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 사상(四象)과 오행(五行)의 단순비교

작성일
2018-04-23 23:0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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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 사상(四象)과 오행(五行)의 단순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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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이제 비로소 봄이 제대로 온 것 같습니다. 주변에 울긋불긋한 풍경들이 봄 잔치를 한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모처럼 미세먼지도 안 보이는 맑은 하늘이 상쾌하니 더욱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팔괘타령(八卦打令)만 할 것이 아니라 사상(四象)과 오행(五行)을 비교해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어느 벗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단순비교’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물론 아는 만큼이기 때문에 ‘단순(單純)’이라는 면피용(免避用) 문구를 하나 첨부해 둡니다. 하하하~!

팔괘와 십간에 대해서 비교를 해 달라는 부탁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언뜻 숫자로만 보면 '8과 10'이라서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도 막상 생각의 꼬리를 물고 들어가 보면, 팔괘도 어렵지만 십간도 간단하게 한담 한편으로 다룰 이야기는 아니라고 봐서 타협점(妥協點)을 찾았습니다. 팔괘의 전 단계인 사상(四象)과, 십간(十干)의 전 단계인 오행(五行)으로 비교해 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둘을 놓고 단순하게 비교해 볼까 싶네요. 재미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또 애초에 낭월의 설명은 ‘기울어진 경기장’이라는 것을 짐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이 둘을 차별하려는 의도(意圖)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팔괘는 잘 모르고 십간은 나름 약간 이해를 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객관적(客觀的)일 수는 없겠다는 자수(自首)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팔괘 전문가의 관찰에 의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사상과 오행의 비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는 만큼만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만 이해할 수밖에 없으므로 행여라도 이에 대해서 멋진 가르침을 주신다면 기꺼이 환영하겠습니다. 그럼 말도 안 되는 비교에 들어갑니다. 그냥 웃으면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한담(閑談)」이니까요. 하하~!

 

1. 사상(四象)의 뿌리는 이원론(二元論)


사상(四象)과 오행(五行)에는 여지없이 숫자가 붙어있습니다. 이것이 공통점이네요. 뭔가 모르지만 수량(數量)이 있다는 이야기겠습니다. 그것은 4와 5입니다. 팔괘는 그 근원을 음양(陰陽)으로 삼기 때문에 상대적(相對的)이라고 말을 합니다. 상대가 없으면 비교할 수가 없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크다와 작다. 남자와 여자. 밥과 똥. 하늘과 땅. 이렇게 항상 이원론으로 자연을 관찰(觀察)하고 사물을 통찰(洞察)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世上)의 만물(萬物)은 모두가 변화(變化)하기 때문이지요.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죽어있는 것도 변화합니다. 생멸(生滅)의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변화를 관찰하고 사유(思惟)하다가 자연발생적(自然發生的)으로 생겨난 철학(哲學)이 바로 음양학(陰陽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불길(不吉)로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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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천지비(天地否)는 위가 하늘이고 아래가 땅인데 좋을 것이 없다는 뜻인 아닐 비(否)가 이름으로 붙어있는 것만 봐도 이해가 됩니다.

"아녀~! 그냥 아니라는 게 아니라 나쁘단 말여 사악하다구~~!!"

비괘를 보면 드는 느낌입니다. 참고로 부(否)라고 쓰고 역경에서는 비라고 읽는답니다. 이런 것이 몇 개 보이는데, 같은 뜻도 있고 다른 뜻도 있는 것 같네요. 이 글자에 대해서 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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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도 두 가지로 서로 달라서 하나는 푸, 하나는 피라고 하네요. 푸는 우리말로 부가 된 것이겠고, 피는 다시 우리 말로 비가 된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이런 경우가 또 있습니다.

