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중국⑩] 자금성

작성일
2019-12-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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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말씀입니다. 본 여행은 2004년에 가족들끼리 배낭여행을 떠났던 중국의 북부여행입니다. 낭월한담의 목록을 만들다가 번호가 빠진 여행기가 있어서 사진기행으로 옮기면서 당시의 컴퓨터 환경을 생각해서 작은 사진으로 올렸던 것을 필름을 스캔한 이미지로 바꿨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나 느껴보는 용도로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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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중국⑩] 자금성(紫禁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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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일요일]


찌찐쳐엉(紫禁城)은 중국에서의 용신이다. 그래서 주변을 다 뒤지고 나서 최후에 점령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고 이제 비로소 소위 말하는 디데이가 된 셈이다. 이른 아침은 간단하게 처리했다. 호텔에서 주는 식사가 간편해서 부담이 없으니 다른 곳으로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중식과 양식이 있는데, 서양인들이 많이 찾다가 보니 그런 셈이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 유심히 살펴보면 서양의 청년들도 젓가락을 열심히 놀리는 것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중국의 습관을 익히면서 여행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봤다. 7시에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한 다음에 택시를 타고 자금성으로 갔다. 기사가 말하기를 남문으로 가면 많이 걸어야 하니까 동문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기에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동문에서 느낀 것.

‘역시 한국인은 부지런하다.’

모두가 한국 사람이다. 북경에 와서 자고는 고궁(古宮-자금성을 그렇게도 부른다.)을 보기 위해서 문을 열기도 전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부지런한 사람이 하나를 더 본다는 말대로 다들 활발한 모습이다. 역시 한국 사람은 표가 난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근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사진첩을 팔러 나온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설명 있어요~!”

당연히 중국 사람이다. 한 권에 50원 달라는 것을 두 권에 50원으로 샀다. 도향선생님과 하나씩 나누기 위해서이다. 그랬더니 만리장성도 있단다. 그것은 필요 없다고 했더니 그것은 한권에 20원에 주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또 10원 손해 봤군’ 싶었다. 여하튼 참 묘한 나라이다. 그렇게 해서 자금성에 들어갔다. 왕비와 후궁들이 거쳐하는 곳도 보고, 편액에 만주 글도 함께 쓰인 것도 봤다.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면서도 자신의 글을 잃고 말았다는 그 유명한 만주 글이다. 물론 아무리 봐도 알 도리가 없다. 중국을 만주국으로 만들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결국은 성공을 하지 못하고 중국화 되어버렸다는 한자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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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의 정문은 오문(午門)이다. 카메라가 고장나는 바람에 이렇게 남의 사진을 가져다 빈 틈을 채워넣는 마음이 쓰리기만 하다. 자오(子午)에서 남쪽의 문을 뜻하여 오문이라고 한 모양인데, 간지(干支)를 배우니 그 정도는 알아먹겠다. 그리고 우리는 숭례문이라고 했는데, ‘예의를 숭상한다는 것’과 ‘남문’이라는 것의 차이도 한번 생각을 해봄직 하지 않은가 싶다. 천자는 그 자체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숭상을 하고 말고가 없다는 뜻은 아닐까? 왠지 도도한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 글자 하나의 의미가 이렇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을 나서니 천안문 광장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서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 사람은 서둘러서 일등으로 고궁을 둘러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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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대궐의 어딘가에서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바치던 조선의 사신의 모습을 생각해 봤다. 아마도 그 위세와 웅대한 건물에서도 기가 죽었을 것이다. 드넓은 광장을 거닐면서 이미 절만은 기가 꺾였을지도 모르겠다. 만국의 사신들이 대기하던 많은 전각들이며, 왕과 협상을 벌이던 곳도 모두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채로 그렇게 세월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바닥을 채운 벽돌같은 석회석도 많이 부서져서 이끼가 끼었다. 어디를 가거나 정문에는 양쪽에서 궁궐을 지키는 해태상이 거대하게 눈을 부라리면서 입장객의 위아래를 노려본다. 어쩌면 광화문의 해태상도 여기에서 보고 흉내를 낸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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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가이드가 없어서 어떻게 이해를 하느냐고 하신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자신있게 해 드린다. 왜냐면 아침에 일찍 자금성에 들어오면 여기저기에서 한국어 가이드의 설명을 그것도 수준별로 구분해서 들을 수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주의해서 들어보면 설명의 품질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면 따라 다니면 된다. 내 발로 다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라는 말에 힘을 주고, 나중에 고맙다면 팁을 좀 주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참고하실 일이다.


