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2000년 대만여행기

작성일
2000-07-20 00:00
조회
5445

 2000년판 대만 여행기


1. 출발


생각해 보니 대만을 다녀온 지도 그럭저럭 7~8년 되었나 보다. 그 때는 연지님이랑 둘이서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는 일주일간 돌아다니다가 왔었는데, 이번에는 장남이랑 장조카까지 일행 4인이서 대만 나들이를 나섰다. 그리고 여행 중에서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이야기를 드리려고 정리를 해본다. 참고가 되신다면 더욱 고맙겠고, 그냥 재미로만 봐주셔도 좋겠다.


늘 그렇듯이 여행을 떠나려면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여행이 국가를 벗어날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구의 법칙이라면 법칙이겠다. 그래서 나그네는 홀가분하게 신발만 신고 훨훨 떠나고 싶은 여행도 때로는 이런저런 법으로 인해서 다소 번거로운 것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도, 여행에 대한 비중이 큰 만큼 어쩌면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이 될 수도 있겠다.


이번 여행에서는 또 어떤 命理學의 대가를 찾아서 고견을 들어보나.... 하는 기대감이 우선 중요한 목적이고, 다음으로는 좋은 책이 있으면 구해오는 것이 또한 적지 않은 목적이 되겠기에 연지님께서도 별 군소리 없이 여행을 허락했을 것이고, 물론 동행을 한다는 것이 전제되었기에 더욱더 흔쾌히 허락을 했으리라고 미뤄서 짐작을 하기도 한다. 혹 연지님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일단 간첩이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낭월이 반려자라고 간단히 소개를 드리도록 한다.


다음의 목적으로는 아들 녀석에게 세상이 그래도 이렇게 넓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 해서 삶의 가치관에 약간의 자극을 주고 싶었던 것도 적지 않은 목적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동행을 할 장조카는 올해 나이 서른이 되었으니 역시 뭔가 삶의 방향에 대한 모색의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바깥 구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로 슬쩍 끼워 넣었지만 실은 앞으로 좀더 거창하게 부려먹기 위해서 미리 감치 교육의 차원이라고 하는 말로 대신해도 나쁘지 않을 상 싶다. 낭월이의 경험을 생각해보면 20세에 대만을 가보고 느낀 점이 아직도 여운을 남기는 것을 보면 결코 시간의 손실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동행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오붓하게 네 명의 일행이 각기 자신이 해야 할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아들 녀석의 기말고사에 대한 고민이 슬쩍 들리는 듯 싶었다. 금요일에 출발을 해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것으로 선생님께는 여행계획을 말씀드렸지만 내심 낭월이 꿍꿍이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니 아마도 목요일이나 되어야 돌아올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만 삼일 여행으로 공언을 한 것은 혹시라도 연지님의 재정 장부에서 부도의 암시가 발생하게 되면 여행 자체가 취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떠나고 보자는 속셈이었지만 연지님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냥 준비를 잘도 해줬다.


기말 고사가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진행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화요일까지는 가능한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돌아오는 항공권은 프리로 예약을 하고 준비를 했는데, 정작 공항에 도착을 해서 돌아오는 항공권을 화요일로 잡아 보니까 이미 매진이어서 자리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이 제대로 되어 가는 셈이다. 미리 생각을 한 대로 애초에 목요일에 돌아오는 것으로 하고 좌석을 확정하고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아들 녀석은 비록 공부에는 뜻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험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불안감이 약간 얼굴을 스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색은 하지 않은 모양이 여행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여하튼.


누군가를 만나면 물어볼 질문을 미리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다음은 미리 작성한 질문서이다. 벗님은 답변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미리 보여 드리도록 한다.


-------------------------------------


1. 十二運星 活用可能性(십이운성화용가능성)


2. 地支 六合의 現實性(지지육합의 현실성)


3. 空亡의 論理性과 實用性(공망의 논리성과 실용성)


4. 三刑의 作用은 可能?(삼형의 작용은 가능?)


5. 破害의 活用性(파해의 활용성)


6. 各種 神殺의 使用可能性(각종 신살의 사용가능성)


7. 大運의 干支를 上下로 5年 代入하는 問題(대운의 간지를 상하로 5년씩 대입하는 문제)


8. 大運과 歲運의 衝突 可能性?(대운과 세운의 충돌가능성?)


9. 大運과 歲運의 設計圖(대운과 세운의 설계도)


10. 疾病과 四柱와 遺傳子 關係(질병과 사주와 유전자 관계)


11. 死後에도 運이 流轉?(ㅏㅅ후에도 운이 유전?)


12. 妻와 財物과 健康 區分法(처와 재물과 건강 구분법)


13. 月支의 男便宮 適用 可能性(월지의 남편궁 적용 가능성)


14. 夜子時의 存在 可能性과 理由(야자시의 존재 가능성과 이유)


15. 西洋人의 四柱 作成法(서양인의 사주 작성법)


16. 命理學과 心理學의 接木法(명리학과 심리학의 접목법)


17. 命理學의 發展 方向(명리학의 발전 방향)


18. 八字의 超越 可能性(팔자의 초월 가능성)


19. 八字의 來處는 前生 可能性?(팔자의 래처는 전생 가능성?)


20 戊土는 何?(무토는 무엇?)


----------------------------------------


낭월은 이미 포기를 한 부분이지만 혹 어떤 활용법이 있을지도 몰라서 늘 관심을 갖고 있는 점들이 있다. 그리고 낭월이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면 그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해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대략 정리를 한 것이 위의 19문항이고 맨 마지막의 戊土에 대한 질문은 선문답(禪問答)식으로 물어보고 싶어서 끼워 넣었다. 항상 무토의 숙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맨 마지막으로 들어갔지만 기대한 답변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늘 꿈을 갖고 살아가는 낭월인가보다. 이번 여행에서는 또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지는 항상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이 또한 큰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처음의 대만과 태국에서의 두 번에 걸친 시도에도 불구하고 두리안(榴櫣)의 맛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그럼에도 늘 궁금한 것은 안내책자에서 분명히 과일의 황제라고 못을 박아 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구린내가 나는 고약한 맛 속에서 어떤 힌트를 찾아야 할 것인지가 근 10년을 두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는데, 이번에 다시 시도를 해보고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으면 포기를 할 참이었다. 세상에서 먹을 수가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순간이기에 아직은 미련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여행의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참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고 하실런지도 모르겠으나 실은 이러한 것이 낭월이의 모습이기도 한 모양이다. 하하~


대만의 왕복 항공권은 대만공항세까지 포함을 해서 43만원 정도 든다고 했다. 비자 발급료는 또 별도이다. 대만은 늘 비자가 필요하니까 어쩌는 수가 없지만, 여하튼 이래저래 비용은 정확히 예전의 여행에 비해서 두 배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네 사람의 항공권과 비자를 받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180만원쯤에다가 이런저런 준비를 하노라고 든 비용까지 보탠다면 대략 200만원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연지님의 장부와 낭월이 장부는 좀 다를 수도 있으므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김포공항으로 갔다는 것이고, 그래서 케세이퍼시픽 항공기에 올라탔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무사히 출발을 하면서 공항 면세점에서 인삼주를 한 병 샀다. 거금이지만 그래도 맘에 드는 선생을 만나면 선물을 하고 싶을 적에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이번에는 미리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적천수강의 1권도 두어권 챙겨 넣었다. 자신을 소개할 적에 아무래도 가산점이 있을 것이라는 알량한 계산에서 나온 것인데, 여행자의 보따리는 늘 가벼워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철칙이지만 이번에는 선생을 만나서 한번 의견을 나눠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짐에 대한 공포는 면제를 받은 셈인 모양이다.