가령 수뢰둔(水雷屯)이라는 괘가 있는데, 이것은 수뢰준(水雷屯)으로 읽어야 한답니다. 물론 역경의 해설서를 보면 이러한 것을 알고 그랬는지 보편성을 취했는지는 모르지만 구분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더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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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사전에서도 이 글자는 발음과 뜻이 서로 다릅니다. 둔(屯)이 되면 군대가 주둔(駐屯)하는 의미가 되어버리고, 준(屯)이 되면, 막힘과 고민하는 형상의 준전(屯邅)이 되는데, 이 괘의 의미가 힘들어서 머뭇머뭇하고 있는 뜻이라고 했으니, 그러한 것으로 본다면 분명히 수뢰준이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아마도 그것을 알면서도 전통을 준수하여 그냥 둔으로 표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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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과연 그렇게 된 책이 있는지 궁금한 낭월류(말하자면, 호기심천국. ㅎㅎ)의 벗님이 계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의 한 장면을 보여드립니다. 어떠세요? 아니까 보이시죠? 혹 그냥 넘어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시면 또한 그것도 맞고요~! 다만 소심한 철학자 낭월의 눈에는 이런 것도 자꾸만 거슬립니다. 작은 것에 매달려서 큰 것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을 내면서도 말이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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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뭐 어쩌다가 그런 책도 있겠지....'라고 하실 벗님을 위해서 또 다른 책의 표정도 살짝 끼워넣어 봅니다. 또 다른 책도, 그리고 또 다른 책도..... 죄송하지만, 같습니다. 낭월의 서가에 꽂혀 있는 몇 권 되지 않는 주역관련 책은 대체로 이렇게 되어 있네요. 낭월이 주역 해설서를 쓸 주변머리가 되지 못한 고로, 괜히 이런 것이나 보면서 투덜댄답니다. 하하~!

앗~!!

한국의 역학자(易學者) 체면을 살려주신 선생이 계셨네요. 이것을 소개하지 못했더라면 낭월의 과문(寡聞)이 들통날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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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언뜻 보고서는 '그럼 그렇지...'했는데 옆에 붙어있는 주석 180을 보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주석을 들여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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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에다가 이렇게도 소상하게 그 연유를 밝혀 놓으셨네요. 역시 밝은 학자들은 도처에 있으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혼자 흐뭇해 합니다. 무슨 책인지 소개하면 더 좋을랑가요? 바로,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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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선해》라고 되어있는 책이고, 지욱 선사의 관점이고, 해석하신 분은 어? 아호가 이둔(理屯)? 어쩐지.... 정확하게 짚어 놓으셨더라니. 그렇다면 아호도 이준으로 하셨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짐짓 해 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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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지천태(地天泰)를 보면 이러한 관점은 더욱 명료(明瞭)해집니다. 위가 땅이고 아래가 하늘이면 이것은 편안하고 자유로울 태(泰)로 이름을 붙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아래에 있으면 원래의 자리인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땅은 또 자신의 자리인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불길(不吉)이 되고 변화하는 것은 대길(大吉)이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만으로는 믿을 수가 없다고요? 뭐 그럼 하나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수화(水火)로 비교를 해 보겠습니다. 화(火)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는 것은 아시죠? 그래서 ‘팔괘타령2’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팔괘의 화(火)는 인간의 불이지 태양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태양이 위로 올라간다는 말은 좀 이상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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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물은 아래로 내려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보면 미제(未濟)가 붙어있습니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것을 「미제(未濟)」라고 하잖아요. 이것이 왜 미제인가 하면, 불은 위로만 가고 물은 아래로만 가므로 서로 만나서 변화를 일으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반대로 되어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수화기제(水火旣濟)를 보면 됩니다. 위가 물이고 아래가 불이면 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내려와서 서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극심한 변화가 일어나겠네요. 물이 불을 끈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팔괘는 오행론(五行論)이 아닙니다. 하하하~!

