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저두항에서 영목항까지

작성일
2019-09-26 06:21
조회
816

⑦저두항에서 영목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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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를 평소 3일 같이 보내고서 기절하여 자고 나니 원산도의 새벽이 찾아왔다. 새벽이 되면 자동으로 마음 속의 자명종이 울린다. 일단 잠이 깬 다음에는 1분이라도 밍기적거리는 것은 아까울 따름이고, 그 마음에 따라주는 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마음은 일어나고 싶은데 몸이 천만근이라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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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깨어서 할 첫번째의 일은 시간을 보는 것이다. 오늘은 5시 23분이 항해박명이구나. 그래서 딱 그 시간에 항해박명의 풍경을 첫 사진으로 담았다. 빛이 부족하니까 시간은 20초이고, 어제의 강풍이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어서 삼각대를 20초간 누르고 있는 것은 반복이 되어야만 했다. 가능하면 누르고 있는 동안에는 숨을 쉬지 않는 것이 좋다. 미세한 진동이 민감한 센서에 전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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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30초이다. 12mm로 풍경을 넓혔다. 바다에서는 12-24mm렌즈가 활약을 한다. 24-105는 일상의 풍경을 담는데는 아쉬움이 없지만 바다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넓어도 너무 넓은 바다에서는 렌즈도 최대한 넓은 것이 최선인 까닭이다. 다만 10mm 렌즈도 챙기긴 했는데 지금은 12mm로도 충분했다. 동녘하늘이 밝아온다. 참 오랜만에 보는 바다의 여명이다. 어제의 황혼(黃昏)도 아름다웠는데 오늘의 여명(黎明)은 특별한 것이 없어도 그냥 그대로 좋은 것은 철썩이는 파도소리의 분위기 때문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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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노출시간을 0.6초로 줄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이기도 했지만 새벽 배들의 출항을 담으려니까 셔속을 당겨야만 했던 까닭이다. 20초로 찍으면 배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셔터 속도를 줄이는 대신에 ISO감도를 800으로 올렸다. 그나마 배가 수직선상으로 이동을 하는 장면을 기다렸다. 수평으로 움직이면 그것도 원하는 그림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 장의 그림을 만들었다.

'어부의 하루가 시작되다'

낚시꾼과 사진꾼이 닮았다고 했지만, 오늘 새벽에는 어부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어부도 날이 새기 전 항해박명이 시작되면 일어나고, 낭월도 항해박명이 시작되면 이 자리에 서게 되는 까닭이다. 섬마을 여행에서는 필수이다. 이 분위기가 좋아서 섬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육지에서는 맛으 보기 힘든 새벽의 풍경을 보면 혼미한 정신도 잠시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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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없으면 자신이 배가 된다. 셔터를 10초후 촬영으로 설정하고 나름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찍힌다. 여명에는 자신의 모습을 담고 싶어진다. 그래서 출연하게 된다. 배가 있을 적에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고기잡이 떠나는 배가 없어서 조금 허전하기는 하다. 비록 사진에서는 배가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 수면위의 불빛들은 오천항에서 출항했을 법한 어선이다. 줄을 지어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으니 글로 나타낼 따름이다. 그 역동적인 분위기는 그 시간에 바다가 서서히 물들어오는 시민박명의 시각에 얻을 수가 있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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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동이 터오니 고기를 잡으러 가는 배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어느 포구 잠을 자고 깨어났는지 줄잡아도 30~40대는 넘지 싶은 배들이 북에서 남으로 내달린다. 아마도 북은 오천항일게고 남은 군산앞바다 까지 가는 걸까? 그건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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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의 풍경이 제대로다. 고만고만한 어선들의 한줄로 늘어서서 항해하는 것을 보면서 저두항에서만의 풍경을 맘껏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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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만조의 시간은 지났는데도 파도가 여전히 몰아치고 있어서 자칫하면 삼각대를 소금물에 절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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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파도는 살아있다. 시간대만 보고 있다가는 파도와 만나는 사태가 발생할 수가 있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 파도는 파도의 마음이기 때문에 썰물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바로 움직이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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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과 함께 깨어난 갈매기들의 하루도 일찌감치 시작이 된다. 그래서 마법의 시간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일몰전후 1시간, 일출전후 1시간이 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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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출의 시간이 되었다. 19분에 일출이라고 했으니까 앞의 산이 가리고 있는 것을 감안해도 멀지 않아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싶다. 오늘 일출은 당겨봐야 산의 능선 밖에는 볼 것이 없지 싶다. 대청도의 일출은 섬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이렇게 밋밋한 전경이라면 오히려 원경으로 담는 일출이 더 좋겠다는 것으로 결정을 한 다음에 일광보살을 영접할 준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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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일광보살 마하살~~!!'

