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도의 전설(3/6)

작성일
2018-11-09 06:01
조회
1135

외연도(外煙島)의 전설(傳說)(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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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도의 한자는 외연도(外煙島)와 외연도(外烟島)로 나온다. 일반적으로는 연기연(煙)을 쓰는데, 또 연기연(烟)으로 표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두 글자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뜻으로는 모두가 연기이니 같다고 하더라도 느낌이 좀 다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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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한 방에 끝내버리는 군. 중국어사전에는 烟과 같이 쓴다잖여. 그래서 더 이상 이 문제는 거론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보겠다. 안개, 먼지, 수증기 등의 의미가 그 안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겠다.

[外煙島] 안개가 자욱한 바깥 섬

이렇게 이름을 정리하면 되겠다. 물론 '바깥'이란 '안'에 해당하는 군산시 옥도면 연도(煙島)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도 겸해서 참고한다. 서로 연관은 없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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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도스러운 이야기'는 뭘까?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까 바로 답이 나온다. 당산(堂山)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는 외연도를 이야기 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외연도 안내도이다. 처음으로 외연도에 도착하면 누구라도 제일 먼저 폰으로 찍어야 하는 외연도의 제1컷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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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외연도의 산은 봉화산과 망재산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이 셋이다. 그 중간에 당산이 있기 때문이다. 「전설따라 섬여행-외연도편」은 이렇게 세 개의 산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 할 모양이다. 전설따라 가는 길이니 사실에 대한 여부는 논외(論外)로 한다. 다만 없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ㅋㅋㅋ

 

[천산(天山)] 망제산(望齊山) - 양산(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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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보면, 왼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망재산이란다, 그런데 낭월의 짧은 소견으로는 망제산이었을 게다. 한자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낭월이 나름대로 한자를 붙였다. 물론 근거가 없지는 않으니까 일리는 있다고 해도 되지 싶다. '제나라를 바라보는 산'이다. 그것이 외연도 전설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산을 음양으로는 양산이라고 하고, 천지인으로는 천산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앞으로 300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오늘의 허풍이 또 전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낭월은 전설을 만드는 작가인 셈이기도 한가? 물론 이것은 웃자고 하는 말이고, 실로 어딘가에서 망제산의 한자가 나온다면 99%는 이렇게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지산(地山)] 봉화산(烽火山) - 음산(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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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렇게 봉화산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음산(陰山)이로군...' 왜냐하면, 쌍봉이지 않은가 말이다. 쌍봉은 둘이고, 둘은 짝수이고 짝수는 음이기 때문이다. 망재산은 홀수이다. 그러니까 양이 되는 것과도 서로 연결이 된다.

한자는 대략 짐작으로 만들었다. 한자가 없으면 뭔가 덜 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장 말씀드리지만 '한자집착증'이다. 그래도 할 수가 없다. 이 병은 뭘로 치료해야 하는지 좀 알려 주셨으면 고맙겠다. ㅋㅋㅋ

[인산(人山)] 당산(堂山) - 중산(中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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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산과 봉화산 중간에 있는 산이다. '당에는 사람을 모셨으니 인산(人山)이 맞다'고 우길 근거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중산(中山)은 중화산(中和山)의 줄임말이다. 동글납작한 것이 영락없는 중화의 모습을 하고 있음이다. 낭월만 그렇게 보이나? ㅋㅋㅋ