이렇게 자연현상의 이원론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팔괘(八卦)가 아닌가 싶습니다. 낭월의 졸견(拙見)이 어줍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치적으로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여야 하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양()이고,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음()입니다. 그게 무슨 음양(陰陽)이냐는 생각이 드시는 벗님은 직접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니까 세로(↕)로 움직이죠? 그리고 도리도리를 해 보면 가로(↔)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거울을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로가 왜 음이냐?’라고 물으신다면 너무나 감사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낭월이거든요. 흐흐~!

지구의 위도(緯度)는 가로라서 음(陰)이고, 경도(經度)는 세로라서 양입니다. 음은 공간(空間)이고 양은 시간(時間)이거든요. 시공(時空)이 서로 만나면 그때는 한 지점이 되는 것이죠. 비로소 경위(經緯)가 밝혀지는 것이니까요. 아, 체감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도로에 붙는 이름도 가로는 짝수이고 세로는 홀수인 것만 봐도 알겠네요.

서해안고속도로는 15번, 남해안 고속도로는 10번, 중부고속도로는 25번, 영동고속도로는 40번, 이제 대충 이해되시죠? 잘 모르겠으면 지도를 펴고 보시면 아마도 보일 것입니다. 홀짝이든 시공이든 모두가 음양의 놀이니까요. 이해가 되셨죠? ‘도리도리’는 부정(否定)이고 거절(拒絶)이죠. ‘끄덕끄덕’은 긍정(肯定)이고 수용(受容)입니다. 음양의 힘은 이런 곳에서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봅니다. 대단합니다.

그리하여~! 팔괘의 뿌리는 이원론(二元論)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봐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이해되셨죠?

 

2. 오행(五行)의 뿌리는 일원론(一元論)


“엉? 오행에도 뿌리가 있었던 겨???”

당연하죠. 뿌리가 없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오행의 뿌리에서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면 일원론이라는 것도 보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고 물으시는 벗님은 복 받으실 겁니다. 하하~!

‘그게 왜 그렇게 되느냐면요.’ 

음양은 상대적인 구조로 되어 있지만, 오행은 절대적(絶對的)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인 것은 비교(比較)할 대상이 없으니까 일원(一元)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일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첨 들어 본다고요? 그니깐요. 낭월도 오늘 새벽에 꽃길을 산책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니까요. 하하~!

아, 오행은 다섯인데 일원론이라는 것은 억지로 꿰어맞춘 것이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음양은 혼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원론이지만 오행은 혼자서도 당당히 존재하기 때문에 일원론이라고 이름을 붙여 본 것이니 이에 대해서는 간단히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 오행이 일원론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글자만 봐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알면 보이는 것들이 참 많죠? 아는 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만 많은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참고로 팔괘(八卦)에서 중요한 글자는 괘(卦)가 될 것입니다. 십간(十干)에서 중요한 글자는 간(干)이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괘(卦)자에는 도(十)가 몇 개나 보이나요?

“도라니? 무슨 도?”

아, 음양도(十)말입니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혹은 일음(一)일양(丨)상봉(相逢)지위도(十)를 아신다면 바로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팔괘(八卦)는 두 개의 도(十)로 점복(占卜)을 하는 것이었군요. 왜 두 개의 도(道)일까요?

별규

아마도 짐작건대, 주역팔괘(周易八卦)의 구조(構造)가 상괘(上卦)와 하괘(下卦)로 되어있으니 그런 모양입니다. 괘(卦)를 분석해 보면, 겹친토(圭)가 있습니다. 겹친토(圭)는 도가 둘이 위아래로 있다는 말이네요. 그러니까 이원론(二元論)이 맞는다고 우겨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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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괘(卦)는 두 개의 도[土]로 점을 친다(卜)는 뜻이었던가 봅니다. 참고로 점칠복(卜)은 왜 그렇게 생겼는지는 아시는지요? 엇? 박(朴)에도 붙어있는 건데? 그렇다면 박가는 나무목(木) 즉 나무로 점을 치는 점쟁이의 자손(子孫)? 말이 돼? 그럼 복(卜)씨는 뭘로 점치냐? 그니깐요. 하하~!

