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3] 입춘(立春)날의 입춘타령

작성일
2019-02-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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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 입춘(立春)날의 입춘타령


 

 

2019

입춘일에 한담을 쓰니까 당연히 이런 그림 하나는 얹어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요? 뭔가 막혔던 일들이 술술 풀릴 것 같고, 어려웠던 나날들이 여유로워질 것만 같은 그림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네요. ㅎㅎ

기해년(己亥年)의 입춘은 2월 4일 12시 14분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각에 태양이 지구의 입춘선을 통과한다는 뜻인 모양이네요. 입춘은 24절기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이 갖는 의미는 사뭇 달라서 다들 입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그러니까 입춘날을 빙자하여 입춘타령을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마음 일으켜 봅니다.

 

1. 동지(冬至)부터 시작된 한 해.


한 해는 동지날부터 시작하는 것인 줄이야 누가 모르겠습니까? 양력으로 대략 12월 22일 쯤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동지에 가까운 양력 1월 1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을 것으로 짐작을 해 봅니다만, 실은 동지날에 1월1일이 되어야 자연의 이치에는 올바르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야 몇이나 되겠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지는 동지이고, 한 해의 시작은 또 1월1일이라는 복잡한 구조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는 것도 이런 기회에 생각해 봐도 되지 싶네요. 그런데 우리는 동지부터 시작하지만 남반구에서는 하지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요? 문득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그냥 지나는 길에 든 생각입니다.

「천개어무자(天開於戊子)」

'하늘은 무자에서 열린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는 「자시생천(子時生天)」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태양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이라는 의미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무자에서 하늘이 열린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토(戊土)는 하늘이라는 하건충 선생님의 가르침을 접하고서야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자시도 같은 의미입니다. 자월에 태양이 시작되듯이 자시에 하늘이 열린다고 하는 의미와도 통하니까요. 하늘이 자시에 열리고, 땅은 축시에 열리고 인간은 인시에 열리는(일어나는) 것으로 대입해도 서로 통하는 의미이므로 입춘이 인생의 시작인 것과 서로 맞물리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무토는 중력이고 대기권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닫혀있던 기운이 동지부터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는 말이 되는 셈이네요. '정흡동벽(靜翕動闢)'이 무토의 하는 일이라고 밝힌 것은 적천수의 가르침이네요. 이렇게 고금의 선현들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을 음미하면서 조용히 즐겨보는 입춘날의 낭월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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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동지에는 태양이 남회귀선을 통과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동지를 기점으로 해서 태양은 점점 북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천동설이고,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지동설이지만 그냥 천동설이 자연스러운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천문학은 천문학자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의 선 자리에서 보이고 느끼는대로 그냥 생각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렇지요? ㅎㅎ

동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도 한 조각 있습니다. 자정(子正)을 하루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야자시설'의 타당성을 여기에서도 찾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23시에 날짜가 바뀐다는 설은 절기에 대입하면 대설(大雪)부터 한 해가 시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요. 이것이 말이 안 되면 저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이치려니 합니다.

동지가 되면 천기(天機)의 기운이 음에서 양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음극즉양생(陰極卽陽生)'의 모델로 삼아서 역경(易經)에서는 '일양(一陽)이 생긴다.'고 하는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의미로 서로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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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복(地雷復)은 중지곤(重地坤)의 다음 달이고 동지달이며 일양이 생한 것이며, 한 해의 시작으로 쓰이는 괘가 됩니다. 육음(六陰)의 해월(亥月)을 지나서 다시 새로운 희망인 일양(一陽)이 생기는 것으로 의미를 담고 있는 괘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기문둔갑에서도 동지를 전후하여 가까이에 있는 갑자일(甲子日)을 음에서 양으로 바뀌는 첫날로 삼기도 합니다. 이러한 흔적들에서 알 수가 있는 것은 동지가 자연의 이치에서는 한 해의 시작인 것이 분명한 것으로 고인들은 생각해 왔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근거로 삼아서 자평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서도 동지를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과 임상을 해 봤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입춘에 대한 말씀에서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지벽어기축(地闢於己丑) 하고.


