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 난민을 보는 정인(正印)과 편인(偏印)의 거리

작성일
2018-07-01 07:4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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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 난민을 보는 정인(正印)과 편인(偏印)의 거리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가 없고, 듣지 않을래야 듣지 않을 수가 없는 뉴스 중에 하나인 예멘에서 탈출한 난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문득문득 '어떻게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라는 생각으로 둔한 돌머리를 두들겨 보지만 해결책은 없어 보이고, 다만 명리가의 생각에서 궁리나 해 보자는 관점으로 이해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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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도 확신할 수가 없는 난민(難民)의 수용


벗님이나, 낭월이나 무슨 확신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무심할 수만도 없겠다는 생각은 하셨을 것으로 짐작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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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난민반대를 위한 집회에 많은 국민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는 것만 봐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산고랑에 앉아서 카메라 먼지나 털면서 가끔 찾아오는 인연들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고작인 낭월도 혼자 중얼거립니다. 말하자면 그냥 혼자서 생각만 해 보는 넋두리입니다.

"거.... 참..... 우짜노...."

찬성하는 쪽도 이해가 되고, 반대하는 쪽도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양시론(兩是論)이라고 합니다. '다 옳다'입니다. 퇴계 선생의 재판방법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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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하는 쪽도 무책임하고, 반대하는 쪽도 인간성이 없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하면, 양비론(兩非論)이 됩니다. '다 틀렸어~!'라고 해야 할랑가요? 그리고 어느 쪽도 기초를 현실적인 문제에 두고, 심각하게 고뇌하고 답을 찾아보려고 애쓴다는 점에서는 다 옳습니다. 그렇게 되면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이 되겠네요.

이런 상황에서 낭월은 어느 쪽에 설 것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결론은 양시양비론입니다. 이건, 말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자신도 모르겠네요. 그냥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이 있었다면 현명하신 분들이 이미 답을 제시했겠습니다. 그러므로 낭월이 여기에 먼지 하나를 보탠다고 해서 큰 문제야 생기겠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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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도주의(人道主義)'적인 관점일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살기 어려운 곳을 벗어나서 찾아왔으니 받아줘야지 워쪄...'입니다. 100% 공감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어제는 마지막 원고의 교정을 보다가 말고, 문득 선한 청년 정우성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 봤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런데 여기에 붙은 댓글을 보니, 다시 고개를 끄덕입니다. '너 혼자만 선하냐?'라는 글을 보면서 그 댓글이 틀렸다고 할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새벽에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저 비를 피할 비막이라도 있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행복하게 여기게 되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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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십성의 관점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어떻게 비칠 것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 말은 이에 대한 견해는 10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낭월은 무력한 시민일 뿐입니다. 그래서 본업인 사주적인 관점에서 심리분석을 해 보는 것이 그나마 본분을 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궁리해 봅니다.

 

2. 예멘 난민을 바라보는 열 개의 눈동자


벗님도 분명히 이 중에 최소한 한 가지의 관점에는 동의를 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두서너 개의 항목에도 동의를 하실 것으로 짐작만 해 봅니다. 왜냐하면, 일간(日干)의 주변에 있는 글자들인 시간(時干), 월간(月干), 일지(日支)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① 정관(正官) - 원인의 분석


정관은 근원에 대해서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그들이 제주도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무비자입국이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법을 탓하게 됩니다. 법을 잘 만들었다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것이라는 원인분석이 간단히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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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법이 만들어 졌을까요? 그러니까 무비자입국이 가능한 제주특별자치구가 생겨났느냐는 말이지요. 그러한 법만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거국적으로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도대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러한 법령이 시행되었는지를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 봅니다. 원인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입니다. 「관광여행업 선진화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다는 이야긴가 봅니다.

