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5] 야자시(夜子時)가 뭐길래.

작성일
2020-02-12 15:32
조회
1638

[755] 야자시(夜子時)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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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봄을 부르는 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는 계룡산 자락입니다. 입춘절에 비가 오니 춘우(春雨)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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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에 촉촉하게 맺힌 물방울을 보면서 파릇파릇할 봄날을 기다리게 되네요. 비록 세상은 온통 신종코로나로 뒤숭숭합니다만, 계룡산은 언제나처럼 그자리에 의연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려니...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도발성 발언을 해 주시는 명리학자가 계십니다. 그래서 낭월을 긴장하게 만들곤 하지요. 오늘 이야기할 내용도 어쩌면 그러한 범주라고 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물론 도발성이라고 한 것은 낭월의 느낌일 따름입니다. 객관적으로 표현한다면, '매우 강력한 주장'이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학자 : 낭월 선생은 야자시를 쓰시는 것 같던데요?
낭월 :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학자 : 나름대로 진지하게 궁리하시는 걸로 아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낭월 : 예? 무슨 가르침이 있으신지요....?
학자 : 다 잘 하시는데 왜 학문 연구에 오점을 남기시냔 말입니다.
낭월 : 아,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야자시는 터무니없다는 말씀이신가요?
학자 : 물론이지요. 당연하잖아요?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통이었습니다. 이런 때는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합니다. '오호~ 오늘 한 수 배우나보다~' 싶은 생각이 드는 까닭이지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으로 봐서 아마도 '야자시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한 제자(?)가 대들었던가 싶습니다.

유명한 명리학자도 야자시를 사용하는데 왜 스승님은 그것을 부정하시느냐는 항의라도 받지 않으셨을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그놈이 누구냐고 했을 테고, 자연스럽게 변변치 못한 낭월의 이름이 도마에 올랐으려니.... 싶었습니다. 염두(念頭)를 굴려보니 대략 그러한 그림이 그러졌습니다.


1. 도대체 야자시가 뭐길래~


물론 적당히 둘러댔습니다만, 문득 낭월한담을 보니까 야자시를 주제로 따로 이야기를 한 것이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한담을 올린지도 한참 되었으니 잘 되었다 싶어서 이렇게 잠시 있었던 이야기를 빌미로 야자시의 수다를 떨어보려고 맘을 일으켰습니다. 하하~!

행여, 벗님께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모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쩐 일인지 앞의 '배울학(學)'에 대한 이야기에 보여주신 폭발적인 조회수를 보면서 역시 낭월명리학당을 찾아주시는 벗님은 공부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으로 인해서 조회수 하나하나에 초롱초롱한 눈망울 두개를 봤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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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야자시'가 뭐지? 라고 생각하실 벗님을 위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사주는 아시다시피 그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간지로 변환해서 타고 난 성품과 삶의 여정을 추론하는 것입니다. 태어난 해는 연주(年柱)가 되고, 달은 월주(月柱)가 되고, 날은 일주(日柱)가 됩니다. 그리고 시를 시주(時柱)라고 하는데, 야자시는 일주의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분입니다.

자연시를 기준으로 해서 이해를 한다면, 23시부터 01시까지를 자시(子時)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표준시에 따라서 30분을 늦추는 문제는 생략하겠습니다. 01시부터 03시까지는 축시(丑時)가 되는 것이지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순서로 진행되면서 120분씩 나누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자시(夜子時)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조자시(朝子時)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얼떨결에 자시는 둘이 된 셈이지요. 그리고 그 학자께서는 이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으셨던가 봅니다.

"하루는 12시인데 13시가 된다는 것이 말이 된다는 거요??"