이렇게 삼산(三山)에 대한 이야기부터 너스레를 떠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말하자면 '프롤로그'인 셈이다. 도입부(導入部)에서 일단 이목을 집중해야 이야기의 울림이 큰 까닭에 이러한 주변의 풍경부터 휘어 잡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배경음악으로는  소오강호의「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를 깔았다. 음악이 짧아서 반복으로 듣고 있다는 것도. 왜냐하면 이렇게 허허로운 마음이 되어서 수다를 떨려면 등려군 누님의 간드러진 노래보다는 고쟁(古箏)의 탈속한 듯한 느낌이 제격인 까닭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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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봉화산 둘레길을 돌아서 작은명금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작별을 했다. 고생 했으니 집에 가서 푹 쉬라고 했다. 짐작컨대 풍경도 특별히 볼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은 당연하다. 험한 길은 동행하고, 편한 길은 홀로 가는 것도 인생인 게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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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길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흔적이 보인다. 사당까지는 흙을 밟지 않고 갈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당이 외연도의 중심에 있다는 것도 의미하고, 주인격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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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 보니 두 개의 봉긋한 봉우리가 푸근하게 지켜 본다. 봉화산이다. 봉화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름이 봉화산이면 봉화를 올렸던 산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일반적인상식이다. '음산이로군....'

하나가 솟으면 양산이요, 문필봉이 이에 해당하겠다.  퍼지거나 둘로 나뉘면 음산이다. 흡사 여인의 젖가슴이 떠오르면 틀림없는 음산이다. 여기에 추가해서 엄(마)산이라고 해도 된다. 길게 뻗으면 수산이요, 삐쭉삐쭉하면 화산이다. 그냥 느낌대로 붙이는 이름일 뿐 실제와는 별 의미가 없다. 이름에 매이면 실체를 놓치게 되는 까닭에 웬만하면 이름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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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점점 우거져서 어둠을 만들고 있다. 아, 무섭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약간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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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만 봐서는 태산이라도 오르는 것같다. 이렇게 만드느라고 공력도 많이 들었겠다. 그만큼 당산은 외연도 사람들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낙엽이 흐트러진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딛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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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갈래 길이다. 주변의 형세로 봐서 오른쪽은 바닷가로 가는 길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 할 당산의 길은 왼쪽이다. 엉터리거나 말거나 표지판 하나쯤 세워 뒀을 만도 한데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짐작으로 찾아가라는 시험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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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텐트를 칠 공간은 마련되어 있구나. 여기에서 잠을 잔다면..... 웬만한 사람은 가위에 눌리지 싶기도 하다. 바닷가의 청량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까닭이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없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은 맘만 한 조각 던져 놓고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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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상록수림을 보호하는 것은 잘 한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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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망가졌을지 알 수가 없는 일이겠다. 천연기념물 136호란다. 문화재라고 하는 것은 맞나? 이게 문화재랑 무슨 상관일까? 그냥 자연유산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이긴 하지만.... 책상을 못 떠나는 공무원들의 짧은 소견머리려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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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이 공무원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인격이 아니라 습관이다. 현장에서 확인하면 바로 해결을 할 수가 있는 일도 책상에 앉아서 공론(空論)으로 세월만 죽이고 월급을 받아가고 있는 쓸따리 없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장을 누비는 공무원은 당연히 제외이다. 이정표와 안내판에 오타가 그냥 있는 것을 보면 알 일이다. 그걸 한 번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말이잖아. 참 내....

이 자리에 와 보면 이게 무슨 문화재냐고 하는 것을 바로 알겠지만, 그냥 소중하다고 하니까 그럼 문화재네 하고. 아마도 그랬을 게다. 안 봐도 대충 짐작이 된다. 유산은 두 가지이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다. 저절로 자연이 만든 것은 자연유산이고, 인공적으로 만든 것은 문화유산이다. 그럼 나무를 심어서 가꿨으면 문화유산일까 자연유산일까? 그러네... 그것도 알쏭달쏭하긴 하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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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지가 있었던 것을 추억하는 구나. 곤파스가.... 사고를 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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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멋있어 진다. 인간도 나무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멋었어졌으면 좋겠다. 나무를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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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의 사진찍는 습관은 '웬만하면 가로'이다. 자연은 가로일 적에 더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렇게 세로가 되기도 한다. 오랜 세월을 꼿꼿하게 서서 살아오신 나무 님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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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길은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해찰하고 있다. 뭐 바쁠 일도 없고, 쉬엄쉬엄 가도 도착하는 곳을 서둘러서 등줄기의 땀을 느끼면서 갈 필요도 없고, 그것은 너무 힘든다. 그래서 이러고 있으니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천천히 가도 보이는 것들'을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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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보고....

