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리(下大里) 칠석제

작성일
2019-08-07 18:17
조회
137

공주 계룡면 하대리(下大里) 칠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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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7일은 칠석(七夕)이다. 어느 사찰이나 다 그렇듯이 한국불교는 땅을 지배하는 산신(山神)과, 하늘을 지배하는 칠성(七星)을 절로 모셔들였다. 현지의 토속신앙과 어울리는 것으로 전교(傳敎)를 선택한 한국불교 고승들의 결과물이다. 현지의 종교를 배척하고 자신의 믿음을 심는 종교가 있고, 현지의 종교를 흡수하면서 스며들어서 자리를 잡는 종교도 있다.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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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사에서도 칠석날의 행사를 한다. 행사라고 해봐야 칠성님의 탱화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불공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연례행사인 것은 틀림이 없고, 오늘도 그 행사는 어김없이 진행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지나다가 길가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고서 반드시 진행하는 과정을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룡면 하대리 칠석제 행사」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대략 이러한 내용이었다. 하대리는 대전을 갈 적에 지나다니는 길목이므로 잘 알고 있는데 해마다 했을 행사가 유독 올해는 눈에 들어왔다는 것도 시절인연이려니 싶다. 다행히 시작하는 시간이 오전 9시 30분이란다. 그렇다면 11시까지 귀가하면 행사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서는 일정을 잡았다. 연지님도 구경 잘 하고 사진 많이 찍어 오란다. 아마도 말려봐야 듣지도 않을테니까 말인심이라도 쓰자는 뜻이려니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맙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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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좁은 골목길을 차를 타고 서둘러 가다가 이 풍장일행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것이다. 피할 곳도 없고, 옆으로 비켜가시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인지라 운전대를 잡은 조카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고, 낭월은 그 사이에 차에서 내려서 이렇게 멋진 장면을 담는 것으로 칠석제 동참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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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대로 정면충돌을 한 셈이군. 그것도 인연이려니 하고 일행이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뒤를 따랐다. 처음 참여하는 행사인지라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동선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흐름을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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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리는 계룡산의 서편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가까이는 계룡갑사가 있고, 연천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위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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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소박한 주민들의 행사여서 더 호감이 갔다. 행사에는 '내 행사'가 있고, '남 행사'가 있다. 즐기는 행사는 내 행사지만 보여주는 행사는 남 행사인 까닭이다.  시끌벅쩍하게 보여주는 행사를 하느라고 거금을 들여서 유명 연예인들을 불러다가 호화스러운 잔치를 해야 잘 한 것으로 생각하는 지역의 축제를 살펴보다가 하대리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하대(下大)가 있으면 상대(上大)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지명을 찾아봤지만 상대는 나오지 않고, 대신에 갑사의 솟대에 붙은 이름이 대장(大檣)이었더란다. 그래서 솟대 아래에 있어서 하대장(下大檣)이 되었고, 끝의 장이 떨어져나간 것으로 보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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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고 있어서 30도의 더위에 땀이 흘러도 견딜만 했다. 더구나 하늘에 구름천막이 있어서 큰 부조를 해 주고 있으니 그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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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부터 농기를 세우고 농악을 울리면서 마을의 당나무에 차려놓은 제당으로 행진을 하는 것으로 이어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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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은 농기(農旗)였다. 굵은 대나무 장대에 깃발을 걸고 높이 세운 다음에 네 곳에서 새끼줄로 잡아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처음 보는 장면이기도 하고 그래야 할 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워낙 장대가 굵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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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농기의 글자가 좀 허전하다. 보통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기를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농자(農者)'의 두 글자가 없다. 어쩌면 작게 쓰인 글씨들 속에 그 연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들여다 볼 틈이 나지 않았다. 만약 깃대가 누워있는 틈이 있으면 얼른 가서 글씨들을 찍으려고 별렀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깃대는 마당에 높이 서있었던 까닭이다. 여기에서 하대리 농기에 대한 유래를 살펴본다.