'땅은 기축에서 열린다'는 뜻입니다. 기축이라고 한 것은 기토(己土)는 땅이고, 축(丑)은 시간적인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월에는 하늘이 열리고, 축월에는 땅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열리는 것은 같은 뜻인데 하늘은 개(開)하고 땅은 벽(闢)하네요. 이것을 합하면 뭐가 되나요? 개벽(開闢)인가요? 그러니까 하늘과 땅이 열린다는 말인 모양입니다.

개벽을 주장하는 종교단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천지가 개벽하면 후천세상이 열린다고도 하는데, 낭월이 보기에는 매년 동지달과 섣달이면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는 것을 놔두고 왜 하늘만 바라보면서 개벽을 기다리고 있나..... 싶기도 합니다. 별도로 열릴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미륵불이 하강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미륵불은 56억7천만년 후에 하강하신답니다.

하늘이 열리는 것은 구름이 걷히듯이 열리고, 땅이 열리는 것은 호두가 벌어지듯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양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땅이 열린다는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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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천지의 기운이 진행하여 이양(二陽)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괘명으로는 지택림(地澤臨)이라고 하고, 땅이 열리는 조짐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하늘이 먼저 열리니까 땅이 그에 순응해서 열리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가끔은 주역팔괘도 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경우에만 말이지요.

여기서 열린다[闢]는 것은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할 겁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땅의 얼어붙어있던 기운이 움직여서 풀리기 시작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월(未月)에 닫혔던 땅이 축월(丑月)에 열리는 것이라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왜 미월에 한창 폭염으로 볶아대는 그 시점에 해당하는 삼복(三伏) 중에 땅의 기운이 닫히느냐고 물어보고 싶으신 열혈학도들께 한 말씀 드린다면, 땅의 기운이 가장 왕성할 적에 닫아놔야 다음 시기까지 버틸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넌즈시 흘려 둡니다. ㅎㅎ

이 소식은 '양극즉음생(陽極卽陰生)'의 이치와 서로  통한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축미(丑未)는 땅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진술(辰戌)은 하늘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도 궁리하면 그러한 흔적도 나오지 싶습니다. 축미는 본질이 기토이므로 땅에 해당하는 영역을 담당하기 때문이라고만 해 둡니다.

축월은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입니다. 춥고 또 추워야 땅이 열리는 모양입니다. 이또한 음양의 이치겠거니....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축월에 땅이 열리게 되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요? 하늘이 열리고 땅이 풀리면 당연히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사람이겠지요? 이것이 자연의 순서이고 흐름입니다.

 

3. 인생어경인(人生於庚寅)하니라.


사람은 경인에서 태어난답니다. 이것은 반드시 출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생이거든요. 그래서 낭월의 소견으로는 하루로 봐서는 인시(寅時:03시30분~05시30분)에 해당하고 대체로 이 무렵에 깨어나는 사람들은 도를 닦고 자연의 이치를 궁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인시에는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고, 인월에는 겨울을 지내고 한 해의 일을 시작하는 것으로 대입한다면 서로 일치하는 곳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여기에서 왜 사주학은 입춘을 시작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을 해도 되겠습니다.

사주학, 자평학은 인생의 삶을 관하는 학문입니다. 천기를 보는 학문도 아니고, 지리를 보는 학문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오로지 인간의, 그것도 한 특정한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어떤 희노애락을 겪게 될 것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그것도 탄생후 죽음전까지만 논합니다. 그래서 죽음은 사주의 밖에 있다고 보는 것이고, 죽음을 읽어내려면 천문이나 지리를 공부해야 가능할 것이지만 그건 알아서 뭐하랴.. 싶기도 합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 해의 시작인 동지가 지나고나서부터 다음 해의 기운을 본인의 마음에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실행은 인월, 그러니까 양력은 2월 4일이 되고, 음력은 대체로 정월달이 되는 시점에서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지는 천기의 관점에서 시작이 되고, 입춘은 인생의 관점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아, 경인(庚寅)의 경금(庚金)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까요? 사람의 정신은 경금입니다. 그래서 '인생어경인'은 사람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말한다는 것도 참고로 알아두면 해롭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戊-天-머리 위
己-地-발 아래
庚-靈-나 자신

경(庚)이 사람이라고 해서 신체를 생각하실까봐서 영혼(靈魂)의 의미로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맞을 것입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이 정신이고, 정신이 영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신체의 육신과는 무관하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사이에 존재하는 영묘한 물건은 정신을 갖고 있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지 육신의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인체야말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임을 우리는 다 알고 있으니까요. ㅎㅎ

 

4. 근데, 서양인도 입춘이 시작일랑강?