이런 때는 12mm 어안렌즈가 있으면 더 재미있는데, 챙기지 않았다. 실은 10mm렌즈를 갖게 되고나서는 어안렌즈는 깊숙히 처박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00-400렌즈를 갖고 나서는 70-200렌즈도 보관 중이다. 실은 이 렌즈를 팔아서 보태면 A7R3카메라를 손에 쥘 수가 있다는 궁리를 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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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해도 사진놀이에 밀어넣은 비용이 적지 않아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을 따름이다. 이미 마음 속에서는 카메라를 바꿨다. R2를 무척 잘 사용했지만 결정적일 때에 연사를 날려야 하는 상황에서 버벅대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 아쉬웠다가 R3에서 해결이 된 것을 알고 나서는 마음은 이미 그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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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를 하다가 말고 카메라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간단하다. 사진에 특별히 설명을 할 꺼리가 없는 까닭이기도 하고, 다른 속셈으로는 「세우습의작전(細雨濕衣作戰」이다. 물론 설명은 생략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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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갔다가 다시 길을 만났다. 정문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낭월은 옆문으로 들어 온 셈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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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와 가는 분위기이다. 길의 양 옆으로 붉은 칠을 한 대막대기가 보인다. 이런 것은 여기에서 처음 본다. 분위기는 더욱 음산하고 느낌은 귀신의 침입을 막으려는 흔적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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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것을 보면 침입을 방지한다는 의미인 것으로 접수가 된다. 빨간 색은 아마도 귀신이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일 게고.... 근데 귀신이 빨간 색을 무서워하긴 하나? 무당의 옷이 온통 울긋붉긋한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아, 귀신들이 오지 못하게 입는 옷이라고? 그게 무슨 말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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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는 칼을 댄 흔적이 보인다. 뭐지...? 글자인가? 아무래도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정법계 진언은 「옴 람」이다. 천수경에도 나온다. 법계(우주)를 청정하게 하는 진언이다. 그러니까 성서로운 당신(堂神)을 뵈러 가는 길이므로 청정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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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낭월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범어를 새긴 것이 맞을 것으로 본다. 법계를 깨끗하게 하려는 정성이 깃든 마음이 나무를 고통스럽게 했구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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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당산의 주인이 머무는 처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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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사당이로구나. 조금 더 크게 지어도 되었을 것을 중요도에 비해서는 좀 작아 보이기는 한다.  외연도의 주인인데 그래도 열 평은 되게 지어도 되었을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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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주인공을 뵙자. 그러나 예상을 한 대로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뭐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리인에게 연락해서 문을 좀 열어 달라고 할 주제도 되지 못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냥 주어진 상태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음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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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보인다. 뭐라고 쓴 겨..... 어디... 여기에서 말하는 '어디...'란 읽어본다는 것이 아니고, 검색을 해 본다는 뜻이다. ㅋㅋㅋ 그런데, 예상한 대로 본문을 찾을 수가 없네... 어딘가 있기는 하겠지만 묻혀서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앓느니 죽는다.'고 본문을 검색하느니 그냥 입력하고 말지 싶어서 노가다를 한다. 부디 이러한 것도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田公祠堂記


公姓田諱橫也古齊之公族也
當漢興齊亡之時義不屈節與五百人入居于滄海國之半洋山矣
漢恐其爲後患遣使招之
公不得已與二客至洛陽自到于霜花店嗚呼
公之赴招實非畏漢之威也使島中之人免其兵禍也
二客亦不受漢爵作薤露歌穿
公之塚傍而死島中五百人與島樹同日同死千萬古之所未聞也
公之恩義胡至此極乎雖西山之採東海之踏亦不踰此矣
半洋山乃今之外烟島也至于今數千載尙未建祠但以石臺爲享神之堂矣
居民服其節義感其神明斫伐樹木始建廟宇設牲以祭
公之精靈宛然在上豈不盛乎豈不敬哉繼而銘之曰