당시에는 10년 후에 이러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은 전혀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재물에 있었다는 것도 명백해 집니다. 대한민국을 관광객들에게 알려서 좋은 나라임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여행객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 가장 수지 맞는 장사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벌인 일이라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이것이 정관의 관점입니다. 원인은 분명하니까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요? 원인을 제거하면 해결책이 됩니다. 원인이 「무비자 입국」이었다면 「무비자 불입국」으로 하면 됩니다. 난민자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걱정하는 국민들이 비를 맞으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모여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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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자니까 정관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단물을 쪽쪽 빨아 먹다가 쓴물이 나오니까 바로 뱉아버렸다는 비난이 두려운 것입니다. 이러한 영역은 정관의 고뇌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그래서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이것이 정관의 본질입니다.

 

② 편관(偏官) - 대세를 따라야지...


정관의 고민을 편관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득 예전에 하건충 선생의 《사주심리추명학》을 읽다가 이해할 수가 없는 대목이 있어서 지인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나네요. 내용 중에 '인운역운(人云亦云)'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인이 알려주기를 '남들도 그러니까 나도 그런다.'라는 뜻이라고 알려 줬습니다. 중국어로 된 무협지를 번역하는 전문가의 의견이었기 때문에 믿음이 갔습니다. 지금 편관을 떠올리면서 문득 그 네 글자가 겹쳐지는 것은 편관의 해결책으로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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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내용이 편관 편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예멘 난민을 생각하다가 편관과 겹치는 실루엣 사이에서 떠오르는 네 글자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편관이 생각하는 해결책이라고 하는 주석과 함께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남들'은 이미 난민을 받아들였던 나라들의 반응을 말하는 것입니다. 편관은 항상 기존의 상황에 대해서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기 쉬운 까닭입니다. 길게 말을 할 필요가 없지요.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면 결론은 간단히 나오는 것입니다.

어차피 난민의 상황은 비슷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입장도 비슷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은 난민을 놓고 어떻게 했는데요?'가 중요하게 떠오르는 해결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그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모델을 찾으려니까 당연히 눈길은 유럽으로 돌려질 수밖에 없겠네요. 미국도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미국은 트럼프의 극단적 울타리작전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이서 모델에서 제외해야 하겠습니다. 편관의 시각에서는 객관성도 중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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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크게 들어오는 메시지는 '메르켈 총리'의 해결책입니다. 독일에서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고 인도주의를 몸소 보여주는 모범의 나리라고 칭찬을 들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급기야 방향을 180도로 바꿨습니다.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흔들고 있는 현실이라고밖에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박힌 돌들의 선의(善意)가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서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난민수용은 실패'였다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편관의 눈이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도 한 때는 적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였던가 봅니다. 그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국내의 분열과 갈등으로 번지는 고통 뿐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보면서 편관은 결론을 내립니다. '빤하잖아~!'입니다. 우리도 별 수가 없이 그러한 결과로 돌아갈 것이 당연하므로 지금 막아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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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관살(官殺)은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야말로 '적극적 보수주의'지요. 변화하는 자체가 불안한데다가 그 변화를 지켜보면서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관살은 난민의 수용은 반대입니다.

그 이유도 충분합니다. 다만 정관은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고 멈칫거리고 있고, 편관은 망설이지 말라고 감정섞인 목소리를 크게 냅니다. 정관은 이성적이고, 편관은 감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만의 일도 아니라고 하는 편안한 울타리가 있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난민은 거부하는 추세라는 자료는 이미 차고 넘치니까요.

 

③ 정편재(正偏財) - 그래서? 돌아올 이득이 뭔데?


재성(財星)은 보통 묶어서 관찰하기도 합니다. 이익이 된다면 물불을 안 가리는 인간의 속성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매사에 결과위주입니다. 깊은 사유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것이 재물의 속성입니다. 애초에 자유롭게 입국이 가능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자들도 이들입니다. '돈, 돈, 돈, 그리고... 또 돈'이 해결책입니다.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합니다. 재물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눈으로 봤을 적에는 예멘 난민들이 어떻게 보일까요?

