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중국⑦] 피서산장

작성일
2019-12-2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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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말씀입니다. 본 여행은 2004년에 가족들끼리 배낭여행을 떠났던 중국의 북부여행입니다. 낭월한담의 목록을 만들다가 번호가 빠진 여행기가 있어서 사진기행으로 옮기면서 당시의 컴퓨터 환경을 생각해서 작은 사진으로 올렸던 것을 필름을 스캔한 이미지로 바꿨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나 느껴보는 용도로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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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중국⑦] 황제의 휴양지 피서산장(避暑山莊)


 

 

[8월 12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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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하게 휴식을 취하고 씻고서 준비를 하다가 보니 7시가 되었다. 잠시 후에 왕휘앤이 싱싱한 복숭아를 사들고 들어온다. 일행은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출발을 했다. 욍휘앤은 오늘 아침은 중국인 식으로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다들 좋다고 했더니 길가의 순두부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분위기는 꾀죄죄했지만, 그래도 안내자를 믿고 들어가서 순두부 한 그릇과 밀가루반죽 튀김을 먹었다. 그대로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중국인일 뿐이었겠다. 싶었다.


pi20191224-38[어디서나 중국인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이 되는 풍경이 보인다. 매우 저렴하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정말 묘하게도 요리조리 차를 타면 비가 내리고 차에서 내리면 비가 멈췄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한 줄기 할 모양이다. 하늘빛이 여간이 아니다. 그래서 우선은 건물이 많은 뿨닝쓰(普寧寺)부터 보기로 했다. 그런데 승덕 사람들에게는 따풔스(大佛寺)라고 해야 안다고 한다. 속칭이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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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에는 엄청 큰 목불이 있다고 가이드 책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왕휘앤은 다시 중국인 행세를 요구했다. 입장료가 90원인데,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무료입장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거다. 돈이 적게 드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비공식으로, 혹은 불법적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이 즐거운 것을 보면 악동적인 기질이 어딘가에 숨을 쉬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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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사람들은 들이닥치는데, 빗방울은 빗줄기로 변했다. 급한 대로 문 앞에서 우산을 두 개 구해서 두 사람에 하나씩 나눠썼다. 비가 내려도 볼 것은 봐야 한다. 왜냐면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행하기로 하고, 우선 부처를 보려고 들어갔다. 절은 티베트식이다. 알고 보면 건륭황제가 몽고와 티벳의 민심을 아우러고 북방수비를 맡기기 위한 정략적인 계획에서 나온 것이지만 과연 포탈라궁을 보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중국의 사원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라마승들도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였는데, 건륭황제의 통큰 정치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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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향을 듬뿍 사는 왕휘앤, 그녀는 불교 신자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바빠도 그 커다란 향다발에 촛불을 이용해서 불을 당긴 다음에 꼽고는 앞에서 배례를 한다. 그 모습이 예쁘다. 물론 우리도 그의 강요에 의해서 모두 향불을 당겨 피우고 반절을 해야 했다. 자못 엄숙하기조차 한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순수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맘에 드는 총각 있으면 짝을 맺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참한 여성이다. 향불을 당기는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 도향 선생님의 묘방이 등장을 했다.


pi20191224-53[내부는 사진이 불가능하다. 밖에서만 찍어야 한다. 풔닝쓰 대웅전 앞]

“우선 촛물에 향을 꾹 찌르는 겁니다. 촛물이 묻은 상태에서 불을 붙이면 금방 붙거든요.”

역시 궁리하는 사람의 눈에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모양이다. 과연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으로 더없이 요긴했다. 왜냐면 향을 피울 곳은 여러 군대이기 때문이다. 혹 중국 사찰에 가시거든 반드시 활용하시면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되실게다. 그리고 그 특허는 도향표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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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얼굴을 보려면 다시 50원인가를 내야 한다기에 그만뒀다. 무릎까지만 일층에서 보이는데 규모는 실로 대단하다. 얼굴은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재료는 네 가지의 종류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 나오다가 보니 기념품을 파는 곳은 거의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는 셈이다. 차를 마시는 곳도 있고 청나라의 전통의상을 파는 것도 있었는데, 왕휘앤이 우릴 보면서 점을 한번 보겠느냐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가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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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냐고 했더니 성의대로 받는다는 말도 한다. 그럼 가보지 뭐 아마도 십원 정도면 될 것이라고 했다. 화인이 보기로 하고 일행은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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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은 도사 복장을 하고 있는 영감님이다. 뒷모습을 몰래 찍었는데, 가만히 있길래 다시 앞 모습도 팔괘도를 배경삼아서 찍으려고 하니 그것은 하지 말란다. 그래서 못했다.


"보자.... 낭자는 외국에서 크게 이름을 떨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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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나서 십원을 주니 당신들 나라의 돈이면 더 좋다고 한다. 식신이 있는 모양이다. 궁금한 마음이 그렇게 발동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원짜리로 바꿔서 냈다. 실제로 10원은 1400원에 상당하는데 그 분은 손해를 본 셈이다. 두 사람이 모두 천원짜리를 내자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의심이 된 모양이다. 동그라미는 엄청 많은데(중국의 웬만한 노동자 한달 월급이 천원 정도이다.), 아무래도 의심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왕휘앤도 시침을 뚝떼고 한마디 했다.