복자

요게 복(卜) 자의 원형입니다. 점친다. 점본다. 여하튼 점괘가 있어야 점을 보죠. 이 점괘는 49네요. 아 물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점괘를 얻는다는 의미라는 점을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리는 그림입니다.

그렇다면, 십간(十干)은? 그렇죠. 간(干)은 도가 하나뿐이라는 것을 아시겠죠? ‘오호~!’ 라고 하시는 벗님은 이미 도가 깊으신 것으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 ‘뭐야??’라고 하시는 벗님은 죄송합니다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게 많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싶네요. 우짭니까? 하하하~!

“절대적인 것은 하나라야 하는 거잖여?”

당연합니다. 그래서 목(木)도 하나, 화(火)도 하나, 금(金)도 하나, 수(水)도 하나 그리고 토(土)도 하나입니다. 그게 무슨 하나냐고요? 다섯이라고요? 그렇긴 합니다. 마치 다섯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마다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신다면 이미 해답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이렇게 해서 오행은 일원론(一元論)이라고 할 수기 있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대충 무슨 말씀인지는 이해가 되셨으려니 하겠습니다. 그럼.

 

3. 사상(四象)과 오행(五行)의 본질(本質)


이제 비교로 들어갑니다. 제목이 ‘단순비교(單純比較)’잖아요. 그래서 다시 이원론을 확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상(四象)이 되겠네요. 사상은 태양(太陽)에서 소음(少陰)이 탄생하고, 다시 태음(太陰)에서 소양(少陽)이 탄생하여 넷이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넷이 되는 것은 필연적(必然的)입니다. 둘에서 셋이 나올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오직 넷으로만 전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아참, 노자(老子)는 둘에서 셋이 나온다고 하셨네요? 으흠..... 그 할배는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적어 놓으셨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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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론도 확장을 합니다. 일원론은 다섯으로 전개합니다. 왜냐하면, 자연의 원소(元素)는 다섯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십간은 자연론(自然論)이고, 팔괘는 변화론(變化論)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역은 자연의 본질(本質)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본질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觀察)하고 논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이 부근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낭월이 이해하는 것이 요 정도밖에 안 되니까요. 그러니까 주의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얼떨결에 본의 아니게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모쪼록 속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습니다. 하하~!

 

① 태양(太陽)은 화(火)에 대응(對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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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太陽)에는 음(陰)이 없습니다. 그리고 화(火)에도 음(陰)이 없습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닮았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모두 양기(陽氣)만으로 채워진 성분으로 표시하고 있으니까요. 태양의 모습은 두 개의 효(爻)가 모두 양효(陽爻)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음이 있을 자리가 없네요. 다른 말로 극양(極陽)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양이 극에 달했다는 말이 되겠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화(火)라는 글자에도 도(十)가 없습니다. 참 만들기도 묘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이렇게 궁리하다가 보면 글자든 그림이든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벗님이 보셔도 그렇지요? 낭월이 억지로 꿰맞춘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에서도 이렇게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나 보자는 생각이 드셨다면 잘 하시는 겁니다. 항상 위짝을 맞추면 아래짝이 안 맞고, 아래짝을 맞추면 이번에는 위짝이 안 맞는 일도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대입하는 것을 가설(假說)이라고 하고, 대입하다가 아래짝도 맞으면 비로소 정설(定說)이라고 하는 것이려니 싶습니다.

 

②소음(少陰)은 목(木)에 대응(對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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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少陰)을 다른 말로는 양중지음(陽中之陰)이라고도 합니다. 양(陽)의 뿌리에서 파생(派生)된 음(陰)이라는 의미라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오행의 관점으로 본다면 목(木)으로 대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싶습니다. 팔괘는 아래의 효(爻)가 주체(主體)가 되고, 위의 효는 변화(變化)가 됩니다.