그리고 출발 전에 아주 귀중한 메일을 한 통 받게 되었던 것도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을 했다. 외신기자로 한국에 머무는 대만 화교께서 낭월이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필요할 적에 메일을 달라고 하셨으니 바로 지금이 그 필요한 때가 아니겠느냐고 생각을 하고서는 즉시에 도움을 요청해서 대만에서 통역을 할만 한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더니 마침 아드님이 대만대학에 있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하는 메일이 와서 참 든든한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챙겨 넣었다. 여차하면 연락을 할 곳이 있다는 것이 말이 통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무엇보다도 든든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노라고 또한 상담실의 문은 미리 감치 닫아걸었다. 상담이 필요하신 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제 목적이 있으니 괜히 신청서를 받아 놓고서 화다닥거리기 보다는 미리 여유를 갖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음을 이해 하셨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입국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늘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낭월이는 전혀 작성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달라져 있는 현실이라고 해야 하겠다. 바로 조카의 도움이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친구를 성민이라고 부르자. 원래 이름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자신의 호를 짓겠다고 매일 사전을 보고 있는데에도 신통한 이름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그냥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도록 할 참이다. 이 친구가 신청서를 작성하다가는 문득 이게 뭔 말이냐고 묻는데,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삼촌이라고 여행도 다니고 했으면서 혹 모르는 것을 물으면 어떻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넌지시 살펴보니 그 곳에는 머물 호텔의 이름을 적으라고 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또 다행이지만.....


애초에 머물 호텔은 있지 않았다. 그리고 예약을 할 마음도 없었으니 적을 호텔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황을 성민이도 이미 알고 있는 지라 혹 입국이 거부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한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냥 혼자 생각이다. 여하튼 별 것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안내책자에 호텔 많이 나와있지? 그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 적어 넣어. 기왕이면 멋진 호텔로 보이는 이름을 넣지뭐 허허허~"


"삼덕대반점이 있는데예.."


"됐다. 그걸로 하지뭐."


그래서 무사히 보고서가 작성이 되고 우리 일행은 대만공항에서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수가 있었다. 시간은 오전 11시경 이었던 모양이다. 원래가 시간관념이 명확하지 않은 낭월이니 벗님께서 몇 시간 정도의 오차는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두 시간 날아가서 한시간 시간 조정이 있었으니 대략 입국심사 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그렇게 잡아 봤다.


그러니까 대만은 한국보다 한 시간이 늦은 셈이다. 예전에 외국에서 상담을 신청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달러로 받아둔 것이 있었는데, 이번에 출발을 하면서 모두 찾아 나왔고, 환전도 백여만원 해 뒀는데, 혹 벗님께서도 공항에서 돈을 빼어 환전하겠다고 생각을 하시려면 미리 그런 생각 마시고 집에서 마련해 나오시라고 권유를 드리고 싶다. 인출기의 상황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로 공항에서 인출이 되지 않아서 일부러 버스를 타고 나가서 인출을 한 다음에 다시 택시를 타고 들어와서 환전을 하는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 이런 것이야 시간이 많을 적에는 그래도 상관없겠지만 만약 시간에라도 쫒긴다면 심각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대만 여행기를 적게 되면 반드시 말씀을 드리려고 생각했던 점이다. 참고 되시기 바란다. 하기야 낭월이나 그렇게 하지 누가 그러겠냐만서도..... 혹시나....



2. 타이페이


대만공항에 내려서 밖으로 나오니 온통 노란 색의 영업용택시와 엄청나게 커 보이는 고속버스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모처럼 만에 보는 이중버스에서 여행자의 기분이 절로 들었다. 공항에 있는 대만은행에서 500달러를 우선 환전했다. 대만 돈으로 돌려준 것은 대략 따져서 40배 정도의 환율이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여행을 했을 적에는 약 30배 였던 것에 비한다면 그 사이에 대만 돈의 가치가 올라갔거나 아니면 한국 돈의 가치가 떨어진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공항의 문을 나오는 일순간, 여섯 개의 눈알은 낭월이에게로 쏠렸고, 낭월이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매표소를 찾으라고 했다. 그래서 성민에게 대북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하라고 시켰고, 이 친구는 손가락을 네 개 펴면서 말했다.


"이래하면 알겠지예?"


"그래 알아 묵을끼다."


버스는 시원했다. 여전히 느끼는 것이지만 더운 나라에서는 시원한 것이 용신이라는 점이다. 어디에서나 시원하고 썰렁썰렁하다. 그래서 도로에는 별로 서있고 싶지를 않은 것이다. 에어콘 시설이 참 잘 되어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녹음과 온통 한자 투성이인 광고판들에서 느끼는 위압감으로 인해서인지 아들 녀석은 바짝 긴장을 한 듯이 뒤만 쫓고 있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연지님은 서방만 놓치지 않으면 걱정을 할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느긋하다. 아마도 이미 여행을 한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라고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1시간 이상을 달려서 대북 시내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뭘 알겠는가 그냥 적당한 곳에 내려서 택시를 탈 요량으로 내렸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당기는 것은 구미(口味)였고 그래서 야시장으로 가서 시장기를 때울 요량으로 화서가(華西街)를 가기로 결정했다. 미리 의사소통용으로 준비한 메모노트를 펴고 '華西街'를 적어서 택시를 탔다. 우선 처음이니 낭월이가 앞에 앉고 일행은 뒤로 보냈다. 적은 것을 기사에게 내밀면 정확하게 데려다 준다.


그런데 문제는 노인들이 상당히 많아서 그냥 책을 펴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가르치게 되면 차를 세우고 돋보기를 꺼낸 다음에 다시 들여다보고 나서야 출발을 한다는 점은 미리 알고 있어야 하겠다. 그러니까 미리감치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의 위치를 노트에 적어서 타면 그대로 출발이 된다는 것도 생각해둘 일이라고 하겠다.


택시의 기본요금은 50원이었는데 별도로 20원을 더 받겠다는 표시가 앞에 붙어 있는 차도 있었고, 그냥 인 차도 있었는데 여하튼 돈은 늘 추가로 20원을 더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기본 요금이 70원이 되는 셈이고 이것을 다시 한국 돈으로 따지면 2800원 정도가 되는 셈이니 물가가 싸다는 말은 전혀 해당이 없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겠다. 오히려 훨씬 비싸지고 있다고 해야 하겠고,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택시들은 요금을 인상시켜 달라고 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절도 든다.


정확히 화서가에 내려주고 택시는 갔다. 그리고 대만의 영업용 택시는 모두 노랑색으로 통일을 본 모양이다. 그래서 온통 노랑색의 물결인데 이러한 통일감은 여행객이나 승객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식별이 편해서 좋은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것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수용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느껴보는 대만의 야시장이었지만 아직 시간이 약간 일러서인지 이제 슬슬 영업을 준비하려고 시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일찍 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먹는다고 미리 준비를 마친 곳이 있어서 일행을 끌고 들어갔다.


