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日柱의 기준점

작성일
2007-09-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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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의 기준점은 子正이다. 여기에서 자정이라고 하는 것은 ‘子時의 한 복판’ 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에 子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언급을 하기도 했는데, 다시한번 정리를 한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우선 이 자정을 日柱의 기준점으로 삼는다는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 하루는 12시이라는 관점




하루는 子時로 시작해서 亥時에 끝나게 되어있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자정을 날짜의 변경점으로 잡았건 말건, 일단 자연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十二時가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당연히 정답이다. 실은 일반적으로 하루의 시를 따질적에 하루 十二時라고 하는 말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히 상식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얼마든지 당당하게 주장을 할 수가 있는 이야기이다. 地支도 열 두 개이고, 그 시작은 子時로 시작을 해서 亥時로 끝이 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子正이 날짜의 경계선이 아니라, 자초(子初)가 날짜의 경계선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현재의 시간으로 따지면 밤 11시 30분이 날짜가 바뀌는 경계선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아울러서 자정이 날짜의 경계선이 되는 것은 현대의 시간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한재에는 자정이 날짜의 경계선이 된다. 그래서 당연하게 밤 12시가 되면 0시라고 해서 날짜가 바뀌는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신각에서 양력 1월 1일 자정에 종을 울리면서 새로운 해가 시작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근대에 발생한 기준이고 원래의 명리학에서는 이것을 도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자정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일축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언제부터 이 자정을 날짜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는지를 관찰해보는 것이 매우 큰 의미가 될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몇권의 서적들을 토대로 해서 관찰을 해봤다. 원래에는 자정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을 턱이 없기 때문에 분명히 언제부턴가 새롭게 사용이 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자료를 뒤져보기로 했다.




① 고전의 관찰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종합적이라고 할만한 최초의 자평명리학의 종합서적인 ‘연해자평’을 우선 살펴봤다. 여기에서는 하루를 12시로 보고 있다. 일명 야자시(夜子時)2)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 연해자평에서는 그대로 子初를 기준해서 日柱가 바뀌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연해자평이 편찬된 것이 송나라에 해당하는 시기이고 지은이는 서균(徐均)이며 일명 서대승이라고 추정이 된다. 이 시대를 사전적으로 봐서는 서기 960년부터 1279년까지라고 되어있다. 그러면 대략 천년 전이라고 봐도 되겠다. 상당히 오래전이기 때문에 당연히 야자시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 같다.




명리정종은 명나라 때에 나온 책이라고 보면 되겠는데, 역시 야자시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명조에 써진 명리서에도 야자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좋겠다.

삼명통회도 역시 명나라에 등장한 명리서로 생각이 된다. 삼명통회를 저술한 분은 만육오(萬育吾) 선생인 것이 확실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여기에서도 야자시에 대한 것은 언급이 없다.




청나라의 시대에 이러러서 명리학은 대단히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어갔는데, 이 당시에 나타난 서적들로는 상당히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명리학에서 우뚝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으로 자평진전이 등장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또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러나 여기에서도 아자시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적천수징의에서도 이말은 보이지 않고, 명리약언에서도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볼적에 청대의 명리서에서도 자정을 날짜가 바뀌는 기준이 된다는 말은 찾을 수가 없는 셈이다.




② 근대(近代)의 命理書




왕정이 마무리 되고 근대의 사회에서는 더욱 개방적이고 활발한 동서문물의 교류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뤄지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세계대전을 경계선으로 해서 전후가 뚜렸하게 나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명리학에서도 이무렵에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새로운 이론들이 속속 등장을 하게 되는 중흥의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선 서락오(徐樂吾) 선생이 지은 자평수언(子平粹言)을 보면 비로소 야자시라고 하는 용어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子正 이전은 야자시라고 해서 금일의 일진을 그냥 사용하고, 자정이 지나면 다음날의 일진을 사용한다는 언급이 되어있다. 그렇다면 자정을 날짜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동시대의 원수산 선생도 그의 저서인 명리탐원(命理探原)에서 야자시에 대한 것을 설명하면서 채용하고 있느 대목이 보인다.

또 오준민 선생의 명리신론(命理新論)에서도 역시 어김없이 야자시에 대한 이야기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쉽게도 위천리 선생의 저서를 구하지 못해서 확인을 하지 못하겠는데, 일단 위의 세 분이 채용했다는 것은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면 이분들은 자평명리에 대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분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야자시설을 채용할 정도라면 이미 나름대로 상당한 임상을 해보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③ 한국의 교과서




우선 가장 방대한 자료라고 생각이 되는 사주첩경(四柱捷徑)에서는 야자시를 인정하고 있다. 야자시가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문제의 그 쥐 발가락 이야기까지 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대로 사용하신 것 같다.

도계(陶溪) 박제완 선생님의 명리요강(命理要綱)에서는 또한 야자시를 따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유는 당연히 기본원칙에서 벗어나는 이론이라는 말씀이고 또한 타당하신 견해라고도 생각된다.




대충 살펴봤지만, 야자시설은 근대에 발생한 것으로써 상당히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반대를 하는 학자님도 상당히 계시다는 것도 역시 현실이다. 그러면 낭월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일단 이 강의는 낭월이가 떠버리는 강의이기 때문이다. 낭월이는 물론 야자시를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다만 이것은 낭월이의 방법이니까 벗님은 또 벗님의 의사에 따라서 원하는 대로 응용을 하시기 바란다. 구태어 어느 방법이 옳다고 하는 생각은 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야자시설은 어울리지 않지만, 실제로는 해당이 된다는 정도로 마무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다. 결국 낭월이의 이야기는 자정이 날짜의 기준점이라고 하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