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이른 빅토리아연

작성일
2019-08-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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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른 빅토리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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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저녁을 먹고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부여 궁남지로 향했다. 노을의 고운 빛깔이 행운의 조짐이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괜한 기대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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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된 것은 그저께 아침에 본 이녀석 때문이었다. 봉오리의 크기로 봐서 어쩌면 멋진 여왕을 알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부채질을 했다. 가보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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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궁남지 동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침 마지막 빛으로 구름을 불태우고 있는 풍경을 만나니 그것만으로도 나들이를 한 값은 충분하다고 나름대로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빅토리아 연꽃은 8월 말경이나 되어야 제대로 피어난다는 것을 경험상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빅토리아를 제대로 못보더라도 억울해 하지 말자는 예방주사인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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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초열흘 달이 배가 볼록해져서 허공을 맴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궁남지는 산책을 나온 주민들의 그림자가 여기저기 어른거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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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물을 튕기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도 궁남지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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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편한 밤이 되길~! 내가 가야 할 길은 저~어~쪽 빅토리아 연못이다. 예전에는 여기에서 빅토리가가 자라고 있었는데 올해는 뒤쪽으로 옮긴 듯 싶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여다 본 작년까지의 빅토리아 연못엔 오리만 한가롭게 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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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노을을 만났으니 궁남지의 반영도 한 장 담지 않을 수 없지. 시간은 약간 늦어서 포룡정이 어둠 속으로 묻혀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반영은 충분히 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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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대했던 대로 어젯밤에 공주로 출현했을 꽃이 오늘은 여왕의 대관식을 하러 등장했다. 이미 대포들 20여대가 그 둘레의 둑에서 수시로 플래시를 비춰가면서 대관식 준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궁남지 연밭 전체를 통털어서 이곳이 오늘밤의 용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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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잡아놓고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올해의 빅토리아는 유난히 일찍부터 피어나는 바람에 개화의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아마도 날씨 탓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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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mm렌즈를 1.6까지 열었음에도 어둠이 짙어져서 이소를 12800까지 올려서야 대충 윤곽이 드러난다. 이 렌즈를 소니사용자들은 '이사금'이라고 부른다. 24mm 1.4밝기의 GM렌즈라는 것을 생략하는 애칭이다. 이사금의 공덕은 밝고, 가볍고 풍경스케치 용으로 더없이 좋은 렌즈이어서 필수휴대가 되었다. 특히 어둠이 내리고 나면 24-105mm의 F4.0과는 큰 차이가 나는 F1.4렌즈라는 것이 실감난다. 기왕이면 망원렌즈도 언젠간 2.8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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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이보다 더 어두웠지만 조금 밝게 해서 분위기를 나타내 본다. 사람이 꽃을 심었지만, 꽃이 사람을 부른다. 결국 동물은 식물의 지배를 당한다. 이 시간에 모기에 뜯기면서 삼각대를 세우고 뭘 기다리느냔 말이지. 자연의 상부상조를 조용히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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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모기에게 뜯길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열심히 계산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여왕의 화려한 대관식을 볼 가망이 없으면 얼른 집으로 가서 잠이나 자는 것이 수지맞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경험자의 판단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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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 : 안녕하세요~!
낭월 : 안녕하세요...
아제 : 서울서 오셨남유?
낭월 : 논산에서 왔습니다.
아제 : 뭘 찍으시는 거래유?
낭월 : 빅토리아 연꽃을 보려고요.
아제 : 오늘 첨 봤씨유~ 낮에는 연꽃 많이 봤는디...
낭월 : 빅토리아는 밤에만 피니까요.
아제 : 수시로 산책삼아 나와도 몰랐지유.
낭월 : 읍내에 사시나 봅니다?
아제 : 예, 농사를 짓다가 아파트로 옮겼지유.
낭월 : 편하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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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 : 농사를 조금 짓고 있씨유~
낭월 : 벼농사만 해서는 재미가 없지 않으신가요?
아제 : 그래서 소도 좀 치는구먼유.
낭월 : 그러시면 재미있으시겠네요.
아제 : 논도 150마지기 정도 짓구유.
낭월 : 그러면 기계가 일을 다 하겠네요?
아제 : 그리유~ 그래서 뭔가 취미가 필요해서유.
낭월 : 취미가 있으면 좋지요.
아제 : 친구가 말하기를 취미가 없으면 지루하다고 해서유.
낭월 : 취미로는 사진취미가 최고입니다.
아제 : 그럴라나유?