그러니까, 같은 그림이라도 위와 아래에 있는 것은 의미가 다릅니다. 말하자면 태양(太陽)에서 두 개의 양효(陽爻)가 있지만, 아래의 양효는 부친(父親)이고, 위의 양효는 아들인 셈이네요. 다른 것도 이렇게 관찰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소음(少陰)은 음양(陰陽)이 모두 있네요. 아버지와 딸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이 나오잖아요. 부자(父子)보다는 부녀(父女)가 훨씬 그림이 좋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음양을 갖췄으니 극양(極陽)이 아니라서 소음(少陰)입니다. 소음(少陰)은 무슨 뜻인가요? 그야 당연히 ‘음(陰)이 조금 적음’이라는 뜻입니다. 양적(陽的)인 요소가 많지만 그래도 그중에 음도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네요.

말하자면, 아버지가 다혈질이니까 딸도 다혈질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딸은 여성(女性)이라서 아버지보다는 덜하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는 오행(五行)은 목(木)이 되겠습니다. 목은 계절로 보면 봄에 해당하고, 여름은 화에 해당하므로 여름보다는 덜 덥지만 그래도 상당히 따뜻하다고 보는 것으로 서로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참, 목(木)에는 도(十)가 보이나요? 그렇군요. 도가 보입니다. 그래서 음양을 갖췄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앞의 태양과 화의 대입이 황당무계(荒唐無稽)한 대입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證明)되었네요. 증명되었으면 정설로 삼아도 되겠습니다. 예? 아직도 부족하다고요? 하긴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네요. 하하하~!

 

③태음(太陰)은 수(水)에 대응(對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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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중지음(陰中之陰)은 태음(太陰)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태양과 반대로 음효(陰爻)로만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오행에서는 수(水)와 대응한다는 정도는 벗님도 아시겠지요? 음효로만 구성되어 있으니 당연히 음양지도(陰陽之道)인 일음일양(一陰一陽)이 없네요. 그렇다면 무도(無道)로군요. 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수(水)에는?

아하~! 수(水)에도 도(十)가 없네요. 오매나~~!! 어쩌면 이렇게 서로 짜기라도 한 듯이 딱딱 맞아 떨어질까요? 낭월이 만든 것이 아니거든요~! 원래부터 그래 왔던 것인데 문득 살펴보니까 이렇게 생겼지 뭡니까. 참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계절로는 겨울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맹추위가 느껴지네요. 겨울에는 만물이 잠들어야 하고 잠들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서 곰은 동굴을 찾아 들고, 뱀은 바위틈을 파고드는 것은 삶의 지혜라고 하겠네요.

그런가 하면, 나무는 옷을 벗고 생존의 기운을 뿌리 깊이 감추는 이유도 그렇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남방(南方)에서 온 식물들은 그대로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고 맙니다. 그래서 모두는 제가 태어난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치를 또 하나 배우기도 하네요. 낭월은 이민(移民) 갈 마음이 없거든요. 하하하~!

 

④소양(少陽)은 금(金)에 대응(對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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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음(太陰)에서 태어난 것은 소양(少陽)입니다. 이것은 모자지간(母子之間)이네요. 또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혹독(酷毒)한 맹추위보다는 조금 서늘한 가을의 분위기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비록 음기(陰氣)가 많아서 양기(陽氣)가 적은 상태를 의미하는 소양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보다는 훨씬 부드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음(少陰)과 마찬가지로, 태음에서 태어났으니까 체(體)는 음(陰)이지만 변화(變化)하여 양(陽)이 되었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결론은 음양(陰陽)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오행(五行)은 금(金)이 되겠습니다. 금에도 도가 있는지는 벗님이 먼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도가 보이지요? 다행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대입은 정설(定說)이 된 것으로 간주(看做)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사상(四象)은 춘하추동(春夏秋冬)에 꼭 들어맞습니다. 하나도 남거나 부족하지 않다는 이야기네요.

