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 인연이 인연을 부른다.

작성일
2019-08-25 20:28
조회
7257

[750] 인연(因緣)이 인연을 부른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단지 처서(處暑)가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도 아침저녁의 기온이 달라진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자연은 항상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문득 책을 읽다가 인연이 이렇게 이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감탄을 하면서 소개를 해 드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별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느껴보셨음직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1. 라즈니쉬의 인연으로 만난 오쇼젠타로


『명상비법』,『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위시해서 몇몇 이야기들이 석지현과 홍신자의 번역으로 출판이 되었었지요. 새로운 관점을 접할 수가 있는 경험을 했었고, 그로 인해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했던 것도 이미 아득한 옛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으로 타로카드를 만났으니 「오쇼젠타로」입니다. 오쇼젠타로를 손에 잡게 된 것은 그녀가 라즈니쉬에게서 수행을 했었다는 것으로 인해서 연결이 되었으니 여기에서 라즈니쉬가 돌 하나를 놓아줬던 셈입니다. 인생은 징검다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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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를 떠올리면서 오늘 한담 한마디를 적어볼까 싶기도 했습니다. '순간에서 순간으로'라는 긴 이름의 타로카드입니다.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는 질문을 받을때면 수시로 튀어나오는 카드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당분간은 알바로 보내면서 천천히 준비하셔야겠습니다. 즐기세요."

어쩌면 데바 파드마가 요즘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구직난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차라리 알바를 즐기라는 메시지를 남겼나 싶기도 합니다. 모든 인연은 이렇게 징검다리의 돌처럼 하나씩 이어집니다. 서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흐름은 자연스럽게 연관성을 만들어서 없던 고리를 이어주는 것만 같습니다.

 

2. 오쇼젠 타로의 인연으로 만난 역경선카


오쇼젠으로 인해서 얼마 전에 소개해 드린 「타오 오라클」을 만났습니다. 이 타로오라클, 중문으로는 「역경선카(易經禪卡」입니다. 이 카드가 인연이 된 것은 순전히 그린 사람이 같다는 이유입니다. 데바 파드마입니다. 그런데, 이 카드를 대만에 갔다가 발견하고서 이미 집에 사다 놓은 후로 수년이 흘러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리 옆에 있는 것도 인연의 손끝이 닿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도 합니다. 어디에서 또 무엇이 때를 기다리면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인지도 궁금해져서 두리번 거리기도 합니다만 때가 되지 않으면 결코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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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순서를 겨우 외웠습니다. 머리가 나쁘다고 탓을 하지 않고, 읽고 또 중얼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언젠가는 외워집니다. 이것만 믿는 낭월입니다. 54번이군, 54번이면 「뢰택귀매(雷澤歸妹)」구나. 봐하니 신부인데 왜 온 몸을 사슬로 묶었을까.... 데바 파드마는 귀매괘(歸妹卦)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러한 그림으로 표현을 했을까....

'어린 막내딸(兌는 小女)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종가집(震은 長男)의
둘째 부인으로 들어가니
삶은 안정될 지라도 마음은 속박이 되느니라'


어느 해설서를 보니까 이 그림에 딱 어울리는 글귀가 있습니다. 비로소 쇠사슬의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오히려 저 글귀를 한장의 그림으로 나타낸 데바 파드마의 예리한 통찰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요즘식으로 해석하면, 계약결혼이나 재물이나 지위를 보고서 하는 결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마음은 없는데 현실적으로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불타는 가슴의 사랑은 없고, 냉철한 두뇌의 저울질만 남는 결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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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지독하게 외워지지 않는 것은 꼭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경험은 예전에 천수경을 외울 때, 적천수를 외울 때, 육갑을 외울 때도 항상 경험했던 나머지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조바심을 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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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들고있나.... 하고 궁금하신 벗님이 계실까봐서... ㅋㅋㅋ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외워지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머리를 탓하진 않습니다. 연습부족일 거라고... 머리가 나쁠 리가 없다고.... 머리 나쁘다고 하면 조상탓을 하는 것 같아서 그게 싫거든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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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8폰은 노트로 이용하면 됩니다. 노트10이 좋다고 광고를 해도 흥이 나지 않는 것은 이미 이것만으로도 아쉬울 것이 없는 까닭이려니 합니다.  64괘를 이렇게 이미지로 만들어서 폰의 앨범에 담아놓고 시간이 날때마다 들여다 보면서 중얼중얼합니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행여 육갑이 잘 외워지지 않는다는 벗님께 제안하는 요령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데 안 외워진다면.... 더 열심히 외워야지요. ㅎㅎ

'하다가 보면 되겠지....'