【영의정농기(領議政農旗)】

공주시 계룡면의 하대리의 마두들 두레 농기는 영의정 농기이다. 원래 농기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적힌 대본기(大本旗)였으나, 조선 말기에 삼남(三南)의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서 공주땅을 지나가던 한 영의정이 계룡면 하대리 정씨 문중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대접을 매우 잘 받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마을의 농기에 친히 글씨를 남겼다. 삼남은 영남, 호남, 충청을 말하는데, 충청도는 금강의 남쪽이라는 의미로 금남이라고도 했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삼남의 이름이 타당하기 때문에 문득 떠올려 본 금남(錦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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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농기로 인해서 하대리와 중장리 내에 12개 두레가 연합 두레를 형성하고 공동으로 여름두레를 만들게 되었고, 「열두대징이풍장놀이」라는  독특한 민속놀이를 형성하였으니 이는 11개 두레농기가 영의정 농기에게 백중날에 농기세배(農旗歲拜)를 올리는 절차로 인해서 생성된 연유이다. 영의정 농기는 1960년대 후반까지 보존되었지만 새마을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불태워져서 안타깝게도 지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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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열두대징이 풍장놀이? 이건 또 무슨 뜻이지? 사진기행에서 이런 것을 간과하면 낭월의 사진기행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분주해지는 검색신공....이랄 것도 없다. 두드리면 다 나오는 세상이니. ㅋㅋ

「열두대징이풍장놀이」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와 하대리에서 칠석날 열리던 두레 막음 민속놀이.

[연원]
계룡면의 중장리와 하대리는 계룡산의 서쪽 아래에 위치하여 지형이 삼태기 속과 같이 안온한 형태로 하나의 권역을 이루고 있고, 중장리와 하대리의 지역 12개 두레는 여름두레를 먹는 날이 모두 칠월칠석날로 같았는데, 중장리 마루들에는 신선이 심었다는 12그루의 느티나무 정지가 있는 큰 두레마당이 있었다.

이 두레 마당에서 칠석제를 대동고사로 성대히 치렀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잔치를 벌였을 적에 삼남지역을 살피러 나왔던 영의정이 이 마을에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서 농기(農旗)는 벼슬한 농기, 혹은 영의정 농기로 불리면서 인근 11개의 마을 농기로부터 칠성날의 세배를 받게 되었던 것이고, 이 마당에가 각각의 두레패가 풍장 치는 실력을 겨루는 민속놀이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열두대징이풍장놀이는 대장골, 갑사동, 되찬이, 삼거리, 갑산수, 윗장, 농바위, 오은이, 갑골, 신대장, 방아달, 마루골이 모여서 놀이를 벌였던 것에서 유래하게 되었는데, 처음 시작은 언제나 영의정 농기를 보유한 마루들두레의 수상쇠가 가락을 선도하게 된다. (이하 줄임)

이야기가 길어져서 이쯤에서 줄여도 되지 싶다. 더 궁금하신 벗님은 이 제목으로 검색해 보면 좀더 상세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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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가 큰 길로 돌아서 행진하는 사이에 낭월은 지름길로 먼저 행사장에 도착했다. 당나무 아래에 단이 만들어졌는데 그야말로 삼베천으로 둘러놓은 참으로 소박한 마을의 행사였고, 그래서 화려하게 꾸며놓은 여느 행사보다도 오히려 정감이 가는 모습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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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무는 당신이 머무르고 계시는 신목(神木)이다. 칠석날은 북두칠성의 칠원성군에게 제사를 드리는 날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쌍양일(雙陽日)인 음력 7월 7일에 의미를 두고 동네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라는 마음으로 지내는 행사라는 것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북두칠성 전에 정성을 올리는 칠석제가 아니라 칠석날을 기하여 동네 신께 기원을 드리는 행사였다고 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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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행사의 제목이 등장을 한다. 계룡면도 없다. 그냥 하대리 칠석제이다. 그게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그냥 우리 마을의 축제일이라는 자부심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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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놀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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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일을 돕고 있다. 모두들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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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도 설치한 것으로 봐서 행사는 제법 길게 이어질 모양이지만 낭월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11시가 되기 전에 얼른 돌아가서 칠성불공을 해야 하므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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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을 담아 봤다. 마을 진입로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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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안에는 풍물연장들이 쌓여있다. 그야말로 12마을의 풍물이 다 모였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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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북은 언제 봐도 정겹다. 징과 장구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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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에서 풍악이 울리면서 그야말로 '영의정 농기'가 들어온다. 그 장면을 담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다. 남는 것은 기록이니 부지런히 담는다. 낭월도 그 어딘가에 같이 담겨있을 게다. 함께 즐기는 놀이마당이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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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더운데 저 어린 학생이 수고를 많이 했다. 어른 어깨에 올라서서 무서워하지도 않고 흥겨움에 동조하면서 팔을 흔드는 모습에서 영락없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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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컸다~!"

