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청도⑩ 별이랑 아침이랑

작성일
2019-10-20 16:01
조회
773

어청도⑩ 별이랑 아침이랑


 

 

byel220191020-01

드디어 별놀이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어청도의 마지막날이지만 그 시간을 결코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자명종이 없어도 그 시간이 되면 잠이 깬다.

20191020_154435

오늘의 천문박명은 05시 9분이다. 부지런히 머릿등을 켜고 팔각정으로 올라갔다. 다만 땀이 흘렀다가 식으면 차가울 것을 생각해서 딱 그만큼의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고맙게도 02시에 잠이 깨었다. 사진놀이신이 제 시간에 깨워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20191020_155028

오늘의 계획은 길을 걸으면서 세우면 된다. 우선 별을 찍어야지. 가능하면 외연도를 포함한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3시부터 찍으면 천문박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최대한 2시간은 촬영을 할 수가 있겠다는 계산은 쉽게 나온다. 기대는 했지만 맑음을 보여주는 어플도 고맙기만 하다. 하늘의 별이 초롱초롱한 그 시간에 혼자서 팔각정아래의 명당터에 자리를 잡고 별과의 대화에 젖어드는 시간의 행복함이라니 그야말로 천상천하에 홀로즐거움이다.

byel220191020-02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렇게 풍경을 스케치 해 본다. 실은 전파안테나가 눈길을 끌면서 뭔가 상상을 하게 되어서 카메라를 들었다. 영화 콘택트에서 본 장면이 떠올라서이다.

2013-04-16_02;37;09

전파수신장치를 설치해 놓고서 외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가끔씩 생각이 나곤 하는데, 이 깜깜한 밤중에 별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에게 외계에서 어떤 연락이 온다고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yel220191020-03

앨리 애로위가 그랬듯이 낭월도 외계의 생명체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특히 안드로메다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구의 영혼들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더 많다. 북두칠성님께 새벽마다 물을 떠놓고 빌었던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계실 그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밤중에 산고개 마루에 올라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스텔라보다도 콘택트가 더 기억이 남는 것은 이러한 향수를 품고 있어서일 게다.

byel220191020-04

좋다~!

byel220191020-06

어제 피항한 어선에서 밤새도록 뿜어대는 광채로 어청도항은 밤을 잊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조용한 분위기가 넘쳤을텐데 이것은 좀 아쉬운 장면이기도 하다.

어청도별궤적

그렇게 해서 얻은 별궤적에는 훼방꾼인 구름이 끼어 들어서 망한 결과물을 보여 준다. 그렇거나 말거나 저 멀리 외연도는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북극성인 폴라리스(Polaris)를 가늠하고서 삼각대를 세웠는데 크게 벗어나지 않고 중심에 잡혔으니 일단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확실히 깨달은 것은 구름이 있으면 별궤적은 '꽝!!'이라는 것도.



그래서 타임랩스로 편집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영상을 클릭하면 크게 보일 것이라는 안내말씀이 필요하다면 참고하셔도 좋겠다. ㅋㅋㅋ

20191020_161106

오른쪽 아래 귀퉁이의 노란동그라미를 클릭하면 전체화면으로 별과 구름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피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그림을 얻기 위해서 촬영한 사진은 470여 장 정도이다. 날이 밝아오는 장면까지도 그대로 담기 위해서 천문박명을 지나서 항해박명을 거쳐서 시민박명이 끝나기 전까지 모두 담아봤다. 그러면 별빛이 점차로 태양빛을 받아서 밝음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모습까지 담길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byel320191020-01

처음엔 하늘이 맑았다. 그래서 구름의 훼방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략 30분 정도가 지나면서 남쪽하늘을 허옇게 물들이는 존재들이 점점 북쪽으로 밀려온다.

byel320191020-03

물론 그 뒤로도 구름이 계속해서 왔다가는 훼방을 놓고 사라진다. 일출의 타임랩스라면 구름도 반가운 벗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별과 놀 적에는 심술궂은 방해자에 불과한 그야말로 백해무익이다.

byel320191020-04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하늘을 지켜본다. 이러한 구름들이 별의 궤적에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상해 보면서 아쉽지만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일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사진에서의 숙명이라는 것도 생각하면서.....

byel320191020-05

그렇게 해서 낡이 밝아오는 시간까지, 별이 빛을 잃고 밝음 속으로 묻혀가는 장면까지 지켜봤다. 이렇게 해서 어청도에서의 별사진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새벽일출과 놀아야 할 시간이다. 그 말은 북향의 카메라를 동향으로 돌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00의 샤오미 배터리는 아직도 건재하다. 따뜻하게 렌즈를 보호하고 습기로 인한 이슬맺힘을 확실하게 방지하는 것도 고마울 따름이다. 가방은 이내 축축해져도 렌즈는 뽀송뽀송한 까닭이다.