다만 중요한 것은 '꾸준함'일 따름입니다. 낭월학당의 개인지도에서 5회차에는 육갑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는 '다음에 오실 적에는 육갑을 외워서 오세요.'라고 숙제를 드립니다. 물론 외워서 오는 제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못 외웠다지요.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아이가, 남편이, 세무감사가, 해외출장 땜에, 수술한 후로 머리가, 등등등 수두룩합니다만 낭월은 그런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거든요. 중요한 것은 결국은 육갑을 외워야 오행신의 미소를 만날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ㅎㅎ

여튼, 몇날며칠을 끙끙대다가 이제서야 겨우 한줄에 뀌어붙였습니다. 앞으로는 계속 외워서 더 압축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숫자만 보면 바로 그 괘의 이름과 뜻까지 순식간에 떠올라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앞의 '귀매괘'의 그림이 왜 저렇게 생겼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역경을 읽어야 합니다. 물론 해당항목만 찾아보는 것이 우선은 해야 할 일입니다. 뭐든 궁금한 것만 해결하면 됩니다. 게으른 자의 공부법입니다. ㅋㅋㅋ

아, 역경선카의 내막을 보다가 만난 '등 밍다오(鄧明道)'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는 도365』를 만난 것은 덤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갈 인연법은 없는 까닭입니다. 데바  파드마에게 역경64괘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것도 깨달음의 과정이려니 싶습니다. 한말씀 덧붙인다면.....

깨달음의 인(因)이 되어 
깨달음의 연(緣)에 따라 
깨달음의 과(果)에 이른다

 

3. 역경선카드의 인연으로 만난 역경


이 카드로 인해서 역경을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역책은 틈이 나는대로 사모은 셈입니다. 이미 여러 권의 주역 관련 서적들이 오랫동안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참고를 할 일이 있으면 필요한 부분만 효자노릇을 하고는 다시 제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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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션찮은 학자가 책자랑을 하는 법입니다. ㅎㅎ

물론 책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주역관련으로 사 모은 책이 몇 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는 느낌을 이렇게 나타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작에 주역을 잘 읽었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현명해졌을 수도 있었지 싶기는 합니다. 다만 사는 마음과 읽는 마음과 외우는 마음은 다른 것인가 싶습니다. 제목이 맘에 들고 서평이 맘에 들면 일단 주문을 합니다.

다른 욕심은 몰라도 책욕심은 좀 있는 모양입니다. 이건 인정을 해야 할 모양이네요. 특히 이러한 책을 사는 것은, 막상 내가 필요할 적에 찾아보면 그 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라즈니쉬 관련 책들을 검색해보면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서 책인연과 글인연은 서로 다르다고 믿고 있습니다. 글인연이야 목적과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책인연은 눈에 띌 적에 얼른 사놔야 합니다. 나중에 필요할 적에 책이 없을 수도 있고, 책은 있어도 구입할 돈이 없을 수도 있거든요. 옛날에는 돈이 없어서 헌책방을 찾았는데 지금은 파는 책이 없어서 헌책방을 뒤집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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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랑이 아니란 것을 참고하시라고요. ㅎㅎㅎ 이렇게 말끔한 책은 분명히 손길을 많이 받지 못했음이 분명한 까닭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읽지도 않을 것을 왜 이렇게 많이 사 모았는지 모르겠구먼요. 그것조차도 인연이려니 싶기는 합니다만....

주역의 괘를 외우다가 보니까 과연 괘의 순서가 원래부터 그랬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낭월의 생각으로는 음선양후(陰先陽後)가 자연의 모습이라고 보는 까닭에, 주역의 처음 괘는 중천건(䷀)이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역경의 첫 괘를 정한다면 당연히 중지곤(䷁)이 와야 합니다. 대지를 바탕으로 삼고 괘를 쌓아올린다는 개념으로 봐도 그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건괘가 앞장을 섭니다.