 

황제가 앉아서 정치를 하던 전각의 왕좌를 살펴보니 그야말로 황금의 위력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 걸린 편액을 보니 ‘無爲’이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뜻일게다. 왜 할 것이 없을까? 당연히 태평성대이고 천하통일을 마치고 나니 이제는 더 할 것도 없기 자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라고 이해를 해봤다. 참으로 자신이 넘치는 글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보통은 바로 다스린다는 말을 했을 법도 한데 그게 아니고 완벽하여 더 다스릴 것이 없다니 참으로 두둑한 배짱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 장면에서 연암할배의 표현을 좀 빌려보고자 한다.


mug_obj_201907281024577030[인터넷자료]

‘성 둘레는 40리, 왼쪽에는 창해(滄海)가 있고 오른쪽에는 태행산(太行山)을 끼고, 북으로는 거용관을 베고, 남으로는 하수(河水)와 제수(濟水)가 옷깃처럼 되어 있다. 성문의 정남은 정양(正陽), 오른쪽은 숭문(崇文), 왼쪽은 선무(宣武), 동남은 제화(濟化), 동북은 조양(朝陽), 서남은 평택(平澤), 서북은 서직(西直), 동북은 덕승(德勝), 북서는 안정(安定)이었고, 외성(外城)에 문이 일곱 있으며, 자금성에는 문이 셋 있고, 궁성은 17리인데 문이 넷이며, 그 전전(前殿)을 태화(太和)라 하여 오로지 한 사람만이 살고 있으니, 그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오, 종족은 여진 만주부, 위(位)는 천자, 호는 황제, 직책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었으며, 그가 자신을 일컬을 때는 ’짐(朕)‘이라 하고,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그를 높여서 ’폐하‘라 하며, 말씀을 내리면 ’조(詔)‘라 하고, 명령을 내리면 ’칙(勅)‘이라 하며 그 갓은 홍모(紅帽)이고, 옷은 마제수(馬蹄袖)였으며, 그는 국통(國統)을 이은 지 벌써 네 대였고, 연호를 세워 ’건륭(乾隆)‘이라 한다. 이 글을 쓴 자가 누구인가 하면 조선에서 온 박지원(朴趾源)이고, 쓴 때가 언젠가 하면 건륭45년 가을 8월 초하루다.’ <김연호 옮김 열하일기에서>


적어도 여행기라고 하면 이 정도는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금성과 그 주변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사람에 대해서 엄숙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담담하게 써놓은 글을 보면서 내심의 기개가 느껴지는 것도 같은데 혼자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그 대단한 궁궐의 위용에 눌릴 만도 하건만 전혀 그런 기색이 없이 담담하게 주변을 서술하면서 대청황제를 일러서 ‘그’라고 하니 과연 글로써는 천하를 덮고도 남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도 같은 눈높이에서 마무리를 지어가는 모습....... 멋진 할배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둘러본 것 같은데,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점심을 먹기도 이르니까 티엔탄(天壇)을 가보기로 의견의 일치를 봤다. 왕이 하늘에 제를 드리는 곳이다. 그리고 북경에는 지단(地壇)도 있고, 동단도 있는데 서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천단을 보는 것으로 나머지는 다 본 셈으로 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화원을 봄으로 해서 원명원, 향산공원 북해공원 등을 모두 본 셈으로 치는 것이 여행객의 심사이다. 남대문을 봤으면 동대문과 광장시장과 중앙시장을 본 셈으로 치는 것과 같겠다. 그게 그것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약간의 차이를 위해서 택시다고 이동하는 것은 잘 계산해보지 않으면 싱거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천단으로 가자고 했다. 뒤에 따라 오라고 하고 택시가 하나만 보여서 우선 타고 가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같이 출발을 못했던 것인데, 여기에서 또 착오가 생길 줄이야.......