“ 10원이랑 비슷해요~!"

상담을 한 종이는 각자 지니고 왔을텐데 맞았는지 말았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상담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효과가 천원을 상회하고 있었다. 예언 시간은 7~8분 정도가 되나 싶었다. 과거와 미래의 정황들에 대해서 필기로 적어주면서 설명을 했는데 생일과 시간은 물어보면서 명식은 뽑지 않았다. 아마도 당사주와 유사한 점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봤다. 도향 선생님도 간단히 봤는데, 나중에 분석을 해 보시겠다고 했으니 결과를 기다려 봐야 겠다. 낭월도 봤는데, 맨 처음의 종이에 한 글자 떡하니 써 주신다.

‘急(급)~!’

아마도 낭월의 성격이 너무 급하니 느긋하게 살으라는 말일게다. 그만하면 도사라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웃었다. 아마도 여행기를 읽으시면서 급함 덩어리라고 생각 하셨을 게다. 아마 관상도 보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여행의 틈틈을 채워가면서 뿨닝스를 둘러보고 나왔다. 비는 다소 주춤한 상태였다. 그럭저럭 시간도 점심을 먹어야 할 무렵이다. 먹고 가자고 했더니 주변의 대단히 큰 저택으로 안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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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들이 대부분 그렇다. 정말 대단히 큰 규모이다. 한국은 규모가 크면 당연히 비쌀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다. 거하게 점심을 먹고 나서는 다음 행선지를 찾았다. 다음에 갈 곳은 작은 포탈라궁인데 그 곳에 가보고 우리는 그냥 정문에서 사진만 찍고 가기로 결정을 했다. 비싸기는 오지게 비싼데 그것도 가짜이니 나중에 티벳으로 가서 직접 포탈라를 보자고 하고 중국정부에 너무 많은 입장료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갖을 필요가 없이 들어가지 않기로 했는데 왕휘앤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는다. 가 봐도 특별히 볼 것은 없다고 판단을 한 모양이다. 풔닝쓰를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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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곧바로 피서산장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비도 멈춰져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하늘이었다. 삐쓔쌴쭈앙(避暑山莊)을 생각하면 열하일기가 생각난다. 건륭황제의 환갑잔치에 참석하려고 조선의 사신과 함께 길을 나선 연암할부지가 기록한 이야기들이 참으로 진지해서 낭월이 그 여행에 동행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날 정도였다.


dufgkrlfrl[인터넷자료]


그리고 악천후에서 고생고생 하면서 연경(지금의 북경)에 왕을 만나러 갔는데, 왕은 피서산장으로 가고, 연경에서 피서산장은 700리(250km이었음)가 되는데 5일을 밤낮으로 달려서 도착하는 장면이 너무도 생생한 필치로 씌여 있었다. 급한 마음에 번역으로 읽었는데 다음에는 원문을 한번 보고 싶기도 하다. 중간에 밀운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중간에 밀운시도 있었으니 더욱 실감이 나면서 우리의 선조들이 이 길을 황급하게 지나갔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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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래서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혜초의 길을 따라서’라든지, ‘석가모니의 자취를 찾아서’ 등등의 타이틀을 달고 여행을 하면서 감동하는 마음을 조금 이해 할 것도 같다. 그리고 위성방송의 ABO에서 전에 방영한 ‘철치동아기효람2’에서 기효람과 화신의 두 대신과 건륭황제 사이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재미있다고 했는데, 열하일기를 보게 되면 두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화대인은 화신이라고 이름을 적고 기효람에게는 기공이라고 해서 공경하는 것을 보면서 드라마도 사실에 근거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사실감이 드는 열하일기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승덕이지만 당시의 지명은 열하(熱河)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왜 열하인가 하면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을 정도의 온수가 나오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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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의미가 있는 피서산장을 들어가는 데에는 왕휘앤이 100원의 뇌물로 마무리 지었다. 원래는 일인당 100원이란다. 600원을 그대로 벌었다. 참 재주도 많다. 물론 조금 옆문으로 들어갔다는 것만 달랐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참으로 대단한 산장이다. 말이 산장이지 자연정원이라고 해야 하겠다. 초원에는 꽃사슴이 뛰어놀고 있었고, 물에는 연꽃이 만발했다. 아무리 글로 설명을 해도 모두 이해하시는 어려우실 것으로 보인다. 사진 몇 장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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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전원의 풍경이다. 왕의 머리는 얼마나 복잡했을까, 그러니 이러한 전원에서의 휴식은 반드시 필요했겠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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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넓어서 시간이 꽤 걸렸다. 피서산장은 느긋하게 둘러보면 그 재미가 세 배는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 또 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항상 여행객은 다음을 꿈꾸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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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발견했다. 여기가 바로 열하구나. 입석에 붉은 글씨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성급한 낭월 당장에 물에 손을 담가 봤다. 뜨겁지나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냥 일반 물의 수온이었다. 옆에서 도향 선생님이 겨울에 얼지 않아서 열하라고 한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옆에는 왕과 왕비의 의상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곳이 있어서 먼 나그네의 전생 기억(흐흐~)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조금 투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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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둘러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 바위산이 하나 보였는데,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빨래방망이 산이라고 한다. 아, 열하일기에서 본 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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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산골길을 다니다가, 열하에 들어가니, 궁궐이 장려하고 좌우에 시전이 10리나 뻗쳐 실로 새북(塞北)에 있어서 한 큰 도회지임을 알았다. 바로 서쪽에 봉추산(捧捶山)의 한 봉우리가 우뚝 솟았는데, 마치 다듬잇방망이 같은 것이 높이 100여길이요, 꼿꼿이 하늘에 솟아서 석양이 옆으로 비치어 찬란한 금빛을 뿜고 있다.... 김연호역 열하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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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시간도 석양이다. 산의 시옷만 봐도 가보고 싶어서 못견디는 도향 선생님께서 또 군침을 흘리신다. 가보자는 것이다. 물론 삭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기에 모두 그 곳으로 향했다. 다만 도착하니 마지막 삭도가 끊어지고 없었다. 그냥 걸어서 갔다 오면 약 한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한다. 그러자 어느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택시인가 했더니 마부이다. 말을 타고 가면 된다는 거다. 그런데 아이들이나 연지님이 별로 탐탁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낭월은 여기에서 놀고 있을테니 다녀 오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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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선생님과 화인, 왕휘앤이 올라가고 근방에서 어정거리고 있노라니 자꾸 택시를 타라는 둥, 호텔에 가겠느냐는둥 귀찮게 하기에 옆의 매점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우리는 한국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입니다.”
“아, 그러세요."
“우리 일행이 산에 올라갔는데, 여기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좀 기다리고 싶은데 가능하겠는지요?”
“가능해요. 그렇게 하세요.”