hang20191020-01

카메라가 두 대인 이유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라고 해도 되지 싶다. 별사진을 찍는 M3은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태양의 빛이 서서히 물들어 올 것이라는 예고를 받은 상황에서 할 수가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카메라를 등장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이번엔 R3이 그 역할을 맡게 된다.

hang20191020-02

05시 29분부터 일출을 향해서 카메라가 자리잡은 이유는 05시 39분부터 시작되는 항해박명으로 새벽의 시작을 삼을 계산을 한 까닭이다. 항해박명이 시작되면 어제 풍랑을 피해서 들어온 어선들이 움직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 장의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 동선이 타임랩스에서는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상상하는 것은 풍부한 경험이 가져다 주는 상상력과 현실의 합의점이다.

M3은 북쪽하늘을 향해서 점점 빛을 잃어가는 별들을 담고 있을 시간에 R3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늘을 배경으로 어청도항의 풍경을 담고 있으니 부자도 이런 부자가 없다. 카메라 두 대로 즐기는 여유로움과 호사스러움이다. 와우~~!!

hang20191020-03

애초부터 별사진의 삼각대는 쪼꼬미 삼각대를 사용했다. 바위가 견고해서 그래도 되겠다고 본 까닭이기도 했고, 일출장면을 찍을 자리는 높이가 맞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이것은 원산도에서 이미 충분한 임상을 거쳤기 때문에 꼬마 삼각대에 대한 믿음이 붙은 것도 한몫을 한다. 항해박명이 시작되면서 하늘은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니까 '먼동이 튼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 시간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러니까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본다면 그 시간이 항해박명의 시간이라는 것을 참고해도 되겠다.

hang20191020-04

밝아오는 어둠을 뚫고 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시 항해박명이 되니까 배가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하는 셈이기도 하다.

hang20191020-05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풍경을 보는 것은 깜깜한 하늘의 별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마법이 일어나고 있는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 줄 타임랩스가 기대된다.

hang20191020-06

그러나, 오늘 새벽의 선물은 여기까지였다. 태양이 떠오를 시간인 06시 34분을 앞두고서 하늘은 제법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기대를 해 본 것은 당연하다. 어청도항에도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장면에서도 기대감이 물씬 일어났다.

hang20191020-07

더 이상의 선물은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즐기라는 하늘의 뜻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것이야 당연한 새벽출사객의 미련이다. 그래도....

hang20191020-08

태양은 06시 46분에 대천쪽의 산 위로 살며시 보일듯 말듯 하고서는 이내 구름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배를 타고 온 시간을 감안해서 해상일출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구름을 뚫고 올라왔나.... 싶었던 태양은 실로 대천의 옥마산을 타고 올라온 것이었다. 육지에서 불과 72km만 떨어진 어청도는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보다 훨씬 가까운 곳이었다는 점도 이런 기회에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hang20191020-09

그렇게 날은 밝아오고, 낭월의 새벽놀이도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끼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hang20191020-10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07시가 넘어도 지켜보다가 삼각대를 거뒀다. 이렇게 해서 얻은 7초 간격으로 촬영한 850여 장의 이미지를 무비메이커에서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는 조금 나을 것으로 기대를 하면서....



재미있구먼. 피항했던 어선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여서 훨씬 역동적인 새벽의 어청도가 되었으니 모두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음양의 이치를 다시 생각하면서 새벽이슬로 물이 줄줄 흐르는 가방을 털어서 짊어진다.

woi20191020-01

오호~! 시작은 그럴싸 했군. 그나마 고마울 따름이다. 아직도 팔각정에서 바다를 바라 볼 시간은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서 별사진을 찍고 난 M3을 가져다 놓은 것에 대해서도 기대를 해 볼 마음이 살짝 생기기는 했다. 그러니까 현재의 위치에서 왼쪽으로 산의 뒤쪽을 잡은 풍경이 되는 셈이다.

woi20191020-02

딱 그것 뿐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woi20191020-04

특별히 타임랩스로 만들 그림이 되지 않아서 포기했다.

woi20191020-05

대신에 구름은 있어도 해무가 없는 덕분으로 육지를 볼 수가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woi20191020-06-1

어청도가 생각보다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새벽을 다섯 시간이나 놀았으니 충분히 힘들 만도 한데, 오히려 새벽에너지로 충전이 되었는지 내친 김에 팔각정의 오른쪽으로 오르는 제2코스인 봉수대를 거쳐서 내려가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새벽이 아니라 아침이라고 봐서 별놀이 해놀이는 여기까지로 줄이는 것이 적당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