“우리는 천단에 갑니다."
“-좋습니다."

여기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조금 가던 기사가 갑자기 다시 묻는다.

“동문에 내리면 되지요?"
“문이 몇 개지요?"
“세 개가 있는데요."
“남문이 정문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정문에 내려 주세요."


혼자 생각에 그렇다. 문이 여러 개가 있는 줄은 몰랐으므로 아마도 뒷 차를 탄 사람들도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고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당연히 정문으로 내리려고 할 것이니 나도 정문으로 내려서 기다리면 이내 도착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문으로 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고,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자기 생각일 뿐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우리는 정문에 내려서 십여 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오 분 만 더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면 그냥 입장하여 중앙의 천단에서 만나면 될 것이고, 뒷차도 그렇게 중심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또 했는데, 에구.... 이것도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벗님이시여, 일행이 함께 길을 떠날 적에는 반드시 늦더라도 같이 출발하시라는 말씀을 드린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순식간에 이산가족으로 분산이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는 말씀을 반드시 후기를 쓰면서 적어 드리려고 작정을 했던 것인데 반드시 주의하시지 않으면 애꿎은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실 일이다.

풀코스로 표를 구입했고, 천천히 걸으면서 살펴봤다. 천자가 하늘에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제왕들은 어떻게 기도를 했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기도를 한다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통치자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건물의 구조는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하늘의 모습을 본 땄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단은 네모나게 했을지 문득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짐작만 하고 확인은 뒤로 미뤘다. 다음에 또 북경에 오면 볼 것을 남겨둬야지....

eh20191224-19[도향선생의 사진을 얻어다 넣었다. 천단 사진이 없어서.....]

일행을 만나기 위해서 동분서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동문도 아닌 북문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참으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한바탕 웃었다. 이제는 점심이다. 그 유명하다는 북경오리구이를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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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聚德(전취덕)’

도향선생님께서 확인한 간판이다. 당연히 북경에서 오리지날 전문오리집을 찾아야지 이것도 관광의 일부인데, 우리는 서둘러서 왕푸징점으로 갔다. 북경에는 본점과 두 개의 분점이 있는가 보다.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가기에 서둘렀다. 엇 저녁에 장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줄을 서지 않아도 되었다. 부지런히 자리를 잡고는 북경오리구이 한 마리 반을 시켰다. 두 마리는 많을 것이라는 안내원의 조언을 수용했다.

그리고 마침맞은 분량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것도 시켜먹는 사람도 많은가 보지만 우리는 분량을 모르기 때문에 일단 주인공을 먹고 보자고 했는데, 여기에서도 당연히 기름기를 제가한다는 명분으로 조금은 비싼 술을 청했다. 항상 끼니때만 되면 도향선생님만 빼고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기는 하다. 왜냐면 미주(美酒)의 향기를 둘만 즐기게 되어서 말이다. 그래도 권하기는 한다. 다들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는 것이야 난들 우짜노 말이다. 흐흐~.

그렇게 해서 감동의 북경오리구이를 먹고서 흐뭇한 마음으로 다음 쇼핑의 코스로 나섰다. 그 동안의 고생은 이렇게 식탁에서 흐뭇한 행복감으로 여운을 남기게 된다. 고생을 먼저 하고 즐기는 것이 순서는 순서인 모양이다. 장성에서, 태산에서, 좁은 버스 안에서의 고생들이 스쳐지나간다. 다음은 북경에서 가장 큰 서점을 찾아갔더니 제목이 왕푸징서점이다. 분위기는 종로서적 분위기인데, 규모는 훨씬 크게 느껴진다. 당장 급하게 찾아가려고 메모지를 안내원에게 내밀었다.

