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청도⑥ 어청도의 아침

작성일
2019-10-1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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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⑥ 어청도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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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의 첫날밤을 푹 잤다. 새벽에 잠이 깨는 대로 나갈 준비를 해놓고 잤기 때문에 곤하게 잠자는 연지님을 깨우지 않고 배낭과 삼각대를 챙겨들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숙소를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골목으로 나오자마자 머릿등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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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머릿등이 뭔가 궁금하실 벗님도 계실랑가 싶어서 친절한 낭월씨가 이렇게 생긴 것이라고 보여드린다. ㅋㅋㅋ 헤드랜턴은 진작부터 준비를 했었는데 이번에 손 하나를 벌기 위해서 이 친구를 챙겨 나온 것은 매우 잘 한 것으로 봐도 되겠다. 플래시를 들고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우고 설정하려면 불편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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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여객선에 부딪치는 파도가 심상치 않았는데 새벽에 잠이 깨자마자 03시 14분이었구나. 우선 기상특보를 봤다. 이것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지면 관심을 갖게 되는 현실적인 정보이다.  원래 낭월의 일정은 2박 3일이었다. 물론 하늘과 바다가 도와주면 1박2일도 가능할 것으로 봐서 배표도 편도만 구입했다. 상황에 따라서 결정할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연지님은 1박만 하고 가자는 압력을 슬슬 넣고 있어서 웬만하면 그렇게 하려고 했다. 진심이다. ㅋㅋㅋ

그런데... 우짜노 풍랑주의보가 발효 중이란다. 그래서 혼자서 꼭두새벽에 잠이 깨어서는 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배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청도는 서해중부먼바다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2,3일은 태풍때문에 결항하고, 4일만 운항하고는 5일은 다시 결항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나면. 오늘 새벽을 포기해도 내일이 있으므로 위로가 된다는 의미이다. ㅋㅋ

시간이 너무 일러서 더 기다렸다. 어청도에서 행여라도 놓치고 지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미 겪은 사람들의 정보를 검색하다가 보면 1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다만 주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글이 많아서 실제로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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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여전히 구름 속이라고 알려준다. 이제 슬슬 나가볼 시간이 다가오는데 하늘의 그림은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새벽 풍경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가늠할 기준점이 생기는 까닭이다. 아무래도 오늘 새벽은 기대하는 그림을 보기 어렵겠다는 결론이고, 날씨도 흐려서 외연도를 볼 수가 있을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에 가볍게 마음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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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확인하는 것이 일출 정보이다. 캡처에 나온 시간은 04시 37분이군. 천문박명은 05시 8분이다. 슬슬 움직이면 여유롭게 새벽의 풍경을 볼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어서 잠시도 더 누워서 밍기적거릴 마음이 없다. 그래서 낭월과 함께 놀아줄 친구들을 챙겨가지고 방을 빠져나온 것이다.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서. 설렘은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고, 두려움은 밤길이라서 사람이나 짐승들로 인한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다. 낭월이라고 해서 밤길이 무섭지 않을 리가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렘이 두려움을 이기는 까닭에 어둠을 뚫고 나설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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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이다. 새벽 다섯시인데도 깜깜하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는 이야기이다. 아직은 천문박명이 시작되기 전이므로 한밤중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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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별사진 애호가의 권유를 받아서 유료어플을 구입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활용이 된다. 정북에 빨간 점을 일치시키면 현재의 상황에서 태양이 어디에 있는지가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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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해가 이렇게 움직일 것이니까 만약에 타임랩스를 찍을 요량이라면 일출 후에 해가 움직일 방향을 고려해서 삼각대와 카메라 방향을 잡으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어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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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의 지도방에서 즐거운 사진놀이를 협조하는 친구들이다. 태양의 위치는 항상 중요하다. 보일 적에는 문제가 없지만 깜깜한 밤에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두어 가지의 어플로 참고해서 보는데 '태양 탐사선'을 설치하고는 태양의 위치는 이것만 보게 된다. 혹시나 누군가에게 참고라도 되려나 싶어서 화면캡처를 하나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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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흐리다는 정보는 당연히 봤지만 그것을 다 믿지 않는다. 그냥 참고만 할 뿐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정보는 참고만 할 뿐이다. 뉴스든, 방문자의 말이든, 일기예보든, 사주팔자든 모두 참고만 하고 판단은 지금 현재에서 할 따름이다. 뭐든 다 믿으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참고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손실이 크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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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는 전날 등대를 가면서 확인해 둔 자리이다. '옳지, 내일 새벽엔 쉼터에서 밝아오는 어청도항이랑 놀면 되겠군.'