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기행⑦] 두루미의 낙원

작성일
2020-01-17 04:16
조회
764

[철원기행⑦] 두루미의 낙원(樂園)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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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와 만나는 장소는 「두루미 탐조대」가 아니라 「철원평야의 들판」이었다는 것을 백마고지를 가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DMZ를 넘나들면서 자연과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들에 취해서 낭월을 잊어버리는 순간을 만나게 될 줄이야. 영화 『아바타』에서 봤던 그 풍경이 겹치는 것은 착시현상이었을지라도 마냥 좋았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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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의 두루미를 볼 수 있는 탐조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평화타운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알아 봤다. 물론 저녁의 일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여기에 끼워넣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낭월 : 수고하십니다. 문의 좀 드리겠습니다.
직원 : 예, 말씀하십시오.
낭월 : 탐조코스가 어떻게 됩니까?
직원 : 예, 1코스와 2코스가 있습니다. 다만 1코스는 폐쇄되었습니다.
낭월 : 올 겨울에는 열릴 가능성이 없는 거지요?
직원 :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만 지금으로써는....
낭월 : 그런데 2코스는 뭘 의미합니까?
직원 : 그것은 이길리에 탐조대가 있습니다.
낭월 : 혹 여기에서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이 있나 해서요. 차량이라던지...
직원 : 예전에는 2코스에도 두루미가 많았습니다.
낭월 : 그럼 올해는 적은 셈인가요? 왜요?
직원 : 디엠지에 사람이 못 들어 가니까 두루미가 그곳으로 갔어요.
낭월 : 아하~! 우리의 불행은 두루미의 행운이었네요?
직원 : 맞습니다. 그래서 2코스는 개별적으로 가시면 됩니다.
낭월 : 그렇군요. 돼지열병이 해소되어야 하겠네요.
직원 : 죄송합니다. 두루미 구경을 제대로 하셔야 하는데....
낭월 : 두루미는 이미 많이 봤습니다. 프로그램이 궁금해서요.
직원 : 다음 기회에 또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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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그렇게 퍼붓던 겨울폭우의 뒤끝이 아직은 남아있는 듯이 하늘에 구름들이 흩어지기 전이었는지라 북녁 땅의 황량한 산천이 명료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리 전쟁을 치른 산하라고는 하지만 세월이 70년이나 흘렀는데도 이렇게 밖에 복원이 되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쩌면.... 파괴의 순간과 복원의 세월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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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햇살이 민둥산을 비춰주고 있으니 더욱 초라한 산천의 모습을 잘 보라는 것만 같다. 휴전선에 다가가서 바라본 풍경이란 이렇게도 외국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 철원의 풍경에서 자연과 전쟁의 흔적이 함께 어우러지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느낌이 따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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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산천은 그럴지라도 철새는 보금자리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행여라도 비무장지대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는 구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대로 두고 꼭 보고자 하는 사람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찾아와서 조용히 그 분위기를 느끼고 떠나면서 저마다의 풍경 하나씩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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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도 자연의 환경을 잘도 알고, 겨울철 휴가를 즐기러 찾아 왔는지 두루미를 바라보면서도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장면을 생생하게 바라보고 있다니.... 아바타의 그 장면들이 겹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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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두루미의 등에 올라 앉아서 같이 동행하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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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바타는 상상이고 철원평야는 실제상황이다. 거대한 두루미들의 비상을 보면서 그 우아한 모습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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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이 지나면 다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겠구나. 그 동안 열심히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잠시도 쉬지 않는 모습들에서 저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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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족이 먹이를 찾는 동안 누군가는 주변을 경계한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을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한 까닭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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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리면 날아갈까봐서 뚜껑을 열었다. 이런 때는 지붕이 있는 차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철원이 아니면 볼 수가 없는 자연의 풍경을 보면서 아프리카로 사진을 찍으러 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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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자식의 대화가 들리는 것만 같다. 망원렌즈의 공덕이다. 100-400GM렌즈에 2배의 확장렌즈를 추가해서 800mm로 한 다음에, 다시 크롭모드로 선택하면 1,200mm까지 당겨온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단정학의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다는 것만 중요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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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참을 지켜보면서 현실과 환상의 사이를 넘나드는 즐거움은 이 시간, 이 계절에 이 자리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울 게다. 문득 신선이 된듯한 착각이 든 걸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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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 일이래야 먹이를 찾는 일이지만 그것에 몰입하는 모습이 참 잘도 어울린다. 그 장면이 낯설어서 더 신기하게 빠져드는 것이기도 하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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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가 기러기와 다른 점은 '무리 중의 가족들'이라는 것이다. 크게는 두루미떼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가족들 단위로 모여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가 있다. 대부분은 어미가 두 마리이다. 부부일 것으로 짐작하면 되지 싶다. 그리고 새끼는 1~2마리가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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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논으로 물을 대었던 비닐호스가 일을 끝내고 쉬는 사이에 두루미는 그 물이 함께 지어놓은 볍씨를 찾아다니고 있다. 저 컨테이너는 농부가 쉬던 곳일까? 설마 두루미를 관찰하려고 갖다 놓은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 저 안에 들어가서 더 가까이에서 두루미를 볼 수가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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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철원평야에도 비닐하우스가 하나 둘 들어서고 있는 모양이다. 농부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두루미들에게는 점점 좁아지는 위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은 지나친 오지랖일 수도 있지 싶기는 하다. 농부들에게 어떤 혜택도 드릴 수가 없으면서 환경보호만 주장하게 되면 서로에게는 갈등만 남을 따름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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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와 두루미의 차이가 뭔지를 생각해 본다. 참새는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해로운 새이다. 물론 벌레를 잡아주는 점에서는 이롭기도 하다. 그래서 애증이 얽힌 것이 참새이다. 그런데 두루미는 이해관계가 없으니 저마다 자기의 삶을 누릴 따름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흘린 낱알을 찾아먹으면서 겨울을 보내다가 새싹이 돋기 전에 떠나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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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
아직은 그들의 자유로움을.....