주인은 영감님이었는데, 주로 해산물을 요리하는 곳이었다. 먹고 싶은대로 시키라고 했더니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또 일행을 끌고 전시품으로 가서는 이것저것 맘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하고는 영감에게 손가락 하나를 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일을 반복했다. 이름이야 피차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짐작으로 시킬 뿐이다. 그리고 새우 구이도 하나 시켰다. 물론 술도 한잔해야지 싶어서 우선 보이는 대로 죽엽청주를 하나 시켰다. 비용이 그래도 싸서 부담이 없는 술이지만 중국적인 맛이 있어서 호감이 가는 술이기도 하다.


천천히 나오는 요리를 먹으면서 다음 일정에 대해서 궁리를 하고 있는데, 하나 더 시켜 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연지님도 그러자고 하기에 의견을 모아서 새우요리를 하나 더 시키기로 했다. 성민이가 나가서 주문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니 했더니 요리가 되어 나온 새우는 아까 먹은 것에 비해서 세배의 크기는 되는 구조였다. 분명히 같은 요리는 아닌 모양인데 쫀득쫀득한 맛에 또 한 접시를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우고 술도 한 병 비우고 일어나서 계산대로 가보니 식사 값은 1570원이 나왔다. 대략 따져도 4만원하고 4*5=20하면 눈치가 없는 낭월이도 6만원어치 상당의 식사를 한 셈이다.


연지님의 놀라는 듯한 표정이 그대로 나타났으며 앞으로 여행에서의 식사에 대한 비용이 아마도 동결되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이 순간 스쳐갔다. 아마도 성민이가 가르친 것을 영감님이 그 옆에 있는 왕새우 요리로 생각을 했거나, 혹은 영감님이 고의로 못들은 척 하고서 엉뚱한 비싼 것으로 매상을 올릴 계획을 세웠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말이 안 통하는 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그런 대로 맛이 좋았던 것에 위안을 삼기로 하고 일단 저녁의 잠자리를 찾아서 나서기로 했다.



3. 一泊 4人


아무래도 여행의 비용을 절감하는 최선의 방법은 잠자는 값에서 깎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법칙이다. 멋지게 늘어서 있는 大飯店(대반점-호텔급이나 고급여관)보다는 좀 싸게 먹히는 旅社(여사-여관이나 여인숙급)를 찾아보기로 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용산사 주변부터 이리저리 다녀봤는데, 여사가 보이니 과연 반가운 마음에 올라갔다. 그리고 가격을 흥정해보는데, 앞에 적은 제목을 보여주고 元자를 하나 써서 넘겨주면 눈치를 채고서는 요금을 적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요금을 적어주질 않고 그냥 고개만 쌀쌀 내두른다. 아예 거절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왜 그러는가 했는데, 그 여관들은 소위 말하는 러브호텔이라서 시간손님만 받고 숙박객은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세 번이나 그렇게 퇴짜를 맞고 나니까 아무리 배짱 두둑한 낭월이도 기가 꺾기기 마련이다. 한 군데만 더 가보고 방이 도저히 안 되면 우선 호텔에서 쉬기로 하고 어느 골목을 찾아갔더니 마침 방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반갑든지 일단 금액을 물었다. 그러니까 그 아줌마같은 아가씨는 다음과 같은 의미의 의사를 전달해 왔다.


'방 하나에 820원이고, 둘이 밖에 못 자므로 넷이 자려면 방을 두 개 얻어야 하니까 1640원을 내야 하겠네요.'


계산을 해보니 한방에 3만 이천원 돈이다. 방이 둘이면 6만 사천원이고..... 뭔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일단 포기를 하고 연지님과 청원이(아들녀석임)는 맥도날드에서 콜라와 햄버거를 먹도록 하고는 성민이와 둘이 좀더 돌기로 했다. 오기가 나서 말이다. 그렇게 돌다가 어느 호텔을 발견했는데, 무조건 들어가서 문제의 '一泊四人'을 들이밀었더니 뭐라고 또 중얼거린다. 그래서 추가로 '1房'을 더 써넣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1320원을 적어서 보여준다. 환산을 재빨리 계산을 하더니


"5만원 정도 됩니다. 호텔치고는 헐하네예."


"그렇구만, 여기에서 오늘은 쉬도록 하자꾸나."


"그라마 가서 청원이랑 숙모님을 모셔오도록 하겠십니더."


"짐도 있는데 같이 가지뭐."


그래서 방을 둘러보고 두 개의 침대를 확인한 다음에 자랑스럽게 그러나 지친 모습으로 맥도날드에 갔더니 기다림에 지친 모습으로 모자가 앉아서 초조하게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참으로 들리는 말 한마디 없이 외로움을 씹기에는 그 곳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청원이가 생각하는 시간이었을 것으로 짐작을 했다.


시원한 냉방에 조용한 한국 사람들만의 공간이 되어버린 호텔의 객실은 아늑하다고 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 호텔 이름은 華冠大飯店(화관대반점)이고 용산사 주변의 西昌街(서창가)에 있음을 알려드리는 것은 혹 화서가에서 잠자리를 찾으실 일이 있다면 한번 가보시는 것도 좋다는 것을 안내해 드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방을 구하러 성민이랑 다니면서 느낀 것은 사람이 사는 곳은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번지르르하게 꾸며진 가게를 볼 수가 있지만 뒷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이내 술과 섹스와 도박의 느낌이 드는 분위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아직 어둠이 들기도 전인데 벌써 여인이 몸을 팔러 나와서 고객을 물색하는 장면도 더러 있었으니 과연 구경은 구경이었다.


그렇다고 잠시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흥정을 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기사 여행에서 객고를 달래는 것에는 성적인 해소도 큰 도움이 되겠지만 홀로 긴 시간 여행을 할 적에나 해당하는 변명이니 지금의 상황에서 낭월이 생각을 할 상황은 아닌 것이 분명해서 생각도 미쳐 못했는데 혹 함께 방을 구하러 다니던 조카 녀석은 내심 그러한 호기심도 동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으리라고 짐작은 되지만 또한 속마음까지야 누가 알겠느냐고 하지만... 글쎄다. 하하~


이제 짐까지 벗어버리고 나니 많이 홀가분해졌고 그래서 또 역마살이 동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야시장으로 나가기로 하고 최대한 간편한 차림으로 문을 나섰다. 그러나 필수품은 역서 한국에서 구입한 메모용 노트와 방 구하러 다니다가 어떤 서점에서 구입한 '臺灣地圖集(대만지도집)'을 한권 들었다. 320元짜리였는데, 상당히 잘 나온 지도였다. 그리고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한 '세계를 간다 11편-대만'의 안내 책은 당연히 포함시킨다. 이 책이 99년 3월에 증보판을 내었고 이름이 '중앙M&B'로 바뀌었지만 내용도 상당히 바뀌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던 안내서이다. 혹 대만을 여행하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이 책은 반드시 구입하시라고 권해 드린다.