하고 찜을 했기 때문에 망설일 것도 없이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미리 와서 잠을 자는 나그네가 있었다. 노숙하고 있는 텐트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 주인공은 어제 등대 옆의 구유정에서 만났던 그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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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날이 밝아올 때쯤 다시 쉼터로 올라가서 찍은 사진에 텐트가 찍혔구나. 원래 이런 곳에서 백팩킹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어딘가에 써 붙여 놨다. 그렇지만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곳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그럼 어쩌라고? 그야말로 구호는 구호일 뿐이고 이용자는 이렇게 명당자리를 두고 자갈 바닥에 잠자리를 마련할 턱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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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에 바짝 붙여서 삼각대를 세우고 어청도항의 풍경이 밝아오는 과정을 담으려고 자리를 잡았다. 밝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놀면 된다. 밝아오는 날을 위해서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기다리면서 간간이 한 장씩 찍어보는 것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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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랩스는 천문박명에  시작해도 되는데 하늘이 협조를 하지 않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림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타임랩스는 포기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기도 했고, 하늘이 잔뜩 흐려서 새벽 풍경이 그닥 탐스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낭월에겐 풍랑이 선물한 또 하루가 있기 때문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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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을 잠재우기 딱 좋은 30초로 담은 어청항에 어둠이 서서히 걷힌다. 저 멀리 능선 너머로 외연도의 등대불로 보이는 불빛이 보인다. 어제 등대로 가는 길에는 짙은 안개로 인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 새벽에는 실루엣으로나마 외연도를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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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풍경은 이 정도면 되었다. 한반도 지형이나 보러 가자. 다시 짐을 챙겼다. 가볍고 견고한 포토클램의 삼각대 공덕이 무량하다. 부담 없이 들고 다니면서도 흔들림의 걱정도 내려놓을 수가 있어서이다. 하나 더 구입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욕심이 발동하는 것을 주전자 뚜껑만한 인내심으로 누리고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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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목적지는 팔각정이다. 이미 어제 봤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조류탐방을 위한 방문자의 공간이 마련되었구나. 지금은 나와 관련이 없으니 그냥 이정표 삼아서 좌회전을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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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팔각정일 까닭은 없다. 어제 연지님과 걸었던 그 길을 오늘은 머릿등과 함께 걸었다. 20~30분 걸렸다는 이야기이다. 그 사이에 날도 많이 밝았다. 행여 일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실은 외연도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고, 한반도 지형에 대해서도 초광각으로 담으면 어떻게 보일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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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 이 멋진 명당자리를 그냥 놀리면 지신(地神)이 섭하시지. 물론 새벽에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에게는 다소 불편함도 없진 않다. 곤하게 자는 사람을 깨울까봐 조심스럽기도 하고, 정자에서 삼각대를 세울 수가 없다는 정도이다. 물론 지금은 전혀 아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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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금을 보니까 외연도의 돌삭금, 누적금이 떠오른다. 이런 것만 봐도 어청도는 외연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청항으로 가는 길에 나오는 이름들인 모양이다. 아쉽게도 이정표에 화살표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소식이람.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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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 옆에 세워놓은 이정표도 화살표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정표에서 화살표가 빠진 것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것도 어청도의 특징이라고 해 둘까? 종점까지는 꽤 멀구나. 가는 데까지만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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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좋긴 한 모양이다. 빨간 하트의 구조물이 생뚱맞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실은 환경공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어서이다. 환경을 고려한 설계가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을 만들었겠지....  아마도 연인이 놀러 와서 어청도항을 배경으로 사랑의 사진을 찍으라는 뜻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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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도가 궁금해서 팔각정을 떠났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군. 저 앞에 보이는 봉은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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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공치산이었구나. 공치산이라.... 무슨 뜻이지...? 