‘生辰八字’

가리켜 주는 곳으로 가지 주역에 대한 책들과 함께 반가운 명리서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한권을 뽑아서 살펴보니 극기 기초적인 십성의 설명이나, 대운 계산법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그러한 책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몇 번을 오락가락 하면서 다시 살펴봤는데, 참으로 놀랍다. 전체 서점을 통 털어서 자평명리서는 단 한권 이것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주역관련 서적이 있을 뿐이었다. 물론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실망이 되었다. 적어도 대만의 서점에서는 한쪽 벽의 상당 부분을 채우던 자평명리학 코너였는데,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산주의 산하에서 고생하는 자평명리학이 보였다.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그것도 주역의 일부로 위장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아무래도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다. 물론 이러한 것을 발견하는 것도 여행의 목적이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명리학을 논하기에는 환경이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에는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이 없었다.

일전에 왕휘앤이 말하기를 용하다고 소문이 나면 공안이 와서 잡아간다는 말을 해줬다. 공산당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하는 모양이다. 법륜공도 그래서 추방당했다는 말도 전한다. 천안문의 사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렇지 참으로 이건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리학을 위해서는 역시 대만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갑자기 대만의 그 풍성한 연구환경이 그리워졌다. 내년 봄에는 대만으로 가서 한 달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혼자 하면서 포기해야 했다.

그렇다고 그냥 나올 낭월은 아니다. 없는 것을 내어 놓으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국어 공부를 할 꺼리를 찾았다. 우선 소설코너를 가보니 무협소설은 엄청 많다. 소오강호, 녹정기, 의천도룡기 등의 김용작품이 보이기에 집어넣었다. 시디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다. 그래서 비교해서 볼 요량으로 의천도룡기, 철치동아기효람 등도 샀다. 한국에서 보여주는 드라마는 한글자막이 나오기 때문에 눈치로 말을 보게 되니까 정작 귀로는 덜 들리는 것이 유감이라서 온 김에 좀 구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욕심이 많은 화인도 자신이 볼 책과 시디를 산다. 그리고 도향선생님도 뭔가 사셨는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세 사람이 구입한 책은 몇 십 권이 되었다. 소설은 네 권으로 나눠져 있었다. 항상 느끼지만 책의 무게는 대단하다. 책을 고르면서 흐뭇해하는 마음이 절로 흥겹다. 다른 코너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여행자는 항상 시간에 쫓긴다. 그리고 책값은 참으로 헐하다. 공부는 얼마든지 하라는 뜻일까? 소오강호 소설 네 권에 76원이다. 환산을 해봐도 10000여원 정도 140원으로 환산할 경우 그 정도이다. 한국의 절반 값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한국에서 중국 책을 살 경우에는 추가되는 금액도 적지 않다. 책을 사는 것에는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원하는 책이 없어서 아쉬운 마음은 이렇게 달랠 수가 있었다.

다음에는 여성들을 위한 시간이다. 백화점으로 갔다. 연지님과 화인이 옷을 하나씩 샀다. 화인은 빨간 차이나드레스(맞나?)를, 연지님은 햐얀 바탕의 원피스를, 그리고 도향선생님도 사랑하시는 아내를 위해서 예쁜 옷을 사셨다. 사실 낭월은 옷을 사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옷을 고르는 동안에 구입한 책을 펴들고 살펴본다. 언젠가는 이 글들이 한글 보듯이 나타나게 되겠지만 지금은 정성을 들여서 읽어야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소설 세권만 떼면 이해하는 힘이 많이 길러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올 가을과 겨울의 목표로 삼을 작정을 하면서 자신에게 다짐을 한다.