그니깐요.... 언뜻 들어봐서는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누구에게 물어봐도 지지는 12지지라고 할테니까 말이지요. 물론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수도 없이 생각해 봤고, 토론해 봤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결론이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또 의문을 넘어서 분노를 유발시키기도 합니다. ㅋㅋㅋ

낭월 : 잠시 낭월의 말씀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학자 : 뭐요? 변명이라도 해 보시오!
낭월 : 사과가 12개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학자 : 12지지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뭐요?
낭월 : 그 중에 하나를 반으로 나눴습니다.
학자 : ???
낭월 : 사과는 12개 입니까? 13개 입니까?
학자 : 그게 무슨 궤변이란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자시(子時)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엔 자정(子正)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정을 기준으로 해서 날짜의 표시가 달라집니다. 같은 자시인데도 날짜는 12시까지는 전날이 되고, 12시부터는 다음 날이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구조는 전지구인이 모두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요?

여기까지가 야자시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23시로 하느냐 24시, 즉 0시로 하느냐의 차이로 인한 문제라고 보면 틀림없겠습니다.

'자시(子時)부터 해시(亥時)까지'

하루의 시작을 자시부터 해시까지라고 생각했다면 그 뒤에 뭔가 찝찝한 것이 붙어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는 것은 과히 어려운 일도 아니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진노하시는 학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바도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러한 문제를 거론하는 학자를 한둘 만난 것도 아니니까요. 그야말로 이미 익숙한 반응이려니 싶은 생각이라고 하면 되지 싶습니다.


2. 『사주첩경』과 『명리요강』의 주장


그 학자님의 호통이 이어집니다.

학자 : 아니, 5천년을 두고 자시부터 해시까지로 사용한 것이잖소?
낭월 : 그...런...가....요....?(어물어물)
학자 : 당신이 뭔데 감히 자기 맘대로 바꾸느냔 말이오~!!
낭월 : 그게.... 그러니까....
학자 : 그렇게 짧은 견해로 날뛰다가 낭패를 당할 거란 말이오!!!

뭐,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제자에게 맞은 뺨을 낭월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겠거니.... 하면 크게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호통을 치고는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얼떨떨~하다는 것은 이런 때에 써먹으라고 있는 말이겠지요? 그분께 공부하시는 제자분이 이 글을 읽고서 복사해서 전해드렸으면 싶은 마음에서 글을 쓰기로 생각했던 것은 오늘 저녁이었습니다. 이렇게 '동기(動機)'가  왔으니까요. 하하~!

어줍잖은 낭월의 주장이야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무시를 당한다고 해도 크게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의 생각만큼 바라보고 본 만큼 수용하는 것이겠거니~ 할 따름이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잠시 생각해 보니까 사주첩경에서 본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소개를 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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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영 선생님의 『사주첩경(四柱捷徑)』1권에 나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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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자평명리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있으시다면 『사주첩경』이라는 책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定時速見表(정시속견표)」네요. 시를 정하는 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0시부터 1시까지는 자시이고, 쭉 내려와서 맨 아래를 보면 밤11시부터 0시까지는 '夜子時(야자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로 미뤄서 이석영 선생님은 야자시를 적용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문득, 이 학자께서는 이 소식을 모르고 있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이석영 선생님이라도 생존해 계셨더라면 전화를 해서 호통을 쳤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자신의 신뢰와 소신을 갖고 있어야 학자의 길을 갈 수가 있으니까요. 이러한 기개는 높이 사도 됩니다. 자기의 중심이 없어서 바닷속 바위에 붙은 미역처럼 이리 저리 물결따라 휩쓸리는 학자들에 비한다면 말이지요.

이석영 선생님은 이것만으로도 다수의 의혹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신 듯 싶습니다. 부연설명이 자꾸 붙는다는 것은 당시에도 이 문제로 인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박재완 선생의 견해는 또 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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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선생님의 『命理要綱(명리요강)』입니다. 여기에서 논하는 야자시설은 명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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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렬하게 비판하는 박재완 선생님의 마음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석영 선생님께서 야자시설을 적용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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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첩경 1969년 6월 30일 초판
명리요강 1997년 4월 30일 초판

낭월의 생각이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지요? 사주첩경이 나온 후로 28년 후에 명리요강이 나온 것을 보면 대략 짐작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박재완 선생님은 야자시를 적용하는 이석영 선생님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다만 명리요강의 경우 보주판(補註版)이라고 한 것으로 봐서 그 이전에 나온 책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됩니다만, 초판의 표시가 이러하니 그냥 근거로 삼아 봅니다.