一片孤島萬古義魂海若聽令巨靈守閽
魚龍古窟風浪不(喧?)居民(毁?)富水産盛繁百世欽仰令尊香罇


丙子十一月日


헥헥~~!! 아무리 들여다 봐도 보이지 않는 글자는 후일을 기약해야 할 모양이다. 공부가 짧은 것은 이런 곳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마는 셈인가 싶기도 하다. 해석은 다행히 지식백과에 있어서 참고하면 되겠다.

공의 성은 전씨요 휘는 횡이다. 옛 제나라의 공족()이었다. 한나라가 흥하고 제나라가 망하자 의리로 절개를 굽히지 않고 오백여 명과 더불어 바다 건너 반양산()에 들어와 살았다. 한나라가 그 후한을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 부르자, 공은 부득이 두 사람의 빈객을 데리고 함께 낙양에 이르렀으나 상화점()이란 곳에서 스스로 목을 베었다. 오호라! 공이 부름에 응한 것은 실제 한나라의 위세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섬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참화를 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함께 간 두 사람 역시 한나라의 벼슬을 받지 않고 슬퍼하다가 공의 무덤 곁에 구덩이를 파고 죽었다. 섬에 있던 오백여 명도 한날한시에 함께 죽으니 천만년 옛적부터 들을 수 없는 일이다.

공의 은의()가 어찌 이토록 지극하였는가. 비록 서산(西)이나 동해로 가려 하였으나 또한 반양산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반양산은 지금의 외연도이다. 지금에 이르러 수천 년이 지났어도 오히려 사당을 세우지 못하고, 다만 석대()로 신을 제사하는 당()을 삼았다. 섬사람들이 그 절의를 잊고 있다가 신명()에 감동하여 나무를 베어 비로소 사당을 건립하고 희생을 진설하여 제를 지냈다. 공의 정령()이 완연히 위에 머물러 있으니 어찌 풍성하지 않을 것이며 어찌 공경하지 않으리오

[네이버 지식백과] 보령외연도전횡장군사당 [保寧外烟島田橫將軍祠堂]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


상화점(霜花店)도 그렇다. 무슨 지역의 특징이 있는 곳인가 싶어서 대만 사이트를 검색했더니 한국영화 쌍화점(雙花店)이 나온다. 같은 말이라는 이야기이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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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해를 해 보려고 했는데 이러한 것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좇다가 보면 개미 같이 작은 일이 코끼리만큼 커져 버리기도 한다. ㅋㅋㅋ

한글로 풀어놓은 곳에서도 해로가(薤露歌)에 대해서는 빠졌구나. 역사 공부는 그래서 어려운 게야. ㅋㅋㅋ

여튼, 중요한 것은 중국 제나라의 전횡(田橫)이라는 사람을 모신 사당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하나라도 건지면 되는 게다. 전횡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중 「전담열전(田儋列傳」에 나오는 인물이다.

《전담열전의 전횡부분 발췌함》

橫定齊三年,漢王使酈生往說下齊王廣及其相國橫。橫以為然,解其歷下軍。漢將韓信引兵且東擊齊。齊初使華無傷、田解軍於歷下以距漢,漢使至,乃罷守戰備,縱酒,且遣使與漢平。漢將韓信已平趙、燕,用蒯通計,度平原,襲破齊歷下軍,因入臨淄。齊王廣、相橫怒,以酈生賣己,而亨酈生。齊王廣東走高密,相橫走博(陽),守相田光走城陽,將軍田既軍於膠東。楚使龍且救齊,齊王與合軍高密。漢將韓信與曹參破殺龍且,虜齊王廣。漢將灌嬰追得齊守相田光。至博(陽),而橫聞齊王死,自立為齊王,還擊嬰,嬰敗橫之軍於嬴下。田橫亡走梁,歸彭越。彭越是時居梁地,中立,且為漢,且為楚。韓信已殺龍且,因令曹參進兵破殺田既於膠東,使灌嬰破殺齊將田吸於千乘。韓信遂平齊,乞自立為齊假王,漢因而立之。