보살님의 얼굴이 완전히 나온 다음에 셔터를 눌렀다.(물론 그 사이에도 30장은 더 찍었지만..ㅎㅎ) 갈매기 보살님이 일광보살을 영접하는 장면이 얻어졌다. 여기에서 갈매기는 낭월이다. 좋구먼~! 마치 태양이 능선을 타고 굴러가는 느낌을 생각해 봤다. 경사도를 보면서 볼링공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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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물들기 시작한다. 햇살이 수면으로 부서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황홀하다. 빛의 마술이다. 태양각과 바다의 협주곡이다. 자연오케스트라의 새벽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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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른 태양이 솔빛대교를 비추는 것도 놓치면 안 된다. 저두항에서 보이는 서쪽의 풍경이 제대로 어촌마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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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낭월을 지켜보는 친구가 있었구먼? 백구(白鷗)이다. 길조(吉兆)로군. 백구와 백차가 나란히 낭월을 보고 있다. 그래서 길조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보일 따름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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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하는 녀석들도 한 장 찍고는 새벽놀이를 마무리 했다. 그 중 한 녀석이 비상하는 모습도 찍어달란다. 그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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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맑은 하늘의 도움으로 재미있게 놀았다. 아침밥은 8시에 달라고 했으니 아직은 시간이 있다. 들어가서 1시간만 쉬자. 그래야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지. 새벽에 두어 시간을 놀았으니 소모된 만큼 다시 추가로 충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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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단잠을 자고 일어나서 할머니가 마련해주신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도와주시는 할아버지를 뵌 김에 물었다.

낭월 : 뭣 좀 여쭤보겠습니다.
할배 : 예, 뭐든지 말씀하세요.
낭월 : 저 다리는 원산도 주민만 통행이 가능하다지요?
할배 : 예, 그렇습니다.
낭월 : 아.... 역시.....
할배 : 몇 시경에 나가실라고요?
낭월 : 아침 먹고 9시 쯤 될 것 같은데요.(기대! 기대~!)
할배 : 음.... 방법을 알려 드릴테니 그대로 하세요.(속닥속닥~~)
낭월 : 아하~! 그럼 다리로 안면도를 갈 수가 있습니까?
할배 : 그럼요. 다시 배를 타는 것도 재미 엄잖유?
낭월 : 물론이지요. 그러고 싶었지요. 덕분에 소원 하나 이뤘네요.