물론 여론이 들끓는 것은 반갑지.... 아니, 달갑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겨우 500여 명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여전히 많은 여행객들이 돈을 싸짊어 지고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다는 제주도를 향해서 비행기를 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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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계를 본다면 득실은 명료해 집니다. 아직은 냅둬도 됩니다. 너무 침소봉대해서 걱정만 하고 있는 사람들은 돈을 버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다고 몰아세우고 싶어집니다. 심지어는 난민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갖고 온 자금이 바닥날 때까지 호텔에 머물면서 돈을 쓰고 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이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낮은 임금으로 일시켜서 노동자들로 삼으면 겹치기로 수지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일이기도 합니다. 난민이 정착하는데는 당연히 우리가 피땀으로 지켜 온 이 땅의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임금은 우리 국민의 노동임금의 3분의 1만 주면 됩니다.

이렇게 돈이 될 일이 백 가지도 넘는데 그것을 괜힌 두려움으로 틀어막으려는 자들의 심리상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는 것도 병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빗장을 더욱 크게 열어놓고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사업적으로 봤을 적에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재성의 관점입니다.

 

④ 상관(傷官) -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지


상관은 두뇌회전이 최고로 빠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러한 표현을 '펜티엄급'이라고 하면 다 통했는데, 이제 그것도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요즘은 '5G급'이라고 해야 할 모양입니다. 여하튼 무지하게 빠릅니다. 뭔가 생색을 내어서 국제 사회에 우리 나라는 좋은 나라라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그 기회가 저절로 찾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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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를 그냥 날려보낸다는 것은 매우 미련한 짓입니다. 유엔에도 생색을 내고, 자랑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받아들여야지요. 그냥 돌려보낸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재앙이 발생할 빌미가 된다는 것도 강변합니다.

독일도 포기한 일을, 이탈리아도 제대로 못한 일을 우리는 할 수가 있고, 잘 하고 있다고 자랑해야 합니다. 그 나머지는 정부에서 알아서 할 것입니다. 원래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생각은 상극관(傷剋官)의 관점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을 기본적인 십성의 상식이 있으신 벗님은 이해하실 겁니다.

상관은 정관을 극하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자신들의 일을 뒤치다꺼리하는 존재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열심히 떠벌여서 더 많은 나라에 알려서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에 골몰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잘 될꺼야~!'입니다.

 

⑤ 식신(食神) - 글쎄... 그러니까.... 그게...


식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면 안 됩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거든요. 구체적이고 명료한 명제를 줘야 연구하고 궁리해서 결론을 도출하게 되겠는데, 막연하게 '워쪄?'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같이 혼돈에 빠질 뿐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잘 못 물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실험실에서 미생물의 번식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학자에게 '최근의 난민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셔?'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은 식신이라면 당연히 글쎄... 그러니까.... 그게... 라고 밖에 반응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사실, 식신은 사회성이 꽝입니다. 우물을 파는 기술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판 우물이 이웃 우물에 어떤 피해가 갈 것인지를 물었다면 혹 모르겠지만, 이렇게 자기의 일과 상관없는 질문을 하게 되면 그보다 더 어려운 질문도 없지 싶습니다. 겨우 한다는 말이라면 아마도 이렇지 싶습니다.

'그걸 왜 내게 물어요? 전문가들 많잖아요?'

이렇게 답을 하면 그냥 '허허~!'하고 웃어야 합니다. 넌 생각도 없느냐고 따져봐야 이미 관심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⑥ 비견(比肩)과 겁재(劫財) - 잘 되겠지 뭐.


비겁은 이익도 해도 바로 느끼지 못합니다. 무감각이거나, 무신경일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식신과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가 없습니다. 그것이 식신과 차이입니다.