後歲餘,漢滅項籍,漢王立為皇帝,以彭越為梁王。田橫懼誅,而與其徒屬五百餘人入海,居島中。高帝聞之,以為田橫兄弟本定齊,齊人賢者多附焉,今在海中不收,後恐為亂,乃使使赦田橫罪而召之。田橫因謝曰:「臣亨陛下之使酈生,今聞其弟酈商為漢將而賢,臣恐懼,不敢奉詔,請為庶人,守海島中。」使還報,高皇帝乃詔衛尉酈商曰:「齊王田橫即至,人馬從者敢動搖者致族夷!」乃復使使持節具告以詔商狀,曰:「田橫來,大者王,小者乃侯耳;不來,且舉兵加誅焉。」田橫乃與其客二人乘傳詣雒陽。


未至三十里,至尸鄉廄置,橫謝使者曰:「人臣見天子當洗沐。」止留。謂其客曰:「橫始與漢王俱南面稱孤,今漢王為天子,而橫乃為亡虜而北面事之,其恥固已甚矣。且吾亨人之兄,與其弟并肩而事其主,縱彼畏天子之詔,不敢動我,我獨不愧於心乎?且陛下所以欲見我者,不過欲一見吾面貌耳。今陛下在洛陽,今斬吾頭,馳三十里閒,形容尚未能敗,猶可觀也。」遂自剄,令客奉其頭,從使者馳奏之高帝。高帝曰:「嗟乎,有以也夫!起自布衣,兄弟三人更王,豈不賢乎哉!」為之流涕,而拜其二客為都尉,發卒二千人,以王者禮葬田橫。


既葬,二客穿其冢旁孔,皆自剄,下從之。高帝聞之,乃大驚,大田橫之客皆賢。吾聞其餘尚五百人在海中,使使召之。至則聞田橫死,亦皆自殺。於是乃知田橫兄弟能得士也。


太史公曰:甚矣蒯通之謀,亂齊驕淮陰,其卒亡此兩人!蒯通者,善為長短說,論戰國之權變,為八十一首。通善齊人安期生,安期生嘗干項羽,項羽不能用其筴。已而項羽欲封此兩人,兩人終不肯受,亡去。田橫之高節,賓客慕義而從橫死,豈非至賢!余因而列焉。不無善畫者,莫能圖,何哉?

물론 읽어보시라는 내용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첨부해 놓으면, 나중에 언젠가 자료가 필요하게 될 경우에는 쉽게 찾아보기 위해서임을 미리 알려 드린다. 중요한 것은 풀이인데 마침 지식백과의 풀이가 근사하니 배껴다가 첨부하면 되겠다.

<전횡>
전횡이 제나라를 평정한 지 3년, 한왕은 역생()을 시켜 제왕 전광과 그 상국 전횡에게 가서 항복을 설득하게 했다. 전횡은 그것을 받아들여 역하()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한의 장군 한신()은 병사를 끌고 동쪽으로 제를 공격하려고 했다. 제는 당초 화무상()과 전해()를 시켜 역하 땅에 주둔하여 한에 맞서게 했다. 한의 사신이 이르자 수비를 풀고 술을 내리는 한편 사신을 보내 한과 화평하고자 했다.


한의 장군 한신은 이미 조와 연을 평정했고, 괴통()의 계략에 따라 평원() 나루를 건너 제의 역하() 군대를 습격하고 그 기세로 임치로 들어갔다. 제왕 전광과 국상 전횡은 화가 났고, 역생이 자신들을 팔아넘겼다고 여겨서 역생을 삶아 죽였다. 제왕 전광은 동쪽 고밀()로 달아났고, 국상 전횡은 박()으로 달아났으며, 임시 재상 전광()은 성양()으로 달아났고, 장군 전기()는 교동()에 주둔했다.