이렇게 학자들 간에도 자신의 주장이 명료한 야자시설이니 그 학자님의 낭월에 대한 호된 꾸짖음은 당연히 납득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두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생략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에 대해서만 이해를 하는 것으로 충분한 까닭입니다. 다시 이석영 선생님의 견해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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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에 쥐가 등장을 합니다. 언제 적절한 장소에서 써먹으셔도 되지 싶습니다. 내용은 한글이니 중언부언하지 않아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지 싶네요. 쥐의 발가락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해 보려고 일부러 죽은 쥐를 찾아서 발가락을 세어 봤습니다만, 그것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쥐의 종류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것까지 연구해 보진 않을랍니다. 각자 확인해 볼 방법이 있으면 확인해 보시는 것은 알아서 하시는 걸로 정리하겠습니다. 하하~!

그러니까 그 학자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있었다는 것이지요. '사주첩경에 나온 이야기는 못 보셨나 봐요?'라고 하고 싶은 말이 목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을 애써 삼켰습니다. 그러면 또 명리요강을 들고 나오시면 싸우자는 것밖에 안 되니까요. 맞지요?


3.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삼명통회』를 보니.


고인들은 야자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도 살펴 볼 필요가 있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를 찾던 중에 삼명통회에서 참고가 될만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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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三命通會(삼명통회)』입니다. '삼명(三命)'은 천지인의 저마다 타고난 숙명을 말하는 것일게고, '통회(通會)'는 다 모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참고로 유튜브의 「삼명TV」도 여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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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명통회는 고금도서집성에 포함된 문헌입니다. 성명부(星命部)에 분류되어 들어있는 책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성(星)은 점성술과 천문관련일 것이고, 명(命)은 숙명을 논하는 내용이려니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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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책의 두께는..... 베개용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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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목판영인본입니다. 영인본은 원전을 복사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삼명통회는 활자판도 있고 영인판도 있습니다. 활자판은 글자가 잘 보여서 읽는데 좋고, 영인판은 활자판에서 간혹 발생할 수가 있는 오탈자를 확인할 수가 있어서 둘 다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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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명통회에 나오는 「論時刻(론시각)」편입니다. 활자판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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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활자판입니다. 보기에 훨씬 좋지요? 이 부분을 풀이해보면 야자시에 대한 내용이 나올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보겠습니다. ㅎㅎ

夫晝夜十二時均分百刻。一時有八大刻二小刻。大 刻總九十六小刻,總二十四小刻,六準大刻一。故共 為百刻也。上半時之大刻,四始曰初。初次初一,次初 二,次初三。最後小刻為初四。下半時之大刻亦四始 曰。正初次,正一次,正二次,正三最後小刻為正四。

앞의 부분은 시(時)와 각(刻)에 대한 이야기이니 야자시와는 무관하다고 봐서 그냥 통과합니다. 혹 이러한 자료가 도움이 되실 벗님도 있을랑강 싶어서 그대로 살려둡니다. 이 다음부터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若 子時則上半時。
자시의 경우에 위의 반시(60분)는
在夜半前屬昨日,
밤의 전반부이니 전날에 속하고
下半時在夜半後 屬今日,
아래의 반시(60분)는 밤의 후반부이니 오늘에 속한다.
亦猶冬至得十一月。
이것은 또한 동지가 11월을 얻음에
中氣一陽來,復為天道 之初耳。
중기[초기는 대설(大雪)]에 일양이 와서 천도가 다시 시작되는 처음이 된 것과 같을 뿐이다.(한 해의 시작을 의미함)


