하는 상징이라기에. 다음날 찍은 상효원의 사진을 하나 가져와 본다. 힘없이 스러져간 생명들의 모습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마는 동백을 닮았다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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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렇게 떨어지고 말았지만 세월이 바뀌면 다시 피어난다. 그렇게 강렬한 색으로 피어나서 그 시절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그냥 지나쳤던 제주도의 슬픈 사연을 비로소 이해하여 한 꼭지 추가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말하는 것 같다.

'낭월님의 제주도 상식이 1만큼 증가하셨습니다.'

그러게. 카메라 들고 여행을 떠난 것은 참 잘 한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한다. 도처에서 만날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한다는 것도 살아가면서 생각해 볼 만한 공부인 까닭에.

이제 타임랩스를 찍던 카메라도 거둬야 하겠구나. 오늘은 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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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야, 카메라 지키느라고 욕 봤다~! 고마 가자."

(여행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