할배 : 이것도 인연이잖유. 허허허~!
낭월 : 물론이지요. 고맙습니다. 여쭤보길 잘 했네요.
할배 : 알려드린대로 하시고 즐거운 여행 되세요.
낭월 : 고맙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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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챙기는데 아침 배가 저두항에 들어온다. 대천에서 7시 20분에 출항한 배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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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들어오는 사람보다는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말하자면 대천으로 출근이나 등교하는 섬 사람들을 위한 뱃시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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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인증샷을 하나 남기고는 오늘의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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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폐교가 되어버린 중학교가 있어서 잠시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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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의 풀만 제거하면 바로 공부해도 될 깨끗한 건물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아깝다. 건물이나마 잘 보존을 한 모양인데 누군가 이러한 곳에 가르침의 공간으로 다시 생명력을 찾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교통이 좋아지면 그러한 방안도 나오지 싶기는 하다. 원산도명리학교를 만들어? 그것도 괜찮겠는데 말이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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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는 할어버지가 가르쳐 주신대로 그 비법을 써먹을 때가 되었다. 다리로 이어지는 도로는 차선을 긋기 전이다. 포장을 마친 상태에서 중앙선 표시만 해뒀다. 이것도 지금 이시간이기에 볼 수가 있는 풍경이겠군. 이제 머지 않아서 차선도 그어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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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도로가 긴장감을 주더니 차가 한 대 지나가는 것을 보니까 그래도 좀 낫다. 길은 열려 있다는 말이겠거니. 길목을 지키는 사람이 안 된다고 하면 다시 뱃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어제 타고 온 배를 타야 겠지....
그러면 다시 대천항으로 가겠지....
대천항으로 가면 이 다리는 못 건너보고 말겠지.... 
언젠간 개통하겠지만 지금 건너보고 싶은 거지.....
이번 원산도 나들이에서 마지막 이벤트를 성공해야지.....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할아버지의 비법을 다시 입안에서 되뇌었다. 긴장감으로 틀리게 말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긴장감은 점점 높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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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교의 기둥이 보이는 곳에서 도로포장이 한창이다. 아! 느낌이 안 좋다.... 길을 막은 건가....? 이게 뭐지....? 누구 허락을 받고 다리를 건너려고 하느냐고 하면 어쩌지.... 답을 할 말은 이미 외웠지만 그래도 당황해서 들통이 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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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완전히 막힌 모양이다. 클났다..... 지켜보던 감독관이 다가왔다. 손에 땀이 난다. 빤히 보고 못 건너간다면 중국의 투먼에서 북한의 남양을 건너다 보고 중간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오는 꼴이 되고 말겠군..... 그때야 국경선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그래도 공사중이잖여.... 아직은 길이 아니고 공사중이란 말이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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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람)을 보고서 창문을 내렸다. 이제 바야흐로 아침에 전수받은 통행비법을 써먹을 순간이 온 것이다. 그렇게 막 입을 열려는 순간 그가 먼저 말을 했다. 짐작컨대, '어떻게 오셨습니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 : 다시 건너 오실 겁니까?
낭월 : 아뇨~!
감독 : 보시다시피 포장공사 중이라서요.
낭월 : 그러시군요. 안 건너옵니다.(아무렴요. 절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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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허무하다. 그렇게 애써서 외웠는데. ㅋㅋㅋ 그래도 다행이다. 중간에 차를 세웠다. 인증샷을 남기지 않으면 여행사진가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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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mm렌즈로 천수만까지 맘껏 담았다. 솔빛대교에서 찍었다는 인증샷이다. 햇살이 바다를 치고 올라온다.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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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의 사진을 빌어오지 않아도 되겠군. 내가 평생 써도 될 이미지를 얻었으니 오늘은 운수가 대통이구나. 도로공사가 아니었더라면 비법을 써야 했을텐데 공사때문에 써먹을 틈이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사전에 얻은 정보만 의지해서 이 멋진 풍경은 꿈으로만 남긴 채로, 배표를 사놓고 기다렸더라면 또 얼마나 아쉬웠겠느냐는 생각을 하니까 '일단 부딛쳐 보고 나서 안 되면 다른 방향을 찾아도 늦지 않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차들도 안 다니는 시원한 전망대가 되어버린 솔빛대교에서 맘껏 풍경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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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이제 어디로 가?
낭월 : 영목항~!
연지 : 영목은 안 가봐도 되잖아요?
낭월 : 원산도 이야기를 영목에서 마무리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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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의 영목이다. 달라진 것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추가되었다는 것 뿐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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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 오면 꼭 한 장 담아야 하는 해양경찰서이다. 새벽에는 해양경찰이 출항하는 선박들을 관리하는 장면도 볼 수가 있는데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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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차량이 지나가는 다리의 모습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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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별놀이 하던 원산도의 선촌항 등대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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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원산도 여행은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물론 충분히 즐거웠던 나들이였다. 그 섬에서는 현재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잘 봤으니 말이다. 안면도를 거쳐서 해가 넘어간 다음에서야 귀가를 했으니 1박2일의 여행도 마무리가 되었다.

 

여행에 동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