그 외에는 공항에서 환전한 돈과 한국에서 바꿔온 달러와 절대로 중요한 여권을 챙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렇게 하고서 다시 호텔 프론트로 갔더니 안내하는 아가씨가 아는 척을 한다. 그래서 일단 그녀의 관상에서 상관(傷官)이 있음을 확인하고서는 이야기를 시도하기로 하고 아내와 아들은 소파에 앉도록 한 다음에 노트를 들고 다가갔다. 물론 그녀는 단번에 외국인이라고 알아 차렸을 것이고, 그래서 우선 일본말로 말을 걸어왔다. 일본 관광객이 엄청 많기 때문에 일본말을 함으로써 적어도 성공을 할 확률이 90%가 넘는다는 것은 하루만에 익히 알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일본인인척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워스 항꿔런(我韓國人-난 한국사람이랑게)"


"아 어쩌고저쩌고(그렇느냐고 하는 말이겠거니....)"


간단히 국가를 알리고는 메모장을 내밀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제부터 글은 대화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


"請電話 -> 鍾義明先生"


(전화 좀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종의명선생에게요.)


"저쪽에 전화가 있습니다. 가서 하세요."


(엄지와 집게를 뒤집어서 귀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는 폼을 보니...)


"我不學習中國語 請電話要望"


(내가 중국어를 못배웠거든요. 그래서 전화를 좀 해주셨으면 하고 부탁을 드립니다.)


"아, 알았습니다. 도와 드리지요. 몇 번이지요?"


(자신의 머리를 한번 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까르르~ 웃는 폼이 영락없는 상관 성분이 아닌가. 흐흐~)


"請049644****電話->中國語"


(그러면 049-644****로 중국어로 부탁합시다.)


"삑삑삑띠띠삑삑~!"


(다이얼 누르는 소리임)


"웨이, 쫑이밍센상으 어쩌고저쩌고....."


(여보세요, 종의명이라고 하는 선생님 계신가요?)


"아, 계시답니다. 통화를 하시지요."


(웃으면서 수화기를 내미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일껏 중국어를 못 배웠다고 했는데 이노무 상관 낭자가 건망증이 상당히 중증인 모양이다.)


"난 중국어를 못한다고 했잖아요. 대신 예약을 좀 해주세요."


(電話豫約 7月8日 何時 我相逢?)


"쭝위밍샌생아우짜고자짜고쑹왈쑹왈"


(뭔가 의사를 전달하는 모양인데 궁금하게 그녀의 입만 쳐다봤다.)


"종선생은 외국인은 만나지 않는다는데요."


(不接外國人이라고 메모장에 써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나...)


"통역을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말이 통할 수가 있다고 해주세요."


(通譯者有 言語通可能也라고 써줬다.)


또 뭐라고 잠시 이야기를 하고서는.....


"안 된다는데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두 손바닥을 위로해서 어깨를 으쓱하는 서양사람의 포즈를 하면서 난처하다는 듯이 말이다.)


"워쨌든 고맙습니다."


(謝謝세세)


전화를 끊고 나니 참 난처했다. 통역을 해줄 사람까지 마련이 되어서 뭔가 일이 순조롭다고 했더니 이렇게 장벽에 꽈당을 할 줄이야 미쳐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안 되는 것은 그만이고 일단 밖으로 나가서 저녁이나 먹고 보자고 하고 나갔다. 그리고 그 숙적인 두리안을 다시 정면으로 응시하고 마주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나 흐른 다음이다. 이번에는 기어이 해결을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일금 100원이란다. 비싸기는 또 우라지게 비싸다. 속을 갈라서 두 쪽을 담아 놓고서 달라는 금액이다. 여하튼 먹어야 했다. 그래서 마악 발라낸 놈을 잡고 목을 눌러갔다.


한입 덥석 물고는 밀어 넣고 물어뜯었다. 그리고 예의 그 구린내가 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향기로운 향이 입안 가득히 고이면서 고소한 미각이 느껴지면서 순식간에 황홀경에 빠져들고 말았으니 말이다. 미쳐 생각도 못한 장면에서 그만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지면서 다시 두 번째로 물어뜯었을 적에 이미 두리안은 적이 아니었다. 그대로 오랜 친구처럼 온 몸에 녹아드는 그 희열감이라니.....


비로소 과일의 황제라고 하는 말의 화두를 해결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숙제 하나를 풀고 나니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의 피로를 잊고는 돌아다니면서 밤 구경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12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갔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몰두를 해서 해결을 봐여 속이 시원한 낭월이니 그 외에 것인들 오죽하겠느냐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여하튼 학자의 바람직한 자세라고도 생각은 되지만 또한 사소한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칫 큰 것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겸하게 된다. 그렇더라도 사소한 것과 큰 것이 구분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으로 오늘도 살고 있는 것이니 아마도 치료는 불가능할 것으로 미뤄서 짐작이 된다.



4. 박물관 구경을 먼저 시켜주고


일단 대만의 첫날이니 아무래도 동행자들의 배려를 해야 할 모양이라고 생각을 해서 故宮博物院(고궁박물원)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물론 나가기 전에 호텔 프론트에서 '一泊延長(일반연장)'과 함께 다시 1320원을 지불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 폭풍 속에서 어디를 간단 말인가. 그래서 하루의 인연이 다시 연장된 것이다. 택시를 타고서는 안내서에 나온대로 대만의 유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권장을 한다는 만두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어제부터 눈빠지게 봐둔 대북시의 지도로 인해서 택시요금이 어느 정도 나오겠다는 정도는 이해가 된 상태여서 상당히 편안했다. 그 곳의 주소는 臺北市 信義路 二段 199호 二樓(2층)였으며 상호는 '湯圓大王(탕원대왕)'이었으니 당연히 찾아갔다. 그리고 반갑게도 이층에 올라갔지만 문제의 탕원대왕이라는 간판은 보이지 않고 영감님과 할머니가 도시락을 싸고 계셨다. 그래서 다시 부지런히 메모지에 글을 적었다기 보다는 주소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적어주는데, 그전에 '아이 노 잉글리시'라는 말을 해서 많이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무슨 평지풍파란 말인가.


"生的外帶自己回家煮謝謝一盒20粒?醬麵1分100원, 35원"


(그 사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오. 근데 나는 한 통에 20개 짜리 만두를 팔고 있는데, 100원짜리를 35원에 팔거나, 혹은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사 먹을 생각이 있다면 고맙겠수. 음식은 무슨 장면인데 국수라고 생각이 되는구랴.)


이렇게 이해를 했는데 잘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노인이 열심히 메모지에 글을 적어 줬는데, 그 가게에서는 사먹을 마음이 들지 않아서 일단 "쎼쎼'를 크게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눈이 밝은 연지님이 길 건너를 가르치면서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으니 아마도 먹는 것을 파는 곳인 모양이라고 한다.


그래도 일행은 우르르 길 건너로 갔는데, 줄을 서있는 것이 아니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아침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 식사를 하려고 기다리는 모양이었고, 우리도 그 마음인지라 일행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안에서는 많은 요리사들이 만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개점시간은 9시였고, 당시 시간은 8시 50분이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다.


상호는 미쳐 적어두지 않았지만, 만두 국물이 기가 막혔다고만 말씀을 드려야 하겠다. 만두 알의 크기는 잘잘해서 먹기 좋았고, 만두피는 앏아서 종이장 같았는데, 맛이 산뜻해서 한국 사람의 입맛에도 그대로 부합이 되는 것이었다. 모두 안색이 밝아 졌음은 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계산서에는 820元이 나왔으니 따지면 3만 이천원 돈이라 역시 만만한 액수는 아니라고 하는 생각을 해야 할 모양이다. 한국에서의 만두를 생각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여하튼 혀를 위한 비용으로 그렇게 지출이 되는 모양이다. 잘 먹었다고 하니까 달리 할 말이 없을 따름이다.