이러한 모습이 내년에도 이어지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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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더 가까이 가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잘 보인다. 날아오르고 또 날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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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새끼 두 마리를 잘 키워서 성공적으로 동행했구나. 어쩜 이렇게도 자로 잰 듯이.... 그렇게 서 있는지.... 온통 신기한 것 투성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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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낙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풍경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접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보호종, 이런 수식어가 따라다닌다는 것은 분명히 빨간 불이 켜져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전 지구인들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서도 그만큼 소중한 존재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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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러한 풍경은 오래도록 잊지 못하지 싶다. 그 자리에 함께 했었다는 것은 유명한 아이돌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밤새워 공연장 입구에서 줄을 서있는 아이들의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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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그리움이랬다. 그리우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글로만 표현할 뿐이다. 이렇게 그림 대신 사진으로 실물을 담아서 사진첩에 넣어 둘 수가 있다는 것의 행복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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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그날에 이 자리에서 두루미들과 함께 했었다는 그림도 남기고 싶었다. 몸이 뜻을 따라서 움직여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문득 옛날에 낭월에게 취재하러 왔었던 수전증에 걸린 사진기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도 젊어서는 얼마나 많은 장소를 뛰어 다니면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질 사진들을 담았을까.... 그러다가 수전증이 왔다. 그것도 심하게 흔들려서 커피잔을 잡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런데도 일을 쉬지 못하고 사진기자로 취재하러 온 모습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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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옆에서 봤기 때문일까? '사진이 좀 흔들리면 어때~!'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말이다. 카메라 자체에 손떨림방지 기능이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고, 큰 렌즈를 손에 들고 찍어도 뭘 찍었는지 알아볼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두루미를 찍으려니 삼각대는 쓸모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더 다가갈 수가 없으니 소니에서 새로 만든 200-600mm 렌즈가 문득 궁금해지기는 한다. 여기에 두 배의 확장렌즈를 달면 기본적으로 1,200mm가 될 것이고, 여기에 크롭모드로 찍으면 1,800mm까지는 당겨진다는 이야기니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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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정도라도 너무나 충분하다. 낭월의 눈에 비친 오늘의 풍경은 비록 사진에서는 노이즈가 자글자글 할지라도 기억 속의 사진에는 깨끗한 이미지인 까닭에 전혀 아쉽지 않을 따름이다. 사진을 보는 벗님들의 눈에는 사진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좀 안타깝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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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사주공부를 한 학자가 어느 사람의 사주를 보는 것과, 방문자가 자신의 사주를 풀이한 것을 통해서 자평명리학을 이해하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학자가 오행의 이치를 바탕으로 삼고 간지를 통해서 오랜 세월을 궁리한 사람이 본 사주가, 어찌 잠시 전문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어다 본 자신의 사주에 대한 이해와 같을 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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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사진일 뿐이다. 사진을 현실로 이끌어주는 코드가 없다면... 절대로 찍은 자와 보는 자의 관점이 같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왜 사진기행을 쓰는가? 그야 사진을 이끌어서 철원평야로 안내하고자 함이 속뜻이다. 사주를 봐주는 것은 그것을 빙자하여 오행의 이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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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할 적에는 화석처럼 가만히 있기도 하고, 움직일 적에는 우아한 자태로 날아오른다. 하루 온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림이지만 또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서서히 접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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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낙원에서 행복한 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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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저 곳에서 겨울 내내 두루미를 볼 수가 있을 군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하얗게 덮인 들판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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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다 무사히 돌아가거라.
그리고 다음 겨울에도 건강하게 날아오너라.
낭월도 웬만하면 다시 찾아 오련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너희들의 고향인 서시베리아는 찾아가려고 하니 너무 멀구나. 그래서 중국의 두루미들 고향인 흑룡강성의 치치하얼(齐齐哈尔)로 가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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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게 치치하얼로 가는 지도를 검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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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에서 하얼빈까지 20만원이면 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