춘(春)-소음-목(木)
하(夏)-태양-화(火)
추(秋)-소양-금(金)
동(冬)-태음-수(水)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면 기분도 상쾌해집니다. 사상은 사계절을 나타낸 것이고, 사계절은 순환(循環)하고 변화(變化)하는 것이니까 의미하는 바도 그대로 딱 부합(附合)이 되잖아요? 이보다 더 멋진 그림도 없지 싶습니다.

어? 근데……. 토(土)는 어쩌죠? 토가 남았네요. 이렇게 목화금수(木火金水)가 사상(四象)과 어울려서 노는 곳에 끼어들 자리가 없는 토는 천상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개평이나 뜯고 있어야 할 모양입니다. 우짭니까? 쯧쯧~~!!

그야말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버린 토(土)입니다. 그래서 미운 오리 새끼를 구출하러 낭월이 나섰습니다. 또 누가 압니까? 그 오리 새끼가 백조일지 말이죠. 그래서 다시 짝이 없는 외톨이 토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⑤사상(四象)과 오행(五行)의 토(土)


앞에서 춘하추동(春夏秋冬)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계절에다가 오행을 집어넣으면 반드시 어긋나게 되어있는 것이 토(土)입니다. 왜냐하면, 사계절에 하나가 남으니까요. 이것을 슈퍼마켓에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4+1’로 끼워서 팔 수도 없고 참 난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면 토야말로, ‘1:4’거든요. 무슨 말씀이냐면, '토(土)하나가 :목화금수(木火金水)랑 상대한다'란 말입니다.

"토가 5분의 1이 아니었던겨?"

예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런 줄로 알았는데 궁리하다가 보니까, 하나의 토가 네 개의 목화금수를 상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토의 영역이니 사상에 토가 빠진 것이 아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튼 오행(五行)에서의 토가 차지하는 비중은 5분의 1이 아니라, ‘사행(四行)과 토(土)’가 되는 것으로 관찰해야만 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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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이 ‘사상(四象)에는 토(土)가 빠졌다.’라고 하는 이유는 아무리 둘러봐도 토를 대체할 만한 대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팔괘(八卦)로 들어가면 비로소 산(山)을 나타내는 간괘(艮卦)도 나오고 땅을 나타내는 곤괘(坤卦)도 나오니까 그렇겠거니 합니다만, 사상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토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팔괘의 주역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싶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왜냐면 사계절만 논하는 것은 땅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사상에서 찾지 못할 토는 태극에서 찾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사상(四象)은 땅을 제외한 사계절(四季節)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행(五行)은 지구까지도 포함(包含)시켜서 같이 생각하는 것으로 대입하는 것은 어떨까 싶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구를 제외하면 사계절의 변화가 경쾌하게 순환(循環)하지만, 지구를 포함시키면 남반구(南半球)와 북반구(北半球)의 상황이나 고산지대(高山地帶)와 해안지대(海岸地帶)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보자는 것이지요.

 

5. 팔괘(八卦)를 오행(五行)으로 본다면.


사상과 오행을 비교하다가 보니까 이야기가 좀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오행과 연관된 이야기라고 봐서 언급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선 표를 보면서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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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같지도 않은 표를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망상을 하는 사람도 낭월을 제외하고는 그리 흔치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그런 의미에서 독창성(獨創性)이라고 얼버무리고 냅다 튈까요? ㅋㅋㅋ

표는 좀 얄궂지만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우선 음양에서 사상이 나오게 된 그림부터 이해하고 보면 되겠습니다.

양(⚊) → 태양(⚌)火, 소음(⚍)木
음(⚋) → 태음(⚏)水, 소양(⚎)金


이 관계는 이해가 되셨을 것으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그대로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주목을 해 볼 것은 사상과 오행의 관계입니다. 사상에서 팔괘로 나눠지는 과정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겠네요. 물론 팔괘와 대응하는 것은 십간이므로 십간을 살짝 끼워넣어 보겠습니다.