아침을 먹고는 박물관으로 갔다. 입장료를 내고 카메라를 맡기고 들어가서는 연지님과 둘이 4층의 휴계소로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관람을 하고 올라오라고 했다. 예전에 들렀기 때문에 다시 둘러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해서 그 시간이 다음 여행에 대한 일정이나 짜는 것이 좋겠다고 봐서 구경을 생략했다. 두어시간 앉아서 놀다가 보니 둘러보고 올라왔다. 그 사이에 해둔 궁리는 통역을 할 사람을 만나기로 했고 그래서 전화를 한 다음에 대만대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택시로 정문에 가서 기다려서 젊은 친구를 만났다.


소박하게 보이는 젊은 학생은 대만에 온지 일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통역을 할 수가 있겠기에 흐뭇했는데, 문제는 그 종의명 선생이 외국인을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해서 도움이 당장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주변의 만두집에서 대만식 만두로 점심을 먹고 두유를 한 컵 마시는 대학생식 점심을 체험했다. 가장 저렴한 식사였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리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일기의 상황에서 다시 연락을 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이렇게 통역을 할 수가 있는 인연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외국여행을 해보지 않은 벗님은 이해하실지 모르겠다. 무척 고마운 인연이었다. 비록 도움을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모를 일이다.


다시 시내로 나와서는 백화점 구경을 하고 놀다가 저녁에는 큰 마음을 먹고 북경오리구이를 먹어볼 요량으로 南京西路에 있는 天廚菜館(천주채관)을 찾았다. 안내책자에 의하면 권할 만 하다고 적혀 있었기에 권하는 대로 찾아가 봤던 것인데, 당연히 그 간판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아침에 허탕을 친 생각으로 조심스러웠는데, 찾는 것이 보여서 반가웠다. 다만 아직 점심을 먹을 시간은 일러서 일단 시간을 버리기로 하고,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청원이가 게임방이 한국과 비교해서 얼마나 발전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찾아보라고 했더니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천상 에비가 나서서 새끼 오락실을 찾아 줘야지......


"game room?"


(혹시 게임방이 근방에 있습니까?)


애써서 물었지만 다들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는 모양이었다. 별로 신통한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느낀 점이다. 다시 고민을 해서 적은 것은 다음의 문장이다. 참 가관이다.


"請問 此近處中 computer(電腦)game room 有處?"


(말 좀 물읍시다. 이 근방에 컴퓨터게임을 하는 곳이 있을까요?)


비로소 반응이 왔다. 가게로 들어가서 메모지를 내밀었더니 앞으로 주욱 가면 있다는 것이다. 역시 글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찾아가 봤는데 아들녀석은 아무래도 뿅뿅거리는 게임장을 찾았던 모양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한시간을 투자하기로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그런데 1시간이 되어도 내려오지 않아서 또 그 잘난 메모장을 주인에게 들이밀었다.


"我同行者請走去."


(나랑 같이 왔던 놈 좀 가자고 해주실래요?)


 그리고 내려온 아들녀석의 설명인즉 컴퓨터게임은 한참 뒤져있는 것으로 보인단다. 1시간에 100원이 기본이고, 그 후로는 1분에 1원이라고 하더란다. 그렇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어서 그냥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는 북경오리를 먹으러 갔다.


일이 늘 순탄하게 풀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연거퍼서 꼬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 낮에는 참 그러한 기분이 들었다. 애써서 찾아간 천주채관은 결혼식이 있어서 외부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말씀을 이쁘게 차려입은 여인이 알려주는데 참으로 이뻐보이지 않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오리구이는 틀린 모양이고, 그래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는 또 소낙비를 만나서 피하기를 반복하다가는 급기야 레스토랑에서 양식으로 저녁을 때우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하루였던 모양이다. 일진이 사나웠나? 달력을 보니 丁卯일이군 그러면 그렇지. 허허~


그렇게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테레비를 켜니 비로소 상황이 보통이 아니라는 긴급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태풍이 대만의 남부를 강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일의 일정에 지장이 생기는 상황이다. 왜냐면 내일은 고웅으로 이동을 할 예정이었는데 고웅은 대만의 남부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서 서점에서 책을 쇼핑하기로 하고 하루를 마감했는데, 아들은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채널에서 종일 만화만 나오는 것이 당연히 있었는데, 그 장면을 보더니만 잠도 다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과연 대만여행에 동행 하기를 잘했다는 눈치가 보이면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한 나름대로의 체험이니 어쩌겠느냐는 생각으로 실컷 보라고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대만은 그러고 보면 채널 하나는 확실하게 많다. 81개의 채널 중에서 거의 모두 방송이 나오는 셈인데, 유선이든 무선이든 위성이든 되는대로 마구 쏟아진다.


여기저기 돌리다가 보면 뉴스만 나오기도 하고, 영화만 나오기도 하며, 영화에서는 주성치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또한 당구를 하는 프로에서는 하루종일 당구만 하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채널은 하루 종일 벌거벗고 노는 그림도 나오는 모양인데, 그래도 중요한 부분은 모자이크가 등장을 하는 것으로 아직도 완전한 개방은 아니라고 해야 하겠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한국과는 상당히 비교가 되는 장면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5. 태풍의 영향-7월 9일


새벽에 테레비를 켰더니 태풍이 몰려온다고 난리다. 특집방송으로 진행이 되는 모양인데, 창문을 얼어도 굵은 빗발과 휘몰아치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형상이다. 무심하게 그렇게 채널을 돌리고 있다가 문득 낮이 익은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아서 멈췄는데, 대만에서 인기가 높다는 클론이 등장을 하는 연예 프로였던 모양이다.


중국말로 사회자는 묻고 클론은 한국말로 대답을 하고 통역하는 아가씨는 중간에서 양국의 말을 하고 있었는데, 클론은 끝까지 한국말로 대응을 하고 마지막에는 '셰셰'만 확실하게 중국말로 하는데 그래도 좋다고들 아우성이었다. 다시 출연자가 바뀌면서 흥미가 사라져서 다른 채널로 돌리니까 이번에는 어느 역학자가 나와서 성명풀이를 전화로 해주고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흥미가 동해서 지켜봤는데, 대략 짐작을 하기에는 전화로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물으면 해석을 해주고 궁금한 점은 질문을 하고 해서 결정을 내려주는 모양이었다. 과연 한국에서도 다채널의 시대가 되면 그러한 장면이 등장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화상상담(畵象相談)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는 것으로 부러운 장면이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명리상담실(命理相談室)도 방송으로 하도록 하고, 공부를 하는 학자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현장실습을 한다면 또한 바람직한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되면 낭월이도 한 프로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못 말리는 망상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이 과히 멀지도 않은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북의 서점이 집중적으로 있는 지역은 重慶南路一段(중경남로일단) 주변에 있다. 먼저도 그 곳에서 책을 원 없이 봤는데, 오늘도 아침을 먹고는 부지런히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일요일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학전문서점에 속하는 集文書局(집문서국)은 셔터가 올라갈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의 일반 서점에서 명리와 연관된 책을 둘려봤는데, 예전에 비해서 일반 서점의 책들도 상당히 풍부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아예 바닥에 퍼지르고 앉아서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과연 그 순간은 아무런 망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성민이도 비록 넉넉하지 않은 한자 실력이라고는 하지만 열심히 책을 찾아서 뒤적이고 있는 모습에서 앞으로 뭔가 일을 낼 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다. 열심히 뒤적이지 않고는 발전을 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우선 출발하기 전에 도움을 주시겠다는 기자님의 말씀대로 창힐입력법에 관한 책을 달라고 메모지를 내밀었다. 그러자 점원은 컴퓨터 서적 코너를 가리켰고, 그 곳에서 유사한 이름의 책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기자님의 말씀대로는 한자를 입력하는데 한글식으로 해서는 그 노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수고스럽더라도 워드에서 중국식으로 입력을 하는 방법을 배우겠다면 가르쳐 주시겠다기에 흔쾌히 답을 드렸더니 그에 필요한 책을 2권 구해오면 도움을 주겠다고 해서 우선 이 책을 구했던 것이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종관념학창힐(從觀念學倉頡)
용비봉무창힐72소시쾌이통(龍飛鳳舞창힐72小時快易通)
창힐수입일주통(창힐輸入一週通)