초는 용저()에게 제를 구원하게 하고 제왕과 고밀에서 군을 합쳤다. 한의 장수 한신과 조참()은 용저를 죽이고 제왕 전광을 사로잡았다. 한의 장군 관영()은 제의 임시 재상 전광을 추격해 사로잡고 박양에 이르렀다. 그리고 전횡은 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왕으로 자립하여 관영에게 반격을 가했다. 관영은 전횡의 군대를 영() 아래에서 패배시켰다. 전횡은 양()으로 달아나 팽월()에게로 귀순했다.


팽월은 당시에 양 땅을 거점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한을 편들기도 하고 초를 편들기도 했다. 한신이 용저를 죽이고는 조참에게 진군하여 교동에서 전기를 죽이게 했으며, 관영에게는 제의 장군 전흡()을 천승()에서 죽이게 했다. 한신은 마침내 제를 평정하고 자신이 제의 임시 왕이 되길 요청하니 한은 그 참에 한신을 세웠다.


그로부터 1년여 뒤, 한은 항적()을 멸망시켰고, 한왕은 황제로 즉위하여 팽월을 양왕으로 삼았다. 전횡은 죽을까 겁이 나서 그 무리 500여 명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 섬에 살았다. 고제가 이를 듣고는 전횡 형제가 본래 제를 평정했고 제의 현자들이 많이 그를 따르는 바 지금 바다에서 두고 수습하지 않으면 나중에 난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고 여겨 사신을 보내 전횡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불러들였다. 이에 전횡은 “신은 폐하의 사신 역생을 삶아 죽였고, 지금 듣자하니 그 동생 역상()이 한의 장수인데다 어질다고 합니다. 신은 두려워 감히 조서를 받들 수 없으니 서인이 되어 바다의 섬을 지키게 해주십시오”라며 사양했다.


사신이 돌아와 보고하자 고제는 곧바로 위위() 역상에게 “제왕 전횡이 왔을 때 그를 따르는 사람과 말을 괴롭히는 자는 일족을 멸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리고 바로 다시 사신에게 부절을 가지고 역상에게 조서를 내린 상황을 알리고는 “전횡이 오면 크게는 왕, 작게는 후로 삼을 것이나, 오지 않으면 군대를 일으켜 죽일 것이다”라고 했다. 전횡은 곧 자신의 빈객 두 사람과 함께 역마를 타고 낙양()으로 갔다.


30리가 채 안 되는 시향() 역의 마구간에 이르러 전횡은 사신에게 “신하된 자가 천자를 뵙는데 목욕은 해야지요”라 하고는 멈추어 머물렀다.


그리고는 그 빈객에게 “이 전횡은 처음 한왕과 함께 남면하여 ‘고()’로 칭했소. 지금 한왕은 천자가 되었고 이 전횡은 도망다니는 포로로서 북면하여 그를 섬겨야 하니 그 수치가 참으로 심하오. 그리고 내가 남의 형을 삶아 죽이기도 그 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주인을 섬겨야 하니, 저 무시한 천자의 조서로도 감히 나를 움직일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내가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소? 지금 폐하께서 낙양에 계시니 지금 내 목을 잘라 30리를 말로 달리면 모습이 썩지 않고 볼 만할 것이오”라 하고는 자신의 목을 잘라 빈객에게 그 머리를 들고 사신을 따라 말을 달려 고제에게 아뢰게 했다.


고제는 “오호라, 이유가 있었구나! 평민에서 일어나 형제 셋이 돌아가며 왕이 되었으니 어찌 현명하다 않을 것인가”라 하고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전횡의 빈객 두 사람은 도위로 삼고, 군졸 2천 명을 선발하여 왕의 예로 전횡의 장례를 치르게 했다.