간지학(干支學)은 천도(天道)를 메인으로 하기 때문에 양이 먼저 나와도 됩니다. 그래서 갑자(甲子)로 시작하고, 위에서부터 씁니다. 어쩌면 간지학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심리와 같은 영역에 대해서도 살필 수가 있는 힌트를 품고 있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에 팔괘학(八卦學)은 지도(地道)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주역의 중천건만 읽어봐도 알 수가 있는 일입니다. 맨 아래에 있는 괘를 의미하는 초일(初九)이 처음에 나온다는 것만 알면 말이지요. 그러니까 당연히 곤괘가 먼저 나와야 이치에 맞는데 왜 건괘가 먼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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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생기면 찾게 되고, 찾으면 만나게 되고, 만나면 알게 됩니다. 왜 첫괘가 건괘(乾卦)냐는 의문에 답이 있었다는 것은 후에 안 일입니다. 역(易)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연산역(連山易), 귀장역(歸藏易) 그리고 주역(周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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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연산역은 산을 의미하는 간괘(艮卦)가 처음이 되고, 귀장역은 땅을 의미하는 곤괘(坤卦)가 처음이 된다는 설명을 어딘가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간(艮)은 산(山)이고, 곤(坤)은 지(地)가 되니 두 역은 산과 땅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그런 다음에 주역에서는 하늘의 건괘(乾卦)를 처음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또 귀장역이 궁금해집니다. (뒤적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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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전후를 봐서는 이 글자가 곤(坤)인가 싶습니다. 찾아봐도 얼른 보이진 않네요. 아래에 주석을 봐서 이것은 곤(坤)이 되어야 하겠고, 그 다음에 건(乾)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틀림없지 싶습니다. 어쩌면 가장 소중한 글자라서 일반적인 글자를 쓰지 않고 특별히 귀장역에서만 사용한 글자인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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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강희자전입니다. 여기저기 뒤적였습니다. 어딘가에는 그 자취가 있으려니.... 하고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찾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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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걸 곤(坤)이라고 하겠느냔 말이지요. 참 학자들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곤(坤),건(乾),준(屯),몽(蒙)..... 이렇게 진행이 되는 것으로 봐서 그 뒤는 비슷한데 앞에서만 건곤이 아니고 곤건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면 뭔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봐~! 내 생각이 전혀 틀리진 않았잖여~!'

坤(곤)은 땅[土]의 신[申]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땅곤이 아니고 땅신곤이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옛날의 신(神)자는 이렇게 신(申)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잉태하고 창조하는 땅신이 최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득, 고대의 '곤'자가 뭔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하~! 거기에서 기억이 꼬였나 보구나.

풍수지리학을 고대에는 「감여학(堪輿學)」이라고도 했다는 기억이 났던 모양입니다. 여기에서의 여(輿)가 수레여로 쓰입니다만, 감여의 뜻은 '하늘과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고대의 곤이 이렇게 진화해서 여가 되었다는 것으로 연결을 시켜보면 전혀 억지라고만은 하지 않아도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한자의 역사도 궁금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여하튼, 낭월의 옹졸한 소견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의 위력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위력이 뭐냐고요? 그야 권위(權威)지요. 사실 주역을 보다가도 자꾸 남의 다리만 긁고 있는 것 같아서 덮고, 또 덮고 했지 싶습니다. 노자는 권위를 내려놓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라고 하는데, 역경은 떡~ 하니 권위를 앞세웁니다. 제왕우선주의일까요? '제왕(帝王)'말입니다. 왕을 앞세우는 순간 세상은 위선으로 가득차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신다.'

권위는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아버지가 날 낳은 것이 맞는지를 생각할 줄은 알면서도 그것을 '아니'라고 못하는 이유는 단지 한 가지입니다. 권위에 눌려서지요. 이제 그러한 것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으련만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자평명리학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어머니(印) 날 낳으시고, 아버지(財) 날 기르신다.'