순박한 시골 아주머니였다. 그래서 과자랑 콜라를 사서 마시면서 적어도 1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있으니까 금휘보다 두어살 더 먹어 보이는 여학생이 가게를 보러 나온다. 딸인 모양이다.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기회에 말을 걸어봐야지 그냥 있으면 두고두고 억울할 것이라고 판단한 낭월 말을 슬슬 걸었다.

“고등학생인가요?”
"아니예요.”
“그럼 중학생?”
“아니예요.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아차.... 이거 실수했구나. 가난한 사람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도 70년대의 한국인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네....'
“어디에서 왔어요?”
“우린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알아요?”
“알아요.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며칠 전에 왔어요. 중국이 처음이예요.”
“예, 재미 있었어요?”
“아주 좋았어요. 오늘도 이렇게 이야기 나누니 재미있네요.”

빙그레 웃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 돈을 선물하면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연지님 주머니에서 천원짜리를 하나 꺼내어서 내밀었다.

“선물이예요. 한국 돈이거든요.”
“그래요. 처음 봐요. 얼마나 되는 거지요?”
“아마 8원 정도 될 겁니다. 선물로 드릴께요.”
“고맙습니다. 그럼.....”

하더니 자신도 10원짜리를 하나 찾아서 내민다. 바꾸자는 거다. 이것은 아니다. 내가 너무 남는 장사이기도 하지만 선물로 주는 것이니 그냥 받아야 한다고 극구 사양했다. 그랬더니 시디를 하나 내민다. 금휘가 보더니만 이정현이 것이라고 한다. 하하~ 이런 산골에서도 한국 가수의 시디가 있는 것을 보니 과연 한류열풍의 의미가 뭔지 체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낭월에게는 또한 필요가 없는 물건인지라, 그것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한테 가서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아주머니가 와서 보고는 자신도 10원짜리 지폐를 내민다. 자신도 선물이라는 거다. 두어 번 사양을 했지만 그냥 말면 서운하다고 하실 것 같아서 고맙다고 하고 받았다. 그랬더니 무척이나 좋아한다. 초상을 보면서 한국의 이전 대통령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퇴계선생이라고 설명을 해줬다. 이것도 국위선양이 될랑가.....?

여하튼 원화를 위엔화로 바꿔서 소득을 올린 셈인가 보다. 여기에서 중국인의 자존심을 느꼈다. 비록 가난해도 구차하지 않아 보이는 모습 말이다. 의연하고 의젓하다. 초조해 보이지 않고, 교활하지 않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그냥 여행지에서 갖는 호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난 사람들에서 그러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노닥거리는 사이에 산에 갔던 팀이 내려온다. 왕휘앤에게 편히 쉬게 해줘서 고맙다고 대신 말을 해달라고 했더니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오더니만 아주머니와 딸이 그러더란다.

“그 한국인 아저씨 너무 재미있었어요~!”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어느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승덕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기차표를 구해 온다고 역에 다녀온다던 왕휘앤과 화인은 난감한 표정이다. 컴퓨터 발표기가 고장 나서 표를 사지 못했다고 아침에 일찍 역에 가보자고 한다. 그래 되는대로 하지 뭐 그래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열하의 밤을 보냈다.

 

 

7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