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 시를 전혀 모르는데요?

작성일
2007-09-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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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도 자랑이냐?” 는 말이 튀어 나오려고 하지만 도리없이 참아야 한다. 시를 모르는 것이 어찌 그 사람의 잘못이랴... 띨띨한 부모님을 만난 것이 죄라면 죄일 뿐이고 그 사람으로써는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이다. 설마하니 태어나면서 시계도 안보고 뭘 했느냐고 꾸짖지 않으려면 아예 그만 두는 것이 좋다.

그나저나 시를 모른다는 것은 골칫덩어리임이 분명하다. 시를 알아야 사주의 네 기둥이 나올텐데, 아예 기둥이 넷이기를 거부해버리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아무리 고민해봐야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도리없이 편법을 등장시켜야 할 모양이다. 그 편법에 대한 것을 설명해 보겠는데, 어느 편법을 따르든지 벗님의 자유이다. 어쨌던 이 중에서 어느 한가지는 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로지 벗님의 자유의지에 맡긴다.(어지간히 인심 쓰는척 하는군...)




① 13개의 사주를 만든다.




확율은 단지 13분의 1이다. 여기에 도전을 하려면 그 날짜에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주를 만들어 놓고 그 사람이 살아온 것과 대입을 시켜보면 된다는 발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분명히 이 사람의 時柱일 것은 분명하니까 일단 하나하나 대입을 시켜가면서 살아가는 모양새를 점검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그 사람의 時라고 잠정적으로 인정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자니 이러한 것을 확인하느라고 아까운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버린다. 이 사람이 벗님의 가족이라던지 절친한 친구라면 또 참을만 하다고 하겠으나, 그냥 잠시 사주보러 들린 고객이라면 아마도 하루에 세명도 상담하기 전에 파김치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주의 ‘사’라고 하는 말만 들어도 십리 밖으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낭월이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낭월이야 원래 우둔하고 요령이 없어서 이런 일도 곧잘 했었지만 벗님은 이러한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탓할 마음이 없다.




② 찾아온 시간을 時柱로 삼는다




이것도 그렇싸한 방법이다. 어차피 시주가 있어야 감정은 할 것이고, 그렇다고 열세개든 열두개든 일일이 뒤지는 노가다는 할 엄두가 나지않고, 또 시 모르는 사람이 찾아왔다면 그 찾아온 시간도 우연인 것만은 아닐테니까 그것을 자신의 시로 삼아준다고 해서 누가 탓을 하겠느냐는 생각인 것이다. 이것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낭월이는 이 방법을 한번도 써보지는 않았다. 웬지 께름찍해서 말이다. 이것은 일단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하는 필연성을 전제하고 생각해 볼적에 일리가 있는 방법이다.




③ 모르는 대로 보자




이것은 생긴대로 놓고 보자는 ‘편리성 자연주의(?)’이다. 없는 것을 구태어 만들어 가면서 속을 썩을 필요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없는 것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낭월이의 ‘時없는 사주철학’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란다.




★ 시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어라




처음에는 시가 없으면 열세개의 사주를 만들어 놓고서 상담을 헀었는데, 이것은 참으로 권할만한 일이 못되었다. 그래서 곰곰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기발한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즉 시가 없는 것은 스스로 시를 만들라는 의미가 그 속에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어느 가족에 대한 사주를 보다가 였다. 깨달을 껀수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가 있는 것일까?

하루는 어느 노부인이 오셔서 가족 8명의 사주를 모조리 보시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 정확하게 자식들의 시를 기억하고 있어서 기억력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한 딸애의 사주는 시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단서를 잡으려고 연구를 해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은 그냥 봐달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실제로 그냥 봐줬는데, 잘 맞는 것이었다.

그냥 본다는 것은 4주가 아닌 3주를 놓고서 그대로 본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전광석화같이 스치는 생각이 ‘말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이라고 하는 기똥찬 묘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시를 모른다고 하면 전혀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그대로 놓고 봐준다. 물론 이말 한마디는 해야 혹시 틀리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된다.




“사주는 원래 시가 있어야 하는 거니까 틀리더라도 양해를 해주셔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