낭월이 오행의 이치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을 권위에 가려서 '벌거벗은 임금님'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려니 합니다. 그렇잖아도 요즘 시끌시끌한 특권층들의 자녀들..... 그 뿌리에는 권위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選民意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울타리를 쳐놓고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른 종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너와 나는 다르다'는 것이지요. '국민은 개돼지'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실언(失言)이 아니라 진언(眞言)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이상향이지요. 나만 잘 살면 되니까요. 국명이 일본이든 미국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 '아름다운 나라'의 대통령을 봐도 알만 합니다. 그에게 국민은 개돼지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니, 국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살아 보겠다고 국경을 넘는 사람에게 장벽을 세우는 것은 차마 사람으로 본다면 그럴 수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권위의 위력에 젖어서 날뛰는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는 불행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현실입니다. 성현도 유위(有爲)를 도라고 보기도 하고, 무위(無爲)를 도라고 보기도 하니까 누가 옳다고는 못하겠네요. 다만 권위를 인정하고 부러워하면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이고, 그것을 헌신짝처럼 생각하면 스스로 자유로워질 뿐입니다. ㅎㅎ

그런데 그렇게 권위의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인 줄을 알면서도 뭐하러 다시 64괘를 외우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뭐, 간단합니다. 권위는 신경쓰지 말고 내용을 생각하는 것으로 데바 파드마의 말에나 귀를 기울이자는 생각이 슬며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아, 이러한 낭월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공부하기 싫은 놈의 핑계일 것이 분명한 까닭입니다. ㅋㅋㅋ

20190904_092652[정신세계사: 『주역의 과학과 도』에서 발췌]


그려~! 어딘가에 그런 흔적이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000000'을 보세요. 이게 뭐겠어요? 곤괘가 맨 처음에 나온다는 의미가 아니고 말이지요. 참 재미있습니다.

언젠가 팔괘(八卦)에 왜 '구름괘'가 없느냐고 투덜거렸던 한담이 한편 있었을 겁니다. 건괘가 곤괘 다음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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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조행(祖行)' 선생의 『도해역경(圖解易經)』책에서 본 것인데 재미있어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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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乾) : 하늘을 대표한다.
곤(坤) : 땅을 대표한다.
리(離) : 태양을 대표한다.
감(坎) : 달을 대표한다.
진(震) : 우레를 대표한다.
손(巽) : 바람을 대표한다.
태(兌) : 하천과 강을 대표한다.
간(艮) : 높은 산을 대표한다.

대체로 비슷합니다. 그런데 물을 상징하는 감괘를 달이라고 본 것은 참으로 기발한 생각을 했지 싶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못을 상징하는 태괘를 하천이라고 본 것도 기발합니다. 연못의 고인 물이라고만 생각하던 것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여서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학자들에 의해서 서서히 변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각설하고.

낭월한담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쓰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이야기도 왔다 갔다 합니다. 너그러운 양해를 바랄 따름입니다. 여하튼, 그러한 자료를 찾다가 보니까 다른 역경은 순서가 다르게 기록되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은 미리 사놔야 합니다.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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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주역(帛書周易』입니다. 마왕퇴에서 출토된 것으로 비단에 써있다고 해서 비단책[帛書]입니다. 마왕퇴에 대해서는 들어보셨는지요? 낭월은 우연한 기회에 마왕퇴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마왕퇴를 발굴했던 보고서를 읽은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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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백서주역의 원본입니다. 이렇게 생긴 비단천의 글자를 일일이 판독했던 학자들의 노력이 새삼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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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도에 나온 책이었네요. 지금도 교보문고에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아미도 10중 8,9는 구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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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2005년도에 개정판이 나왔던 모양인데 모두 품절로 되어있네요. 다음에 언제 또 나올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나오지 않을지도..... 그래서 책은 눈에 띌 적에 얼른 모셔와야 합니다. 동작은 느린 낭월도 책을 구입할 적에는 빠릅니다. 요때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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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읽어보실 벗님도 계실 것으로 생각되어서 폰사진의 원본으로 올려봅니다. 클릭해 보시면 읽기가 편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재미있는 제목이 나타났지요? '64괘의 배열방식'이라니요. 낭월이 평소에 궁금했던 것이 여기에 나와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백서주역 귀염둥이네요. 그래서 좀더 읽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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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마왕퇴에서 나온 것이 백서주역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네요. 그러니까 『노자(老子)』도 같이 출토되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노자라는 제목이 보이면 그것도 주역 만큼이나 열심히 사 모았는데 백서도덕경은 처음 봤습니다. 주역은 읽어보지 않았어도 도덕경은 두어 번 읽어 봤습니다. 그러니까 또 도덕경에 마음이 가서 검색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는 원하던 것을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4. 역경의 인연으로 만난 초간 노자