장례가 끝나자 두 빈객은 무덤 옆에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 목을 그어 쓰러져 전횡을 따랐다. 고제가 이 소식을 듣고는 크게 놀라며 전횡의 빈객들이 모두 대단히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듣기에 그 나머지 5백 명은 바다에 있었는데 사신을 시켜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이르러 전횡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그들 역시 모두 자살하니 이로써 전횡의 형제가 인재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심하구나 괴통()의 계략이! 제를 어지럽히고 회음후를 교만하게 만들어 끝내 두 사람을 망쳤으니! 괴통이란 자는 말솜씨가 뛰어나 전국시대의 권모와 변화를 논하여 81편으로 만들었다. 괴통은 제나라 사람 안기생()과 잘 지냈는데 안기생은 일찍이 항우에게 벼슬자리를 얻기 바랐지만 항우는 그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얼마 뒤 항우가 이 두 사람을 책봉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끝내 받지 않고 달아났다. 전횡은 고상한 절개를 가지고 있었고, 그 빈객들이 그의 의리를 흠모해 따라 죽은 것은 어찌 더할 수 없는 현명함이 아니리요! 나는 이런 까닭에 그를 열전에 넣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자가 없지 않았을 텐데 그리지 못했으니 왜 그랬을까?”


[네이버 지식백과] 권94. 전담열전 [卷九十四. 田儋列傳]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대략적인 내용을 훑어봤을 적에 외연도의 사당에 써놓은 내용은 사기열전으 전담열전을 참고하였다는 느낌이 든다. 반양산이 외연도라는 것은 사기에는 근거할 자료가 없고, 오히려 중국에서는 전횡도(田橫島)가 있어서 칭다오(靑島)에 500의인의 기념관이 있다고 하니 이것은 또 어쩐 일인가? 그래서 전설(傳說)과 사설(史說)과 민설(民說)이 뒤범벅이 되어서 이것을 가려내는 것은 대천해수욕장에서 바늘 줍기라고 하겠다. 마침 중국에 있다는 전횡도에 대 해서나 자료를 좀 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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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橫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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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橫島中國青島市即墨區田橫鎮南部的黃海上一小島。因傳說末齊王田橫漢高祖劉邦部下韓信打敗後藏身此島,最後自殺而得名。1990年代後開發為旅遊度假區。該島總面積1.46平方千米,海岸線長8千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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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횡도는 중국 칭다오시에 있으니 즉묵구 전횡진의 남부에 있는 황해 상의 작은 섬이다.
전설에 의하면 진나라 말기에 제나라 왕인 전횡이 한고조 유방의 부하인 한신에게 패하여 이 섬에 숨어들었는데, 최후에는 자살을 함으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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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관광지로 개발하였고, 섬의 면적은 1.46평방미터, 해안선의 길이는 8천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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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횡도가 있다는 칭다오를 찾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 섬이 있다. 칭다오에서 뱃길은 60해리란다. 대략 120km라고 보면 되지 싶다. 대천항에서 외연도까지가 41km니까, 세 배나 되는 거리이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도망을 칠 거리가 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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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꾸만 외연도가 아니라 전횡도일 것이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물론 전횡도가 이전에는 반양산이었을 것이다. 그냥 근거없는 꿰어 맞추기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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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진횡도이다. 칭다오에서 위로 한 참을 가서 있는 곳이지만 여하튼 이름은 전횡도가 확실하다. 음..... 외연도가 반양도이고, 반양도가 진횡도이고, 그렇게 되면 외연도와 진횡도 중에 하나는 거짓된 기록인 것은 확실한데..... 진위는...? 그래서 전설인게야. 그것을 가려내는 것은 사학자(史學者)에게 맡겨야지 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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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적으로 본다면, 당시의 선박으로 전횡도로 도망가기는 쉬웠어도 머나먼 외연도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사기에 등장하는 분위기로 봐서 나오라고 하고 간다고 하고, 못 간다고 할 정도로 사자들의 내왕이 빈번하려면 외연도가 좀 멀긴 하지?