그니깐요. 나를 생각하려면 이웃을 알아야 하고, 우리를 이해하려면 저들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서양인들로 대표되는 유럽인들은 어떻게 한 해의 시작을 바라봤을지도 궁금해집니다.

그렇잖아도 요즘 도올 선생의 도마복음이야기를 보면서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네요. 그러한 배경, 이슬람과 기독교의 발생과 그 시기에 대한 사연도 생각해 보는 것이 또한 오늘의 자신과 우리를 살펴보는데 무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백양궁(白羊宮) 춘분(春分-03월21일경) 묘월(卯月) 양자리
금우궁(金牛宮) 곡우(穀雨-04월20일경) 진월(辰月) 황소자리
쌍자궁(雙子宮) 소만(小滿-05월21일경) 사월(巳月) 쌍둥이자리
거해궁(巨蟹宮) 하지(夏至-06월22일경) 오월(午月) 큰게자리
사자궁(獅子宮) 대서(大暑-07월23일경) 미월(未月) 사자자리
처녀궁(處女宮) 처서(處暑-08월23일경) 신월(申月) 처녀자리
천칭궁(天秤宮) 추분(秋分-09월23일경) 유월(酉月) 천평자리
천갈궁(天蠍宮) 상강(霜降-10월24일경) 술월(戌月) 전갈자리
인마궁(人馬宮) 소설(小雪-11월22일경) 해월(亥月) 궁수자리
산양궁(山羊宮) 동지(冬至-12월22일경) 자월(子月) 염소자리
보병궁(寶甁宮) 대한(大寒-01월20일경) 축월(丑月) 물병자리
쌍어궁(雙魚宮) 우수(雨水-02월19일경) 인월(寅月) 물고기자리

서양인들의 우주관은 12궁도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거창하게 우주관이 아니라 한 해의 흐름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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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십이궁에서는 백양좌(白羊座)라고도 하고, 양자리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춘분(春分)을 기점으로 적용시킨다는 것도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기가 12궁과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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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태양을 돌아가는 과정에서 3월 21일부터 4월 20일까지는 이 별자리가 보이는 지점을 통과한다고 해서 양자리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이게 양으로 보입니까? 그렇다면 신안(神眼)이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낭월의 막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양이라고 하기엔 답이 안 나와서 말이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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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가 그들이 보고 싶은 그림을 덧씌웠을 뿐입니다. 아니, 낭월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무슨 별이 어떻게 하고 있더라도 그렇게 보고 싶은대로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마치 북두칠성을 국자라고 하듯이 말이지요. 우리는 국자라고 하지만 그들은 쟁기라고 한다지요? 더구나 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에 붙여놨는데 우리의 정서로 본다면 이것은 불경죄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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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은 한민족의 전통사상에서는 천문사상이고, 하늘의 신들이 머무는 곳이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담당하는 천계인데 그것이 곰의 꼬리라니 경을 칠 노릇이지요. 감히 인생의 희노애락을 관장하시는 북두대성(北斗大聖)이신 칠원성군(七元星君)인데 말이지요. 하여튼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 보면 황당한 것도 많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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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땅을 보면서 절기를 관찰할 적에 그들은 하늘을 보면서 절기를 관찰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서로 관점이 다르니 생각도 다르고 행위도 다르고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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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에서 춘분은 태양이 적도(赤度)를 통과하는 시점입니다. 북위(北緯) 0도가 되는 셈이네요. 그렇다면 입춘은 남위 몇도일까요? 갑자기 그게 궁금해 지네요. 벗님도 그러셨지요? 예 아마도 그러셨을 겁니다. 어디.... (뒤적뒤적....) 그러니까 남위(南緯) 11.75도(度)가 되는 모양입니다. 계산은 간단합니다. 주먹구구지요. ㅋㅋ

동지는 23.5도,
춘분은 0도(동지로부터 90일 후),
입춘은 동지부터 45일 후,
그러니까 23.5도의 중간을 통과하는 걸로.
그래서 나온 계산은 약 12도쯤 된다는 이야기. 