낭월 : 운동도 많이 되고, 돈도 많이 안 들고요.(진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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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돈이 많이 안 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게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돈도 많이 드는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스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낭월의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뭐든 2천만원은 들여야 되는 것이 맞네요"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 것이 점점 하나 둘 챙기다가 보면 대략 그 정도는 각오해야 나름대로 담고 싶은 대상들을 만났을 적에 큰 아쉬움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나름 괜찮은 카메라(1대만 산다고 할 경우) 300만원
나름 쓸만한 기본줌렌즈(24-105) 150만원
꼭 필요한 풍경용 광각줌렌즈(12-24) 200만원
경치가 좋은 곳에 가면 만나는 필수 망원렌즈(100-400) 300만원
꽃의 자세한 속살을 들여다 보려면 매크로렌즈(90마크로) 140만원
카메라와 렌즈가 있으면 필수인 삼각대(헤드포함 쓸만한 걸로) 100만원
가방도 하나만으론 안 되니 대중소로 해도 대략 100만원

대략 이 정도로 갖추자니 대충 따져봐도 1천300만원이다. 그럼 2천만원까지는 안 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새로운 카메라가 나오면 극심한 구매충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고, 이런저런 이유로, 카메라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을 붙여서 추가비용이 들어가고, 자잘한 소품들이며 배터리며 메모리카드까지 챙기다 보면 결코 2천만원은 그리 많은 돈이 아닌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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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아제에게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렌즈일체형으로 150만원 정도면 꽤 괜찮은 입문용 카메라를 마련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각자의 성향과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그래서 돈도 얼마 안 든다고 하면서 내심 쪼매 캥기긴 했다. 아마도 어쩌면 인터넷으로 카메라를 검색어에 넣고 뒤적거리고 계실지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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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어째.... 빛바랜 모시적삼을 보는 듯한 오늘의 주인공은... 좀체로 대관식을 할 마음이 없는지 그모양을 유지하고 애만 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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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들은 빅토리아 철이 되면 불면증에 걸리지 싶다. 그 중에도 자는 녀석은 잘 자는 것을 보면 또한 스스로 알아서 적응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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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님은 차로 가서 쉬고 있으시라고 했다. 시간이 좀 걸릴 모양이니까 꽃이 활짝 피면 연락한다고 했더니 모기에 뜯기는 것이 싫었던지 얼른 차로 간다. 그 중에 킬라까지 한통 사놓고 갔다. 모기가 다 뜯어먹을까봐 걱정이 되셨나 보다. 고맙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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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항상 성공만 한다면 그게 인생여~~!!
눈치 빠른, 지혜로운, 경험이 많은 사진가들은 하나 둘 짐을 싼다. 오랜 경험으로 봤을 적에 오늘의 빅토리아는 제대로 대관식을 마칠 것으로 안 보였던게다. 아직도 빅토리아에 대해서는 초보인 낭월만 미련스럽게 모기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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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선을 돌려서 궁남지의 야경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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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모두 다 떠나가고 홀로 남아서 배회하는 홀가분함도 분명히 좋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용신은 신통치 않구나. 점점 물속으로 점겨들고 있는 모습이 어여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는 신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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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싸기 전에 약간의 미련으로 포룡정의 야경으로 위안을 삼을 요량이다. 연인 으로 보이는 듯한 남녀가 어둠의 편안함을 즐기고 있는 듯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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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그만하면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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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운 것은, 800mm로 화질저하를 감수할 것이 아니라, 400mm로 화질을 지키면서 보정으로 크롭을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헛일은 없는 법이다. 뭐라도 하나 배우고 가야 하는데 오늘도 중요한 것을 하나 배웠다. 이렇게 어두운데도 밝은 손전등이 있어서 다행이고, 조리개는 F5.6으로 최대한 열어서 이소를 1000까지 낮출 수가 있는 것도 실험해 봤다. 셔터를 30분의 1초까지도 늦춰본다. 다만 바람이 없어야 가능하다는 것도 염두에 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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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왜들 그렇게 밝은 조리개를 탐하는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이제 화질에 대해서 눈이 떠지려고 하는 모양이다. 조리개 2.8까지 열 수가 있는 렌즈를 구할 수가 있는 날까지 더욱 열심히 살자. 혹시 그건 또 얼마나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으신 벗님을 위해서 정보만 첨부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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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기가 2.8이다. 그만하면 밤중에도 사진이 잘 나오지 싶다. 가격도 얼마 안 한다. 1400만원. 까이꺼~! 하다가도 무게를 보면 그만 기가 죽는다. 이 녀석을 구입할 돈도 없지만 막상 하늘이 도와서 구입을 한다고 해도 들고 다닐 일이 아득하니까 아예 사지 않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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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가 대략 100g 빠지는 3kg이다. 1시간만 이것을 들고 다니다가는 어깨가 빠지던지 손목이 나가든지 둘 중에 하나일게다. 그러니까 화질에 너무 빠져들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는 것이다. 까이꺼 F11이면 워뗘~! 괜찮아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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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쉬던 연지님도 슬슬 나왔다. 그래서 그만 짐을 쌌다. 오늘도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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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나들이는 8월 말경으로 잡으면 되겠다. 찬바람이 살짝 불어야 빅토리아여왕은 붉은 망토와 왕관을 쓴다는 것을 절실히 확인했으니 이 글을 읽으시는 벗님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여 시행착오를 줄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