비견이라면, '잘들 하시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속편한 무리에 해당하지요. 이런 사람들 속에서 도인도 나오기 쉽습니다. 외부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간여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일에만 몰입을 할 수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겁재라면, '내게 이해관계가 되면 생각해 보지'라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멘 난민으로 인해서 내게 어떤 이익도 해로움도 없습니다. 그러니 체감이 되지 않습니다. 공감을 하려고 해도 체감이 되지 않으니 그냥 맨숭맨숭합니다.

그들로 인해서 내 밥그릇에 영향을 미친다면 물불을 안 가리고 나서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래서 비겁에게는 물어봐야 신통한 의견이 나올 턱이 없습니다. 아직은 '소가 닭 보듯'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이해를 해 봅니다.

 

⑦ 정인(正印)  - 뭘 망설여요. 받아들여야죠.


정인은 인도주의 겸 인정주의(人情主義)입니다. 그래서 남의 고통을 보면 내 고통을 겪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오죽하면 정든 산천과 집을 버리고 난민의 길을 나섰겠느냔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저것 따지는 것은 인격의 모독일 뿐이예요. 그냥 받아주고 테러범이 들어오는 것은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 드러날 거니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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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되십니까? 정인의 마음을요.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지지하고 환영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맹자의 말대로 측은지심의 발로이기도 하네요. 누가 이것에 대해서 나무람을 하겠어요. '암요, 옳고 말고요.'라고 할 뿐입니다.

상관은 그런 점에 대해서 못마땅해서 툴툴댈 수도 있습니다. '뭐야 혼자 착한 역만 하겠다는 거잖아!'라고 하겠지만,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는 것은 본심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계략이 있어서 환영하는 상관의 잣대로는 백천만 번을 재봐도 측량할 수가 없는 일이니까요.

정우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인을 느꼈습니다. 로힝야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러한 마음이 가슴 깊이 서려있었네요. 참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드넓은 품으로 세상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마음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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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민을 수용하는 것은 정인의 몫이라는 것이 명료해 졌습니다. 오는 대로 받아주고 그들에게 의식주를 해결하도록 협조를 최대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벨평화상을 받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공이 아니라 그들로 인해서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원래 어머니는 아픈 자식만 떠올립니다. 성한 자식들이 용돈하라고 주면, 그것을 꼬깃꼬깃 넣어 뒀다가 병든 자식이 오면 약값하라고 모두 털어 줍니다. 다른 자식들이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어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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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의 마음에는 피아의 구별도 없습니다.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모두 애처로운 소중한 누구 집의 자식일 뿐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하고 스스로 그 일을 위해서 뛰어들기조차 합니다. 사랑으로 치면 최상의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보살행(菩薩行)'이라고 합니다. '관세음 보살의 역할을 대행하는 자'라는 뜻인가 봅니다. 그래서 '육신보살(肉身菩薩)'이라고도 합니다.

 

⑧ 편인(偏印) - 그랬다가 감당이 안 되면 워짤껴?


지금 난민의 수용에 대한 논쟁은 결국이 두 가지로 좁혀집니다. 그래서 제목에서도 정인과 편인의 사이라고 했습니다만, 다른 십성은 차후로 논하더라도 일단 당면문제에 대해서 말이 나오는 것은 인성(印星)의 영역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주장을 봐도 그렇고 말이지요.

편인도 인성입니다. 정인의 성향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다만 그렇게 선의를 베풀다가 하도 많은 상처를 입어서 편인화 된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오죽하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거라'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까요. 이것도 연유를 생각해 보면 정인의 호의를 악용한 인간들을 통해서 경계하게 된 편인의 깨달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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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인의 데이타베이스에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나온 자료들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봐~!'라고 할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슬람이라고 하는 종교의 드러난 결과에 대한 눈길도 결코 곱지 않습니다. 더 긴 말이 필요없다는 쪽으로 마음은 이미 기울고 있습니다.