태양의 양(☰)건(乾)하늘 → 화(火)의 양(丙)
태양의 음(☱)태(兌)연못 → 화(火)의 음(丁)
소음의 양(☲)리(離)    불 → 목(木)의 양(甲)
소음의 음(☳)진(震)우레 → 목(木)의 음(乙)
태음의 양(☶)간(艮)    산 → 수(水)의 양(壬)
태음의 음(☷)곤(坤)대지 → 수(水)의 음(癸)
소양의 양(☴)손(巽)바람 → 금(金)의 양(庚)
소양의 음(☵)감(坎)    물 → 금(金)의 음(辛)


확실히 표를 보는 것보다 글로 보는 것이 복잡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설명하는 수밖에 없지 싶네요. 여하튼 낭월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만 제대로 이해하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하하~!

여하튼 그림은 아름답죠? 다시 표를 보면 이해가 잘 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보면 팔괘를 오행의 논리로 전개하니까, 무기토(戊己土)는 나타나지 않게 되네요. 아마도 당연한 결과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다만, 이렇게 대입을 해 놓으니까, 상징성에서는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령, 양중지양인 태양에서 다시 양이 되면 건괘(乾卦)의 하늘이 되는데 여기에 대응하는 화의 양이 되고 보면 병화(丙火)로 연결이 되고, 음중지음인 태음에서 다시 음이 되면 곤괘(坤卦)의 땅이 되는데, 수의 음은 계수(癸水)이 되어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부터는 서로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어떠세요? 살펴보니까 과연 그렇겠죠?

그래서 일할머리 없는 낭월이나 이런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려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궁리해봐야 해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것에 괜히 꽂혀서는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해보고 있으니까 말이죠. 하하~!

 

6. 변화(變化)와 안정(安定)의 차이.


사계절에는 땅이 없는데 오행에는 사계절+지구라는 토(土)가 있다고 본다면 여기에서 다시 새로운 관점을 하나 살펴보게 됩니다. 이제부터 이러한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낭월이 이해하기에 《역학(易學)》은 「변화(變化)의 학문(學問)」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비태(否泰)로 말씀드렸듯이 변화하는 것은 길(吉)하게 보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불길(不吉)로 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역은 변화를 읽는 것으로 목적을 삼는다.’라고 봐도 과언(誇言)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행학(五行學)》은 어떨까요? 여기에서 ‘오행학’이라고 한 것은 특별히 사주학(四柱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간지학(干支學)이라고 하기도 그래서 택한 이름이니 참고하시면 되지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명학(命學)》이라고도 하고 싶지만, 운명학(運命學)의 범주(範疇)에서는 주역(周易)도 포함되기 때문에 너무 폭이 넓어져 버리네요. 그래서 오행학입니다.

오행을 바탕으로 삼고 운명(運命)을 연구하는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은 안정(安定)을 최우선(最優先)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탁(淸濁)을 논할 적에는 변화(變化)가 많은 사주는 귀(貴)하기 어렵다고 보기도 하고, ‘충극(沖剋)이 많으면 혼탁(混濁)하다.’라는 것을 참고해 보면 변화를 선호(選好)하는 성향(性向)은 없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유행(流行)을 이야기합니다. 흘러가는 것은 좋아하지만 수화기제(水火旣濟)처럼 물과 불이 만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각자의 학문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역경(易經)의 관점으로 본다면,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영화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고, 오행경(五行經)의 관점으로 본다면, 평온무사(平穩無事)한 영화가 될 테니 아무래도 관람자(觀覽者)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교를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복잡다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생겼을 적에는 주역으로 점을 쳐서 답을 얻고, 그렇지 않을 적에는 사주를 봐서 길을 찾는다고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사상(四象)에서 토(土)의 개념(槪念)이 없는 것은 변화(變化)를 추구(追求)하게 된 동기(動機)가 되었을 것이고, 오행(五行)에서 토(土)가 존재하는 것은 안정(安定)을 유지(維持)하는 것으로 최선(最善)을 삼게 된 근원(根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문득 농경민(農耕民)과 유목민(遊牧民)이 떠오릅니다.