그렇거나 말거나 담양전씨의 시조라고도 하는 전횡을 마냥 바람결에 흘러온 사람의 이름이라고만 하기도 참 어렵잖은가 말이다.

전씨(田氏)는 중국(中國) 제()나라 종실(宗室)의 후예(後裔)로 전()해진다. 담양 전씨(潭陽 田氏)의 시조(始祖) 전득시(田得時)는 고려(高麗) 때 담양(潭陽)에 오랫동안 살아온 향리(鄕吏)의 아들이다. 그는 현량과(賢良科)로 천거(薦擧)되어 의종(毅宗) 때 좌복야(左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歷任)하고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고, 담양(潭陽)을 식읍(食邑)을 받아 본관(本貫)으로 삼고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후(以後) 전희경(田希慶)의 아들 전녹생(田祿生)은 야은공파(野隱公派), 전귀생(田貴生)은 뇌은공파(牢隱公派), 전조생(田祖生)은 경은공파(耕隱公派)로 계파(系派)가 나뉘게 되었다. 【인터넷 자료】


담양전씨의 시조라고 하는 설이 있으니 이것도 전설이라고 해 두자. 전설은 진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며, 반은 진실에 반은 거짓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싶다.


그나저나, 중국의 동북공정론을 거론할 필요는 없지 싶다. 그냥 저마다 곳곳에는 그러한 전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전해지는 이야기이니 그래서 전설인 까닭이다. 전횡을 이야기하면 외연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어청도와 녹도까지도 연결이 된다. 그래서 어쩌면 잠시나마 들렸던 것은 사실이라고 봐도 되지 싶다. 그냥 추정(推定)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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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 너머로 들어다 본 내부의 모습이다. 관리가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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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패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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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패에 글씨도 있는 것 같은데 촛대가 막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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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유일하게 소를 통째로 잡아 올리고 당산의 재를 지내는 곳이라고 자랑한 것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청소는 고사하고 폐허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아마도 일 년에 한 번 재사를 지낼  때만 청소하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전설은 전설이고, 현실은 현실이고, 삶은 삶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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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의 안쪽으로도 집이 한 채가 있어서 혹시 그 곳이 사당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유물로 보존하고, 제대로 관리하는 곳은 따로 옮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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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이야말로 창고로 쓰이는 곳이었음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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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그 옆에는 제물을 준비하는 곳으로 보이는 장소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것은 관심 밖이라서 다 둘러 본 것으로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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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은 금방이다. 이내 입구를 만난다.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도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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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들어와서 봐도 당산이고, 바로 들어와서 봐도 당산이다. 이렇게 해서 외연도의 전설아닌 전설과 함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 보게 되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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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모두가 사실일 수도 있을 게다. 한왕 유방에게 쫓기고, 한신에게도 쫓겨서 달아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 곳에서만 머물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상상은 가능하지 싶다. 그렇다면 칭다오의 반양산, 근데 왜 섬을 반양산이라고 했을지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물음표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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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어청도나 외연도의 반양산, 여하튼 이렇게 누비면서 마음대로 뜻을 펴다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것도 다른 사람이 다칠까봐 였다니까 영웅으로 본다면 참으로 멋진 영웅이다. 이번 외연도에서 건진 것이라면 전국시대의 한 영웅 전횡(田橫) 장군을 만났다는 것이겠다.

참, 하나 더~!

망재산을 망제산(望齊山)일 것이라고 한 이유를 말씀드리지 않았군. 전횡장군, 혹은 제왕(齊王)이 외로운 외연도에서 얼마나 고향인 제나라가 그리웠겠느냔 말이지. 그러니까 가장 높은, 그리고 제나라가 가까운 곳에 올라가서 고향에서 닭이 우는 소리라도 들리려나 싶어서 바라보던 곳이 아니었겠느냐는 생각을 해봤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