이렇기 때문에 인연이 인연을 부른다고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연의 징검다리는 계속해서 깨달음의 자리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백서주역의 인연으로 또 하나의 노자 강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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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2004년에 나온 책을 이제서야 만났네요. 품절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싶습니다. 이렇게 오래 된 책도 독자들이 찾으면 계속해서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책은 좋은 책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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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 노자의 일부분입니다. 글자가 삭아서 떨어져 나갔습니다만 학자들의 노력으로 복원이 된 모양입니다. 번역하신 김충열 선생이 수고한 학자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말부터 하신 것의 의미가 이렇게 사진 한 장을 통해서 가슴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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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책을 구입하면 이렇게 받은 날짜를 써놓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참고를 할 수가 있겠더란 말이지요.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가끔 생각나면 적어놓는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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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건충 선생을 언제 만났는지 궁금해서 책을 뒤적어 봤습니다. 혹시라도 구입한 날짜를 적어 뒀더라면 좋은 역사적인 자료가 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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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己巳) 9. 23.에 구입했고, 책값은 8.800원이네요. 그러니까 1989년 9월 23일에 구입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책은 구입한 날짜를 적어놨던가 본데, 그러니까 그것도 벌써 30년 전이었던 모양입니다.......

자평명리학에 입문한 후로 3년 만에 만났으니 참으로 책선생의 복은 넘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때 하건충 선생을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쯤 무슨 생각으로 오행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을지.... 그래서 순간순간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볼 생각은 못하고서 물질적인 관점에서 돈을 얼마나 벌어서 떵떵거리고, 무슨 질병으로 시달리게 될 것인지, 몇평짜리 집을 지니고 살 것인지나 찾아 내려고 끙끙댔겠거니.... 싶기도 합니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은 중화민국74년입니다. 그러면 1985년입니다. 책이 나온지 4년 만에 낭월의 인연줄에 닿았었다는 이야기네요. 하건충 선생의 인연으로 해서 진춘익 선생도 찾아갔었습니다. 진 선생의 저서인『팔자명리신해』에서 하건충 선생의 향을 느꼈거든요. 그해가 언제였는지는 몰라도 중국어를 배우지 못했던 시절이었던지라 필담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그 메모를 잘 보관하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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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建忠(하건충),
1984年
過世(과세)


메모에 의하면 하건충 선생은 1984년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책이 1985년도에 나왔으니까 책은 사후에 출판이 된 셈이네요. 책의 인연을 추적하다가 보니까 선생의 인연에 대해서도 연결고리가 이어졌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옆길로 새어버린 느낌이 있지요? 다시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야지요. ㅎㅎㅎ

사실은 김충열 선생의 서문을 읽다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노자에 대해서 강의를 하셨던 이야기며, 풍문으로 마욍퇴에서 노자가 나왔다는 소문만 듣고 정작 내용을 접하지 못해서 안달하던 이야기며, 다시 후에 전혀 다른 세상의 노자가 세상에 출현한 것을 알고서 그 책을 보지 못한 채로 노자 강의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조바심까지.....

과연 학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었기로, 개정판 수정판을 내면서 자신의 최후에 얻은 지식조차도 모두 퍼주려는 마음이 읽혀졌습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문득 벗님께도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어떻게 해서 이 책이 낭월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지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일부분만 스캔을 했습니다. 이만큼이라도 제대로 전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혹 노자를 좋아하시는 벗님이 계신다면 참고가 되실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소개함으로 해서 무슨 이득을 취하고자 함이 아니고, 책을 소개하여 또 다른 구매자를 만날 수도 있으니 출판사에서도 눈감아 주시려니...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글자는 최대한으로 크게 보이도록 큰 파일로 저장했습니다. 읽으시는데 불편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맘에 드신다면, 낭월이 놓아드린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밟아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클릭하면 글자를 읽을만 하실 겁니다. 한번 클릭하면 읽을만 하고, 다시 또 클릭하면 큼직하게 나옵니다.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셔서 다른이름으로 저장한 다음에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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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부분을 발췌해서 소개말씀 드렸습니다. 초나라 사람들이 기록했던 노자의 가장 오래 된 문서가 백서본보다 더 오래 된 흔적을 품고 세상에 출혔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또 주역을 외우는 것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이 책부터 읽고 나서 또 외우면 되지요 뭐. 그래도 대충 외워놨던 것은 처음 외우는 생짜배기보다는 좀 쉽기도 합니다. 올 가을에는 또 풍년이 될 모양입니다. 벗님과 더불어 함께 즐겁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8월 25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