농경민은 안정을 최상으로 보는 것에서 오행(五行)이 바탕이라고 본다면, 유목민은 변화를 최선으로 보기 때문에 사상(四象)이 바탕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안정(安定)과 변화(變化)는 인류(人類)의 문명(文明)이 발전(發展)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보면 두 학문은 그 성질이 수레바퀴와 음양(陰陽)의 이치처럼 서로 호환(互換)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7. 사상(四象)과 토(土)의 의미.


이제 결론(結論)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원론(二元論)으로 시작한 사상(四象)은 변화(變化)를 관찰(觀察)하는 학문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일원론(一元論)으로 시작한 오행(五行)은 안정(安定)을 통찰(洞察)하는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학자의 성향에 따라서 변화에 재미를 느낀다면 주역(周易)을 공부하고, 안정에 재미를 느낀다면 오행(五行)을 공부하면 되겠다는 공식도 나올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이치는 저마다 각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사상(四象)에서도 안정(安定)이 좋을 때가 있을 것이고, 오행(五行)에서도 변화가 좋을 때가 있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로 넘기겠습니다.

이쯤에서 마무리 삼아서 사상(四象)에 토(土)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땅에 의지하지 않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유(思惟)하고 사색(思索)하고 판단하는 여지(餘地)를 얻게 된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사계절(四季節)이 바람처럼 오가듯이 음양(陰陽)은 그렇게 바람처럼 오가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 봅니다. 참으로 천만다행(千萬多幸)인 것은 고인(古人)들께서도 그 소식을 알고서 견고(堅固)한 오행(五行)의 바탕에다가 바람같이 경쾌한 음양(陰陽)의 이치를 넣었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 각각의 오행을 둘로 나눈 결과물을 십간(十干)으로 탄생시켜 놓았으니 이것이야말로 흔히 말하는 「신(神)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마침 오늘 공부하러 오시는 제자가 배워야 할 것이 천간(天干)이거든요. 그래서 천간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뜬금없이 일원론과 이원론에 꽂혀서 말도 되지 않는 수다를 한바탕 떨어보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사상(四象)에 토(土)가 들어있었다면 새털같이 가벼운 몸이 삽시간에 태산같이 무거워져서 이동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변화를 관찰하기도 어려웠을 테니 결과적으로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에서 연장으로 삼게 되는 간지학(干支學)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묵직~한 음체(陰體)의 오행(五行)으로 바탕을 삼고, 경쾌한 양체(陽體)의 음양(陰陽)으로 활용(活用)을 삼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의 연장(鍊匠)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가볍고 경쾌한 주역을 대신할 오주괘(五柱卦)를 만나게 되어서 그나마 겨우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가 있게 된 것은 하늘의 도움이려니 싶기도 합니다.

여하튼, 낭월은 주역에 아무리 접근하려고 해도 그것이 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행을 연구하면 할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이것이 체질인가 싶기도 하네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해서 집을 떠나면 문득 집이 그리워지고, 또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떠돌아다니는 철새가 부러워지기도 하잖아요.

낭월이 가끔씩 《역경(易經)》을 들여다보는 마음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덮으면서도 궁금해서 또 들여다보는 거죠. 이런 마음 벗님도 이해하셨거나 이미 그래 보셨을 것으로 짐작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하하하~!

「미움도 사랑」이라는 속언(俗言)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애증(愛憎)’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겠거니 합니다. 팔괘(八卦)의 이치도 알아보고 싶기는 한데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해한 것은 요 정도밖에 안 된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또 무슨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서 여기에 몰입하게 될지는 모를 일입니만.....

사색의 계절인 봄을 맞이하여 상상도 하지 못한 기발하고 신나는 궁리를 한바탕 늘어놔 보시기를 권합니다. 예? 사색의 계절은 가을이라고요?

 

2018년 4월 23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