돌아가면 학원에 가서 아예 개인지도를 택해야 하겠다. 인생은 물처럼 흘러가는데, 학원 시간표대로 오락가락 하다가는 세월 다 보내고 말겠다는 조바심도 든다. 차라리 조금 비싼 시간사용료를 지불하더라도 개인지도를 받으면 훨씬 정밀한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학원생이 6명이면 50분 동안 내 차지가 되는 시간이 불과 6~7분에 불과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목소리가 커서 좀 더 덕을 볼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개인지도로 공부를 하는 것에 비하면 많은 차이가 날 밖에 없다고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여성들은 옷을 들고 나와서 어떠냐고 물어본다. 물론 답은 간단하다. ‘좋아’ 좋아요‘ 아주 좋아’ 뭐든지 다 좋다. 내 기분이 좋은데 무슨 옷이라도 다 좋을 밖에 하하~ 묻는 사람이 잘 못이지 뭐.

쇼핑을 다 한 다음에서야 비로소 밖으로 나갔다. 책을 뒤져서 볼만한 잡기(서커스)장을 찾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은 ‘少年宮天地劇場(소년궁천지극장)’이다. 맨 처음에 나와 있는 것이 최고라고 하는 생각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아직 시간은 일러서 입장할 수가 없고 표만 살 수가 있었다. 극의 제목은 ‘如夢(꿈같이)’이다.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았다. 그 사이에 저녁을 먹으면 되겠다 싶어서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좀 묘한 것이, 보통 극장 주변에는 스낵코너 등이 있어서 간단하게 요기하기에는 문제가 없어야 상식인데, 이 장소는 그게 아니었다. 주변에는 먹을 집으로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니 또 먹으러 시내로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곤란한 마음이었는데, 어느 사람이 안내를 해 준 곳이 저쪽 옆에 가면 조그만 식당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르쳐 준대로 따라갔는데, 작은 식당은 보이지 않고 무슨 백화점이라고 하는 글자가 보이는데 이것도 글자만 보이고 현란한 광고가 없다. 문지기에게 식사를 할만 한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7층으로 가란다.

7층에 가서 식사를 할 곳을 찾는다고 다시 말해야 했다. 우리의 눈치로는 도저히 식당을 찾을 수가 없다고 판단이 되었으니 벗님이 보셨어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담당자는 다시 물었다.

“무슨 요리를 찾으세요?”
"다 좋습니다.”
“.......(황당해 하는 표정..)”
“........(우리도 황당한 표정을 지을 밖에)”
“사천요리를 찾으세요. 북경요리를 찾으세요. 광동요리를 찾으세요?”
“북경요리.”
“이쪽으로 오세요.”

이거 걸려도 제대로 걸렸구나 싶었다. 엄청 비싼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서야 이렇게 은밀해 보이는 식당으로 갈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더욱 그러한 생각을 했는데, 막상 나온 메뉴판을 보니까 다른 식당에서 본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에구 다행이다. 그렇다면 마음 놓고 또 먹고 마셔봐야지. 푸짐하게 먹고 구경을 하게 되었으니 조그만 식당을 찾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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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소년궁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푸짐하게 모두들 만족스런 구경을 잘 했다고 한다. 아이들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경덕이는 한 손에 들고 돌리는 다섯 개의 접시는 본드로 붙인 것이라고 끝까지 우겼다. 만약 중간에 하나 정도가 떨어졌더라면 더 실감이 났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봤다. 물론 실수도 있었지만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판단하시는 도향선생님이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천수를 누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봤다 세상만사는 내 뜻과 무관하게 돌아간다. 그 와중에서 스스로 열도 받고 냉도 받아가면서 수명을 깎아 먹는데, 그에 무관하면 천수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봤다.

구경 잘 하고 택시로 돌아왔다. 북경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저물어 간다. 그리고 뒷골목에서 꼬치라는 꼬치는 다 먹어보자고 출발 전에 약속한 것은 지키고 싶지 않아서 그만뒀다. 환경위생이 맘에 걸려서이다. 괜히 잘못 먹고 탈이라도 나면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에 다들 내키지 않아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 출발을 위해서 푹 쉬기로 했다.

 

10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