저 소녀를 어깨에 태우면서 아저씨가 한 말이다. 그러니까 작년에도 이 역할을 수행했었다는 이야기인가 싶다. 해마다 하던 일이라서 이젠 익숙한 모양이다. 그야말로 어른들 속에 홍일점으로 색이 살아난다. 농악의 내용에 어린 딸을 어깨에 태우고 동네를 도는 장면은 행사장에서도 흔히 볼 수가 있는 장면이었지 싶다. 당나무의 마당에 도착한 영의정 농기는 지정된 장소에 세우게 된다.



굵은 깃대를 희롱하면서 신명나게 노는 모습이 흥겹다. 무녀가 신장대를 쥐고 신명이 올라서 펄펄 뛰는 장면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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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의자를 옮긴다. 이제 칠석제, 정확히는 당산제를 준비하려는가 보다. 칠석제는 이름일 뿐이겠다는 생각은 어디에서도 칠성을 의미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날짜가 칠석날이었을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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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흘리면서 뛰어다니는 동네 아저씨의 흥겨운 모습도 놓칠 수가 없어서 한 장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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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린이집 차가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는 어린아이들이 보호자들과 함께 차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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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여기는 어린이집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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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잔치와 일상이 함께 하는 모습이 마을축제의 진면목이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을 가로막지 않았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듯이 그렇게 진행되는 모습이 계룡산의 능선처럼 유연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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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쪽으로 보이는 산이 계룡산이고 연천봉 쪽이기도 하다. 이렇게 계룡산을 뒤로 하고 자리를 잡은 복이 많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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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가 상이 차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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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민들이 편안하게 다음 일정이 진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낯선 여인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 언뜻 봐도 한국인은 아닌 것이 분명하고, 어떤 인연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했지만 그것을 물어볼 여유도 엄두도 없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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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친구로 보이는 듯한 두 여인이 진행되는 과정을 열심히 지켜보는 모습은 이 작은 마을의 축제가 그들에게는 또 어떻게 보여질지 그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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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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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푸짐하다. 다만 칠석제만 참석할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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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고기를 굽느라고 땀을 흘리는 모습에서 공동으로 즐기는 행사라는 것을 알겠다. 문득 안쪽의 방이 궁금해서 다가가봤다. 여긴 마을회관인 것으로 보인다. 간판을 보지 못한 것 같아서 확실하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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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색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유건을 쓴 아져씨들이 채비를 갖추고 나오는 중이었다. 아마도 오늘의 제관이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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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른이 입장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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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이어서 오늘의 제물들이 줄을 지어서 젯상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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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도, 시루도, 곶감도 줄줄이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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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촐한 상차림이 잠시 진행되었다. 모처럼 맷방석을 깔아놓은 장면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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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상이 차려지고 이제부터 칠석제를 지내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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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쓸데없는 제물을 올리지 않고 소박한 그대로 올려진 것을 보고 느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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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가 당신께 제가 진행된다는 신고를 하는 듯이 모두가 허리를 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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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제주격인 옥색 두루마기 어르신들이 단에 올라서 집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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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칠석제이다. 그 과정만 모두 보고 갈 수가 있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시원시원해서 좋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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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아가면서 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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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갈아가면서 잘 진행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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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먹거리는 착실하게 준비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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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협력하는 것이야말로 두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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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수호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나서는 모두 맛있게 나눠먹을 음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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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신 어르신도 잔 올리세요~~!!"

진행자의 한 마디에 모두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는 할머니가 계셨다. 앉아서 담소를 나누시다가 일어나서 가방을 챙긴다. 아마도 동네에서 최고령의 어르신일 것으로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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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며느리로 보이는 여성의 도움으로 가방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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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 몇 장을 꺼내어서 손에 쥐고는 젯상으로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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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지막 잔까지 다 올리고 나서야 칠석제는 마무리를 지어간다. 이제 영의정 농기로 가야 하는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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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농기를 향해서 바쳐진 시루와 술잔을 올리고 또 절을 올린다. 이렇게 하는 것이 칠석제의 마지막이고, 이 뒤에는 풍장이 한마당 어우러 졌다. 그것은 사진으로 찍어서는 그 맛이 날 것 같지 않아서 동영상으로 담았다. 잔치에는 풍악이 있어야지.



여기까지가 칠석제라는 안내방송을 듣고서 낭월도 귀가를 서둘렀다. 다행히 11시 전에 본행사가 끝났다. 이후에는 마을축제란다. 그것은 나와 인연이 없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당나무를 향해서 동네를 잘 보살펴 주시라고 기원의 마음을 나뭇가지 하나에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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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의 세월을 지켜보면서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을 당산나무의 옹이가 눈길을 끈다. 아마도 그만큼 많은 사연이 엉켜있었으리라.....