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선촌항에 밤이 오면

작성일
2019-09-2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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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원산도 선촌항에 밤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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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행에서나 백미()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던 것도 이번 여행에서의 백미를 얻기 위해서다. 군산항에서 차를 돌릴 때부터, 그리고 1년 전에 옥마산에서 솔빛대교를 찍으면서도 생각했던 바로 그 꿈을 오늘 밤에 이뤄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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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하고 나니 이미 해는 넘어간지 오래이고, 시민박명이 진행되고 있다. 노을의 방향으로 봐서 어차피 일몰 시간에 왔더라도 해를 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각도는 그렇게 나오는 모양이라서 저녁이 좀 늦어진 것은 오늘 밤의 사진놀이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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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별도 별이지만 이 노을지는 솔빛대교(입에 배어서)의 풍경도 멋지다. 저 멀리 작은 섬들의 실루엣이 포함되어서 분위기를 돋구는데 암초 표시등대까지 서 있으니 어부가 낚시질을 하고 있는 느낌까지도 살아난다. 멋지다. 아직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은 것은 개통전이라는 의미일게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하루의 마지막 황혼을 바라보는 느낌은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풍경을 얻는 것도 하늘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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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봐뒀던 장소로 이동을 해서 자리를 찾았다. 나름 촬영장소를 물색해 뒀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지 않고 바로 장소로 갔다. 오늘 밤 어청도의 산 꼭대기에서 별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에 이렇게 원산도에서 영목항을 바라보면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것도 고마울 따름이다. 시시각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모든 것들, 계획에 있었던 것, 혹은 계획에 없었던 것조차도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인간은 자연의 매우 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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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18분. 보자.... 항해박명이 지나갔나.....? 천문박명까지 넘어가야 별님들이 산책을 나오실텐데 오늘 저녁의 천문박명은 8시 4분이구나. 어플에서 위치는 정확하게 영목항선착장으로 찾아서 최대한 실제상황에 맞춰야 한다. 새벽에는 항해박명을 기다리고, 밤에는 천문박명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니까 오늘밤의 별사진은 8시 이후부터 찍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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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고 싶다면 최대한 북극성에 가깝게 각도를 잡아야 한다. 폰의 어플이 알려주는대로 0도가 되도록 방향을 잡은 다음에 그 쪽을 향해서 렌즈의 위치를 정한다. 바람이 엄청 불어댄다. 물론 바람걱정이 덜 되는 것은 요 짧은 삼각대가 있기 때문이다. 다리가 길었더라면 휘청였을텐데 다행히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마치 거북이처럼 바람과 싸우지 않고 흘려보내고 있는 작은 삼각대의 위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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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키가 큰 삼각대도 여지없이 최소한의 높이로 조정해야 한다. 카메라의 줄은 모두 떼야 한다. 바람이 불면 작은 돗단배의 돗대 역할을 해서 카메라에게 진동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바람에 하나를 잃어버리고 다시 구입하는 불상사가 생기긴 했지만 또한 지금 이 순간에서만 최선을 다 할 따름이다.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바람에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던 모양이다. 다음날 현장을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별님이 노리개 할라고 데려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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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삼 : 어? 나혼자 냅두고 오데가노? 
알삼 : 혼자 별구경하고 있거래이~ 포구를 한바퀴 돌고 오꾸마.
엠삼 : 바람도 부는데 고마 같이 사진이나 찍재이.
알삼 : 니는 복이 많은 기라 편안하게 앉아서 놀고 있거래이~!