이상 세권을 골랐다. 책은 수두룩 했는데, 어느 것이 좋은지는 모르겠고 순전히 감으로 골랐는데, 그 선택의 결과는 앞으로 공부를 하면서 결정이 나겠지만 선생님의 의견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참고로 쉽게 말씀드리면 한글의 두벌식 입력법을 배우는 것으로 보면 되겠는데, 관념을 따라서 공부한다는 책은 혼자 짐작하건데 아마도 세벌식에 해당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었다. 새로운 방법의 입력법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그러한 생각을 했는데, 기왕이면 배워서 고치기보다는 애초에 새로운 방법으로 배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택을 했다.


그리고 서점에서 살펴보는 동안에 한자를 생각하는 관념이 한국인과 중국인 특히 대만인과의 차이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이것만으로도 수확이 크다고 해야 하겠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잠시 느낀 점을 언급해 보도록 하겠거니와 과연 무수히 많은 한자를 어떻게 키보드로 입력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약간의 참고가 되시리라고 생각된다.


※ 한자를 컴퓨터에 접목하는 사고방식


哲理類(철학적인 의미로 분류함)


日月金木水火土


ABCDEFG


筆劃類(글자의 획 모양으로 분류함)


斜點交叉縱橫句


HIJKLMN


人體類


人心手口


OPQR


筆形類(글자의 형체로 분류함)


側竝仰紐方卜


STUVWY


이러한 방식으로 알파벳 자판에 배당을 시키는데, 상상을 깨도록 한 것은 생각만으로 말씀드린다면 키보드 자판이 300개라도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지경인데 정작 자판에서는 엑스와 제트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사용할 곳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다시 흥미가 생기는 것인데, 가령 唱이라는 글자를 입력시키려면 raa라고 치면 해당하는 글자가 입력되는 것이다. 즉 口는 신체에 속하는 것으로 r이 배당되어 있고, 다음에는 日이 있으니 계속해서 치면 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曰자는 원칙상 일이 아니고 왈인데 그러한 것에 구애받지 않고 그대로 日자로 대입을 시켜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로 한다면 '창'이라고 쓰고 f9를 누른 다음에 화살표 키로 해당하는 글자를 찾아서 눌러야 입력이 된다는 것과 비교를 한다면 과연 그 기자님의 말씀대로 적천수를 모두 입력한 노동력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라는 의미가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다. 그나마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글자일 경우에는 더욱 고민이 따르게 되는데, 과연 이러한 창힐입력법으로 한다면 무슨 글자인지 몰라도 얼마든지 입력을 시킬 수가 있겠다는 점에서 알아둘 만 하다는 것을 알겠다.


그래서 역시 많이 알아야 수족이 고생을 덜 한다는 말이 실감나기도 하는데, 서점에서 이러한 것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 즐거움은 북경오리를 먹는 것보다 못하지 않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면서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게 해주신 유기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다.


이렇게 서점에서 발견한 새로운 것으로 감탄을 하면서 다시 역학코너에서 명리학 관련 서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목적의 첫째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대만에서는 연구하는 학자가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연구하고 궁리한 흔적이 도처에 엿보이는 책들은 과연 학자를 그대로 면전에 대하는 듯한 기분이 절로 드는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탐색한 결과로 얻어진 책은 제목과 저자만 적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내용에 대해서는 후에 시간을 두고 음미를 해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 지금 당장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겠다는 점 양해 바란다.


八字深入 1, 2권 사무등 저


最新八字造化眞跡 유금재 저


滴天髓輯要評註 이철필 저


八字因緣看人間 장건민 저


滴天髓禮記 서낙오 저 (적천수보주와 유사함)


八字破迷 반동광 저


命理難題解題 종의명 저


大運流年評斷及探討 황춘발 편저


現代八字禮記 上, 下 이거장 저


現代命理與中醫 上, 下 종의명 저


이상 13권을 이번에 구입했는데, 이 중에는 다음날 집문서국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서 추가로 구입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도 참고로 말씀드린다. 역시 집문서국은 집문서국이었던 것이다. 또 다음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전개하도록 하고, 여하튼 여러 시간을 투자하여 골라낸 책들인데, 이 중에서 다시 내용을 살피는 것은 나중에 시간을 두고 할 일이다. 서점에서 간단하게 전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하겠으므로 가능성이 보인다 싶으면 일단 골랐던 것이다.



6. 흥미로운 책의 발견


책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느끼는 점은 이제 용신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응용을 할 것이냐는 점에 포인트가 맞춰 진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점차로 구체적으로 세분화 되어 가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이러한 흐름에서 동행을 하지 못하면 아마도 그대로 퇴조해 버리고 말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그러한 의미에서 낭월이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마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낭월이도 앞으로의 명리학은 보다 구체적인 방향으로 세분화 되어서 연구가 깊어지지 않고서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 터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심리학의 분야에서는 새로운 책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심 기대를 하긴 했었지만 없는 것은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아쉬움을 달래야 했던 것인데 그래도 가장 반가웠던 것은 '八字破迷'라는 책을 발견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다. '팔자의 미신을 깬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겠는데, 과연 이러한 책이 필요하다고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던 낭월이로써는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이번 수확에 가장 큰 보물로 삼기로 하고 저자를 찾아갈 작정을 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게 분류가 된다.


입춘과 동지로 년주를 삼는 문제


조후에 대한 문제의 논점


전통적인 명리에서 정확하게 배워야 할 것들


야자시의 천간에 대한 문제


자평학은 독립적인 학문이라는 범위 설정


대운의 간지를 나눠서 보는 문제


이상 몇 가지의 논제를 놓고 연구하는 모습에서 과연 명리학을 사랑하는 학자라고 하는 마음이 절로 들면서 한번 만나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거 없었던 것이다. 이름이 반동광이라고 하는 것도 알아 놓고, 마침 책에 전화번호가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만족스럽게 서점에서 계산을 하고 나왔다. 현대명리학과 중의에 대한 책은 명리학을 연구하면서 한의학도가 하도 많아서 혹 참고로 들려드릴 내용이 있을까 하여 구해온 책이니 아마도 관심이 가시는 벗님도 계시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후에 살펴봐야 하겠다.