그래서 서양인들은 태양이 적도를 통과하는 지점을 한 해의 시작으로 봤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 시기에는 풀들이 파릇파릇할 것으로 본다면, 겨우내 마른 풀만 먹고 살았던 양이 비로소 새로운 싹을 먹을 수가 있으니 그 이름이 양자리였을까요? 말이 안 된다고요? 그니깐요. 그냥 지나는 길에 생각해 본 것이니 너무 정색은 하지 마시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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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잘 해 놓은 표가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필요한 것만 보시면 됩니다. 64괘도 잘 되어 있으니 함께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묘월(卯月)의 중기(中氣)를 시작으로 봤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목의 기운이 시작되는 인(寅)은 동양인들의 한해가 시작되는 시간이고, 목의 기운이 왕성한 묘(卯)는 서양인들의 한해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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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괘의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것같습니다. 자축인(子丑寅)의 변화를 나타낸 그림을 보면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양의 기운이 점점 차오르는 느낌이 들기도 하시지요? 이 괘는 지천태(地天泰)입니다. 1양, 2양을 거쳐서 3약이 되었으니 삼양개태(三陽開泰)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양의 기운이 활짝 열렸다는 뜻이네요.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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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변화하는 것을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명료하게 그 차이가 보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주역은 땅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아래가 기준이 됩니다. 모든 변화는 이 땅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자평명리학은 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갑자(甲子)라고 하지, 자갑(子甲)이라고는 하지 않으니까 말이지요.

왜 이렇게 되는지도 생각해 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랬더니 명리학은 천성(天性)을 살피는 것이 목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기운이 어떻게 그 사람의 정신에 작용하는 것인지를 연구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가요? 그래서 간지학(干支學)과 음양학(陰陽學)은 그 출발점이 다르듯이 목적하는 바도 다르다고 봐야 하겠네요.

 

5. 기해년(己亥年)도 쾌락(快樂)하소서~!


인생(人生)이든, 천생(天生)이든, 지생(地生)이든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오늘의 마음이려니 싶습니다. 그 마음에 걸림이 많으면 고통스러운 나날이 되는 것이고, 걸림이 없으면 자유로운 나날이 된다는 것만 분명하지 싶습니다.

지난 해의 삶은 어떠하셨습니까? 뭐, 잘 된 것도 있고, 잘 못된 것도 있으실 겁니다. 저마다의 사주팔자에 따라서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차피 인생살이란 그렇게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뒤범벅으로 어우러지는 것이라는 점은 아시겠지요? 마찬가지로 올 한해도 그렇겠거니 하면 되지 싶습니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①이뤄지지 않을 일은 바라지 않는다.
②내일의 고통을 암시하는 일은 벌이지 않는다.
③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는다.
④어제의 일로 오늘을 허비하지 않는다.
⑤삶은 지금 이 순간 뿐임을 늘 각성한다.

대략 이렇게만 살아도 번뇌보다는 기쁨이 많은 나날이 되지 싶습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오행(五行)에 대한 이치를 잠간씩 생각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아무래도 맹목적으로 편하게 살면 된다고 하기 보다는 자연의 이치를 숨겨놓은 오행의 구조를 깨닫게 된다면 자기를 설득하기에도 훨씬 쉬울 듯 싶어서 말이지요.

더욱 행복이 가득하고 기쁨으로 충만한 오늘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번뇌가 말끔히 사라지고 맑은 하늘에 태양이 비추듯이 그렇게 해맑은 기해년이시기 바랍니다. 건강을 묻지 말고, 오늘 먹는 것은 잘 먹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고요, 살뺄 걱정을 하지 말고 오늘 지나치게 먹는 것은 없는지를 생각해 보시는 것도 소소한 기쁨으로 가는 길이 되려니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2월 4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