엠삼 : 그래 퍼뜩 갔다 온나. 여긴 내가 지키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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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님은 차에서 폰을 들고 게임을 한다. 모진 바람을 피할 차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다. 배낭을 지고 나왔더라면 도리없이 이 모진 바람을 다 맨몸으로 받으면서 바위를 찾아서 은신했을텐데 말이다. 먼바다의 풍랑을 일으킨 바람이 원산도까지 찾아온 모양이다. 삼각대를 세우고서도 체중을 실어서 눌러야 안심이 될 정도이니깐. 여기에 가방을 매단다는 것은 바람이 없을 적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강풍이 몰아치면 누르고 있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얻은 사진들이다. 그 느낌까지 벗님에게 전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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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불빛은 효자도의 풍경이고, 오른쪽의 불빛들은 아마도 대천항의 풍경일게다. 그리고 듬성듬성 별빛이 보이는 것은 13초의 장노출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더 밝게 하면 불빛들이 미친 듯이 튀어올라서 이것이 마지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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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잔잔하다? 원 그럴리가~! 파도가 휘몰아 친다. 그렇지만 거울처럼 만드는 것은 장노출의 마법이다. 8초를 주면 이렇게 변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니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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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삼(R3)은 4,200만 화소이고 엠삼(M3)은 2,400만 화소이다. 그래서 엠삼에게 별이나 찍고 있으라고 하고 알삼이랑 밤풍경을 찍으러 나온 것이다. 항상 두대의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의 갈등이다. 똑 같으면 그만인데 서로 성능이 다른 까닭이다. 두어 달 전에는 6,100만 화소를 장착한 알사(R4)가 출시되어서 미끼를 던지고 있지만 절대로 물지 않는다. 그것을 무는 순간 가정풍파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드의 요동치는 것을 누르느라고 손목이 다 아프다. 그래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지 암. 참다가 보면 그것을 만져볼 날도 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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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그물 손질을 하던 사람들은 고향의 가족들과 통화를 하고 있을까?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은 선촌항의 그물들은 가로등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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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어놓은 안강망 그물들은 별빛샤워를 하고 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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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준비를 끝낸 그물의 다발은 바다냄새에 취해서 잔뜩 흥분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서 가서 물고기들과 만나고 싶은 게다. 그물은 물에서 놀아야지 여기에 이러고 있으니 덕장의 명태와 뭐가 달러? 그물들의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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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야무지게 묶어놓은 보따리를 보니 출항을 하게 될 시간이 오늘내일 하는 모양이다. 낮에는 못 봤는데 저녁에 싣고 온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일 아침에 바다로 나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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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풍랑과 물결을 이기기 위해서 이렇게도 굵은 고리를 달아뒀구나. 외연도에서도 봤지만 안강망을 싣고 어장으로 떠나는 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리고 수중촬영을 하는겨. 고기들이 그물과 만나거나 빠져 나가거나 간에 모두가 재미있을 것 같구먼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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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더 설레어서 잠을 못 이루는 녀석도 있다. 신출내기이다. 대형 트럭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싣고 온 것인지 싣고 갈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싣고 와서 퍼놓고는 다음 뱃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싶다. 그물에게 말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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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지금 기분이 워뗘?
그물 :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낭월 : 뭘 상상하는 겨?
그물 : 제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상상이요.
낭월 : 그건 어떻게 알지?
그물 : 공장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낭월 : 그래서 많이 궁금했구나?
그물 : 당연하죠. 고기들이 입안으로 마구마구 들어온다면서요?
낭월 : 바다는 어떻게 생겼을 것 같노?
그물 : 황홀할 것 같아요. 보고 싶어요.
낭월 : 그래 곧 보게 될 게다. 행복한 내일이기를~!
그물 : 근데 이 밤에 뭐하러 다니세요?
낭월 : 응? 나도 고기잡으러 다녀?
그물 : 땅 위에도 고기가 있어요? 
낭월 : 그~으럼~!
그물 : 만경창파에서 목숨을 걸고 잡는다던데요?