7. 중간의 이야기는 간단하게 드리고....


소인국을 들려서 안내를 해준 이야기나, 고웅에서 두 밤을 보내면서 주변을 둘러본 이야기와 연화담에서 연꽃을 보지 못한 이야기들은 길게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줄이도록 한다. 다만 역시 또 먹는 이야기지만 이것은 하고 넘어가야 하겠기에 언급을 드린다. 물론 자랑이다.


고웅에서 하루 자고 수산공원을 둘러보고 느낀 것은 나라를 위해서 죽은 영혼에게 참 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느낌을 받았다. 방명록에 이름도 남기기는 했지만 한국의 사당은 그렇게 웅장하지 않았다고 봐야 하겠기에 더욱 소감이 숙연했다. 그 정도의 정성을 기울여줘야 나라를 위해서 희생을 할 마음이 들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공원을 둘러보고 나룻배를 타고 기진반도로 들어가서 입구를 살펴보는데 갑자기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살아서 활동을 하는 랍스타였다. 물론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친구는 성민이였고, 어느 누구도 그 모습에서 포기의 마음을 품지 않았으니 자연스럽게 그 해물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선 아가씨 주인의 수수한 모습이 맘에 들었다고 해두고, 그 놈의 이름이 뭐나고 물었다.


"名"


(이 동물 이름이 뭐래요?)


"龍蝦(용하)"


(용새우라고 불러요.)


우리 일행 중에서 한자를 아는 사람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과연.... 용하로다. 하하하~ 결국 한 놈을 시식 하기로 하고 가격을 흥정하는데, 저울은 예전의 근 저울이었고, 한 근에 1120원이라고 했는데, 그 녀석을 저울에 올려 놓으니까 1540원이 나왔다. 가격은 6만원 돈이 되는 셈이었다. 그래도 아무도 그 가격이 비싸다고 하지 않았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 요리를 해 줄것인가를 묻는데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 지경이 이러렀다.


"湯(끌여서 탕으로 드실라우)"


"沙拉(잘게 부스러트려서 드실라우)"


"炒(볶아 드릴까요)"


우리는 볶아서 먹기로 하고 炒자를 선택하고는 유유자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전에 동천선생에게 얻어먹은 태국에서의 씨푸드점과 당시의 랍스타를 이야기하면서 또한 즐거움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조리되어 나온 요리는 남기는 것이 하나도 없이 모두 먹어 치웠다고만 말씀을 드릴 것이며 그 가격은 결코 합당한 가격이라고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회로 먹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잠시 고민을 했는데, 역시 여름이고 해서 포기하기로 했다. 나중에 푸켓을 가게 되면 그렇게 하기로 했던 것이기 때문에 보류를 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 푹 자고는 12일 아침에 고웅에서 자강호라는 이름의 새마을 열차를 타고 장장 5시간 가까이 달려서 대북 역에 도착했는데, 기분이 좋았던 것 중에 하나는 그 열차를 현대중공업에서 만들었더라는 것이며, 어느 채식 전문점에서 도자기스푼이 나왔는데, 그 바닥에는 메딘 코리아라 박혀 있었더라는 것인데, 이러한 사소한 것에서도 괜히 우월감이 드니 과연 일본 관광객들은 한국 사람이 소니무비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우월감은 얼마나 상당하겠느냐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낭월이는 8미리비디오를 들고 갔는데 소니였기 때문에 문득 해본 생각이다.


8. 질문서를 들고 영화시로


대북에 도착을 해서 호텔로 돌아갔다. 실은 대북의 화관대반점에서 떠나기 전에 짐을 맡겨두고 다시 와서 일박을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 그 짐은 모두 책이니까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짐을 맡기면서 적어준 글이다.


"我一行四人. 우리 네 사람은
明天10日. 出發後, 내일 10일에 출발을 한 다음에
7月12日, 在來華冠大飯店, 다시 화관대반점으로 와서
一泊後, 7月13日 韓國行. 한국으로 갑니다.
書冊等物(東西) 一部. 책과 기타 물건들의 일부를
此處, 保管. 可能? 여기에 보관해도 되겠나요?"


다시 보니 在는 再를 썼어야 하는데 짧은 한문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구나. 여하튼 통하면 되었지 뭘. 이렇게 물어서 흔쾌히 답을 듣고 맡겨뒀기 때문에 훨씬 편하게 돌아다닐 수가 있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보낼 밤을 위해서 다시 본 곳으로 온 다음에 연지님과 청원이는 호텔에 두고 후론트로 내려와서 아가씨에게 다음의 글을 보여줬다.


"潘東光 先生.
永和市 保平路236巷 
電話 2923****番"


전화를 부탁했더니 투숙객인 듯한 중국 사람이 아는 척을 한다. 한국사람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면서 한술 더 떠서 부산서 왔느냐는 투로 안부를 전한다. 그래서 부산은 아니라고 했더니 자신이 전화를 해 주겠다는 표정으로 메모장을 눈여겨 보더니 연신 알겠다는 듯이 전화기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 영락없는 丙火로구나... 하면서 뒤따라 갔다. 이렇게 편한 것도 병화인 것이다. 하하~


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야 했다. 그는 자꾸 빨리 쓰라고 재촉을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아마 당황스러워서일 것이다. 여하튼 다음과 같이 적어서 전화기 앞에 들이 밀었다.


"我韓國命理學人 朴珠鉉也.


書店, 先生著書 八字破迷 發見.


我一次面談要請也.,


可能時間?"


(저는 한국에서 명리학을 연구하는 박주현이라는 사람입니다. 서점에서 선생이 지으신 팔자파미라고 하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한번 면담을 청하고 싶은데 시간이 가능하겠습니까?)


그 병화로 가정이 되는 아저씨는 메모지를 보면서 부지런히 읽었고, 상대방도 이해가 잘 되시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문득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다시 묻는데, 항꿔화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한국어를 할줄 몰라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이야기로 수용이 되었다. 그래서 눈치만 남은 낭월이는 도 잽사게 두 글자를 적었다.


'筆談(필담)'


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필담으로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설명한 다음에 오케이 싸인이 떨어진 모양이다. 그는 황급히 자신의 시계를 가르치면서 "닥시 빨리!"를 외쳤다. 보나마나 퇴근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택시를 타고 빨리 와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에게 연신 '쎼쎼'를 하고는 화급히 달려나갔고 택시는 많았고, 그래서 약 30여분 달려서 그 부근에서 선생의 집을 찾을 수가 있었다.


찾아간 곳은 가정집이었다. 아들과 딸도 보였고, 상담실은 조그마했는데, 조촐하게 책이 서너권 꽂혀 있었고, 소박해 보이는 사십대 중후반의 나이로 생각이 되었으며 하체가 다소 불편한 듯 약간 절룩이는 것 같았다. 인사를 나누고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내밀고 '싸인'이라고 했더니 알아듣고서 싸인을 해줬다.