그러나 그 뜻까지 찾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어디에서도 설명이 없군... 외연도의 망재산도 뜻이 보이지 않아서 제나라를 바라보던 산일 것이라는 짐작으로 망제산이라고 나름대로 개명까지 했는데.... 그냥 이름은 이름일 뿐이니깐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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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사이로 풍랑이 거세다. 주의보가 내릴 만도 하겠네. 저 말리 섬들을 보니 날씨가 맑지 않은 영향으로 흐릿하다. 아무래도 내일을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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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내려가니까 외연도를 조망하기 좋은 바위가 나타난다. 바람이 부니까 날려가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멀찍이서 안전지대를 확보하고서야 사진놀이에 들어갔다. 무엇보다도 안전이 최우선이니깐. 저 말리 외연도의 실루엣이 들어온다. 이것은 24mm의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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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외연도의 모습이 좀 아쉽기는 해도 그만해도 어제에 비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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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mm로 당겨보니까 어느 정도 그 모습을 드러내 준다. 외연도 앞의 바위섬도 보이고 그 사이에 하얀 등대까지도 보이는 거리이다. 작년 이맘때에 저 산의 오른쪽 허리를 끼고돌았던 기억이 그 자리에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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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도가 완만해서 걸을만한 능선길이다. 어청도항을 보면서 걸으니 지루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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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니 팔각정과 함께 그 위로 전파송신탑도 보이고 봉화대로 오르는 나무계단도 보인다. 저 길은 내일 아침에 가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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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에 본 풍경이라면 그렇겠거니... 할게다. 서리를 맞았을 테니까. 그런데 아직 서리도 오지 않았는데 만나는 풍경은 안타까운 마음이 살짝 껴든다. 태풍에 말라버린 잎들을 보니 '참 어려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구나'싶어서이다. 저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뿐인 것이 식물이다. 동물은 이동을 하지만 식물은 환경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식물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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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늘에서 매의 소리가 들려서 올려다봤다. 강풍을 받으면서 활강하는 모습이 멋지다. 바람을 타고 즐기는 그네들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지만 낭월의 맘을 그들의 등에 올려 태울 수는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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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는 방향을 향해서 날아오른다. 매인지, 물수리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까마귀나 갈매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미 소리가 까마귀 소리는 아니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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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놀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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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오는 어청도항을 빠져나가는 어선도 보인다. 풍랑주의보라도 고기를 잡으러 가는 모양인가? 오전이라도 조업을 하고 싶어서이거나, 혹은 이미 설치해 둔 그물을 걷으러 서두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포구는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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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죽은 나뭇잎 사이로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난다. 아직은 더 자라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부단히도 움직이는 식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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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공치산인가? 높은 곳에 오르면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다본다. 땀을 흘리면서 팔각정을 향해서 올라갔던 길과, 풍광을 즐기면서 지나온 능선들이 보이는데, 저 너머에 있을 어청도등대는 보일 리 만무하다. 그래도 행여나 싶어서 눈길을 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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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앙상한 나무가 있지만 죽었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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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 아래에서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또 가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한의 반복이 이어지고 있음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한반도 지형이라고 하는 곳이 나오지 싶다. 그러니까 팔각정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해도 되겠다. 어청도의 아침을 이렇게 보냈노라는 간단한 보고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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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공치산이군. 팔각정에서 600m를 걸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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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에는 네 가지의 등산로가 있었는데 공치산은 3코스에 해당한다. 1코스인 어청도등대는 어제 거쳤고, 오늘은 3코스를 거치게 되었다. 나머지도 차차로 둘러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