낭월 : 아, 그 고기가 아니고.. 못먹는 고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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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물이 빠졌을 적에는 쓸모가 없었던 배로 연결되는 다리도 살아서 움직인다. 들어가 보려다가 참았다. 행여 선박에서 뭘 훔쳐갈까봐 걱정되는 사람을 만나면 민망하지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없이 남의 재산에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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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에서는 엠삼이 열심히 별을 찍고 있을게다. 15초 찍고, 1초 쉬기를 반복하고 있겠지. 기특한 녀석이다. 카메라가 두 대인 것이 그래서 또 행복한 것이다. 3대라면? 아마 더 행복하겠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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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별빛이 떠나갈 시간이 다 되었다. 8시 59분에 뜨기로 한 달이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서 떠오른다. 낭월도 바쁘지만 달도 바쁘다. 일정이 있어서이다. 달이 뜨면 별사진은 끝이다. 저건 반갑지 않은 달이다. 달이라고 해서 항상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지 뭘. 아직은 달빛이 대기권을 뚫고 올라오기 전이라서 별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별이랑 놀고 있던 엠삼도 그 일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보령항의 굴뚝에서 나오는 것은 필시 야간을 이용해서 배출하는.... 나쁜 물질이겠거니.... 그나마 바람의 방향이 반대쪽이라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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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스무날 달이 많이 줄어들었군. 그래도 여전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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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진이 끝났다고 해서 사진놀이도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달이랑 놀면 된다. 어린 아이에게 뭐하고 노느냐고 물으면 안 된다. 무엇이랑도 놀 수가 있는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달빛의 반영조차도 같이 놀아주는 것을 보라. 이 낯선 어촌의 분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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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왔던 바닷물도 달빛을 향해서 빠져나간다. 바다는 달을 좋아하나보다. 달이 뜨는 것을 보고서는 그쪽으로 내달리는 것을 보면 알겠다. 그래서 물에 잠겼던 접안시설의 부두가 드러난다. 달빛을 이용해서 77번 국도를 연결시켜 본다. 이번엔 달빛길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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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를 표시하는 기둥이 앞에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것도 좋다. 그럼 바쁘게 솟아오른 달님을 잠시 쉬게 해 드리자.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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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달님에게 자리를 마련해 드렸다. 편안하시지유? 앗, 이렇게 놓고 보니까 77번 국도가 아니네. 20번 월로(月路)였네. 달로 가는 길이었구먼. 달빛을 타고 있으면 광속으로 데려다 주겠네. 문제는 저 기둥까지 올라가야 해서 일단은 포기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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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달님이랑 낭월이랑 놀이를 하다가 보니 그만 가야 할 시간이다. 이제 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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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박명이 사라지면서 별들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는데.... 영목항의 빛들이 동참을 한다. 전혀 원치않은 빛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라즈니쉬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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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행자가 열심히 기도를 했다.
행운의 여신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얼마나 기도가 간절했던지 마침내 행운의 여신이 나타났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잠시후, 그 행운의 여신 뒤에 검은 옷을 입은....
'찝찝하게 생긴 당신은 뉘십니까?'
'난, 불행의 신이라네.'
'저는 청한 적이 없는데요? 잘못 오셨나 봅니다.'
'아, 그대가 청한 것이 아니고, 우린 자매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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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별빛을 좋아하면, 불빛도 피할 수가 없다. 애초에 여기에 자리를 잡은 이상 그것은 피할 수가 없는 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보라, 멋진 솔빛대교와 영목항의 불빛들과 어우러진 하늘의 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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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게 일어나는 파도조차도 20초의 시간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바다는 삽시간에 호수가 되었고, 잔잔한 그곳으로 별빛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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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때에 떠오르는 카드이다. 별빛이 호수에 잠긴다. 천지는 고요함에 빠져들고 마음도 그렇게 동화되어간다. 나도 잊고 별도 잊고 호수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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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밤풍경이다. 그림이야 되든 말든 내 좋으면 그뿐이다. 이런 그림을 그렸었는데 실화가 되었으니 이보다 다행일 수가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솔빛대교랑 같이 담을 수가 있었으니 이번 나들이의 목적은 완전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엠삼이 모진 바람을 맞으면서 100분 동안 해 놓은 결과물이다.



시간이 짧아서 좀 아쉽긴 하다. 그리고 여전히 경험이 미숙하여 맘대로 되지 않은 것도 아쉬움이지만 그래도 점점 나아질게다. 북극성이나 대충 잘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별궤적으로도 편집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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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동그라미를 봤으니 어지간히 맞춘 것으로 봐도 되겠다. 그냥 별빛의 소용돌이만 있는 것보다 훨씬 멋지구먼 그려. 빛을 공해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바라보니 빛의 잔치였더란 것을 자칫 그냥 지나칠 뻔했다. 땅에서는 빛잔치, 하늘에선 별잔치였다. 오늘 밤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를 짓고는 서둘러서 아카데미하우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