이미 벗님도 뉴스를 통해서 알고 계신 내용이므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해도 되지 싶습니다. 열 개의 눈이라고 했지만 크게 보니까 여덟 개의 눈이었네요. 재성과 비겁을 묶어버린 탓이겠습니다. 다만 그것조차도 세부적으로 나눈다면 못 나눌 것은 없겠지만 대략 그 정도만으로도 이해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봐서 생략합니다.

 

3. 어떻게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요?


참으로 일복도 많은 문 대통령이십니다. 몸살이 났다는 뉴스를 보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몸살이 나도 열 번은 났을텐데 그래도 등산으로 다져진 몸이라서 그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난관을 어떻게 뚫어야 할 것인지 대통령인들 뾰족한 답이 보이시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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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노동자들의 임금문제로 인해서 생겨난 불만 가득한 항의가 빗발치는 이 현실에서 외부에서 날아온 결코 만만치 않은 난민문제. 우리에게만은 생기지 말기를 바랐던 문제이건만 결국 터질 것은 터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낭월의 소견으로는 우선 들어온 사람들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500명입니다. 여기에 '겨우~'라고 하는 수식어를 하나 붙여놓아도 좋지 싶습니다. 우리도 역사적으로 타국의 빚을 졌다는 것도 전혀 쌩까버릴 수는 없는 현실이라는 압박도 15kg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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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인권변호사'라는 수식어도 아마 이런 일을 당하고 보면 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편인적인 이유도 감싸안기에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아랍권에서 보여 준 사실적인 이유만으로도 염려를 해야 할 자료는 충분하다고 봐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차피 자국의 국민도 만족스럽게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에서 찾아 온 난민까지 챙길 여력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하겠고,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해야 할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체면만 따지다가 거지 되는 꼴을 면하려면 일단 입국부터 단속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돈을 좀 쉽게 벌어보려다가 낭패를 당하는 꼴이 서서히 보이고 있습니다. 난민이 아니라도 이미 겪고 있는 제주도의 상황이 아니던가요? 중국인들에게 땅도 팔고, 집도 팔고 하다가 점점 흉흉해지는 제주도의 민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뉴스인지 아니면 거짓뉴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러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서 믿기로 했습니다.

「돈,돈,돈, 하다가 돌아버린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인권(人權)이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금권(金權)입니다. 과거의 몇몇 사람들이 스위스 어딘가에 숨겨 놨다는 돈이 400조니, 800조니 하던데, 그런 것이라도 찾아다가 우리 국민들 중에서 삶이 어려운 저소득자에게 베풀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찾아오면 또 지내끼리 논공행상 하면서 갈라먹지나 않을랑가... 싶은 것은 편인적인 염려증입니다.

 

4. 팔자적인 운명으로 본다면.


다시, 개인적인 문제로 돌려 봅니다. 명리학은 개인용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봐서 난민은 사주팔자의 운과 무관합니다. 환경과 연관이 있다고 하는 것이 옳겠네요. 환경과 연관이 된 중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노력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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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그들 중에서도 운이 좋은 사람이 제주도를 찾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봅니다. 오히려 비행기 표라도 살 여건이 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봅니다. 그나마도 안 되는 사람들은 보트피플로 떠돌아 다니기도 하니까요.

다시 말하면, 우리 국민은 운이 나빠도 난민의 신세는 아니라는 점도 고려합니다. 물론 참으로 다행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그리고 난민들 중에서 좋은 심사를 받은 다음부터는 자신의 운이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운이 좋은 사람은 좋은 일자리와 주인을 만나서 그나마도 지옥에서 지장보살을 만났다고 생각할 것이고, 운이 나쁜 사람은 몸이 팔려서 자유도 없는 삶을 만나게 될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운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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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깊은 시름으로 주름이 늘어날 대통령의 고뇌에 격려를 드리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봤습니다만, 결론은 없습니다. 마음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모쪼록 난민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2018년 7월 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