그리고 낭월이도 들고 갔던 적천수강의를 한 권 싸인해서 선물했다. 적어도 책 한권 정도는 있는 학자라고 하는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학자간의 인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성민이는 벌써 카메라를 꺼내어 들고 찍기 시작했다. 나중에 편집이 되면 동영상으로 올려드리고 싶은 생각이다. 이미 준비해간 질문서를 내어놓고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궁금한 질문을 해보았다. 다음은 그와 나눈 필담을 풀어서 적도록 하겠다. 모두 필담이지만 읽기가 불편할 듯 싶어서 설명을 대화조로 하도록 한다. 실은 그 통역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지만 급하게 해서 그런지 연결이 되지 않아서 그냥 오는 수밖에 없었으니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늘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는 나눈 셈이어서 다행이었다.


[問] "십이운성은 활용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십이운성이 무엇이며 활용가능성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장생이나 목욕 관대......"


"나는 십이운성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면....."


[問] "地支의 육합에 대한 현실성이 있는지요?"


"현실성이 뭐지요?"


"사용을 하시느냐고 묻겠습니다."


"나는 육합은 사용합니다."


"그러시군요. 저는 사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긴 이야기는 후에 편지로 의견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問] "공망에 대해서 이론적이나 실용성이 있는지요?"


"나는 매우 조금만 공망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비중을 별로 두지 않는 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저는 완전히 고려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問] "삼형의 작용은 가능한 것인지요?"


"나는 다만 寅巳申의 삼형에 대해서만 쓰고 그 외에는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일반적인 차원이라고 보겠습니다."


[問] "파해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나는 파나 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시군요 동감입니다. 그리고...."


[問] "각종 신살에 대해서는 활용의 가능성이 있는지요?


"나는 신살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시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問] "대운의 간지를 5년씩 대입하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운을 5년씩 나누는 것은 불가합니다. 마땅히 위아래로 붙여서 10년간 봐야 합니다."


"그러시군요. 대운의 천간이나 지지의 비중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천간이나 지지가 모두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별히 어느 하나에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다음에 편지로 또 의견을 나눠야 할 부분인 듯 싶다.


[問] "대운과 세운이 충돌을 할 가능성이 있는지요?"


"대운과 세운이 충돌을 하면 서로 싸운다고 하지요. 가능합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問] "대운과 세운의 설계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이 책을 참고로 살펴봐 주세요. '팔자와 유년의 실무'라는 책인데 귀하에게 선물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저서가 또 있었군요. 서점에선 못 봤습니다. 고맙게 보겠습니다."


[問] "질병과 사주와 유전자의 관계가 궁금한데요."


"사주에 오행이 지나치게 많거나 너무 부족하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목이 금에게 극을 받으면 간이나 사지에 병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사주가 화평하지 않으면 병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사주로 질병을 알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다만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동감입니다."


[問] "죽은 다음에도 운이 흐릅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죽은 다음에 운이 있다고 한다면 사주의 대운입니까? 사주의 운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풍수학과의 연관성은 또 어떻습니까?"


"사주는 독립적인 학문입니다. 풍수학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운에 따라서 윤회를 한다고 현대인이 말을 하기도 합니다만 고인의 말씀에는 그러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내 운이 죽은 다음에 좋다면 자식에게 연결이 되겠습니까?"


"후생의 자손은 또 자신의 사주가 있으며, 자녀는 그대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니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서낙오 선생도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렇습니다."


[問] "처와 재물과 건강을 구분할 방법이 있습니까?"


"남자에서는 처와 재물을 같이 보게 됩니다."


[問] "월지를 남편궁으로 보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남편궁이라니요?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하건충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월지가 남편궁이라고 했거든요."


"일지를 처궁과 남편궁으로 보고 월지는 어머니 궁으로 봅니다."


"하건충 선생의 팔자심리추명학에 언급이 된 내용입니다. 못보셨네요."


"금시초문입니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년지를 부친궁으로 월지를 모친궁으로 일지를 처궁으로 시지를 자식궁으로 봅니다. 남편궁은 일지를 같이 보고요."


다음에 편지로 또 의견을 나눠야 할 부분인 듯 싶다.


[問] "야자시의 존재 가능성과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야자시나 조자시에 대해서는 고려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시는 나눌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시군요. 알겠습니다."


[問] "서양인의 사주는 어떻게 작성합니까?"


"서양인의 사주도 그대로 작성하면 됩니다. 풀이를 하면 잘 맞더군요."


"예. 알겠습니다."


[問] "명리학과 심리학의 접목은 가능한지요?"


"접목법이 무슨 말이지요?"


"가능하다고 봅니다."


[問] "팔자를 초월할 수가 있을까요?"


"노력을 한다고는 하겠지만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그렇군요...."


"인간의 운명은 나면서 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운을 개척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냥 마음을 잘 쓰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겠습니다."


[問] "팔자는 전생에서 왔을까요?"


"팔자는 다만 일생을 논할 뿐이고 전생이나 후생은 논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하지요."


"극히 숙명적이라면 참 불공평하군요. 그 시간에 났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이 말이지요."


"인간은 본래 그렇게 불공평한 것이랍니다."


[問] "戊土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무토요? 무토는 양토이고 산을 상징합니다. 또 무토는 건조한 토이고 그래서 물의 습기가 와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토는 습토이니 물이 필요없지요."


"제 생각에 무토는 引力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질문 다 드렸습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명리학에 매우 흥미가 높군요. 적천수징의가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삼명통회도 권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궁금한 점이 있으면 편지로 질문을 드려도 되겠는지요?"


"그럼요. 좋습니다."


"오늘 만나뵙게 되어서 참 좋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선물입니다."


그리고 인삼주를 내밀었고, 그는 사양했지만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상담료가 얼마냐고 물었는데, 상담료는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나왔다.


이상이 필담의 내용을 풀이해서 적은 것인데, 부분적으로 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시간관계상 그 정도로 줄이고 뒷날을 기약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참았다. 사실 이야기를 나누기로 든다면 어디 하루 이틀이 될 것인가 말이다.


그리고 대체로 의견을 같이 했지만 야자시나 육합이나 또는 대운의 십년으로 보는 것들은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의 의견을 종합해서 볼 적에 주로 고전을 의지해서 공부한 것으로 판단이 되고, 하건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적천수징의에 대한 내용을 상당히 신뢰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철초선생이 대운을 나눠서 대입한 것을 나중에 편지로 보내서 의견을 들어볼 요량을 하면서 문을 나섰다.


극히 숙명적인 사고관념에서 학자의 자세를 느끼면서 또 한편으로는 신체적인 불구에서 어쩌면 불가항력적인 부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문득 해봤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기분은 상당히 상쾌했다. 필담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많은 내용의 의견을 나누고 보니 또한 재미가 있어진 것이다. 호텔로 돌아가서는 다시 식구를 이끌고 약간의 선물을 구입하러 나갔다가 저녁을 먹고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고 했지만 여전히 시간은 자정이 넘었다. 여행은 여하튼 피곤한 것이 틀림없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것까지는 줄여도 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이 정도로 여행기를 줄이거니와 역시 적지 않은 책을 구하고 와서 흐뭇하다는 말씀을 최종적으로 드린다. 후에 또 연구가 되는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벗님들과 공유를 할 것이라는 점은 약속을 드려도 되겠다.


-------------------------------


여행의 뒷 소식을 기다려 주신 벗님께 이 정도의 보고를 드립니다. 간단하게 적으려고 했는데, 약간 길어졌나요? 그래도 혹 여행에 참고가 될만한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0년 7월 19일 저녁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