古曆每時以二小刻為始,乃各繼以四大刻。 然不若今曆之便,於籌策也。世謂:子午卯酉,各九刻 餘,皆八刻非是。

뒷부분의 내용도 직접 연관이 없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삼명통회에서는 야자시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고, 자정(子正)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고 있다는 내용을 보여준다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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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명통회에서도 야자시의 모델로 자월(子月)의 동지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자시를 나눌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명대(明代)의 만민영(萬民英) 선생이 편찬할 적에도 이미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는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자월은 자시와 통하는 것인데, 자월의 중간이 되어서야 동지가 들어오고 동지부터 태양이 길어지고 천기가 길어지니 일양(一陽)이 생하여 지뢰복(地雷復)이 되어서 양의 기운이 되돌아 온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자월이 중간[대설후 15일]에 동지가 들어와서 새로운 해가 시작되듯이, 자시도 자정[자시의 절반이 지난 다음]이 되면서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간단히 해 놓은 것을 보면 현재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자정을 기준으로 삼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박재완 선생께서 유래가 없다고 주장하신 것은 삼명통회의 내용을 보지 않으셨거나, 보셨더라도 주의깊게 살피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유래도 있지만 실은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정도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더라면 삼명통회를 보셨겠다는 짐작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유래를 논한다면 삼명통회의 논시각편을 예시하고, 적용을 논한다면 이석영 선생의 사주첩경을 언급하면 되지 싶습니다. 물론 야자시를 논하기 싫다면 박재완 선생의 명리요강을 거론하면 됩니다. 주장이 대립될 적에는 학자에게 선택의 자유도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그 학자님의 주장도 틀렸다고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네요. 하하~!

여하튼 낭월은 야자시를 적용합니다. 옛날 하이텔시절에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몇날 며칠을 갑론을박했습니다. 실사구시()잖아요? 직접 확인해 보면 될 일을 갖고서 괜히 시간을 끌면서 머리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이론을 세우게 되었던 까닭입니다. 당시에 열혈청년들의 열정이 가끔 떠올라서 미소를 짓곤 합니다.

아쉽게도 야자시에 해당하는 밤23시 30분부터 0시 30분 사이에 태어난 모델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그에 해당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거 진실된 내용을 전할 수가 있는지도 조심스러운 것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회원들의 관점도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같지 않았습니다. 특히 해당 본인이 해 준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실은 두 가지가 다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이 시기에 태어난 아기의 경우 산모가 잠을 자다가 배가 아파서 낳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은 정확한 출생시각을 기록하였느냐는 의문을 항상 달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명료한 확인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염되지 않은 자료'를 구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이 등장을 합니다.

그래서 낭월은 이 문제는 규명할 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해석이 둘로 나뉜다면 누가 봐도 해석이 나뉘지 않을 자료여야 하는데 그런 자료는 참으로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답이 없으면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잊어버리면 됩니다. 그래서 야자시를 적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그 근원은 자월의 동지와 같은 기준에서 정리하게 되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이 야자시의 영역을 %로 보면 얼마나 되나요? 대략 따져서 24(시간)분의1(시간)이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약 4%정도가 되는 모양입니다. 1/25이 4%이니까 그 언저리로 보면 되겠습니다. 5%가 안 되네요. 과학실험실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비중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열을 올리고 분노할 정도는 아니라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태어났다고 확실하게 알려 줄 자료가 있으면 확인을 해 보고 싶어지긴 합니다. 하하~!

①있는 것이 확실하다 → 있다
②없는 것이 확실하다 → 없다
③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 있는 것 같다
※있는 것 같으면 있다고 간주한다.


매우 간단하지만 낭월이 항상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말하자면, ③번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신은 있다'던가 혹은 '신은 없다'던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낭월의 경험상으로는 '없다고는 못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증명을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쟁반의 사과가 몇 개인지를 헤아리는 것처럼 명료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런 경우에 낭월은 '있는 것 같다'로 답을 삼습니다. 그러니까 '신도 있다'고 놓고 보자는 것이지요. 매사에 이런 식입니다. 과연 기토(己土)다운 발상인가요? ㅋㅋㅋ

이 정도로 야자시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관점으로 대입하고 해석하면 될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학자님처럼 열을 돋궈가면서 자기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싹이 돋는 풍경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몸조심 하셔서 즐거운 봄맞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2020년 2월 12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